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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사 - 닫힌 담장 안에서 피어난 ‘사람’이라는 희망의 기록
- 사람을 단정 짓지 않는 기다림, 그 현장의 기록 - 사회적 책임으로서의 교정, 그 본질을 묻다 - 상처의 틈을 금빛으로 채우는 ‘킨츠기’의 미학 프롤로그 사람이 다시 서는 자리에 서다 1장 나는 왜 이곳에 오는가 - 교도소, 내 심리치료 경력에는 없던 주소 - 처음 철문이 닫히던 날 - 담장보다 높은 마음의 장벽 - “여기서도 사람이 바뀝니까?” - 내가 이곳에 오게 된 이유, 치료자의 길 - 심리치료, 철창 안에 들어가다 - 교육이 아닌 ‘관계’로 시작된 수업 상담보다 중요한 ‘존재해주는 일’ 편견을 깨뜨린 첫 만남 여기서도 사람이 사는 곳이라는 깨달음 2장 감정 없는 얼굴 위에 감춰진 이야기들 이름 없이 불리는 사람들 “선생님, 그건 책에만 있는 말이잖아요.” 침묵과 무표정의 언어 “나도 울어도 됩니까”라 말한 날 저항, 그 속에 숨은 신호 여기 저보다 짠밥 긴 사람 있어요? 감정 없는 얼굴에 숨은 흔들림 벽을 허무는 건 마라이 아니라 기다림 ‘두려움’을 표현하지 못하는 사람들 마음이 열리는 순간의 작은 징후들 3장 죄에서 사람으로 “저는 버림받은 사람이에요” 후회의 시간은 밤에 찾아온다 누군가의 아들, 누군가의 아버지 마약과 반복되는 무너짐의 구조 폭력의 뿌리 : 어린 시절의 상처들 왜곡된 사랑 : 스토커들이 말하는 ‘사랑’ 그림 속에 담긴 진심 한 조각 “다시 시작하고 싶어요. 가능할까요?” 죄 너머, 사람이라는 이름으로 4장 나는 법무부 교정위원입니다 그곳에서 상처를 들여다본 시간 나는 법무부 교정위원입니다 교도관들의 ‘보이지 않는’ 고생 죄책감과 분노 사이에서 길을 잃을 때 선과 악, 치료자의 판단과 중립 사이 말 없이 주고받은 마음의 온도 동료 교정위원들과의 연대 존재를 보는 일, 판단을 내려놓는 일 현장에서 배우는 용기와 한계 내가 계속 이 길을 걷는 이유 5장 교도소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다 상담보다 사람, 치료보다 관계 재범률보다 중요한 것들 무기수도 웃었다-끝나지 않은 이야기 복귀는 가능할까, 사회는 준비되어 있을까 가족이라는 이름의 복잡함 출소 후의 두려움과 현실 교정의 본질은 ‘복원’이다 나는 왜 ‘치유’를 믿게 되었는가 닫힌 문, 그 너머에서 만난 희망 에필로그 나는 오늘도 그곳으로 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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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처음 ‘들어주는 사람’을 만났을 때, 이 공간은 상담실보다 더 깊은 울림을 만들어냈다. 내 이력 어디에도 ‘교도소 심리치료’라는 말은 없었다. 학문에서도, 실무에서도 이곳을 배운 적은 없었다.
