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1부 미어랜드 로드의 집
1장 적절한 놀이 친구 2장 푸른 구슬 3장 기억 유리병 4장 낯선 사람들 5장 아메리칸 파이 6장 자유 여름 7장 유리병 속 편지 8장 오독 2부 정신의학의 집 9장 그림자가 아는 것 10장 회전문 11장 제정신으로 돌아오기 12장 이야기들 13장 선택 14장 무너지다 15장 얽히다 16장 폐쇄 병동 17장 질환을 무기로 바꾸다 18장 하류계급 19장 중간 거주 시설 3부 법의 집 20장 두뇌들 21장 멘토들 22장 선례 23장 비밀들 24장 질환에 대한 동정의 빛 25장 행복한 백치 26장 박사후 연구원 27장 사려 깊은 북돋음 28장 커리어 파괴자 4부 꿈의 집 29장 역할 모델이 되다 30장 거듭남 31장 크리에이티비티 주식회사 32장 케빈이 되다 33장 샤먼 34장 동등한 기회 35장 거꾸로 가는 여정 36장 두 명의 아담 37장 개인적 위급 상황 38장 돌아가는 길 39장 죽음의 깔때기 40장 카인과 아벨 41장 변치 않는 낙관주의자 42장 결말들 에필로그 돌아갈 길은 없다 감사의 말 참고 문헌에 붙이는 말 |
박다솜의 다른 상품
|
반면 닥 새비지처럼 사진 기억력을 타고난 마이클은 무엇 하나 잊는 법이 없었다. 또한 우리 반을 방문해 에벌린 우드 속독법 특강을 해준 어떤 사람에 의하면 존 F. 케네디는 1분에 1200개의 단어를 읽었다고 하는데, 마이클도 그에 못지않게 맹렬한 속도로 글을 읽었다.
--- p.57 마이클이 모아놓은 거절 편지도 압박으로 작용했다고 척은 말했다. 그중에는 편집자가 직접 쓴 편지와 격려하는 쪽지도 있었다고 덧붙일 때는, 저 옛날처럼 뽐내는 분위기가 언뜻 스쳤다. 하지만 그것들조차 점점 편집증적으로 변해가던 마이클에게는 우울감을 더해주었다. 마이클의 망상에는 “가족이 포함되었다”고 그는 말했다. 척은 다음에 또 대화하게 되면 “다른 얘기도” 해주겠다고 말하면서, 168번가에 있는 워싱턴하이츠의 컬럼비아 장로교 병원 폐쇄 병동에 있는 마이클에게 전화를 해보라고 권했다. 폐쇄 병동, 그 무시무시한 표현을 처음 들은 순간이었다. --- p.273 병원에서 전화를 건 그날 밤, 마이클은 “이봐아아, 마이크” 대사를 한 차례 주고받은 뒤에야 고백했다. “나 지금 컬럼비아 장로교 병원 십층이야. 폐쇄 병동에 있어.” 그뒤에는 놀라울 만큼 여느 때와 다르지 않은 대화가 이어졌다. 다른 점이라면 마이클이 이따금 이런 말을 덧붙인다는 것 정도였다. “그렇지만 그들이 날 죽이려 하는 걸 알아. 여기서 나가야 돼.” --- p.289 마이클은 자신이 가난하다고 느꼈을 뿐 아니라, 보이지 않는 존재가 되었다고 느꼈다. 행정적으로 그는 아동, 임신부, 노인, 시각장애인, 빈곤층, 정신이상자, 실업자와 같은 부류로 묶여 있었다. 그래도 엄밀히 따지면 복지 수혜자가 아니라 생활 보조금의 변형된 형태를 받고 있을 뿐이라는 점에서 마이클은 일말의 자부심을 느꼈다. 작은 행정적 착오를 바로잡기 위해 화이트플레인스 시내의 복지 사무소에 가서, 담배 한 대만 꿔달라고 조르는 빈털터리와 같은 줄에 서서 기다렸던 이야기를 하며 그는 혐오감을 감추지 않았다. --- p.330 병이라는 악몽에서 깨어나보니 그는 본연의 자신이었다면 본능적으로 옹호했을 사람들과 나란히 서 있었다. 그러나 거기서 마이클의 역할은 옹호자가 아니었다. 그들을 위안해주기엔 그들과 너무 가까웠다. 잘못된 줄에 섰다고 보기엔, 마이클의 상처와 혼란이 너무 깊었다. 그래도 그건 잘못된 줄이어야 했다. 내게 마이클과 나를 분리해주는 무언가가 필요했듯, 마이클에겐 그들과 자신을 분리해주는 무언가가 필요했다. --- p.331 한편 마이클은 서약을 받기 전에는 비밀을 밝힐 수 없다고 했다. 한참 밀고 당기기를 하던 중, 마침내 동기가 희망을 담은 목소리로 불쑥 물었다. “너 동성애자야?” 