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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여덟 아홉 열 열하나 열둘 열셋 열넷 열다섯 인용 출처 및 참고 문헌 옮긴이의 말 ‘어두워지는 세계 속 작은 이종 공동체’ 추천의 글 |
Sigrid Nune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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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정 같은 얼굴에 설치류의 몸과 꼬리. 바로 이런 조합이 미츠를 그토록 경이롭게 만들었다. 처음 보면 ‘정말 기괴하군’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고는 곧 ‘정말 사랑스럽네’라는 생각이 들고, 다시 ‘정말 기괴하네’라고 생각하게 된다.
--- p.14 딸기를 전부 집어삼키고 크림까지 남김없이 핥아먹은 미츠는 연이어 울어댔다. 날카로운 소리로 재잘대는 원숭이의 문장은 끝이 의문문처럼 올라갔다. 아무도 통역할 수 없었으므로 아무도 대답할 수 없었다. --- pp.15-16 『올랜도』는 비타에게 영감을 받은 작품으로, 비타를 주인공으로 삼았으며 비타에게 헌정되었다(비타의 아들 나이절 니콜슨은 이 작품이 “문학사에서 가장 길고 매혹적인 연애편지”라고 했다). --- p.46 10월에 울프 부부는 비탄에 잠긴 채 런던으로 돌아왔다. 친구 로저 프라이가 9월에 세상을 떠났다. 이제는 친구의 죽음에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하는 나이였다. --- p.53 두 사람은 늘 이렇게 했다. 그들이 “가시”라고 부르는 것이 버지니아에게 생길 때마다 함께 대화하면서 가시를 뽑고자 했다. 하지만 오늘은 평소보다 더 많은 도움이 필요했다. 오늘 버지니아는 가시투성이였다. --- p.57 버지니아는 미츠를 오랫동안 바라볼 때가 많았다. 전에도 기르던 고양이와 개를 보며 궁금해했던 것처럼 미츠를 보면서도 궁금했다. 동물로 산다는 건 어떤 일일까? 개의 눈으로 세상을 본다는 건 어떤 일일까? 고양이는 우리를 어떻게 생각할까? 경이로워하는 그런 호기심이 없었다면 버지니아는 아마 『플러시』를 쓰지 않았을 것이다. --- p.72 “제가 그대에게 어떻게 보이는지요, 미치. 추하고, 끔찍하고, 흉측한가요? 어찌하여 그대는 바나나를 싫어하는지요?” --- p.75 버지니아가 언젠가 쓴 적이 있듯, 미츠는 언제나 “이 세상이 하나의 질문인 것처럼” 행동했다. --- p.97 촉촉한 밤공기, 바스락거리는 나무, 털을 헝클이는 바람, 여우, 달. 아, 이 모든 것이 조그만 미츠에게서 어떤 두려움, 기쁨, 기억, 갈망을 일깨웠는지 누가 알겠는가? --- p.102 런던도서관위원회에는 왜 여성이 없는가(이에 관해 논쟁을 벌이다 발끈한 버지니아는 『멸시당하는 일에 관하여』라는 책을 써서 분노를 쏟아내기로 결심한다)? 문학을 가르칠 수 있는가? 작가는 서훈이나 명예직을 받아들여야 하는가? --- p.106 미츠는 레너드와 다른 사람들의 입에 이 단어가 자주 오르내리는 것을 들었다. 히틀러, 독일, 그러다가 다시 전쟁이라는 단어가 나왔다. 워war, 워, 워. 마치 샐리가 짖는 소리 같았다. --- p.110 마모셋이 우리를 어떻게 히틀러한테서 구해냈는지 제가 말씀드렸던가요? 전쟁. 우리가 살아남을 수 있을까? 살아갈 이유가 되는 무언가가 여전히 남아 있을까? --- p.14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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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판 한정, ‘작가의 인사’를 담은 엽서 수록
전쟁과 증오로 가득찬 혼돈의 시대에 읽는, 인간과 비인간 사이의 헌신적 유대 『미츠』는 20세기 모더니즘의 거장 버지니아 울프와 그녀의 남편 레너드 울프가 실제로 길렀던 마모셋원숭이 ‘미츠’의 흔적을 좇아, 사실과 허구의 경계를 절묘하게 가로지르는 소설이다. 파시즘과 전쟁의 암운이 번져가던 1930년대 중반 유럽의 황폐한 편린들은, 누네즈의 문장 속에서 굴절되어 매혹적인 괴짜이자 서늘할 만큼 명석했던 울프 부부의 마지막 평화의 시기를 감싸는 빛으로 바뀌어간다. 세상에서 가장 작은 원숭이 마모셋과 이를 세심하게 돌보는 울프 부부의 작은 하루하루가 시대의 어스름과 맞닿아 겹겹의 레이어로 자아내는 문학적인 울림은 가슴 시리게 사랑스럽다. 얼마나 조그만지! 겨우 주먹만한 원숭이였다. 털가죽에 덮인 사과인 양 손바닥에 올려놓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호두만한 머리, 과일의 검은 씨앗 같은 두 눈, 바늘구멍처럼 작디작은 콧구멍. 