--- p.25 나는 이 벽을 ‘넘어야 하는 대상’으로 보지 않는다. 그 벽은 그들이 살아남기 위해 쌓은 것이고, 그 벽을 허무는 일은 나의 기술이나 조언보다 그들의 용기가 더 많이 필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 p.32 나는 그 벽 앞에서 서두르지 않고 기다리는 법을 배웠다. 벽을 깨뜨려야 관계가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그 벽이 스스로 낮아질 때까지 곁에 있어주는 일이 오히려 진짜 치유라는 것을. 담장 너머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해 수용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법적인 절차나 제도보다 먼저 자기 마음을 다시 들여다보는 경험이다. 회복은 거창한 단어가 아니라 조용한 태도와 따뜻한 시선에서 시작된다. 왜냐하면 마음의 벽은 그들만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 p.33 자기 인생을 처음으로 돌아보는 일. 그 시간은 때로 두렵고, 서글퍼서 끝내 울음을 터트리기도 한다. 하지만 그 과정은 반드시 지나야 할 하나의 산이다. 어두운 터널을 피할 수는 없지만, 그 끝에는 아주 작은 빛이라도 기다리고 있음을 이들은 점차 깨닫기 시작한다. 좋았던 순간을 다시 떠올리고, 막연하지만 미래의 자신을 그려보는 일. 그 모든 과정을 이들은 진심으로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조금씩 달라져간다. --- p.43~44 나는 이곳에서 상담자가 반드시 말을 해야 한다는 통념이 항상 성립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여러 번 확인했다. 이론적으로는 ‘해석·질문·반영’이 치료적 개입의 핵심이지만, 교정 환경에서는 과도한 개입이 관계 형성을 방해하기도 한다. 어떤 날은 적절한 개입이 떠오르지 않았고, 어떤 날은 질문이 상황과 맞지 않아 보였다. 그런 날에는 기술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기술을 ‘멈추는’ 것이 더 적절한 선택이었다. --- p.52 이곳에서 나는 상담의 본질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상담은 기술 이전에 태도이며, 해결 이전에 관계이다. ‘존재해주는 일’은 무엇을 말했는가보다 어떤 상태로 그 자리에 있었는가의 문제이다. 특히 정서적 방어가 강한 사람일수록 기술적 개입보다 ‘정서적 안정감’과 ‘예측 가능한 태도’가 우선되어야 한다. 말이 떠오르지 않는 날에도, 아무것도 하지 못한 날에도, 나는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날들조차 누군가에게는 기억되는 시간이었다. --- p.54 초기 만남에서 내가 배운 건 그 사실이었다. 이곳은 ‘통제된 공간’이기 전에 사람이 살아가는 공간이고, 내가 마주하는 사람들은 줄어든 자유 안에서도 자신만의 방식으로 관계를 만들고 있었다. 나는 그 흐름을 ‘해석’하려 하기보다 그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법을 조금씩 배워갔다. --- p.57 하지만 심리치료는 거창한 기술에서 시작되지 않았다. 오히려 ‘이름을 불러주는 일’ 같은 단순한 행위에서 시작됐다. 이름을 기억한다는 건 마음을 기억한다는 것이고, “나는 당신을 한 사람으로 보고 있습니다.”라는 조용한 신호가 된다...(중략) 번호를 부르면 움직임만 생기지만, 이름을 부르면 마음이 반응한다. 물론 그 반응은 크지 않다. 눈을 피하던 사람이 잠깐 시선을 올리는 정도, 굳이 하지 않아도 될 고개 숙임, 수업 끝나고 가기 전 감깐 멈칫하는 뒷모습 같은 것들. 하지만 그런 작은 변화들이 이곳에서는 가장 분명한 신호였다. 이름은 이곳에서 유일하게 남아 있는 ‘개인의 온도’였다. --- p.67~68 이곳의 무표정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보호를 위해서 다른 하나는 잊어서다. 감정을 감추기 위해 무표정을 유지하는 사람들은 약점이 드러나는 순간 어떤 일이 벌어질지 너무 잘 안다. 그래서 그들은 감정을 가장 먼저 감추는 법을 배웠다. 반대로, 너무 오랜 시간 감정을 사용하지 않아 표정을 잊어버린 사람도 있다. 슬픔을 표현할 기회조차 없었고, 기쁨을 표현해도 받아줄 사람이 없었던 시간들. 그런 얼굴에는 깊은 피로가 남아 있다. 그 피로는 침묵 속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다. --- p.74~75 처음 그의 침묵을 나는 ‘무관심’으로 읽었다. 하지만 몇 번의 만남이 지나자 그것이 거절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 그는 감정이 없어서 조용한 게 아니었다. 