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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꽃이 먼저 마음을 연다 꽃은 말보다 먼저 마음을 연다 피었다 지는 동안 나는 한 계절을 배운다 향일화(向日花)_12 택배_13 배롱나무_14 안심동 미루나무_15 틈에 들다_16 미용실_17 귀 씻는 은행나무_18 다람쥐_19 갈치_20 길 고양이_21 구절초_22 감나무 빈집_23 사십구재_24 개망초_25 2부 산사에 머문 그리움 돌계단을 오르면 마음이 먼저 무릎을 꿇고 바람 속에서 기도가 피어난다 남해 보리암_28 무장산 억새_29 민들레_30 복사꽃_31 소낙비_32 소금쟁이_33 12월_34 풀꽃_35 묘각사_36 동짓날 팥죽_37 가을_38 백두산_39 초례봉_40 박꽃_41 3부 살아내는 일의 손끝과 체온 세월은 손등에 먼저 내려앉고 기억은 강물처럼 흐르다 문득 나를 붙잡는다 연꽃_44 찔레꽃_45 하화도 꽃섬_46 도라지꽃_47 내원동을 가며_48 네잎크로버_49 우박_50 문경새재 가는 길_51 강둑의 봄_52 덴파레꽃_53 송도_54 남산을 오르며_55 운문사_56 대둔산 오르며_57 4부 길 위에서 나는 숨을 배운다 어둠은 길을 먼저 열고 몸은 하루를 버텨내며 살아 있다는 냄새를 남긴다 홍류동 소리길_60 석굴암_61 능소화_62 숯가마_63 봄_64 강둑의 밤_65 창 넓은 찻집_66 영천 벚꽃 100리 길_67 오봉산 마당바위_68 석등_69 참소주_70 홍도_71 고향 친구_72 해동 용궁사_73 5부 바람이 먼저 닿는 곳 바람이 먼저 닿는 길 천년의 숨이 겹겹이 쌓이고 나는 그 길을 건너간다 텃밭_76 코스모스_77 새 한 마리_78 정암사 수마노탑_79 영주 부석사_80 대왕암_81 예천 회룡포_82 접시꽃_83 상사화_84 국화꽃_85 목련꽃_86 부산성_87 신천강_88 봉화 청량사_89 숫눈_90 봉정암 가는 길_91 흑백사진_92 오어사_93 울진 불영사_9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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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이 보내준 택배 상자
따사로운 봄 햇살을 받으며 미소처럼 피어있는 사과 꽃향기 하얀 꽃에 벌들이 앉아 꿀을 따고 따가운 여름햇볕 받으며 자란 풋사과 눈부신 가을햇살에 새색시 볼 같은 사과 봉화의 푸른 가을하늘 맑은 공기 가득 먹고 주렁주렁 달려있던 사과 택배상자 비닐테이프를 뜯고 상자를 활짝 열어 펼쳤다 탐스럽고 과즙이 많은 꿀 사과 봉화가 통째로 배달되었다 --- 「택배」 중에서 따뜻한 햇살 한줌 물고 가볍게, 가볍게 소금쟁이 물위를 걷는다 수초도 검불도 헤치고 지나간다 한 번도 포기는 없다 날지 못해도 소금쟁이 외롭지 않다 견사(繭絲) 같은 몸으로 소리 없이 흔들리며 소금쟁이 천년을 걸어가네 --- 「소금쟁이」 중에서 숫눈이 내리면 하얀 옥양목을 펼쳐 놓았다 아무도 밟지 않은 하얀 새길 숫눈이 내리면 눈꽃 송이송이 하얗게 쌓이고 내 나이를 잊게 한다 숫눈이 내리면 마음이 빼앗긴 이 하얀 세상 가슴 설레게 첫사랑의 순정 같다 숫눈이 내리면 눈꽃송이 함박웃음으로 쌓이면 강아지도 꼬리 흔들며 뛰어 다닌다 --- 「숫눈」 중에서 금호강 둑 그늘 깊은 은행나무 쓸모없는 말 가리지 않는 사람들의 일상어에 귀 기울이던 은행나무 오늘은 달팽이관이 기우뚱 해졌나보다 밀려오는 솜털구름에 우듬지 쓸어내린 말 견고한 일상어를 수액으로 올려 그 나무 기억한 세월엔 새단장한 기왓장 옮길 때마다 몸을 오가는 참새들이 노래를 걸어둔다 이따금 나뭇잎 자르르 넓혀 줄때 쌓인 빛 털어 내리듯 하늘로 열리는 길 생겨났어 그 나무가 물든 노란 길에서 은행나무가 생을 끌고 간다고 생각하지만 사람들의 말을 오래도록 새겨듣는 은행나무 대롱대롱 매달리는 중용으로 빈 가지마다 튼실한 은행 알 수없이 매달았다 흐르는 강물에 그림자 내려놓고 바람이 웅성거리며 지나가는 소리에 귀 기우리던 은행나무 나뭇잎만큼 자잘한 햇살 밑으로 금호강 긴 둑에 말을 줄줄이 엮어 겨울 하구로 떠나보내고 있다 --- 「귀 씻는 은행나무」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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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화음의 시는 격렬한 언어로 세계를 흔들기보다 조용한 관찰과 사유를 통해 삶의 의미를 드러낸다. 자연과 일상의 사물들을 통해 인간의 시간과 기억을 이야기하는 방식은 이 시집의 중요한 특징이다. 시인은 나무와 강물, 바람과 길을 바라보며 인간의 삶을 성찰하고, 그 풍경 속에서 삶의 흔적을 발견한다.
특히 20년 동안 모아 온 시편들은 한 시인의 삶이 어떻게 자연과 만나고 기억 속에서 깊어지는지를 보여 준다. 그 시간 속에서 시인은 삶의 기쁨과 고독, 기다림과 성찰을 함께 길어 올린다. 『귀 씻은 은행나무』는 결국 세월을 오래 들으며 살아온 한 시인의 기록이다. 금호강 둑에 서 있는 은행나무처럼 시인은 사람들의 말과 시간의 흔적을 조용히 받아들이며 언어로 남긴다. 그리고 그 언어는 독자에게 삶을 조금 더 천천히 바라보게 하는 여유와 성찰의 시간을 선물한다. 이 시집이 남기는 가장 깊은 울림은 바로 여기에 있다. 자연과 삶의 시간을 함께 들으며, 조용히 인간의 길을 바라보는 시의 힘이 바로 『귀 씻은 은행나무』의 세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