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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향에는 이제 눈이 내리지 않는다
생각의나무 2000.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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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1. 내 고향에는 이제 눈이 내리지 않는다 : 은희경
2. 비닐 봉지 하나 새처럼 길을 가다 : 박자경
3. 거울이 놓인 방 : 송혜근
4. 치자꽃 필 무렵 : 송우혜
5. 패랭이꽃 한 송이 : 김지수
6. 목조 마네킨 헥토르와 안드로마케 : 전경린
7. X : 한정희
8. 능안에서 살다 : 윤명제
9. 우리들의 작문교실 : 조민희

저자 소개 2

등저은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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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n Hui Gyeong,殷熙耕

1959년 전북 고창에서 출생했고 전주여고를 거쳐 숙명여대 국문과와 연세대 대학원 국문과를 졸업했다. 졸업 후 출판사와 잡지사에서 근무하였다. 오늘을 살아가는 인간의 고독과 내면적 상처에 관심을 쏟는 작품들을 잇달아 발표하여 젊은 작가군의 선두 주자가 되었다. 등단 3년만인 1998년에 『아내의 상자』로 제22회 이상문학상 수상하면서 소설가로서 확고하게 자리를 잡았다. 한국문학번역원 비상임이사(제4대, 임기3년), 문화관광부 한국문학예술위원회 문학위원회 상임위원, 미국 워싱턴대 객원연구원으로 활동하였다. 30대 중반의 어느 날, `이렇게 살다 내 인생 끝나고 말지` 하는 생
1959년 전북 고창에서 출생했고 전주여고를 거쳐 숙명여대 국문과와 연세대 대학원 국문과를 졸업했다. 졸업 후 출판사와 잡지사에서 근무하였다. 오늘을 살아가는 인간의 고독과 내면적 상처에 관심을 쏟는 작품들을 잇달아 발표하여 젊은 작가군의 선두 주자가 되었다. 등단 3년만인 1998년에 『아내의 상자』로 제22회 이상문학상 수상하면서 소설가로서 확고하게 자리를 잡았다. 한국문학번역원 비상임이사(제4대, 임기3년), 문화관광부 한국문학예술위원회 문학위원회 상임위원, 미국 워싱턴대 객원연구원으로 활동하였다.

30대 중반의 어느 날, `이렇게 살다 내 인생 끝나고 말지` 하는 생각에 노트북 컴퓨터 하나 달랑 챙겨 들고 지방에 내려가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이 은희경의 인생을 바꿨다. 199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중편 『이중주』가 당선되어 등단했으나 알아주는 사람이 별로 없자, 산사에 틀어박혀 두 달 만에 『새의 선물』을 썼다. 이 작품이 제1회 문학동네 소설상을 수상하면서 필명을 날리게 되었다. 한 해에 신춘문예 당선과 문학상 수상을 동시에 한 작가는 1979년 이문열, 1987년 장정일 이후 처음이었다. 또한 1997년에 소설집 『타인에게 말 걸기』로 제10회 동서문학상을, 1998년에 단편소설 『아내의 상자』로 제22회 이상문학상을 수상, 2000년에 단편소설 『내가 살았던 집』으로 제26회 한국소설문학상을 수상했다.

은희경은 등단한 다음 해부터 2년 동안 엄청난 양의 작품을 소화해냈다. 해마다 2000매 이상을 썼을 것으로 추측된다. 은희경 소설은 무엇보다 ''잘 읽힌다''는 것과 무척 ''재미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 뒤에는 단순한 유머가 아닌 진한 페이소스를 숨기고 있다. 은희경 소설의 매력은 소설의 서사 진행 과정중 독자들 옆구리를 치듯 불쑥 생에 대한 단상을 날리는 데 있다.