털은 대체로 회색—다람쥐 털 같은 회색—이었지만, 머리 측면과 후면에는 더 밝은 색의 털 뭉치가 나 있었다(그 때문에 조금 광대처럼 보였다는 말을 덧붙여야겠다). _본문 13쪽 버지니아 울프의 작가적 일상에 관한 섬세하고 적확한 묘사 누네즈는 버지니아 울프의 충실한 독자이자 영민한 연구자로서, 우울이나 광기 같은 말들 뒤에 가려진 버지니아 울프의 ‘치열하게 성실한’ 작가적 일상을 정교하게 복원해낸다. 따라서 『미츠』는 반려마모셋 미츠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실패의 예감과 자기혐오와 싸우면서도 끝내 자신만의 작품을 빚어가는 여성 예술가의 고단한 노동을 다루는 소설이기도 하다. 아픈 몸(과 정신)을 다독이며 일상의 루틴으로 버텨가는 버지니아 울프의 끝없이 ‘쓰는 삶’은, 격랑을 이겨낸 다음의 고요한 바다처럼 홀가분하게 아름답다. 『플러시』는 휴식차 쓰기 시작한 책이었다. 열기에 휩쓸린 상태로 『파도』를 마무리하느라 부글부글 끓어오른 뇌를 이 작업으로 식히려고 한 것이다. 문학의 신들은 이런 마음으로 집필을 시작하는 작가를 벌한다. 처음엔 가볍게 생각하면서 ‘장난 삼아 하는 일’이며 ‘유희’라고 칭했지만, 곧 이 작업도 다른 책을 쓸 때와 똑같이 되고 말았다. 그저 계속되는 일, 일, 일. 머지않아 버지니아는 쓰고 또 고쳐 쓰는 일이 얼마나 끝이 없는지, 조사 작업이 얼마나 지루한지, 작업 전체가 얼마나 따분하고 더딘지, 얼마나 그만두고 싶은지 한탄한다. _본문 47쪽 시그리드 누네즈와 버지니아 울프, 그리고 번역가 메이 : 시공을 건넌 글 쓰는 여자들의 연결 이 특별한 이야기의 풍부한 결을 우리말로 번역한 메이는 작품에 더할 나위 없는 신뢰와 문학적 깊이를 부여한다. 『버지니아 울프의 정원』을 번역하며 울프의 가장 내밀한 공간인 몽크스 하우스의 공기를 섬세하게 복원하고, 자신의 에세이 『아프다는 것에 관하여』를 통해 아픈 몸과 고통의 재현에 대해 깊이 성찰한 그는, 울프 부부의 만년을 함께한 작은 원숭이 미츠를 가장 ‘울프다운’ 온도로 그려낸 『미츠』와 공명하며 취약한 존재들에 관한 눈부신 문학을 새롭게 완성한다. 이것이 본문 뒤에 수록된 「옮긴이의 말」을 직접 읽은 누네즈가 메이를 극찬한 이유다. 초판 한정 ‘작가의 인사’ 엽서 수록 코라초 프레스는 첫 책으로 시그리드 누네즈의 『미츠』를 펴내고 싶었다. 앞으로 코라초 프레스가 이야기하고픈 거의 모든 주제가 작품에 담겨 있는 데다, 무엇보다 너무나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작품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백리스트 없이 세계적인 작가의 작품 판권을 확보할 수 있을지 확신이 없었고, 저작권 에이전시를 통해 왜 코라초 프레스가 첫 책으로 이 작품을 출간하고 싶은지, 그 이유를 상세히 작성해 누네즈에게 전달했다. 그렇게 작년 하반기부터 작가와 긴 시간 소통을 이어왔고, 시그리드 누네즈는 『미츠』의 한국어판 출간에 맞춰 코라초 프레스에 특별한 편지를 보내왔다. 해외의 저명한 작가와 이제 막 시작하는 한국의 출판사가 직접 소통하는 일은 매우 드문데, 편지에는 출판사의 출발에 대한 따뜻한 격려와 더불어 작품이 작가에게 어떤 의미인지 진솔한 소회가 담겨 있어 초판 한정으로 그의 편지를 엽서 형태로 수록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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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모셋, 주먹만한 몸집과 회색 털을 가진, 세상에서 가장 작은 원숭이. 버지니아 울프와 레너드 울프는 1934년부터 1938년까지 ‘미츠’라는 이름의 마모셋과 살았다. 그들이 남긴 일기와 편지에 몇 번 언급됐을 뿐인 이 마모셋은 얄궂게도, 후대의 작가 시그리드 누네즈에게 발견돼 더없이 매력적인 페르소나가 된다. 그는 레너드의 조끼 속에 담긴 미츠 뒤에 숨어, 버지니아가 세월과 3기니를 집필하는 과정, 부부의 저택 겸 출판사에 ‘블룸즈버리 그룹’으로 알려진 당대의 지식인들이 드나드는 장면을 빠짐없이 목격한다. 하지만 시그리드가 미츠의 눈으로 영문학사의 행간을 속속들이 파헤친 이유는 따로 있다. 그는 남아메리카에서 포획돼 런던으로 팔려온 미츠의 고된 생애사를 지인의 죽음과 병치레가 빈번해지는 버지니아의 말년, 나치즘과 전쟁으로 인해 급격히 쇠락해가는 유럽의 시간과 교묘히 겹쳐둔다. 황폐한 세월을 각자의 방식으로 서로 돌보며 견디는 인간과 비인간의 유대. 시그리드 누네즈는 결코 영웅적이지도 낭만적이지도 않은 이 취약한 동물들 간의 유대와 결속을 우리가 기억할 만한 가장 문학적인 장면으로 각인시킨다. - 오혜진 (문학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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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그리드 누네즈는 가장 작고 연약한 존재인 마모셋원숭이 미츠의 시선을 빌려, 나치즘의 광기가 번져가던 유럽의 전쟁 전야를 살아가는 이들의 찬란하고도 위태로운 일상을 복원한다. 