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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_ 7제1부_ 15제2부_ 75제3부_ 143제4부_ 237에필로그_ 349해설 | 상처받은 인간 존재에 대한 성찰_ 353조르조 바사니 연보_ 3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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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orgio Bassa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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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문학이 이룩한 정점역사의 폐허 속에서 피어났던 찬란의 기록『핀치콘티니가의 정원』의 프롤로그는 전쟁이 끝나고 수십 년이 흐른 뒤, 주인공이 로마 근교에서 지인들과 우연히 고대 에트루리아인들의 무덤을 방문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일행의 어린 딸이 무덤 앞에서 “왜 오래된 무덤보다 새로 생긴 무덤을 보면 더 슬픈 거예요”라고 천진히 묻자 ‘나’는 돌연 자신의 찬란했던 청춘 시절과 핀치콘티니 가문 사람들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게 된다. 보들레르의 표현 그대로 “철없는 사랑의 푸르른 낙원”과 같았던 그 시절 핀치콘티니가의 대저택과 정원에서 보낸 한때를 떠올리자 마음속 깊이 슬픔이 피어오른다. 프롤로그에서 곧 밝혀지듯, 과거를 회상하는 이 이야기 속에서 최후의 생존자는 ‘나’뿐이기 때문이다. 부유한 유대인 귀족이던 핀치콘티니가의 사람들은 홀로코스트의 희생자가 되어 무덤의 존재 여부조차 알 수 없이 사라졌다.가문 대대로 전해진 막대한 재산과 삼만 평에 이르는 정원의 소유자였던 핀치콘티니가의 사람들은 원래 타인과의 교류 없이 성벽 안에서 단절된 생활을 했다. 주인공과 또래인 가문의 아이들 역시 학교에 다니지 않았기 때문에 평범한 중산층인 ‘나’는 그들이 유대인 사원인 시너고그를 찾을 때나 시험을 치러 공립학교에 잠시 들를 때만 그들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십대인 ‘나’는 수학 과목에서 낙제한 충격과 자괴감으로 자살을 생각하며 동네를 떠돌다가 이 저택의 담벼락 너머로 가문의 딸 미콜과 만나게 된다. 미콜은 담에 기대 ‘나’에게 말을 걸며 성벽 안으로 들어오라 권유하지만, ‘나’는 위압감을 느끼며 끝내 들어가지 못한다. 이로부터 약 십 년이 지난 1938년, 인종법이 선포되고 유대인들은 평범한 일상의 공간에서조차 배척되기 시작한다. 어느덧 이십대가 된 핀치콘티니가의 알베르토와 미콜은 테니스클럽에서 쫓겨난 유대인 친구들을 위해 저택의 정원을 개방하고 테니스장을 내주기로 한다. 그렇게 ‘나’를 비롯한 페라라의 사람들은 그토록 견고해 보였던 핀치콘티니가의 대문 안으로 초대받게 되고, 탄압과 차별이 거세지는 시대적 상황 속에서 여름의 찬란한 절정을 즐긴다. 그리고 십 년 전부터 이어진 ‘나’와 미콜의 관계는 점차 미묘해진다.소설은 ‘나’의 시각을 통해 유대인 공동체의 기억을 생생히 길어올린다. 평범한 만찬에서 이야기를 나누던 이들의 모습을 떠올리는 동시에 그들의 얼굴에서 수용소의 유령을 발견하고 마는 부분은 결코 지나치기 어려운 깊은 감정을 자아낸다. 그러나 이러한 훌륭함에 더불어 페라라에 바치는 순수 기념비로서 『핀치콘티니가의 정원』이 진정 독창적인 이유는 이것이 무엇보다도 탁월한 성장 서사라는 점에 있을지도 모른다. 생동감 넘치는 청소년기의 마법과 그 마법이 깨지며 찾아오는 파멸적 감정들, 복잡한 욕망과 사랑의 신비로운 작동 방식, 비극의 예감과 현재를 예찬하는 태도, 때로는 삶에 대한 부정까지. 『핀치콘티니가의 정원』은 부단히 인간적이면서도 보편적인 개인의 성찰과 존재에 대해 여전히 거대하고 유효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그리하여 혼란한 역사의 한가운데 고요한 낙원처럼, 폐허의 성채처럼, 전설적인 무덤처럼 버티고 선 이 담벼락을 겁내지 말고 넘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이 담벼락 너머에는 어떤 진실이 있고, 기억이 있으며, 사랑이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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