그녀의 소설을 흔히 사랑소설 혹은 연애소설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은희경은 "궁극적으로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의 상투성'', 그로 인해 초래되는 진정한 인간적 소통의 단절"이라고 한다. 그녀를 따라 다니는 또 하나의 평은 ''냉소적''이라는 것이다. 그녀는 사랑이나 인간에 대해 환상을 깨고 싶어한다. 그녀에 의하면 ''사랑의 가장 커다란 병균은 사랑에 대한 환상''이다. 그녀는 사랑에 관한 이 치명적인 환상을 없애기 위해 사랑을 상대로 위악적인 실험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그녀의 대표작 중 하나인『마이너리그』는 58년 개띠 동창생 네 친구의 얽히고 설킨 25년 여 인생을 추적하면서 '마이너리그'란 상징어로 한국사회의 '비주류', 그러나 실제로는 대다수 보통 사람들이 해당될 수밖에 없는 '2류인생'의 흔들리는 역정을 경쾌한 터치로 그려낸 소설이다. 작가는 이 소설에서 우리 사회 곳곳에 숨어있는 갖가지 허위의식, 즉 패거리주의 학벌주의 지역연고주의 남성우월주의 등을 마음껏 비웃고 조롱하는 가운데, 주인공들의 마이너 인생을 애증으로 포옹한다. 작가는 권두의 '작가의 말'에서 "내게 주어진 여성이라는 사회적 상황은 한때 나로 하여금 남성성에 대한 신랄함을 갖게 했다. 이제 나를 세상의 남성과 화해하게 만든 것은 삶의 마이너리티 안에서의 동료애가 아닌가 한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불완전한 도중(道中)에 있다"라고 말한다.

저서로 소설집 『타인에게 말 걸기』, 『상속』, 『행복한 사람은 시계를 보지 않는다』,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 『다른 모든 눈송이와 아주 비슷하게 생긴 단 하나의 눈송이』, 『중국식 룰렛』, 장편소설 『새의 선물』, 『마이너리그』, 『그것은 꿈이었을까』, 『비밀과 거짓말』,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 『태연한 인생』, 『소년을 위로해줘』, 『빛의 과거』가 있다. 문학동네소설상, 동서문학상, 이상문학상, 한국소설문학상, 한국일보문학상, 이산문학상, 동인문학상, 황순원문학상을 수상했다.

은희경의 다른 상품

등저전경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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全鏡潾, 본명:안애금

흔히 '귀기의 작가' '정념의 작가' '대한민국에서 연애소설을 가장 잘 쓰는 작가'로 불리는 소설가 전경린은 이미지의 강렬함과 화려한 문장으로 기억된다. 서른 세 살. 아이와 피와 심지어 죽음조차 삶이 모두 허구라는 것을 느낀 작가는 허구가 아닌 삶의 실체를 갖고자 소설을 쓰기로 시작했다. 1993년 작가의 가족은 마산 옆 진양의 외딴 시골로 이사를 갔다. 꽤나 적적한 곳이었지만 여기서 전경린은 `뭔가가 밖으로 표출되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었고, 3년 가까이 사람들과 인연을 끊다시피 하고 들어앉아 많은 글을 써냈다. 자기 욕망에 충실한 내면적 세계와 질서화 되고 체제
흔히 '귀기의 작가' '정념의 작가' '대한민국에서 연애소설을 가장 잘 쓰는 작가'로 불리는 소설가 전경린은 이미지의 강렬함과 화려한 문장으로 기억된다. 서른 세 살. 아이와 피와 심지어 죽음조차 삶이 모두 허구라는 것을 느낀 작가는 허구가 아닌 삶의 실체를 갖고자 소설을 쓰기로 시작했다.

1993년 작가의 가족은 마산 옆 진양의 외딴 시골로 이사를 갔다. 꽤나 적적한 곳이었지만 여기서 전경린은 `뭔가가 밖으로 표출되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었고, 3년 가까이 사람들과 인연을 끊다시피 하고 들어앉아 많은 글을 써냈다. 자기 욕망에 충실한 내면적 세계와 질서화 되고 체제화 된 바깥 세계 사이의 작용과 긴장과 요구 속에서 갈등하는 여성과 여성적인 삶이 문학적 관심사다.

작가의 본명은 안애금. 전혜린을 연상시키는 전경린이라는 이름은 옛날 신춘문예에 응모할 때 임시로 지었다. 당시 누가 `린'이라는 화두를 주었고, 차례대로 `경'과 `전'을 추가해서 `전경린'이라는 이름을 완성시켰다. 작가도 물론 `전혜린'을 떠올렸다. 작가는 전혜린을 좋아한다. 그리고 전혜린뿐 아니라 나혜석, 윤심덕 더 올라가서 황진이까지 소위 강한 자의식 때문에 고통 받고 분열될 수밖에 없었던 선각자적 여성을 좋아하고 흠모한다.

