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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grid Nune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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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만이 아니라 복도 위아래로 많은 룸메이트들이 깊은 밤까지 깨어 있었다. (그리고 누군가의 눈은 새벽을 맞이하지-딜런.) 나의 경계심이 풀리고 저항력이 약해지는 건 이런 시간들이었다. 무엇보다 피곤하고, 깊은 밤과 음악과 앤의 조용한 목소리가(나는 어둠 속에서 그의 가늘디가는 입술이 움직이는 모습을 상상하곤 했다) 내게 마법을 거는 시간.
마법이라고 한 건, 사실 앤이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앤의 이야기를 더 듣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 p.26~27 엄마가 죽었을 때, 사인은 혈액질환이었고 아무도 엄마에게 손찌검을 하지 않은 지 이미 오래였지만 내 머릿속에는 이런 생각이 떠올라 영영 사라지지 않았다. 맞아 죽었어. 우리 엄마는 맞아 죽었어. --- p.37 눈물은 없었지만, 매사에 조심스러움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여자의 거친 포옹에 나는 갈비뼈가 부러지는 줄 알았다. “어쩐지 이대로 다시는 너를 못 볼 것 같다.” 엄마의 푸념에 나는 이렇게 대꾸할 뻔했다. 엄마, 나를 제대로 본 적도 없잖아요. --- p.44 나는 앤이 멍한 상태로 있는 걸 본 적이 없었다. 그는 언제나 완전하게 존재했다. 나중에 유행하게 될 표현을 빌리자면, 순간에 충실했다. 그의 행동이 야기한 모든 비판들(조증, 병적)과 무차별적인 공격들(“아주 그냥 더럽게 잘났다니까”), 조롱들(“조심해라 자매들, 흰 회오리바람 납신다”)에도 불구하고, 결국 모두가 앤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게 되었다. --- p.61 “방대한 포식자 조직”이 정확히 어디로 가야 가출 소녀들을 찾을 수 있는지 알고 있다면, 경찰은 그걸 왜 모를까? 당연히 알아야 하는 것 아닌가? 그들은 왜 그런 장소들에 가서 지키고 있다가 나쁜 사람들보다 한발 앞서 가출 소녀들과 접촉하지 않는 걸까? 그러니까, 그들 모두를 구하지는 못하더라도 대부분은 구할 수 있는 것 아닐까? 대부분은 아니더라도 많이. 많이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몇 명은. 그게 아니더라도 한 명은. 제발, 하느님, 딱 한 명, 딱 한 명만요. --- p.83 “넌 잘 이겨낼 거야. 그냥 버텨. 몇 가지만 기억하면 돼. 첫째, 넌 여전히 과거의 너와 같은 사람이야. 그리고 둘째, 여자는 절대 그런 일을 극복할 수 없다느니 어쩌니 하는 개소리는 다 잊어. 강해져야 해. 더 나쁜 일을 당할 수도 있었어. 우선, 넌 죽지 않았잖아. 그자가 널 죽일 수도 있었다고. 평생 가는 불구나 흉터를 남길 수도 있었고. 윤간을 당할 수도 있었지. 네가 아주 어린 소녀일 수도 있었어. 처녀일 수도 있었고.” 전부 옳은 말이었다. 