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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운명 해방광주 역사의 영혼 주요 참고도서 |
JONG,CHON,鄭贊, 본명 : 정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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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으로 질주하는 사람의 모습은 아름다웠다. 사람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 있다는 사실은 경이로웠다. 혁명의 시간은, 사람을 아름답게 한 눈부신 시간은 너무 짧았다.
--- p.226 비가 내리고 있었다. 구름에 가린 저녁 하늘은 거무스레했다. 축축한 바람이 흐린 빛에 싸인 도시를 훑고 지나갔다. 도시는 적막에 잠겨 있었다. 그런 도시의 모습이 대단히 비현실적으로 보여 어떤 마술로 도시 전체가 잠들어 있는 것 같았다. 그리하여 길을 잃은 유령들이 황혼도 저녁 별도 잃어버린 하늘 아래서 소리 없이 배회하는 듯했다. 깨어진 가로등과 부서진 공중전화 박스들은 그런 느낌을 조금도 훼손하지 못했다. 훼손은커녕 오히려 짙게 했다. 강선우는 상념을 쫓기 위해 머리를 흔들었다. 헬멧에서 빗물이 후드득 떨어졌다. --- p.34 머리가 깨어져 피범벅이 된 남자를 부둥켜안고 통곡하는 여자의 모습이 보였다. 그녀의 옷도 피범벅이었다. 깨어지고 부서진 차들 사이에 부상자들이 즐비했다. 저문 하늘의 잔광은 그들의 모습을 비현실적으로 드러내고 있었다. 피 흘리는 그들의 몸은 검붉은 물감으로 덧칠한 그림의 일부처럼 보였다. 길바닥에 고인 핏물도 마찬가지였다. 시간은 그 속으로 흘러들어가지 못했다. 소리도 움직임도 지워져 있었다. --- p.46 또 하나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무정부 상태에서 수만의 인파가 사나흘 동안 밤낮을 휩쓸고 다녔는데도 비정치적 범법 행위가 발생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기름과 차량을 징발한 것이나, 식품 회사 대리점에서 다량의 빵을 가져간 것은 시위를 위한 정치적 행위였다. 방화 사건도 마찬가지였다. 방송국과 10여 곳의 파출소가 불탄 것은 정치적 행위의 표출이었다. 그가 주목한 것은 비정치적 범법 행위였다. 정치적 범법 행위는 비정치적 범법 행위를 불러들이기 마련이다. 무정부적 상황이 파괴 욕구와 범죄 충동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도시에서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고 있었다. 그로서는 대단히 불길한 현상이었다. --- p.62 여섯 명의 청년들이 앞으로 뛰어나왔다. 한 청년은 대형 태극기를 들고 있었다. 시위대는 물론이고 건물에서 시위대를 내려다보는 이들의 시선이 청년들에게 집중되었다. 청년들은 도청 광장으로부터 300여 미터 떨어진 길 한복판에서 태극기를 흔들며 구호를 외치기 시작했다. “계엄령 해제하라!” “전두환 물러가라!” 그들의 몸짓과 펄럭이는 태극기는 텅 빈 길 위에서 하나의 세계를 이루고 있었다. 생명으로 충만한 세계였다. 생명의 원천은 자유였다. 투명한 자유가 펄럭이는 태극기와 함께 춤을 추었다. 죽음과 맞닿은 춤이었다. 타타타타앙. 귀를 찢는 총소리와 함께 여섯 명의 청년이 동시에 쓰러졌다. 놀라움과 탄식 속에 시민들이 달려나와 그들을 옮겼다. 춤의 공간이 비기가 무섭게 청년들이 또 뛰어나와 피 묻은 태극기를 흔들었다. --- p.74 창가에 선 박태민은 바깥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거리가 깨끗했다. 격렬했던 전쟁의 흔적을 찾기 힘들었다. 전쟁이 할퀸 거리를 청소하는 작은 손들이 눈에 보이는 듯했다. 눈물이 핑 돌았다. 도청으로 진격하던 시민군 속에 중학생들이 있었다. 나이가 너무 어려 무기를 주지 않으려 했지만 눈물로 호소하는 그들을 뿌리치기 힘들었다. 형의 원수를 갚겠다며 총을 달라는 초등학생도 있었다. 눈앞에 벌어진 참극을 어린 영혼들은 어떻게 견디고 있을까? 눈을 감았다. 어둠의 군단이 보였다. 도시를 유린하는 군홧발 소리는 날카롭고 음산했다. 