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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말 5
1부 광교산 만가 겨울 소나타 12 오동나무 아래에서 14 조팝꽃에게 16 청계산 진달래 18 광교산 만가 20 조공례의 소리 22 우리 문둥병자들 25 실낙원 28 어느 숭한 풍경 30 너, 인간 32 개소리 34 인간과 개의 소통 양식 36 어비계곡의 여름 40 2부 길 위의 당신 K의 이중생활 44 우울한 시 47 수지 고을의 허임 선생 48 어느 편집쟁이의 색 쓰기 50 뒷모습 52 예쁜 여자 54 실난의 계절 55 당산철교 아래에서 56 인간의 길 58 바흐 이전의 침묵 59 소리의 원근법 60 한국인의 노래 62 길 위의 당신 64 3부 연민학 개론 형수님 68 2023 Korea 70 연민학 개론 72 첫 시집 74 지겨움에 대한 명상 76 씨발새끼 78 세상을 바꾼 똥고집 80 불의 춤 82 먼 그대에게 85 아니무스와 아니마 86 무심! 꼼짝 마 88 지옥으로 가는 3만 개 구멍 91 제미齊眉 94 4부 옛날식 남자 옛날식 남자 98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Remake 100 4계―봄 103 4계―여름 104 4계―가을 106 4계―겨울 109 자클린의 눈물 110 ‘월광’을 죽여라 112 오! 블루스 114 사람을 살리는 리더십 115 수미산에서의 변명 118 사랑 그 자체가 된 당신 121 고희 1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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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에 강림한 하얀 별 무리
꿈꾸듯 몽롱하다 중랑천 바람의 날개를 흔들며 여백에 스며드는 강력한 표백 효과 이윽고 모호해진다 박찬욱 감독의 영화사 이름이 모호필름이라지 만물의 실체는 어디에도 없고 확률로만 존재한다는 게 진실일까 그렇다면 그대에게 권고한다 흙과 햇빛, 바람과 공기만으로 싹을 틔우고 꽃을 피웠다고 자만하지 말 것 겨우내 너를 지켜본 한 소심한 인간의 눈길과 손길도 네 성장의 자양분임을 잊지 말 것 네가 있어야 내가 있고 내가 바라보아야 네 모습이 아름다울 수 있음을 기억할 것 곁에서 속삭이는 사소한 개천물 소리가 네 생의 응원가임을 네 가려운 등을 긁어주는 위로의 언어임을 자각할 것 매일 아침 눈뜨면 배달돼 있는 하루에 감사할 것을 --- 「조팝꽃에게」 중에서 우연으로 오는 것이 어디 있으랴 더는 흔들리고 싶지 않은 1인분의 삶 라벨의 볼레로처럼 신열이 오르는 청계산 진달래 능선을 걸으며 다시 생각한다 생명은 관계의 조합 관계는 사랑의 힘이며 우주를 유지하는 동력임을 봄바람에 사운거리는 선홍빛 꽃잎 이렇게 지천으로 피어나는 데에도 천지의 무수한 관계가 개입돼 있어 한갓된 풍경으로 치부하지 못한다 된서리 속 국화, 눈바람 속 매화가 고매한 품격을 자랑하는 것처럼, 눈보라 치는 알프스를 넘은 한니발처럼 추운 겨울을 뚫고 나온 진달래를 보며 그대가 처음 다가오던 빛나던 날을 떠올리는 것은 이것이 생生하므로 저것이 생하고, 이것이 멸滅하므로 저것이 멸하고 그대가 있길래 봄도 있는 것이므로 사랑하고 미워하고 우쭐대고 의심하는 온갖 분별의 중심에 들어 만남의 연기緣起를 살뜰히 숙고하겠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바람만 불어도 살이 타던 연분홍 그리움이여 배고픈 소년의 허기를 달래주던 참꽃의 살가움이여 세상의 이랑과 고랑 사이 낯섦에서 오는 당혹감일랑은 오목눈이가 뻐꾸기 알을 품듯 가슴으로 꼬옥 안아 주시기를 우연으로 오는 것이 어디 있으랴 --- 「청계산 진달래」 중에서 1885년 어느 날 밤 다미안 신부는 펄펄 끓는 목욕물을 맨발에 쏟고 말았다. 