내가 강간을 당한 후 스스로에게 해온 말들이었고 평생 하게 될 말들이었다. --- p.140 잘 간직해둔 것들조차 우리는 다른 모든 것들과 함께 잊는다. 어느 날 이사를 하면서 그 모든 것들이 다시 세상의 빛을 보게 될 때까지. 그것들이 나오고(“어머 세상에, 내가 이걸 간직하고 있었다니!”), 바늘과 핀처럼 마음을 찌르는 이것들을 계속 파헤치다 보면 이따금 더 심각한 것도 나온다. 조개껍질 열듯 마음을 비집어 여는 진짜 칼. --- p.217 자기는 너무 어려서 이해할 수 없는 무언가를 뚫어지게 응시하는 듯한 그런 모습이 그애에겐 늘 있었다. 어쩌면 실제로 그랬고, 그 이해할 수 없는 무언가는 인생이었는지도 모르겠다. --- p.224 말하자면 광기에 빠졌던 시대의 생존자, 이 시기에 등장하기 시작한 부류. 몸의 문신에, 그동안 가본 모든 그릇된 길들의 지도를 그린 양 너무 일찍 주름진 얼굴에, 다 쓴 성냥 같은 눈동자에 저마다의 역사를 담고 있는 청년들. 그들의 미래로 말할 것 같으면, 머리를 짧게 자르고 마약을 끊고 다시 본명을 쓰기 시작한다 해도 결코 진정 올바른 정신 상태로는 돌아갈 수 없을 터였다. 그들은 결코 정장을 입을 수도, 사무실에서 일할 수도, 그들의 아버지들이나 아들들이 (혹은 대부분의 여자들이)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것들을 진지하게 받아들일 수도 없을 터였다. 한쪽 면에는 아무 의미 없다, 반대쪽에는 존나 의미 없다라고 적힌 양면 광고판을 걸고 다니는 사람들. --- p.244~245 그들은 엄마가 되는 것을 두고 갈등했다. 그들이 확실히 아는 한 가지가 있다면 자신의 어머니처럼 살고 싶지 않다는 것이었다. 결혼 생활과 가족에 삶을 바치느라 적어도 딸들이 보기엔 다른 모든 걸 놓쳐버린 여자들. 한 세대 만에 여자들의 삶은 극단적으로 변화하여, 무수한 소녀들이 성장한 후 자신을 길러준 여자와 할 말이 거의 없음을 깨닫게 되었다. --- p.260~261 옛날에는, 급진주의자들이 멋졌다. 섹시했다. 매사 그들과 의견을 같이하지 않더라도, 사람들은 그들을 우러러보았다. 그들처럼 되고 싶다는 은밀한 희망을 품었다. 하지만 이제 모든 게 달라졌음을 직시하자. 민중을 약탈하는 벌레 같은 파시스트 타도! (공생 해방군의 구호다.) 그런 말을 하면서도 사람들이 킥킥거리지 않던 시절을 기억하는가? 은행 계좌가 있는 이들은 전부 자본주의의 개들에게 동조하는 자였던 시절을 기억하는가? 단순히 급진주의자들이 더 이상 멋져 보이지 않는다는 얘기가 아니다. 그들은 완전히 웃음거리로 전락한 듯 보인다. --- p.334 어린 앤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악에 대해 알게 됨과 동시에 자신이 그 악의 원인이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던 것이다. 그는 자신이 누리는 온갖 멋진 혜택들과 좋은 것들이 자신보다 운이 좋지 못한 타인들에 대한 착취를 통해서만 얻어질 수 있음을 깨달았다. 그것이 그가 자라난 60년대라는 시대의 가르침이었다. --- p.340 슬픔으로 변형된 평범하고 점잖은 남자. 평범하지 않았던 건 그의 깊은 감정들이었다. 기적과도 같았던 것은 그런 감정들을 나누었다는 사실이었다. 그런 일이 일어난 건-아무도 예견하지 못한 일이었다-하나의 수수께끼였다. 사랑의 흔한 수수께끼. --- p.424 “사랑 때문에 죽는 사람은 영화에서 말고는 없다.” 