마이클이 답했다. “그보다 나빠. 나 미쳤어.” 마이클은 “미쳤다”는 단어를 선호했고-“내가 미쳤을지는 몰라도 멍청하진 않아”라는 말에서처럼-그 말에 담긴 유머는 고백의 충격을 조금이나마 완화시켰다. “조현병”이라고 말할 경우 아무도 웃지 않았다. 마이클은 일단 비밀을 끌어안은 부담에서 벗어나면, 자신의 상태에 내포된 심각성을 감추는 명료한 말투로 본격적인 이야기를 풀어놓기 시작했다. --- p.402 양복쟁이들은 마이클에게 부친 살해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다. 어차피 그 장면은 진짜가 아니라 환각이었고, 마이클 라우도어가 아니라 케빈 라우턴이 겪은 것이었으며, 케빈이라는 인물 역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육체를 입은 일종의 환각이었다. 다만 어느 시점엔가 케빈을 연기할 인물은 브래드 피트로 변경되었다. 디카프리오가 이 작품에 열의를 품고 있었음에도 1998년 9월으로 예정된 촬영 일정을 맞출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사실 확실히 결정된 건 하나도 없었다. 『버라이어티』에서는 이런 기사를 냈다. “20세기폭스사의 〈파이트 클럽〉에 에드워드 노튼, 그리고 아마도 코트니 러브와 함께 출연하기로 예정된 피트는 가을에 ‘광기’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마감 시한의 존재로 인해 마이클은 더 심한 압박을 받았다. 출판사측에서는 당연히 출간 일정을 영화 개봉과 맞추길 원했다. 표지에 배우 사진이 박힌 책들은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경향이 있었다. --- p.523 캐리는 동료들에게 모든 걸 터놓고 이야기하지는 않았다. 캐리가 퇴근해서 집에 도착했는데, 마이클이 그녀가 캐리라는 말을 믿지 못해서 문을 열어주지 않는 날들이 있었다. 캐리가 아무리 자신이 캐리라고 주장해도 마이클을 설득할 수는 없었다. 페니처럼 “마이클, 또 시작이야” 하면서 약을 더 먹이는 것도 불가능했다. 아니, 원래 그가 먹어야 할 약조차 먹일 수 없었다. 마이클이 눈앞의 사람이 캐리라고 믿지 못하는데, 그녀의 말을 어떻게 믿겠는가? 그런 날이면 캐리는 문 반대쪽에서 쏟아지는 공포와 분노를 느끼고 친구네 집 소파에서 잠을 잤다. 힘든 밤들이었다. --- p.569 “네, 자꾸 저를 가둔다고 협박해서요. 그래서 제가 캐리를, 아니면 캐리인 척하는 태엽 인형을 죽였을지도 몰라요. 확실하지 않아요. 확인해볼 수 있을까요?” 마이클이 말했다. 마이클은 캐리의 안위를 진심으로 절실하게 걱정하는 것 같았다. 진실을 알고 싶어하는 것도 진심인 것 같았다. 그는 자신의 입 밖으로 흘러나오는 이야기에 다른 사람들만큼 놀라고 당혹스러워 보였다. 자신이 어떤 일을 저질렀는지 확신할 수는 없지만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힌 듯했다. 설령 자신이 수사의 표적이 될지라도, 답을 알아야만 했다. 마이클은 경찰이 캐리의 상태를 확인해주길 원했다. 어쩌면 그 자신의 상태 역시 확인해주길 원했는지도 모른다. --- p.606 사진 위에 배치된 헤드라인은 단 한 단어였다. 눈에 띄도록 검은색 바탕에 커다란 흰색 글씨로 이렇게 적혀 있었다. 사이코 --- p.622 마이클 본인이 희망의 상징이었듯 마이클의 영화 역시 희망의 상징으로 여겨지고 있었다. 자신의 존재가 사회에서 인정받고 가시화되기를 절실히 원하는 수백만 사람들에게 마이클이 어떤 의미였는지, 나는 살인 사건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의 몰락이 그 수많은 개인들에게 얼마나 큰 절망을 안겨주었는지 역시 알지 못했다. 