해방광주는, 이 유일한 빛의 나라는 어린 영혼들에게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 칠흑 같은 어둠을 헤치고 나아가야 할 그들에게. 눈을 떴다. 햇살이 눈부셨다. 절해고도이기에 더욱 눈부신 해방광주의 햇살이었다. --- p.114 “우리에게 계엄군을 막을 힘이 없습니다. 그들은 해방광주의 시간을 탈취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에게 결코 탈취당할 수 없는 시간이 있습니다. 진실이 만들고 있었고 앞으로도 만들 시간입니다. 진실은 인간의 혼을 가장 격동적으로 움직이게 합니다. 그 움직임이 만드는 시간은 일상의 시간과 다릅니다. 공수특전단의 무참한 폭력은 시민들에게 진실을 일깨웠습니다. 진실은 시민들의 혼을 흔들어 죽음을 넘어서는 싸움을 시작했습니다. 죽음은 진실을 지키기 위한 불꽃이었습니다. 죽음을 껴안고 싸웠던 이들은 알 것입니다. 해방광주는 죽음의 혼이 켠 진실의 등불임을. 비통하게도 우리는 해방광주를 지킬 수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지킬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진실의 등불입니다. 죽음이라는 불꽃을 통해.” --- p.210 “신부님이 저지른 죄가 구체적으로 무엇이지요?” “칼을 든 자를 두려워했습니다.” “누구든지 두려워하기 마련입니다.” “그 두려움을 이겨낸 분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분들은 갑옷을 입지 않았음에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전 갑옷을 입고서도 두려워했습니다.” “하느님은 용서하시는 분이 아닙니까?” “그분은 저를 용서하셨습니다.” “그런데 왜 스스로 벌을 받으려 하십니까?” “도청으로 가는 것은 벌을 받기 위함이 아닙니다.” “그러면 무엇인가요?” “그리스도의 집이기 때문입니다.” “도청이 그리스도의 집이라고요?”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의 집이야말로 사제가 가야 할 곳이죠.” “이해가 안 되는군요.” --- p.222 전투 초기 시민군은 적극적으로 사격했다. 계엄군 특공조가 어둠에 몸을 은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어둠을 향해 무작정 총을 쏜 것이었다. 방어선이 무너지고 특공조가 건물로 접근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표적의 실체가 눈에 보이자 차마 방아쇠를 당기지 못한 것이었다. 시민군 가운데 총을 처음 만져본 이들이 적지 않았을 뿐 아니라, 총기 조작에 능숙한 군 제대자도 사람을 표적으로 하는 사격에 낯설었다. 한 생명을 살해한다는 것은 그만큼 어려웠다. 시민군 사령관 역할을 했던 박남선조차 접근하는 계엄군을 조준까지 했으나 끝내 방아쇠를 당기지 못했다. 그들이 총을 든 것은 승리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승리를 믿었던 이는 아무도 없었다. 계엄군을 죽이기 위해서도 아니었다. 그들이 총을 든 것은 침몰하는 해방광주와 함께하기 위해서였다. --- p.24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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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1980년 5월 17일 신군부는 비상계엄 전국 확대와 함께 계엄 포고 제10호를 발령해 정치 활동과 집회 및 시위 금지, 언론 보도 사전 검열 강화 등으로 민주주의의 근간을 파괴하는 친위 쿠데타를 일으켰습니다. 그 쿠데타에 저항한 유일한 도시가 광주였습니다. 2024년 12월 3일 비상계엄을 막으려 국회로 달려간 시민들의 모습에서 80년 5월의 광주 시민이 떠오른 것은 역사의 신비였습니다. 그 신비에서 우리들이 발견한 것은 ‘산 자와 죽은 자의 연대’입니다. 역사는 산 자와 죽은 자 사이를 그렇게 끊임없이 오가며 흘렀던 것입니다. 2024년 12월의 깊은 밤에 현전한 5·18민주화운동이 제 마음으로 흘러들어오면서 시작된 소설이 『그들이 있었던 곳』입니다. 제 문학에 커다란 영향을 끼친 5·18민주화운동이 44년이 지난 후 그토록 생생히 떠오를 줄 몰랐습니다. 