아주 유명한 프랑스 로맨스 영화에 나오는 대사예요. (사실 난 사람들이 사랑 때문에 죽는다고 생각해요. 아주 천천히 죽어서 그렇지.) --- p.507 자기가 뭐라고 생각하는 거야? 이게 노상 들리는 말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는 이래도 욕을 먹고 저래도 욕을 먹었다. 그가 대부분의 재소자들과는 거리가 먼 상류층 출신이라는 사실을 아무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밑바닥 출신과 같은 취급을 받고 싶어한다는 사실 역시 아무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그런 취급을 요구하는 것 자체가 사실은 스스로를 모든 사람들 위에 올려놓는 것임을 그는 이해하지 못했다. 자기가 뭐라고 생각하는 거야? --- p.537 그가 하려는 일을 고려한다면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내가 연거푸 그의 면전에 던진 말은 이기적이라는 비난이었다. 그건 진심에서 나온 말이었다. 그는 꼭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면서 다른 사람들을 돕는 여자였는데, 그 누군가는 대개 자기 자신이었다. --- p.575 앤도 그와 같지 않았던가―그 오랜 세월 자신의 순수성과 꿈을, 환상을 고수하지 않았던가. 그들 둘 다 10대 때 만들어진 이상적인 자아관에 끝까지 충실하지 않았던가. 이름을 바꾼 것, 새로운 자아의 창조를 향한 헌신, 자신의 출생 배경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굳은 결의, 비이기적 헌신에 대한 열정적 믿음. 그 마음. --- p.600 |
1968년 가을, 나는 그애를 만났다
뜨거운 시대, 두 여성의 엇갈리는 삶과 우정의 연대기 “이 책은 여성이 자신의 경험을 전달하고 해석하는 방식에 관한 이야기다. 정의, 인종, 정치적 이상주의에 대한 물러섬 없는 탐구.” -〈뉴욕 타임스〉 1968년, 극빈한 변방의 동네에서 뉴욕의 명문 대학으로 필사적으로 탈출하듯 떠나온 ‘나’, 조젯은 상류층 백인인 앤과 기숙사 방을 함께 쓰게 된다. 자신과 “최대한 다른 세계에서 온” 룸메이트를 부탁했다는 앤은 그런 나에게 엄청난 우정 공세를 퍼붓는다. 입학과 동시에 앤은 대단히 열성적으로 좌파 운동에 가담하고, 진보적 가치를 열렬히 좇으며 갈수록 부모를 포함한 자신의 출신 세계 전부를 적대시한다. 그렇게 1960년대 말의 혼란스럽고 광기에 가까운 학생 사회의 분위기 속에서 두 학년을 보낸 두 사람은 각기 다른 이유로 대학 교육에 회의를 느끼고 학교를 떠나 각자의 길을 걷는다. 여전히 사회 운동에 헌신적인 앤, 잡지사를 다니며 생계를 이어가는 나는 조금씩 멀어지다가 어느 날 앤의 흑인 애인에 대해 사소한 대화를 나누다 크게 싸우게 되어 연락을 끊는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앤은 경찰 살인죄로 신문 헤드라인을 장식하며 나의 삶에 다시 등장한다. 내 다시없을 사랑들에게 젊고 뜨겁고 혼란스럽던 그 사랑들에게 “무엇보다 피곤하고, 깊은 밤과 음악과 앤의 조용한 목소리가 내게 마법을 거는 시간. 마법이라고 한 건, 사실 앤이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앤의 이야기를 더 듣고 싶어졌기 때문이다.”(26~27쪽) “우리의 관계는 로맨스의 사랑이 아니었다. 