〈사이키애트릭 타임스〉 저널에서는 마이클 사건을 다룬 기사에 “홍보 포스터에서 현상 수배 포스터로”라는 제목을 달았다. --- p.624 여름이 끝나갈 무렵, 마이클은 재판을 받을 능력이 없다는 감정을 받았다. 검사장의 요청으로 소환된 심리학자 역시 법원에서 선정한 다른 감정 의사들과 같은 결론에 다다랐다. 〈데일리 뉴스〉에서는 심리학자가 제출한 “극비 보고서”를 인용하여, 마이클이 “자신이 약혼자를 죽였다는 사실을 믿지 못하고” 있으며 “자신이 저지른 것으로 보이는 끔찍한 사건을 떠올린다는 두려움과 교도소에 보내진다는 두려움 둘 다로 인해 극심한 공포와 불안을 느끼고 있다”라고 보도했다. 마이클은 치료감호소에 입소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그곳에서라면 마이클이 변호사의 요청을 받았음에도 여전히 거부하고 있던 약물을 투여하기가 더 쉬울 것이었다. 다음 정신 감정은 일 년 뒤로 예정되었다. 지닌 피로 검사장은 여전히 재판이 열릴 가능성을 낙관적으로 보았다. “의사의 감정을 인정합니다. 하지만 언젠가는 그가 재판에 회부되길 기대합니다.” --- p.668 마이클은 캐리를 살해한 것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았다. 얼마 전 있었던 퇴소 심사에서는 캐리가 “프랑스에 살고 있다”고 말했다고 했다. 하지만 때때로 내게는 마이클이 내뱉는 말들이 위장막을 두른 자백처럼 들렸다. 어쩌면 그건 내 몫의 망상이었을지도 모르지만. 어느 날 마이클은 글쓰기의 어려움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포크너의 격언을 인용했다. “사랑하는 것들을 모두 죽여야 돼.” 원래 이 격언은 자신이 쓴 단어들을 가차없이 편집하라는 의미였지만, 마이클의 말투는 다소 의미심장하게 들렸다. --- p.693 |
|
“아무도 그의 병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빛이자 희망이었던 친구가 추락한 사건을 둘러싼 슬픔과 연민의 기록 『슬픈 살인』은 마이클 라우도어와 저자 조너선 로즌의 어린 시절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둘은 유대계 집안 출신으로 비슷한 사회적 배경과 가정환경을 공유하며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친구가 된다. 마이클은 “1분에 1200개의 단어를 읽을 수 있을” 정도로 또래를 압도하는 학습 능력을 지녔고, “태연하게 어른들과 눈을 맞추며 캄보디아 폭격을 욕하고, 워터게이트 스캔들을 논하는” 등 어릴 때부터 복잡한 정치 이야기와 철학적 개념을 이해하고 설명할 만큼 비범했다. 게다가 늘 자신이 위대한 사람이 될 거라는 야망이 있었다. 이런 마이클은 조너선에게 동경과 질투의 대상이자 “인생의 필연적 존재”였고, 둘은 절친한 친구이자 라이벌로서 함께 성장해나간다. 애증의 시간을 통과하며 이어지는 둘의 미묘한 우정을 따라가다보면, 두 사람의 가정환경과 성장기 사회문화적 배경이 마이클의 발병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엿볼 수 있다. 당시 미국은 지적 성취를 무엇보다 중시했고, 유대계 교수 부모를 둔 그의 가정환경은 학업이나 성공에 대한 과도한 압박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여기에 1980년대 미국 사회 특유의 엘리트주의 문화가 결합되면서, 마이클은 자신의 내면의 불안을 인정하기보다 그것을 극복하거나 숨겨야 할 대상으로 받아들이고, 초기 증상이 나타난 이후에도 도움을 요청하는 대신 회피해버린다. 