그런 역사의 신비를 생각하며 『그들이 있었던 곳』을 세상으로 내보냅니다. ―‘작가의 말’ 축약 역사의 안개를 걷어내는 강력한 소설 해방광주는 민주주의의 등불 그때 그곳에 있었다면 우리는 어떻게 했을까 『그들이 있었던 곳』은 역사의 안개를 걷어내고 해방광주가 민주주의의 등불이었다는 진실을 생생히 드러내는 강력한 소설이다. 소설은 일요일의 평화로운 거리 묘사로 시작되지만, 둘째 문단부터 곧바로 1980년 광주 5·18 비극의 현장이 전개된다. 치밀한 조사에 바탕을 둔 시간대별 중요 사건들이 다채로운 인물의 시선 속에서 손에 잡힐 듯 생생하게 묘사되면서 독자를 5월 광주의 현장으로 데려간다. 소설의 주요 인물들은 갑자기 폭력과 불의를 마주하고 고통스러워하지만 그것을 회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맞선다. ‘해방광주’가 켠 역사의 등불을 지키고자 하는 항쟁 지도부 박태민, 목숨을 건 항쟁을 통해 영혼의 자유를 느끼는 기층민 출신의 시민군 김선욱, 계엄군의 폭력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내면의 변화가 이루어지는 계엄군 강선우, 광주의 고통을 십자가의 고통으로 변용하는 신부 도예섭, 광주항쟁을 혁명적 시각으로 바라보고자 하는 외신기자 머턴 등은 온몸으로 광주의 진실을 증거하고 있다. 작가는 여기에다 내란 세력의 우두머리 전두환, 5월 광주를 미국의 입장에서 관리하는 글라이스틴 미국대사와 위컴 한미연합사령관 등을 등장시켜 5·18민주화운동을 둘러싼 정치 상황을 입체적으로 파헤치면서 5월 광주의 시간과 공간을 장려한 서사로 펼쳐낸다. 계엄군이 ‘해방광주’의 시간을 멈추기 위해 5월 26일 다시 탱크를 앞세우고 광주 시내로 들어갔을 때, 자정을 기해 전남도청 진압 작전을 펴겠다고 했음에도 끝까지 도청을 지키겠다고 선언한 항쟁파가 있었다. 계엄군을 이길 수 없으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왜 그들은 남았던 것일까. ‘도청사수 항쟁파’인 박태민은 그들이 지키려는 진실이 무엇인가를 이렇게 정의한다. “공수특전단의 무참한 폭력은 시민들에게 진실을 일깨웠습니다. 진실은 시민들의 혼을 흔들어 죽음을 넘어서는 싸움을 시작했습니다. 죽음은 진실을 지키기 위한 불꽃이었습니다. 죽음을 껴안고 싸웠던 이들은 알 것입니다. 해방광주는 죽음의 혼이 켠 진실의 등불임을.” 그리고 박태민은 죽음으로써 지킬 희망을 이야기한다. “진실은 스스로의 시간을 창조합니다. 창조된 시간은 젊은 혼을 격동시킵니다. 격동된 혼은 전사의 혼입니다. 해방광주의 전사는 사라지겠지만 새로운 전사들은 역사의 시간, 그 광야를 가로지르며 진실의 불꽃을 향해 달려올 것입니다. 해방광주의 패배는 잠시의 패배입니다. 역사의 광야는 우리를 승리자로 만들 것입니다.” 작가는 죽음 앞의 인간 존재를 깊이 들여다 보았다. 그는 “5월 광주를 들여다본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그들’에게 닥쳐온 죽음의 양식을 들여다보는 행위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들’이 죽음과 마주했을 때 ‘그들’의 표정과 숨결을 정확하게 포착하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작가가 46년 전의 비극을 오늘 다시 생생히 되살린 것은 사실 너머의 진실이 여전히 소중한 시대를 우리가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소설이 역사와 다른 점은 사실에 멈추지 않고 그 너머에 있는 진실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괴테가 ‘일어난 일들에 대한 기록인 역사보다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의 이야기인 소설이 더 진정한 역사’라고 말한 까닭은 여기에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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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죽음의 경계가 무너진 1980년 5월 광주, 인간은 짐승이 되지 않기 위해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가? 