1963년 경남 함안에서 태어났으며 경남대학교를 졸업하고, 마산 KBS에서 음악담당 객원 PD와 방송 구성작가로 근무했다. 그 후 운동권이었던 남자와 결혼하여 딸과 아들을 낳고 평범한 주부로 살다 둘째를 낳은 후인 1993년부터 본격적인 습작에 들어갔다. 199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중편소설 부문에 「사막의 달」이 당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하하였으며 1997년 「염소를 모는 여자」로 제29회 한국일보 문학상, 1997년 장편소설 『아무 곳에도 없는 남자』로 제2회 문학동네 소설상, 1998년 단편소설 「메리고라운드 서커스 여인」으로 21세기 문학상, 2004년 단편소설 「여름휴가」로 대한민국소설문학상 대상, 2007년 단편소설「천사는 여기 머문다」로 제31회 이상문학상 대상을 수상했다. 소설집 『염소를 모는 여자』, 『바닷가 마지막 집』, 『물의 정거장』, 장편소설 『아무 곳에도 없는 남자』, 『내 생에 꼭 하루뿐일 특별한 날』, 『난 유리로 만든 배를 타고 낯선 바다를 떠도네』, 『열정의 습관』, 『검은 설탕이 녹는 동안』, 『황진이』, 『엄마의 집』과 어른을 위한 동화 『여자는 어디에서 오는가』, 산문집 『붉은 리본』, 『나비』 등이 있다.

전경린의 베스트셀러인 『내 생에 꼭 하루뿐인 특별한 날』은 2002년 변영주 감독에 의해 영화화되기도 했다. 가정의 틀안에서 안주하던 한 여성이 내면에 지닌 혼란스런 욕구를 발견하고 자아를 찾아가는 여정에서 나타나는 일탈과 매혹에 대한 이야기이다. 또한 이상문학상 수상작인 「천사는 여기 머문다」는 인간 본성의 양면성을 섬세한 문체와 절제된 기법을 통해 감동적으로 그려낸 작품으로, 삶의 현실에 대한 고뇌와 갈등을 내면화하는 데에 성공하고 있다는 평을 받았다.

대표적인 작품 『엄마의 집』에서는 처녀의식을 가진 엄마들에게 “미스 엔”이라는 이름을 부여하였다. 아버지에게도 남편에게도 자식에게도 종속당하지 않는 미스 엔이 그녀의 소설 속에서 새롭게 탄생한 것이다. 여성들의 욕망에 주목해 온 작가답게, 현실의 엄마가 놓인 지형을 넘어서는 대안적이고 이상적인 집의 전형을 제시하고자 하였다.

전경린의 다른 상품

저자 : 송우혜
1947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대 간호학과 중퇴, 한신대 신학과를 졸업. 198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중편소설 『성 야곱의 싸움』이 당선. 1982년에 <한국문학> 신인상을, 1984년에 삼성문학상을 수상. 소설집으로 『눈이 큰 씨름꾼 이야기』『스페인 춤을 추는 남자』, 장편소설 『저울과 칼』『투명한 숲』『하얀 새』, 평전『윤동주 평전』, 산문집『서투른 자가 쏘는 활이 무섭다』등을 발표했다.
저자 : 한정희
1950년 경기도 강화에서 태어나 이화여대 국문과 졸업. 198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중편소설 『불타는 폐선』이 당선. 소설집으로 『불타는 폐선』『유리집』등을 발표했다.
저자 : 윤명제
1951년 인천에서 태어나 성균관대 심리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1991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개막고원』이, 199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새를 찾아서』가 당선. 소설집 『새를 찾아서』, 장편소설 『그날의 홍차 색깔이 사랑이듯』등을 발표했다.
저자 : 송혜근
1952년 인천에서 태어나 이화여대 도서관학과 졸업. 1990년 <현대소설> 신인문학상에 단편소설 『누가 베르톨트 브레히트를 죽였는가』, 199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중편소설 『그대 흐르는 강물을 두 번 못 보리』가 당선. 장편소설 『립스틱을 바르는 여자』『두 개의 가방을 든 남자』『열린 바다를 꿈꾼다』등을 발표했다.
저자 : 박자경
1963년 서울에서 태어나 숙명여대 국문과 졸업. 1993년 중편소설 『무늬』로 삼성문학상을 수상. 1997년 중편소설 『달에게』가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 소설집 『은행나무 아래로 오는 사람』, 동화집 『책벌레가 된 도깨비』『마법사의 낮잠』등을 발표했다.
저자 : 조민희
1974년 경북 김천에서 태어나 연세대학교 영어영문학과 졸업. 2000년 동아일보 신춘무예 중편소설부문에 『우리들의 작문교실』이 당선됐다.