결국 개인의 취약성 위에 사회적 압박과 문화적 기대가 더해지면서 증상이 악화된 셈이다. 마이클과 나는 능력주의적 성공의 화려한 지표들을 쟁취하고자 부단히 노력했다. 그런데 그것들이 정말로 심신을 약화시키는 정신장애를 극복하고 ‘승리’했다는 증표였을까? 예일대 졸업장과 할리우드가 정신건강의 보증서일 수 있나? 하나를 주면 하나를 앗아가는 교환 관계를 전제로 한 불완전한 치료를 견디며, 승리할 방법 없이 끝없이 이어지는 전투들에 용감하게 임하면서, 불확실한 길을 따라 느릿느릿 발걸음을 옮기는 데 필요한 비상한 힘보다 그것들이 정말로 더 중요했을까? _본문 656쪽 조너선과 마이클은 함께 예일대에 입학하며 청년기까지 우정을 이어나간다. 마이클은 예일대를 3년 만에 수석으로 졸업하고 최상위 경영 컨설팅 기업에 취직하며 부와 성공을 거머쥔 듯했지만, 그의 내면에 미묘한 변화가 나타난다. 처음에는 단순한 편집증적 불안이나 집착에 불과했던 증상이 점차 현실을 왜곡하는 망상으로 변질되어간다. 그는 세상을 음모론의 시각에서 받아들이고, 주변 사람들의 행동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한다. 자신의 전화가 도청당하고 있다거나 누군가가 자신을 의도적으로 미행한다고 믿는 등 과도한 예민함을 보였는데, 이는 조현병의 전형적인 증상이기도 하다. 이 과정에서 마이클은 점점 고립되어가고 가족과 친구들로부터 멀어진다. 치료와 상담을 시도하지만 호전과 악화를 반복하며 그의 상태는 점점 더 불안정해진다. 결국 마이클은 심각한 발작을 겪고 정신병원 폐쇄 병동에 입원한다. 이후 치료를 통해 상태가 호전된 마이클은 끝내 예일대 법학대학원 진학에 성공한다. 마이클의 정신질환 병력과 예일대가 그의 입학을 승인한 과정이 〈뉴욕 타임스〉 1면 기사를 통해 소개되며, 마이클은 ‘조현병을 극복한 영웅’이 된다. 거액의 선인세를 받고 출판 계약을 맺었고, 할리우드의 유명 영화 제작자에게 영화 판권까지 팔았다. 말 그대로 성공가도를 달렸다. 하지만 집필과 대외활동으로 인한 압박으로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렸으며, 조현병을 이겨낸 천재로 포장될 때마다 증상을 숨겨야 했기에 제대로 된 치료를 받을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1998년 망상에 사로잡힌 그가 임신한 여자친구를 잔인하게 살해하는 끔찍한 사건이 발생하기까지, 그의 병은 제대로 관리되지 못했다. 조너선 로즌은 이 비극이 벌어진 과정을 정신질환과 관련된 미국의 굵직굵직한 사건들, 정신의학의 이론과 역사와 한데 엮어 20세기 후반 미국의 사회 분위기와 사회제도적 문제 등을 두루 되짚는다. 나아가 관찰자에서 벗어나 가까운 친구로서 마이클을 단순한 조현병 살인자로 낙인찍기보다 정신질환에 무지한 사회의 희생자이자 입체적 인생을 살아간 한 명의 인간으로 그려내며, 진정한 우정을 실현해낸다. 여러 소설을 집필하기도 한 조너선 로즌의 섬세하면서도 아름다운 문장은 〈워싱턴 포스트〉의 평처럼 “가슴 아픈 결말을 알면서도 모두가 살아남는 반전이 있기를 바라게” 만든다. “잘못된 선의로 가득찬 사회에 보내는 고발장” 조현병에 대한 무지가 낳은 비극의 문학적 기록이자 정신질환의 역사를 탐구해 밝혀낸 입체적 진실 조너선 로즌은 마이클의 사건이 결코 고립된 개인의 비극이 아니라 당시 사회적 인식과 치료 방식의 문제에 따른 결과임을 보여주기 위해 정신질환 치료의 역사를 탐구하여 그 의의와 한계를 짚는다. 로즈메리 케네디가 받은 전두엽 절제술부터 정신질환 관련법과 인권운동, 조현병과 사이키델릭의 문화적 관계, 조현병 환자의 아이콘이 된 엘린 색스의 인생, 정신질환 환자를 샤먼으로 본 로버트 새폴스키의 이론까지 여러 분야를 망라해 이 질병을 둘러싼 인식과 제도, 문화를 모두 살필 수 있게 한다. 