버지니아 울프와 예민한 영혼을 공유한 듯한 이 특별한 마모셋에 대한 비공식 전기인 『미츠』는 역사적 기록과 소설적 상상을 넘나들며, 독자가 블룸즈버리의 반가운 이름들을 만나 함께 읽고 걷고 꿈꾸도록 한다. 이 작은 소설은 시대의 어스름 속에서도 버지니아 울프와 레너드 울프가 끝내 놓지 않았던 생명에 대한 경외와 그들이 보여준 다정한 연대로 안내하는 초대장이다. - 심채경 (천문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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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츠』는 누네즈의 또다른 문학적 보석으로, 재치 있고 지적으로 탁월하며 글쓰기를 향한 헌신, 타인을 향한 헌신, 인간과 반려동물 사이의 헌신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 『친구』나 수전 손택을 회고하며 쓴 『우리가 사는 방식』처럼 『미츠』 역시 작가로서 사는 삶이 요구하는 헌신, 때로 보답이 따르지 않기도 하는 그 깊은 헌신을 탐구한다. 무엇보다 『미츠』는 버지니아 울프의 『플러시』에 바치는 영리한 오마주다. 『미츠』도 『플러시』와 마찬가지로 집필 과정은 “일, 일, 그리고 또 일”이었을지 모르지만, 읽는 사람은 즐겁기만 하다. 『친구』처럼 『미츠』도 사랑과 관계의 가슴 아픈 측면, 즉 상실을 포착하지만 동시에 문학이 주는 커다란 위안과 위락을 아름답게 보여준다. - NP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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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 잡을 데 없이 완벽하고 작은 보석 같은 작품이다. - 나이절 니콜슨 (출판인, 비타 색빌웨스트의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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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츠』는 매혹적이고 경쾌하면서도 읽다보면 우수에 젖게 되는 소설이다 (…) 허구와 사실을 마치 서로 비슷한 색깔의 실인 양 절묘하게 엮어 기록된 말에 생명을 불어넣음으로써, 이 작품은 작위적으로 보이기 쉬운 역사소설 장르의 위험을 피한다 (…) 『미츠』는 빛을 굴절시켜 비추듯 내밀한 세계를 드러낸다. 서로 다른 종種 사이의 신비한 애정을 탐구하는 가운데, 보다 넓게는 인간관계의 위안과 취약함을 말한다. 『미츠』를 ‘블룸즈버리의 원숭이 소동’처럼 피상적으로 요약한다면, 비구름처럼 금세 어둡게 몰려오는 이 소설의 서늘한 슬픔을 놓치는 일이 될 것이다. 이 작품은 정교하게 만든 달콤한 디저트처럼 우리 눈앞에서 서서히 녹아내린다. - 『파리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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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네즈의 『친구』를 너무도 재밌게 읽었기에 이 책이 내 책상에 놓였을 때 바로 눈에 들어왔다. (…) 두 사람의 인생의 어느 시점, 또한 역사 속의 어느 시점을 아름답게 포착한 초상화 같은 작품이다. (…) 정말 잘 쓴 매력적인 책이라 뭔가 상쾌한 걸 읽고 싶을 때 추천하고 싶다. (…) 다음에 뭘 읽을지 고심할 때 집어들기 좋은, 아름다운 책이다. - 존 윌리엄스 (문학평론가, 「뉴욕 타임스」 팟캐스트 ‘북리뷰’ 진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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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네즈는 이 소설에서 커다란 위험을 감수한다. (…) 이 책이 보여주는 최고의 순간들은 『델러웨이 부인』 특유의 날카로운 긴장감을 고스란히 품고 있다. - 『시카고 트리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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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고 반짝이는 문장들로 큰 세계를 담아내는 누네즈의 글은, 별나면서도 매력적이고 날카로운 지성을 지닌 울프 부부가 어두워지는 시대를 살아가는 모습을 그린다. - 『월스트리트 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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