관련 분류

품목정보

발행일
2000년 12월 31일
쪽수, 무게, 크기
368쪽 | 526g | 크기확인중
ISBN13
9788984980013

책 속으로

아저씨는 누군가 내게 해줬어야 할 말들을 곧잘 해 주는 사람이었다. 한번은 뭐랬냐면, '그래, 좋아. 조금만 더 참고 견디면 누군가를 맘껏 미워할 수 있는 나이가 될거야. 하지만 아직은 안돼. 누군가를 힘껏 좋아해 보기 전까지는 아무도 미워할수 없어'라고 말했다. 무슨 뜻인지는 확실치 않았지만, 어쨌든 내 맘에 쏙 드는 말이었다. 누가 내게 그렇게 말해주길 오래도록 기다려온 기분이 들었다.

--- p.339-340

순지는 이제 아무 소용이 없게 된, 전에는 아늑한 주거공간과 소중한 재산을 표징하였으나 이제는 단지 하나의 의미 없는 물체일 뿐인 손바닥 위의 작은 쇠붙이를 멍하니 내려다보았다. 두 다리가 스르르 맥이 풀리고 떨려 순지는 그대로 서 있을 수가 없었다. 바닥에 쓰러지듯 주저앉았다. 갑자기 현기증이 일며 세상이 늪지가 가라앉듯 아득히 물러앉는 것 같았다.

이럴 수가 없어. 이럴 수는 없어.

새삼스럽게 절망스런 현실을 확인한 순지는 목구멍으로 솟구치는 아우성 같은 비명을 삼켰다. 상실감이 너무도 깊어서 제 자신이 마치 뿌리가 송두리째 뽑혀져 내버려진 마른 초목같이 느껴졌다.

그 동안 이 스물 몇 평의 공간 안에 그처럼 안온하게 존재하던 삶은 송두리째 헛된 가상이었던 것인가. 이곳에서 먹고 자고 즐기고 슬퍼하며 영위하던 나날들이 기실은 실체가 없는 순간순간의 허상들에 불과하였다. 그렇지 않다면 지금 내게 남아 있는 것은 무엇인가. 이제라도 다만 그 실체의 조각이라도 쥐고 있어야 하지 않은가.

살뜰하게 축적해 온 지난 삶의 궤적을 철저히 차단한, 그래서 그 흔적조차 만질 수 없는 푸른색 두꺼운 철문 앞에서 순지는 허탈하고 또 허탈하였다. 아이라도 있었다면, 곁에서 똘망한 눈빛으로 엄마의 고통을 함께 나눌 따뜻한 체온의 살붙이라도 데리고 있었다면 이 터에서 이룬 지난 삶이 이처럼 헛된 자취 같지는 않을 것을, 순지는 가슴 속에 그늘처러 자리잡고 있던, 자신이 놓아버린 숱한 아이들의 영상을 느닷없이 떠올렸고, 그와 함께 절절한 죄책감에 몸을 떨었다.

--- pp.191-192

남편과 못살겠다고, 부디 매맞지 않고 조용히 이혼할 수 있는 길을 알려 달라고 여자는 손수건을 꼬깃거리며 말한다. 그리고 마지막 순서, 여자가 준비해 온 편지를 읽는다.

'여보, 베발 술 좀 고만 드시고 우리 고생도 얼마 남지 않았으니 착하게 자라나는 아이들을 보며 희망을 갖고 사십시다. 사랑하는 당신 아내가'

그 대목에서 여자는 목이 맨다. 사랑한다니? 비장하기가, 폭우 속에서 발표하는 역사적 독트린 같다. 사랑한다고 말하는 순간 여자들은 왜 울까.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을 사랑한다고 스스로 마취를 거는 순간, 고양된 순교자적 희생 정신 때문일 거다. 써금써금하다 못해 삼출물이 누렇게 흘러나오면서도 무슨 인사말이라도 되는 것처럼 말끝에 사랑한다는 토를 다는 부부를 보면 웃음이 난다. 사랑한다는 말이 정말 주접스럽게 느껴지는 순간이다. 지겨워서, L은 젖은 걸레를 깔고 앉은 기분이다.