정찬의 『그들이 있었던 곳』은 이 근원적 물음에 대한 숭고한 철학적 응답입니다. 거짓된 세상에 맞서 총을 듦으로써 비로소 실존적 자유를 느낀 노동자 김선욱, 그는 혁명의 창가에서 ‘공개적 권력 살해’라는 삶의 척도를 고통스럽게 사랑합니다. 베트남전의 기억과 국가 폭력의 하수인이라는 굴레 속에서 영혼이 파괴되어 가다 끝내 자신만의 방식으로 해방을 선택한 공수부대원 강선우, 그는 스스로 죽음의 집 도청으로 향합니다. 잊힐 진실의 불꽃을 지키고자 도청의 어둠 속으로 뛰어든 민청 세대 활동가 박태민, 그는 죽이는 자가 아니라 죽임을 당하는 전사가 되어 광야로 갑니다. 무고한 이들의 죽음 앞에서 신의 침묵과 자신의 비겁함에 고뇌하다가, 고통받는 이들의 피와 살 속에서 그리스도를 발견하고 사지(死地)로 걸어 들어간 도예섭 신부의 모습은 우리를 압도합니다. 이 소설은 단순한 역사적 기록을 넘어,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그 곁에 함께 머물렀던 ‘그들’의 자취를 통해 인간 존엄의 숭고함과 연대의 철학을 눈부시게 증명합니다. - 박구용 (전남대 철학과 교수, 전남대 5?18연구소 <민주주의와 인권> 편집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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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 예술가를 평가할 때 나는 그 예술가가 언어도단(言語道斷)을 얼마나 깊이 가슴에 품고 있는가를 가늠한다. ‘진정한 언어’는 언어도단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비극적 모순이야말로 예술의 원형이자 실체다. 인간의 삶 자체가 비극적 모순이니 그럴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정찬은 언어도단을 누구보다도 가슴 깊이 품고 있는 예술가이다. 그럼에도 그가 소설을 지속적으로 써왔던 것은 자신의 몸을 부수어 언어의 새로운 길을 열어왔기 때문이다. 『그들이 있었던 곳』은 정찬에 대한 나의 생각을 증거하는 작품이다. 또한 그가 세계적 작가라는 독자들의 말을 증거한다. - 정희진 (평화학·여성학 연구자, 『다시 페미니즘의 도전』 작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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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는 광주의 핏빛 소식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그 시절 대학을 다닌 사람치고 광주에 부채감을 지니지 않은 자가 없다. 누군가는 죄의식을 견디다 못해 민주화운동에 뛰어들었고, 누군가는 함께하지 못했다는 죄의식으로 평생을 시달렸다. 어떤 식이든 80년대 학번들은 광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그런데도 광주항쟁을 제대로 다룬 작가는 드물다. 한 세대 뒤인 한강 작가가 긴 침묵을 깨트렸고, 한국문학의 숙원이던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정찬의 장편소설 『그들이 있었던 곳』은 『소년이 온다』의 주인공 동호가 왜 죽을 수밖에 없었는지, 광주항쟁의 전모를 섬뜩하게 우리 앞에 들이민다. 이제 더 이상 눈감지 말라는 듯. 더 이상 침묵하지 말라는 듯. 언제나 그렇듯 진실은 참으로 뼈아프다. 국가는 국민에게 폭력을 행사해서는 안 된다. 이것은 당연한 진리다. 그럼에도 우리는 2024년 12월 3일, 또다시 국가폭력 앞에 노출되었다. 광주의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민주화된 시민들 덕분이었다. 그 민주화는 광주의 피로 가능했다. 우리 모두 광주항쟁의 수혜자인 것이다. 그러니 이제 아무리 괴로워도 우리는 저 광주의 전모를, ‘그들이 있었던’ 광주의 5월을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보아야 하는 것이다. - 정지아 (『아버지의 해방일지』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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