감정이 너무 많아서, 말하다 보면 그 감정이 한꺼번에 쏟아질까 두려워 스스로를 꽉 붙잡고 있는 사람이었다. 어떤 사람은 감정이 적어서 말이 없고, 또 어떤 사람은 감정이 너무 많아 말을 하지 못한다. 그는 후자였다. 감정이 큰 사람들은 말 대신 몸으로 숨는다. 손끝에 힘이 잔뜩 들어가고, 어깨는 움츠러들며, 눈은 바닥으로 고정된다. 그는 나를 밀어내려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무너질까 봐 나와 거리를 만들고 있었다. --- p.82 그리고 그 작은 틈은 결국 ‘나는 어떤 사람인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이 교육의 목표는 기술을 배우는 것도, 감정 조절 훈련을 하는 것도 아니다. 결국 자기 자신을 다시 보는 일이다. 그들이 자신에게 돌아가는 그 길 위에서 나는 잠시 머무는 사람일 뿐이다. 변화는 내가 만든 것이 아니라, 그들이 스스로 발견한 것이다. 나는 그 순간들을 놓치지 않고 바라보는 사람이다. --- p.105 변화는 언제나 요란하지 않게 온다. 처음에는 아무 말도 하지 않던 사람이, 고개를 들고 눈을 마주치고,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누군가의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이는 순간들. 그 조용한 움직임 하나하나가 바로 회복의 시작이다. 한때 스스로를 ‘버림받은 사람’이라 여겼던 그의 눈빛에는, 이제 아주 작지만 확실한 희망의 빛이 떠오르고 있었다. --- p.114 그 말은 그냥 감사 인사가 아니다. 그들에게 상담실은 마약이 개입하지 않은 ‘정상적인 자기 자신’을 확인할 수 있는 자리다. 나는 그 사실을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시간의 무게를 절대 가볍게 보지 않는다. 그들은 재범을 반복해왔고, 그걸 누구보다 부끄러워하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그 누구보다 바뀌고 싶어하는 사람들이기도 하다. --- p.129 “다시 시작하고 싶어요. 근데 그게 가능할까요?” 나는 그 질문이 치료가 닿을 수 잇는 가장 먼 지점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변화는 화려한 행동으로 시작되지 않는다. 오히려 “가능할까요?”라는 조심스러운 질문 속에서 더 큰 결심이 담겨 있다. 그 속에는 ‘가능했으면 좋겠다’, ‘나도 다시 살아보고 싶다’는 바람이 스며있다. 나는 단정적인 대답 대신, “가능하다고 믿는 게 시작이에요.”라고 말했다. 그는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수많은 언어보다 더 깊은 반응이었다. --- p.145~146 심리학적으로도 인간은 자신의 정체성 중 가장 부정적인 측면만을 강조할 때, 삶의 동기와 자존감이 급격히 악화된다는 연구들이 있다. 반면, 자신의 다양한 측면을 인정하고 과거의 행동을 현재의 책임과 분리해 볼 수 있는 사람일수록 자기 효능감(self-efficacy)이 높고 변화에 대한 내적 동기도 살아난다. 결국 ‘사람’으로 불리는 경험은 단순한 따뜻함 이상의 심리적 자원이다. 그 자원은 변화의 토양이 된다. --- p.153 상담은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관계의 문제라는 사실을, 그곳에서 다시 확인하게 됩니다. 무엇을 말하느냐보다 어떤 자세로 그 자리에 앉아 있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으며 설명하거나 해석하려 들기보다, 그 감정이 마무를 수 있도록 기다리는 일이 필요하다는 것도 배웁니다. --- p.158 교정위원은 교도소에 들어가 사람을 만나는 사람이고, 그 안에서 구조 안의 삶을 함께 견뎌보는 일을 합니다. 무섭지 않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보다 더 분명한 것은 그곳에도 여전히 사람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 p.165 치료자의 일은 그 행동을 정당화하는 것도, 비난으로 끝내는 것도 아닙니다. 그의 행동은 분명 잘못되었지만, 그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지 않기 위해 판단을 미루는 일입니다. 나는 그를 변호하기 위해 침묵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가 자신의 내면과 마주할 수 있도록, 내 판단을 잠심 내려놓는 것입니다. 이 선택은 생각보다 많은 에너지를 요구합니다. 잠시, 중립이라는 말이 가벼워 보이지만, 실제로는 가장 무거운 태도이기 때문입니다. --- p.179~180 존재를 본다는 것은 가능성을 믿는 일입니다. 