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머리말
1부 기다림과 변화 1. 먼 길로 돌아서 2. 빨리빨리 영성 3. 거짓 자아에서 참 자아로 2부 분리 단계 4. 위기는 기회다 5. 내려놓기 3부 변화 단계 6. 너희는 가만히 있어 7. 어둠 속의 부화 4부 출현 단계 8. 새 날개를 펴며 주 |
Sue Monk Kidd
윤종석의 다른 상품
|
나도 많은 자아의 한복판에 앉아 있었다. 비위 맞추는 자(Pleaser), 행위자(Performer), 완벽주의자(Perfectionist)―나의 삼위일체 P다. 이들 옛 역할들이 내가 연기해 온 또 다른 강한 역할인 “착한 소녀상”과 얼마나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지 깨달았다. 나의 일부분인 그 소녀는 자신감이나 자율성이 별로 없어 타인들과 그들의 기대, 집단의 가치관과 투사(投射)로 삶을 규정하는 경향이 있었다. 여자로서 내가 각본상 만인에게 만능인이 되어야 한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하지만 그렇게 되려다 보면, 결국 대개는 내 깊은 정체, 하나님의 피조물이라는 나만의 진실을 잃고 만다.
내 착한 소녀는 모든 것을 착실하게 견뎠고, 전통의 선(線) 밖으로는 두려워서 색칠을 못했고, 자기다운 생각과 감정을 자주 잘라냈다. 남들의 생각으로 생각하고 저항이 가장 적은 길을 따르는 데 아주 익숙해진 소녀였다. 때로 소녀는 온실 속의 난초 같았다. 가녀리고 호감을 주어, 결국은 항상 타인의 스크랩북 책장에 끼어져 눌려 있는 신세가 되었다. 거의 한평생, 내 주요 역할들은 주로 타인의 삶이라는 책장 속에서 표현되었다. 나는 누군가의 어머니, 누군가의 아내, 누군가의 주일학교 교사, 누군가의 직원이었다. 좋은 것들이다. 하지만 깊은 영혼의 차원에서 나는 누구였나? --- pp.19-20, 「‘1. 먼 길로 돌아서’」 중에서 갑자기 어둠 속에 서 있는, 기다리는 것 말고는 어쩌지도 못한 채 불투명한 중년에 서 있는 내 영혼이 느껴졌다. 나는 기도하고 싶었고 입을 열어 간구를 풀어내고 싶었으나, 내 마음은 섬뜩할 정도로 가만히 있을 뿐이었다. 다리를 건너며 내려놓음의 의식을 치른 이후로, 이전처럼 기도가 안 된다는 느낌이 줄곧 내게 있었다. 왜 기도가 안 될까? 왜? 나는 문간에 서서 안개를 보았다. 내 안의 모든 것은 숨을 죽인 채 움직이지 않았다. 불현듯 유리에 비친 내 모습이 보였다. 어둠 속의 실루엣처럼 내 자세가 보였다. 그리고 은혜 충만한 그 한순간에―내 딸이 뭔가를 그냥 속으로 “알았던” 그 순간처럼―나도 깨달았다. 나는 기도하는 나 자신을 보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기도하고 있었다. 내 가만히 있는 마음, 내 침묵, 어둠을 배경으로 기다리는 그 자세, 그것이 바로 내 기도였다. 뜻밖의 계시였다. 밥처럼 나도 한 수 높아서 그런 것은 전혀 아니었다. 그냥 은혜와 마주쳤을 뿐이다. 그 순간들은 내게 떨칠 수 없는 깨달음을 가져다주었다. 번데기고치를 치고 그 안에 들어가 변화되려면 기도의 환경을 짜야 한다. 그런데 이는 우리가 평소에 생각하는 그런 기도가 아니다. 아니, 그것은 뭔가 신비롭게 다른 것이다. 이 기도는 말과 행동과 생각이 아니다. 이 기도는 자세다. 심령의 자세다. 자기를 거꾸로 뒤집어 모든 것이 비워지고 하나님이 흘러들게 하는 것이다. 안개 낀 공간에 웅크려 마음으로 듣는 것, 고독 속에 침잠하는 것, 하나님이 불붙이신 소망의 작은 불꽃을 영혼에 두르는 것이다. 그것은 마음의 창턱에 가만히 앉아 바라보는 것이다. --- pp.172-173, 「‘6. 너희는 가만히 있어’」 중에서 “인생이란 당신이 다른 계획들을 짜고 있을 때 벌어지는 일”이라는 멋진 문구가 기억나는가? 내 친구 베티의 책상 위에도 똑같이 소중한 말이 적혀 있다. “삶을 누리라. 인생은 리허설이 아니다.” 이런 말들은 내게 일침을 가하여 다시 순간의 현실로 돌아오게 해준다. 나를 이렇게 일깨워 준다. “너는 어째서 인생이내 일의 무대 위에서 벌어진다고 생각하느냐? 리허설은 없다. 지금뿐이다. 지금 살아라!” 우리는 과거를 재생하거나 미래를 궁리하면서 보내는 시간이 생각보다 훨씬 많다. 그중에는 중요한 것도 있다. 그러나 우리의 의식을 다분히 과거나 미래에 쏟아부으며 그 두 영역 속에 “살” 때, 우리는 현재의 순간에 깊이 거하지 않는 것이다. 삶의 현재성과 단절되는 것이고, 영혼과 단절되는 것이다. 얼마 후 이 단절은 영적 권태감으로 이어진다. 이는 수많은 사람들 및 사건들과 장소들 틈바구니에서 아무리 바쁘게 목표를 향해 달려가고 있어도 마찬가지다. 이 권태는 삶이 가장 생생하고 절절하게 이루어지는 곳―영원한 현재―에 주파수를 맞추지 못하고 거기서 단절된 결과다. 번데기고치의 기다림을 통해 나는 내 의식의 중심을 좀더 “지금 여기”로 다시 잡기 시작했다. 덕분에 주로 기억과 기대의 관점에서 생각해야 했던 내 에고 중심적 욕구가 힘을 잃었다. 나는 현재 있는 자리에 있는 법을 배웠고, 시간이란 우리가 따라가는 직선이 아니라 우리가 거하는 깊은 점임을 배웠다. 시간을 상대하기란 어려울 수 있다. 지금은 시간의 압력이 거의 쉴 새 없이 우리를 짓누르는 시대다. 시간은 우리를 몰아가고, 우리는 시간을 중심으로 삶을 배열한다. 우리 시대의 가장 큰 저주 가운데 하나는 시간 속에 살지 않고 시간에 끌려 사는 것이다. --- pp.260-261, 「‘8. 새 날개를 펴며’」 중에서 |
|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 기도의 본질을 새롭고 신선한 시각으로 풀어낸 아름다운 책이다. 수 몽크 키드의 깊은 통찰과 탁월한 필력이 만나, 인생의 위기 한가운데 서 있는 이들에게 잊지 못할 영감과 도전을 선사한다.
1991년 ‘올해의 책’ 수상, Virtue Magazin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