예컨대 로즈메리 케네디의 전두엽 절제술이 당사자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인간으로서의 정체성을 잃고 침묵하게 만드는 방식이었다면, 이후 제정된 지역사회 정신보건법이나 유행처럼 번진 정신건강 인권운동은 강제 입원과 치료를 최소화하고 환자의 권리와 자유를 최우선 가치로 삼았다. 문제는 이러한 변화가 그 목적과 의도와는 달리 명백한 위험 신호가 있음에도 그 누구도 환자에게 개입할 수 없게 만들었다는 점이다. 마이클의 경우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는 증상이 악화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특별한 폭력성이 없다”는 이유로 강제 입원 대상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주변 사람들 또한 그의 선택을 존중해야 한다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적극적으로 개입하기를 주저했다. 이는 개인의 자유를 존중하려는 선의가 치료의 공백을 야기하고 환자의 고립과 방치로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마찬가지로 마이클에게서 그럴듯한 이야깃거리를 찾으려 했을 뿐 그라는 사람 전체는 지워버린 미디어, 엘리트를 신격화하며 그의 미래를 응원한 대중…… 이들은 모두 선의를 갖고 있었지만, 피해자의 죽음을 불가피하게 만드는 데 일조했다. 마이클이 복약을 그만두었다는 것까지는 머나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마이클이 캐리를 외계인이라고 생각한다는 말은 충격이었다. (...) 그러나 법적으로 약물 복용을 거부하는 사람을 강제 입원시키는 게 정당화되지 않듯이, 이제는 망상에 빠진 사람에게 강제로 약물을 복용시키는 것도 정당화되지 않았다. 유일한 관건은 마이클이 폭력적인지 여부였는데, 머리는 그렇지 않다고 판단했다. _580쪽 이처럼 『슬픈 살인』은 정신질환을 둘러싼 미국 사회의 역사적 흐름을 따라가며 마이클의 비극이 그 연장선 위에 놓여 있음을 드러낸다. 특히 환자에 대한 낙인 문제를 지적하기보다 오히려 그 반대로 낙인을 의도적으로 배제하는, 자유와 권리를 중시하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적절한 개입이 사라질 때 어떤 비극이 벌어지는지, 나아가 낙인만큼이나 무지에 빠진 선의는 얼마나 위험한지를 날카롭게 꼬집는다. 겉으로 드러나는 성과를 칭송할 뿐, 그 이면의 스트레스와 그것이 정신건강에 끼치는 악영향은 제대로 보지 않는 사회 분위기는 오늘날에도 과거와 별반 다르지 않다. 『슬픈 살인』은 그런 사회에 던지는 경고의 메시지다. 조너선 로즌은 책의 마지막까지 정신질환 환자의 살인을 단순히 개인의 책임으로 환원할 수 없다고 말하며, 한 인간이 어떻게 서서히 무너져가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사회가 무엇을 놓쳤는지 좇는다. 궁극적으로는 마이클의 비극이 정신질환을 온전히 이해하는 데 실패한 사회와 잘못된 방식으로 행해진 선의로 인해 벌어졌다는 점을 지적하고, 정신질환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사회적 책임의 범위 그리고 타인을 도우려는 윤리적 태도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마이클의 비극은 곧 우리 사회가 마주해야 할 공동의 문제였다. “하지만 〈뉴욕 타임스〉는 질문할 수 있지 않았던가요? 귀도도 질문할 수 있었어요. 