과거가 어떠했는지, 감정이 얼마나 억눌려 있는지와 상관없이, 지금 이 자리에 있다는 사실 자체를 존중하는 태도입니다. --- p.194 치료는 기술로 완성되지 않는다. 관계로 완성된다. 조언보다 앞서는 것은 함께 있어주는 일이고, 정확한 해석보다 중요한 것은 “나도 그런 마음이 들어요.”라고 말해줄 수 있는 용기다. 교정의 출발점은 규율이 아니라, 다시 사람으로 불리는 경험이다. --- p.209 치료란 거창한 개입이 아니다. 그것은 회복의 가능성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태도다. 감정을 묻고. 이름을 기억하고, 대화를 이어가는 일. 그 작고 반복적인 행위들이 모여서, 비로소 한 사람이 다시 사회로 나갈 준비를 시작한다. --- p.214 우리는 종종 ‘무기수’라는 말로 사람을 고정시킨다. 변화하지 않을 존재, 더 이상 기대할 수 없는 사람, 교육이나 치료가 의미 없다고 여겨지는 대상, 그러나 내가 만난 그는 그 고정된 정의를 조용히 흔들고 있었다. 그는 내일을 약속받지 않았지만, 오늘을 선택하고 있었다. 사람은 공간으로 살아가지 않는다. 의미로 살아간다. 그 의미는 미래의 보장이 아니라, 오늘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생겨난다. 그는 ‘감사’라는 단어를 선택함으로써 오늘에 머물 수 있었고, 오늘을 견딜 힘을 다시 만들어가고 있었다. 웃음은 그 결과였다. 그것은 치료 기법이 만든 기적이라기보다 포기하지 않기로 선택한 한 사람이 스스로 만들어내 변화였다. --- p.217 교도소 안에서 심리치료를 한다는 것은 ‘철창 안의 감정’을 다시 꺼내 보는 일이다. 그것은 기술을 적용하는 일이 아니라, 존재를 다루는 일에 가깝다. 절망이라는 단어로 덮인 사람의 마음속에, 다시 하루를 살아가고 싶은 감정의 불씨를 건네는 일이다. 그 불씨는 작고 약해 보이지만, 꺼지지 않는 한 사람을 살아 있게 만든다. --- p.218 복귀는 단지 출소라는 사건으로 끝나는 일이 아니다. 새로운 삶의 리듬으로 걸어 들어가는 용기와 태도가 함께 따라야 한다. 그리고 그 용기를 사회가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회복은 이어지기도 하고 다시 끊기기도 한다. --- p.223 교도소는 그들만의 공간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복귀가 가능하려면, 먼저 수용자 스스로 자신의 삶을 다시 살아보겠다는 마음을 품어야 한다. 동시에 사회 역시 그 마음을 무조건 의심하기보다, 최소한 믿어볼 태도를 가질 필요가 있다. 회복은 어느 한쪽의 책임이 아니다. 누군가 문을 열고 나가야 한다면, 누군가는 그 문 앞에서 기다릴 준비를 해야 한다. 서로의 준비가 맞닿는 지점, 그곳에서 비로소 복귀는 시작된다. --- p.223~224 출소 후의 두려움은 약함의 증거가 아니다. 그것은 현실을 직면하고 있다는 신호다. 아무렇지 않게 밖으로 나가는 사람이 오히려 드물다. 두려움을 느낀다는 것은, 다시 살아보려는 의지가 남아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문제는 그 두려움을 혼자 견뎌야 하느냐, 아니면 함께 나눌 수 있느냐다. --- p.231 그 순간 나는 처음으로 깨달았다. 치유는 누군가를 바꾸는 일이 아니라, 사람이 스스로를 다시 바라볼 수 있게 되는 순간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방향을 대신 정해주는 일이 아니라, 그 사람이 자기 삶을 마주할 수 있는 자리를 지켜주는 일이라는 것을. --- p.239 교도소 안에는 수많은 문이 있다. 수용동 출입문, 상담실의 문, 허가 없이는 넘을 수 없는 통제된 문들. 그 문들은 분명하고 단단하다. 규칙은 명확하고, 선은 쉽게 넘을 수 없다. 그러나 내가 이곳에서 가장 오래 마주한 문은 따로 있다. 바로 사람의 마음에 닫혀 있는 문이다. 그 문은 억지로 열 수 없고, 재촉한다고 움직이지도 않는다. 다만 시간이 필요하고, 기다림이 필요하다. 침묵 뒤에 조금 달라진 눈빛, 오래 망설인 끝에 꺼내는 한 문자, “다시는 안 오고 싶습니다”라는 서툰 고백. 그 순간들 앞에서 나는 다시 믿게 된다. 닫힌 문은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 p.24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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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나는 법무부 교정위원입니다』는 봄볕이 만물을 고요히 감싸듯, 가만히 스며들어 오래 머무는 따뜻한 책이다. ‘교정 현장’이라는 배경이 주는 무게감 때문에 다소 무겁게 느껴질 수 있지만, 책장을 덮는 순간 독자는 오히려 그 무게를 내려놓게 된다. 처음 품었던 우려가 얼마나 성급한 판단이었는지 깨닫게 만드는, 조용하지만 깊은 울림의 기록이다.