하지만 사랑인 건 맞았고, 대부분의 사랑이 그렇듯이 오래 지속되지 못할 터였다.”(55쪽) 우정은 때로 연인의 사랑보다 길고, 지난하고, 애틋하다. 처음에 ‘나’는 앤의 일방적인 우정을 거부하지만 잠시뿐, 이내 간간이 끼어드는 짧은 시간을 빼고 둘의 대화는 종일 끝도 없이 이어진다. 열여덟 살, 이제 막 새로운 세계에 설렘과 두려움의 첫발을 딛는 두 사람에게 모든 것을 나눌 수 있는 친구의 존재는 중요하고 또 중요하다. 특히 학생 운동과 마약과 록 음악이 혼재하던 1968년의 대학 캠퍼스에서라면 더욱 그렇다. 무엇이든 다 변화하리라는, 새로운 세상이 도래하리라는 기대와 열망으로 터져 나갈 듯 들끓던 때, 그 급류 속에서 두 사람은 만나고, 서로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좁다란 기숙사 방에 나란히 누워 밤새도록, 담배가 떨어질 때까지, 비밀을 용납하지 않는 그들의 이야기는 맺을 줄을 모른다. 앤은 거의 모든 면에서 나와 대비되는 인물이다. 어릴 때부터 주목받으며 자란 앤, 무조건적인 사랑과 풍요 속에서 자란 부잣집 아이, 명석하고 철두철미하며 지칠 줄 모르는 사람. 나는 앤을 사랑하지만 전적으로 이해할 수는 없다. “전쟁도, 소유도, 굶주림도, 시기도, 탐욕도 없는 세상”을 꿈꾸던 1960년대 후반, 앤은 계급과 정의, 평등에 관해 배우고 들은 모든 것들을 실천하겠노라고 마음먹는다. 앤은 매 순간 진지하고, 누구보다도 자신의 이상과 원칙에 충실하며, 부자 백인 미국인이라는 자신의 계급에 철저히 비판적이다. 자신을 애지중지하는 부모조차, 아니, 부모야말로 가장 날카로운 혐오의 대상이다. 터무니없을 정도로 급진적이고 병적이리만치 이상주의적인 앤은 공공연히 비판과 조롱과 공격의 대상이 되지만, 앤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많은 이들이 그게 다 뭐였냐며 그 시절의 광기에서 빠져나온 듯이 말하는 때가 와도 앤은 불가해한 모습 그대로 남아 남들과는 다른 시간을 살듯 살아간다. 나는 앤을 두고 “자기가 뭐라고 생각하는 거야” 쏘아붙이는 사람들에게 “넌 앤을 몰라”라고 변명하듯 말한다. 그렇다면 달리 뭐라고 앤을 설명해야 할지는 모르지만 나는 앤이 사람들이 쉽게 오해하고 비난하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것만은 안다. 다른 사랑들도 있다. 내가 대학에 들어오고 얼마 되지 않아 집을 나가 실종된 여동생 솔랜지. 나는 그애를 폭력적인 환경에 두고 왔다는, 한번 돌아보지도 않았다는 죄책감을 느끼고, 그애가 사라진 몇 년간 아파한다. 가난과 폭력이 대물림되고, 서로를 구해줄 수도, 화해할 수도 없는 가족들. 하지만 어느 날 비 맞은 고양이처럼 문 앞에 나타난 솔랜지를 보며 나는 “그애의 심장이 내 손에 들어 있기라도 한 듯” 애정을 느끼고, 둘은 가족 중 유일하게 서로를 의지하며 함께한다. 가족은 안식처가 아닌 고통의 근원에 가까웠지만, 솔랜지와 나는 각자 떠나와 다시 만난 그곳에서 진정한 가족이 된다. 두 자매는 때때로 무너지는 서로를 돌봐주고, 미워하다가도 끝내 미워할 수는 없는 사이가 되어간다. 그리고 그 사랑, 차마 일인칭 ‘나’로는 써 내려갈 수 없는 그 사랑이 있다. 삼인칭 ‘조젯’은 마법처럼 사랑에 빠졌고, 조젯이 한 모든 키스가 그 사람을 구원했으며, 둘은 자신만만하게도 불가능한 사랑을 믿는다. 애초부터 미래를 꿈꾸기 힘든 처지의 두 연인. 