나 또한 질문할 수 있었지요. 사실 우리 모두 그 질문을 던졌어야 합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어요. 캐리도 그 질문을 던질 수 있었어요. 약혼자였잖아요. 마이클에게 꽤 오랜 시간 위협을 받고 있었을 겁니다.” 피스 교수는 내게 할리우드를 탓하지 말라고 진작 이야기했다. 어차피 원래 할리우드가 하는 일이란, 사실을 얼버무려 사람들 귀에 달콤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니까. 피스 교수는 계속 과거의 조각들을 연결해나갔다. 물론 할리우드에 이야기를 준 건 〈뉴욕 타임스〉였다. “하지만 〈뉴욕 타임스〉가 할리우드에 준 이야기는 예일대 법학대학원이 〈뉴욕 타임스〉에 준 것이었습니다. 제 말이 무슨 뜻인지 아시겠지요. 그전엔, 아마 마이클의 친구들이 한 이야기가 있었을 겁니다……” _본문 713쪽 |
|
용감하고 섬세하다. 『슬픈 살인』은 오랜 정성이 필요한 돌봄보다 경제적 이익, 빠른 치료, 해피 엔딩을 우선하는 사회에 보내는 사려 깊고 탄탄한 고발장이다. 조너선 로즌은 정신건강의 아이콘이었던 친구가 끝내지 못한 프로젝트를 이어받아 역사, 의학, 종교, 범죄라는 타래들을 자신의 임상 불안 경험과 함께 풀어나가며, 어릴 적 라이벌 관계를 뛰어넘어 자신과 친구의 이야기를 한데 엮어냈다. 이는 놀라운 연민의 산물이자 문학적 승리다. - 〈뉴욕 타임스〉
|
|
이 책을 회고록, 사례 연구, 혹은 단순한 정신질환에 관한 책이라고 말하는 것은 그 가치를 극도로 과소평가하는 것이다. 조너선 로즌의 시선은 특정적인 동시에 판옵티콘적이다. 이 위대한 작품은 광기에 관한 기록이자 동시에 20세기 후반 미국에 대한 사회학적 연구이기도 하다. 또한 어린 시절과 우정, 제2차세계대전의 긴 그림자와 예상치 못한 지적 유산, 야망과 망상, 그리고 이것들의 위험성에 관한 책이다. - 〈가디언〉
|
|
『슬픈 살인』은 지성과 광기만을 다룬 책은 아니다. 우리 모두가 이해할 수 없는 것에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 그리고 스스로 건사할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해 개인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 토머스 인셀 (박사, 전 미국 국립정신보건연구소장, 『마음이 아픈 사람들』의 저자)
|
|
연민을 품은 이야기꾼 조너선 로즌의 글솜씨 덕분에 가슴 아픈 결말을 알면서도 모두가 살아남는 반전이 있기를 바라게 된다. 회고록이자 선언문이기도 한 이 책은 불편하지만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그중 일부는 도저히 답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렬하며, 그 결과 예리하면서도 애정어린 걸작이 탄생했다. 마이클의 서사를 통해 우리 사회가 무엇에 가치를 두고, 무엇을 보는지, 반면 무엇을 애써 외면하는지 보여준다. 대단한 작품이다. - 〈워싱턴 포스트〉
|
|
복잡한 우정의 서사이자 지적 야망의 대가에 대한 경고. 인간적이고 이해심 깊은 목소리로 쓰인 『슬픈 살인』은 거대한 꿈을 실현해낸다. 이 책은 현대 문학의 걸작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 대프니 머킨 (『우상들과의 점심』 『나의 우울증을 떠나보내며』 저자)
|
|
이 매혹적인 회고록은 저자의 어린 시절 친구이자 조현병을 앓다가 삼십대에 끔찍한 살인을 저지른 마이클 라우도어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조너선 로즌은 마이클의 서사를 우리 사회가 정신질환을 대하는 태도가 어떻게 변화했는지에 대한 역사적 기록과 함께 심도 있게 엮어낸다. - 〈뉴요커〉