--- p.65

기묘하게 공허해 보였다. 밤과 낮 사이의 망각의 벽이 뒤로 물러서고 젖빛 아침이 오면, 호객을 위한 현숙막과 간판들은 글자를 드러내고 가게들은 물건을 아케이드 앞에 줄줄 겹쳐 내놓겠지만 그 시각엔 시간이 흐르고 있다는 걸 좀 채로 실감할 수 없었다. 시간은 마치 다른 세계 속으로 잠적한 것 같았다.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흐름이 박탈된 광물질의 세계로.

--- p.233

출판사 리뷰

여자의 얼굴, 일상의 얼굴, 소설의 목소리
2000년의 마지막 날들을 함께 보낼 만한 정갈하고 고운 소설집을 한 권 선보인다. 『내 고향에는 이제 눈이 내리지 않는다』는 동아일보 신춘문예 중편소설 부문에 당선되어 등단한 여성 작가들의 동인 소설집이다. 같은 문을 통해 문학의 길에 들어선 인연을 소중히 여기고, 서로의 문학 창작욕을 북돋우기 위해 지난 1995년에 첫 작품집을 묶은 이래 차곡차곡 쌓여, 1999년에 출간된 『낯선 물 속 나의 그림자』에 이어 이번이 다섯 번째 작품집이다. 처음에 일곱 명으로 시작됐던 모임이 이제는 아홉 명이 되어 명실공히 우리 문학사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여성 소설가 구인회의 진용을 갖추게 되었다. 현재 활발히 활동중인 한국의 대표적 여성 작가들의 최신소설 세계를 한눈에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첫눈처럼 반가운 작품집이라 하겠다.

이 작품집에 참여한 여성 작가들의 면면은 참으로 화려하다. 큰언니라 할 송우혜로부터 독자적 문학 공간을 넓혀온 김지수, 송혜근, 윤명제, 한정희를 포함해 현재 한국 문학의 작은 고유명사로 자리잡은 은희경, 전경린 그리고 서서히 독자들의 주목을 받고 있는 박자경을 비롯하여 2000년 등단한 신예 조민희에 이르기까지, 믿을 만한 소설가들의 결집이라 할 수 있다. 작가들만큼이나 그 작품의 성취도 또한 고르게 뛰어나다. 서로의 작품 세계를 비교해 볼 수 있는 자리이므로 동인 소설집에 실릴 작품을 직접 선별한 작가의 신중함이 배어 있다. 이처럼 중견 작가로부터 신예에 이르기까지 여성 소설가들의 성숙하고 매혹적인 본격 소설을 통해, 독자들은 깊게 파고드는 여성 소설의 향기를 맡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에 실린 작품들은 9인 9색이라 할 정도로 다양한 소설 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끝없이 이어진 아홉 갈래의 소설들이라 할 수 있는 언어의 미로 속에서 작가들은 때로는 9중주와도 같은 화음을, 때로는 구절양장과도 같은 복화술을 발하고 있다. 사회 문제를 다루고 있는 작품에서부터 동성애의 문제, 성장기의 상처, 일상의 권태로움과 그것의 폭력성, 사랑의 치명성과 상실, 실존적 고통, 섹스의 추억, 그리고 이 모든 검은 빛깔들을 연둣빛으로 채색하는 희망의 근거 등등. 여러 제재를 형상화한 이 작품들을 묶는 고리는 아마도 여성의 경험, 여성의 시선일 것이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여성들의 얼굴은 일상의 반영이면서, 일상의 경계를 뛰어 넘으려 하는 소설이라는 문학 장르의 목소리이기도 하다. 삶이 마냥 지루하고, 빠른 속도로 다가오는 '나이'의 공습 앞에서 문득 당황스러울 때, 그윽하고도 느린 소설의 강가에 나가보자. 일상 속에서 여성의 시선을 통해 삶의 본질을 캐묻는 발랄하고 섬세한 감수성의 궤적들을 따라가 보자.
리뷰 총점 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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