입 밖에 내자마자 풀려버린 마법처럼 둘의 관계는 금세 끝나지만, 그 사랑은 이후 다른 모든 사랑의 기준이 된다. 다시는 그만큼 조젯을 가질 수 있는 사랑은 찾아오지 않는다. 책은 젊음 그 자체와 마찬가지로 다시는 되풀이되지 않을 사랑들에 대해 들려준다. 터미널에 도착하자마자 가방을 도둑맞는 것으로 대도시에서의 첫날을 시작한 앳된 여성이 자기 삶을 꾸리고 두 아이를 다 길러내고 나이가 들어 그 기억들을 돌아볼 때까지 이 기나긴 삶의 이야기에서 우리는 우리 삶이 얼마나 많은 사랑들과 얼마나 많은 상실들로 이루어져 있는지를 본다. 많은 것들을 잊어버리고 마는 삶의 씁쓸함을, 그럼에도 얼마나 많은 기억들이 우리에게 아문 상처처럼 새겨져 있는지를 다시 헤아리게 만든다. “조개껍질 열 듯 마음을 비집어 여는 진짜 칼”처럼 사람을 무방비하게 열어젖히는 기억들이 거기에 늘 있음을. 20세기에 대한 가슴 아프도록 정직한 초상 1960년대 후반의 분위기를 세밀한 부분까지 생생하게 그려내던 소설은 1968년이 제기한 문제들을 떠안고 계속 나아간다. 젊은 이상주의자들은 짧게, 너무도 짧게 등장했다 사라지지만 그들이 드러낸 문제들은 거기에 남는다. 그것은 한때 아름답게 평화와 자유를 외치던 젊은이들이 있었습니다, 하고 간단히 말해버릴 수가 없는 이야기라고 소설은 지적한다. 그들이 외치던 구호는 낡은 유물이 되어버렸지만 미국 사회는 전혀 개심하지 않았다. 그들이 꿈꾸던 평화와 자유는 아직 오지 않았고 그렇기에 앤은 멈출 수도 달라질 수도 없다. 앤이라는 문제적 인물이 그 극단을 보여준, 진보를 외치는 엘리트들의 한계는 곧 미국 사회의 계급과 인종 문제를 다시 한번 복잡하게 드러내기도 한다. 앤은 기꺼이 자신의 계급적 특권을 다 포기하지만 그조차 일종의 특권으로 여겨진다. 앤은 흑인 남성과 사귀지만, 그 역시 조롱당한다. 교도소에서 순교자처럼 살아가지만 아무도 그 ‘고고한’ 호의를 곱게 보지 않는다. 앤을 향한 사람들의 비판은 때로는 가혹하고 때로는 타당하다. 나는 그 모든 평가 사이에서 다만 앤을 이해하려고 애쓴다. 소설에는 앤과 나를 비롯해, 솔랜지, 친구 클리오, 엄마, 그 밖에 여러 여성들의 삶이 등장하고, 그 여성들 간의 다양한 관계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흘러간다. 소설은 20세기에 여성으로 산다는 것, 똑똑하거나 어리석거나 독립적이거나 망가졌거나 미쳤거나 제정신이거나, 뭐가 됐든 여성으로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구석구석 날카롭게 지적한다. 페미니즘의 물결과 여성 지위의 상승, 성 혁명 등을 비롯한 거대한 역사적 전환을 몸소 살아내지만 그 혼돈 속에서 각자의 삶이 진보의 영광만을 누리는 것은 아니다. 삶의 여러 단계에서 여성들은 크고 작은 벽들, 위험들, 폭력들을 맞닥뜨리고 때로는 꺾이고 때로는 넘어선다. 그리고 자매애, 우정, 모성애, 뭐가 됐든 여성들 간의 끈끈한 유대와 애정, 보살핌으로 그들은 서로를 잇는다. 그 관계들이 한없이 아름답기만 한 건 아니지만, 때로는 폭력적이기까지 하지만, 최소한 서로를 알아보고 이해할 수 있으므로 그들은 서로를 구할 수도, 위안할 수도 있다. 그 부류의 마지막 존재들에게 어쩌면 마지막이 아닐 그 존재들에게 “앤도 그와 같지 않았던가ㅡ그 오랜 세월 자신의 순수성과 꿈을, 환상을 고수하지 않았던가. 그들 둘 다 10대 때 만들어진 이상적인 자아관에 끝까지 충실하지 않았던가. 