아차 하는 순간의 실수였다. 그런데 이게 어찌 된 일인가. 끓는 물에 덴 발이 전혀 아프지 않았다. 감각의 상실은 곧 한센병에 걸렸다는 것을 의미했다. 보통 사람 같으면 하늘이 무너질 일이지만 그는 기뻐하며 하늘을 우러러봤다. 마침내 하느님의 은총이 자신에게 내렸노라고 감격해했다. 평소 몰로카이 섬 한센병 환자들의 아픔을 자신의 몸으로 느끼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하면서 ‘주님, 제게도 나병을 허락하시어 저들의 고통에 동참하게 해 주소서’라고 기도했던 그가 드디어 병자가 되는 순간이었다. 다음 날 아침 성당을 찾은 환자들은 깜짝 놀랐다. 언제나 ‘나의 형제들이여…’로 말문을 열던 그가 느릿느릿, 의미심장한 목소리로 ‘우리 문둥병자들은…’이라고 첫마디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위로 범천梵天을 비추고 옆으로 삼천 대천세계를 비추는, 어떤 신통력도 끌 수 없는 불씨 하나 홀연히 일어난 바 하늘이 내린 형벌, 천형의 땅 가장 낮은 곳에 임해 마침내 불멸이 된 위대한 자기소멸이여 추운 별의 남루한 영혼 뭉개진 얼굴에 흐르는 누런 진물 닦으며 당신이 지핀 초월의 불빛 홀로 견딘 자의 고독 정중앙을 향해 나아가나이다 빛 좇아 유영하는 플랑크톤의 속도로 오체투지하는 순례길 걸음걸음 완덕完德의 꽃 피어나고 지고지순한 진선미의 땅 님의 가슴에 풍덩 안기어 제가 곧 나으리이다 울며불며 찬미할 것이외다 ---「우리 문둥병자들」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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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조 시인의 두 번째 시집은 “곁에서 속삭이는 사소한 개천물 소리가/ 네 생의 응원가”(「조팝꽃에게」)처럼 우주의 본성과 선정禪定, 우주의 합일을 노래한다. 또한 “우연으로 오는 것이 어디 있으랴”(「청계산 진달래」)와 다미안 신부 이야기인 「우리 문둥병자들」처럼 세상의 존재는 우연으로 오는 것이 하나도 없다는 만남의 연기緣起를 노래한다. 특히 김홍조 시인의 시가 우리에게 신선하고 새로운 감동을 주는 이유는 한사코 엄숙하거나 태내지 않고 표현이 통쾌할 뿐 아니라 음악과 선線과 언어가 서로 어울려 시경詩境을 넘나드는 사유의 진폭이 넓은 데 있다. 그러기에 김홍조 시인만의 체험에서 우러나는 정감과 상상의 깊이가 시 읽는 맛과 멋을 느끼게 한다. 이것은 시집 곳곳에 장치한 풍자와 아이러니, 위트의 묘미에 있다. 이런 점에서 김홍조 시인은 새로움을 확보한 시인, 세계에 대한 생명을 불어넣은 시인으로 평가받을 것이다. - 허형만 (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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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조의 시편은 ‘늙은 인디언의 지혜’로 ‘곡강을 타고 흐르던’ 그가 마침내 건낸 ‘발랄라이카 칵테일’이다. 쇼스타코비치가 자진모리로 서울역 지하도에서 깡소주를 마시며 시경의 바람소리 ‘삽삽’을 엿듣고 있다.
그가 ‘슬픔을 통해 키운 마음의 근육’으로 수지 고을을 거쳐 드리나 강江의 다리를 건널 때 우리는 현실과 꿈의 경계에서 마스터피스를 꿈꾸는 한 심미주의자를 만나게 된다 길위의 당신 레디 고! - 전장석 (시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