|
|
엄청난 감정을 불러일으키며, 잊을 수 없을 만큼 강렬한 여운을 남긴다. - 〈월 스트리트 저널〉
|
|
『슬픈 살인』은 정신질환 치료 시스템의 실패를 보여주는, 정교하게 쓰인 아름다운 서사시다. 원제의 아이러니는 ‘최고의 정신들’조차 조현병이 행동 선택이 아니라, 뇌질환임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심각한 정신질환을 앓는 900만 미국인 중 40퍼센트는 매일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다. 아이비리그와 할리우드를 배경으로 한 마이클의 이야기는 주목받았지만, 미국에서는 매일 다른 비극적 사건이 조용히 벌어지고 있다. - E. 풀러 토리 (의학박사, 『조현병의 모든 것』 저자)
|
|
조너선 로즌은 의학계의 가장 큰 수수께끼 중 하나인 정신질환의 기원과 의의를 상쾌할 정도로 솔직하게 다룬다. 예술적인 문체와 공감어린 글을 통해 어린 시절부터 폐쇄 병동까지의 여정으로 안내한다. 읽기 쉽지 않을 때도 있지만 그만한 가치가 있는 『슬픈 살인』은 생각을 자극하고 마음을 울리는 미묘함과 통찰의 작품이다. - 제롬 그루프먼 (하버드 의과대학 석좌교수, 『닥터스 씽킹』 『치료하는 마음』 저자)
|
|
조너선 로즌은 배려 깊고 섬세한 서사 속에서 소년기의 발견들, 홀로코스트 이후 미국에서의 유대인들의 삶, 약탈적 자본주의의 부상, 아무리 친구라도 타인의 ‘섬세한 두뇌’는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본질적 무능을 비롯하여 여러 세계를 포착해낸다. 부인할 수 없이 비극적인 이야기를 풀어내는 동시에 정신질환의 속성에 대해 의미 있는 탐구를 실현해낸다. 처음부터 끝까지 그가 유지하는 치열한 섬세함은 다음과 같은 자기 인식의 위험에 대한 문장에서 잘 드러난다. “글쓰기가 우리를 치유한다는 생각의 이면에는 두려움이 있었다.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데 실패한 사람은, 꿈을 이루는 데 실패한 사람은 저 바깥의 어둠 속으로 내던져질 것이다.” 정신질환으로 인해 망가진 우정과 그 끔찍한 결말을 감동적이고도 사려 깊게 그려낸 한 편의 초상. - 〈커커스〉
|
|
눈부시고 엄청난 잠재력을 지닌 한 남자의 숨막히면서도 비극적인 초상이자 정신분열증의 치료와 이해 방식에 대한 성찰. 잊기 힘든 작품이다. - 〈퍼블리셔스 위클리〉
|
|
조너선 로즌의 소설가적 역량에 처음부터 사로잡혔다. 그는 품위와 재능이 비슷한 두 소년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심각한 정신질환이 각기 다른 삶의 궤적에 미친 비극적 영향을 보여준다. 이 책은 일종의 등대 역할을 한다. 타인에게 위험을 초래할 수 있는 소수의 중증 정신질환자들이 전문가의 장기적 치료가 필요함에도, 절망적인 가족과 동반자에게 의존하게 될 때 앞날에 도사린 위험을 경고한다. 정신건강 서비스에 관심 있는 이들에게 필독서이며, 정신건강 정책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정부 관계자들에게는 필수 지침서다. 『슬픈 살인』은 그 자체로 기이하면서도 끔찍한 아름다움을 지녔으며, 그 안에 묘사된 비극에도 불구하고 인간적 사랑과 희망에 대한 찬사이기도 하다. - 그웬 애즈헤드 (법의학 정신과 의사)
|
|
믿기 힘들 정도로 감동적이고 파노라마 같은 작품. 조너선 로즌의 글은 당신의 마음을 찢어놓을 수 있다. 가치 있고 날카로운 독서 경험이다. - 〈뉴욕 리뷰 오브 북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