이름을 바꾼 것, 새로운 자아의 창조를 향한 헌신, 자신의 출생 배경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굳은 결의, 비이기적 헌신에 대한 열정적 믿음. 그 마음.”(600쪽) 젊고 뜨겁고 혼란스럽던 과거는 금세 웃음거리가 되어버린다. 때로는 너무도 순식간이라 미처 그 흔적들을 지울 새도 없이 어안이 벙벙해진 채로 다음 시대를 맞기도 한다. 1960년대 후반은 미국 현대사에서도 폭발적인 시기였다. 터져 나온 열기들이 젊은 세대를, 세상을 사로잡았다. 이 소설에서는 그 시절이 얼마나 터무니없었는지, 얼마나 진지했는지를 들려주면서 그 시절이 남긴 여파를 쫓는다. 그 시절, 그 후, 미국인이라는 것은 무엇이었나, 미국은 무엇이 될 수 있었고, 무엇이 되었나를 물으면서. 나는 신입생 시절 『위대한 개츠비』를 읽고 신랄하게 비판하고, 그 평가는 나이가 들도록 변하지 않는다. 단순하게 정형화된 아메리칸드림의 허상 위에 선 작품, 미국적인 것의 정수를 보여준다고 평가받는 위대한 (남성들의) 정전. 『위대한 개츠비』는 왜 미국인들이 유구히 간직해야 할 유산이 되었나. 소설은 꿈과 희망, 헌신의 서사로 요약될 수 없는 미국 현대사를 따라가며 『위대한 개츠비』라는 작품이 상징하는 미국과 미국인이라는 신화를 지적한다. 그리고 한편으로 역설적이게도, 어떤 면에서 개츠비와 앤은 비슷한 인물이기도 함을 깨닫는다. 현실보다는 관념에 가까운, 무언가 추상적인 것을 구현한 듯한 인물. 이 소설은 두 여성의 삶과 우정의 연대기이지만, 어느 시점엔가 소멸하고 마는 어떤 부류의 마지막 존재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고집스럽게 홀로 끝까지 남은 마지막 존재. 시대가 변화하고 개인도 변화하지만, 그 모든 사라짐 속에서도 조금도 흔들림 없이, 강박에 가까운 순수성을 고수하며 힐난과 냉소와 조롱 속에서도 완강하게 자신의 길을 끝까지 걸어가는 사람의 모습. 시대정신에 충실했던 한 인물이 시대의 변화 속에서 어떤 존재가 되어가는지를 들여다보면서, 이 소설은 그 삶을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삶 자체를 찬찬히 곱씹는다. 앤이라는 강렬한 인물에 대한 관찰이 이야기의 중심을 이루지만, ‘나’를 비롯한 여러 인물의 삶을 촘촘히 엮어가며 우정과 사랑, 삶과 시간에 대한 사려 깊은 통찰을 보여준다. 사건들과 긴박한 드라마들이 가득하다. 무엇보다 이 책은 여성의 경험을 전달하고 해석하는 방식에 관한 이야기다. 정의, 인종, 정치적 이상주의에 대한 물러섬 없는 탐구. -〈뉴욕 타임스〉 1968년의 격동 속에 맺어진 두 여성의 우정은 서로 너무 다른 삶의 경로를 걸으며 시험받고, 부서지고, 다시 확인된다. 한 시대와 그 여파 속 고통받는 양심을 뛰어나게 구축해냈다. -〈커커스 리뷰〉 미국 역사의 결정적 시기에 젊고, 똑똑하고, 여성이라는 것이 어떤 것이었는지에 대한 완벽에 가까운 묘사. -〈글로브 앤드 메일〉 전형적이면서도 고유한 두 여성 인물이 건널 수 없는 계급적 차이를 딛고 우정을 쌓으려고 애쓰는 모습을 예리한 눈길로 포착해낸 서사. 누네즈가 보여주는 날카로운 관찰의 힘은 그를 타고난 연대기 작가로 만든다. -〈뉴욕 타임스 북 리뷰〉 『그 부류의 마지막 존재』의 한가운데에는 열정적인 정직함이 있다. 우정, 낭만적인 이상주의, 수치심에 대한, 깊이 있는 감동을 주는 섬세한 소설. -〈O, 오프라 매거진〉 책을 덮을 때마다 ‘와’ 하는 감탄이 터져 나온다. 