세 사람을 비추는 거울 이 책은 여느 좋은 책처럼 ‘거울’의 역할을 한다. 그러나 이 거울은 단순히 ‘나 자신’만을 비추지 않는다. 교정 현장의 ‘수용자’, 그리고 그를 통해 마주하게 되는 이름 모를 ‘타인’까지 함께 비춘다. 개인주의가 심화된 시대라 할지라도, 인간은 관계 속에서 성장한다. 저자 임만옥은 교정위원으로서 수용자들과 교육을 통해 만나며, 그 과정에서 형성되는 다양한 관계의 실제를 담담하면서도 깊이 있게 풀어낸다. 독자는 이 책을 통해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더 나은 관계를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실마리를 얻게 된다. ‘사람’이라는 이름의 무게 빠르게 발전하는 기술과 인공지능의 시대 속에서도, ‘사람’의 가치는 결코 대체될 수 없다. 이 책은 그 당연하고도 중요한 사실을 교정 현장의 이야기로 설득력 있게 전한다. 저자는 ‘사람으로 불리는 경험’, ‘스스로를 사람으로 인정하는 일’이야말로 인간다운 삶의 출발점임을 강조한다. 이는 변화의 출발선이자, 삶을 다시 세워가는 가장 중요한 기초다. 『나는 법무부 교정위원입니다』는 한 사람의 삶이 지닌 무게와 존엄을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깊이 있는 성찰의 기록이다. ‘복원’이라는 희망의 언어 교정교육은 수용자의 변화를 돕는 과정이며, 교정위원은 그 길을 함께 걷는 안내자다. 그리고 그 궁극적인 목표는 ‘처벌’이 아닌 ‘복원’에 있다. 이 책에는 한 무기수가 저자와의 만남 이후 감사의 미소를 되찾는 장면이 등장한다. 그 미소는 단순한 감정의 표현을 넘어, 한 인간이 다시 ‘사람’으로 회복되는 순간을 상징한다. 저자는 바로 그 변화를 가능하게 하는 작은 계기들이 자신의 역할임을 담담히 고백한다. 여전히 무겁게 닫혀 있는 교정 현장의 문 앞에서, 그럼에도 멈추지 않는 발걸음을 가능하게 하는 이유 역시 이 책을 통해 독자와 나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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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닫힌 담장 안에서 피어난 ‘사람’이라는 희망의 기록]
저자를 처음 만난 곳은 의정부교도소였습니다. 그는 집중인성교육 강사였고 저는 교도소장이었습니다. 당시 수용자들의 소감문 발표를 들으며 이 교육이 그들에게 깊은 울림을 준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때만 해도 그저 오랜만에 접하는 인문학 교육이 주는 신선함 때문이라 짐작했습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며 그들이 왜 그토록 감동했었는지 비로소 그 본질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마음을 닫은 수용자들을 대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자신의 상황은 물론 이름조차 밝히기 꺼리는 이들 사이에는 늘 무거운 엄숙함이 흐릅니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묵묵히 기다려주고, 침묵하는 이의 내면을 관찰하며 진심을 다하는 것은 결코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효율을 따졌다면 호응이 좋은 이들 위주로 강의를 이끌어갈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자는 달랐습니다. 수용자들을 단순한 피교육생이 아닌, 존엄을 가진 동료이자 인생의 동행자로 대했습니다. 무관심이라는 벽 앞에서도 상처받지 않고 사랑으로 그들을 지켜보았으며, 그 섬세한 시선 끝에 포착된 작은 변화들이 결국 마음의 문을 열고 웃음과 눈물을 이끌어냈습니다. 이 책은 특수 상담 분야의 상담심리사들에게는 귀중한 텍스트가, 교정위원과 교도관들에게는 수용자를 바라보는 새로운 이정표가 되어줄 것입니다. 특히 "감정을 언어로 표현하는 법을 모르면 폭력으로 표출하게 된다"는 저자의 통찰은 현장에서 수용자를 이해하고 치유하는 데 소중한 단초가 될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헌신하며, 닫힌 세계와 세상을 이어주는 저자의 발걸음에 경의를 표합니다. 한 사람의 변화를 위해 쏟은 그 정성 어린 시간들이 이 책을 통해 더 많은 이의 가슴에 희망의 불씨로 전해지길 기원합니다. - 박진열 (법무부 일반직 고위공무원, 前 의정부교도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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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책임으로서의 교정, 그 본질을 묻다]