이 책은 그런 책이다. 풍부한 역사적 세부가 담긴 이 예측 불가능한 소설은 계급 특권을 포기하고 인류의 향상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파고든다. 놀랍도록 강렬하다. -〈라이브러리 저널〉 미국인이 된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증오와 분노가 유용한 수단인지, 이전 세대의 실수를 바로잡을 수 있는지 하는 질문들이 내내 사로잡는다.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격렬한 강렬함을 잃지 않으면서 다양한 인물들의 관점과 어조를 담아낸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견고하게 창조된 1960년대의 초상이다. 누네즈는 인간 마음이 지닌 본질적인 미스터리들의 표면 아래로 우리를 인도한다. -〈월 스트리트 저널〉 독특하고, 도발적이고, 초연하며 자신감에 넘치는 소설. 인종, 계급, 마약, 친구와 가족의 끈질긴 힘, 충성심과 특권의 위험에 대한 정확한 고찰이 담긴 이 책에서 누네즈는 여전히 성업 중인 광산인 듯 1960년대 삶의 이야기를 캐낸다. -〈뉴스데이〉 누네즈는 능숙하게 계급, 인종, 젠더 간 상호 작용에서 일어나는 미묘한 마찰을 포착해낸다. 지적인 통찰로 쓰인 글. -〈시애틀 타임스〉 누네즈의 날카로운 지성과 포스트 페미니스트적 의식은 ‘위대한 미국 소설’이 더 이상 가능하거나 가치 있는 목표가 아니라고 느끼고 있는지도 모르지만, 누네즈가 그곳을 향하고, 도달하지 않았다고는 결코 말할 수 없으리라. 이 책은 강력하고 예리한 사회소설로, 아마도 자신의 운명이 역사를 결정하리라고 믿었던 미국 젊은이들로 이뤄진 독특한 세대에 대해 쓴 가장 뛰어난 소설일 것이다. -살롱닷컴 |
인생은 길고도 길다. 사람도, 우정도, 사랑도, 생각도 변하고, 그렇게 많은 것들이 달라진다. 시간에 진 것인지 우리 자신에게 진 것인지 알 도리가 없다. 시그리드 누네즈가 우리의 손을 잡아끌어 1960년대 대학 기숙사에서 시위 현장으로, 마침내 교도소와 병상에까지 데려가는 동안, 저마다의 방식으로 ‘그 부류의 마지막 존재’였던 여성들의 우정에 대해 저마다의 해석을 내놓게 된다. ‘그녀’의 이야기이자 우리의 이야기. 그렇게 우리의 뜨겁고 요란했던 한 시절이 끝난다. 다시, 삶은 계속된다. - 이다혜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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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부류의 마지막 존재』에서 시그리드 누네즈는 그토록 생동감 넘치는 복잡성을 지닌 인물들을 다시 한번 창조해내서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그들을 살아내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책을 덮고서야 나는 조젯과 앤이 내 옆에 없음을 슬퍼하며 깨달았다. 그러나 기쁘게도 나는 빠져들게 만드는 이 아름다운 책에서 그들을 다시, 또다시 찾아갈 수 있다. - 마고 리브시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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