교정협의회 회장으로서 수많은 교정 현장을 지켜보며 느낀 것은, 교정의 진정한 의미가 우리 사회에 여전히 충분히 전달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처벌의 결과는 쉽게 이야기하지만, 그 너머에서 이루어지는 치열한 과정과 회복을 위한 노력에 대해서는 깊이 들여다보지 않습니다. 『나는 법무부 교정위원입니다』는 바로 그 지점을 정면으로 다루는 소중한 기록입니다. 이 책은 교정이라는 공간을 미화하거나 단순하게 규정하지 않습니다. 대신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다양한 역할과 책임, 그리고 담장 밖 출소 이후까지 이어지는 현실의 무게를 차분히 보여줍니다. 교정 시설이 형이 집행되는 장소임과 동시에, 다시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절실한 준비의 시간임을 분명히 일깨워줍니다. 특히 교정의 본질을 ‘복원’의 관점에서 풀어낸 점이 매우 인상 깊습니다. 한 사람의 삶이 다시 사회 안에 자리 잡기 위해서는 제도적 뒷받침뿐 아니라 이웃의 이해와 연결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결국 재범 방지는 수치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어떤 사회를 지향하는가의 문제입니다. 이 책은 그 묵직한 질문을 독자에게 조용하지만 분명하게 던집니다. 교정은 특정한 사람들만의 영역이 아닙니다. 우리 사회 전체가 함께 책임지고 고민해야 할 과제입니다. 이 책이 교정의 의미를 보다 넓고 따뜻한 시선에서 바라보는 소중한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교정의 올바른 방향과 사회적 책임을 고민하는 모든 분께 이 책을 기쁜 마음으로 추천합니다. - 봉효승 (여주교도소 교정협의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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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단정 짓지 않는 기다림, 그 현장의 기록]
교정 현장에서 사람을 만나는 일은 늘 조심스럽고 무겁습니다. 우리는 수용자들의 과거를 알고 있고, 그들이 겪어온 상처와 왜곡된 선택의 과정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봅니다. 그렇기에 누군가를 쉽게 판단하지 않게 되지만, 동시에 변화를 쉽게 기대하지도 않게 됩니다. '변화'라는 단어가 이곳에서는 그만큼 신중하고 어렵게 사용되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여러 프로그램을 통해 오랜 시간 이 현장을 드나들었습니다. 처음에는 외부 전문가로 만났지만, 어느덧 그는 현장의 무게를 함께 짊어진 ‘든든한 동료’가 되어 있었습니다. 수용자를 대하는 태도,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의 의연한 반응, 그리고 한 사람의 이야기를 끝까지 경청하는 자세를 곁에서 지켜보며 확신한 것이 있습니다. 이분은 결코 결과를 서두르지 않는 사람이라는 사실입니다. 교정 현장에서의 변화는 눈에 잘 보이지 않습니다. 투박한 진심 한마디가 나오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고, 아주 작은 태도의 변화가 쌓여야 비로소 삶의 방향이 조금씩 달라집니다. 저자는 그 인고의 과정을 깊이 이해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조용히 기다릴 줄 알았고, 한 사람을 단순한 '관리 대상'이 아니라 ‘지금 흔들리고 있는 소중한 인격체’로 대했습니다. 그 진심이 닿아서일까요. 교육이 끝난 뒤에도 저자의 이름을 나직이 읊조리며 변화를 다짐하는 수용자들을 보았습니다. 이 책에는 교정이라는 특수한 공간이 등장하지만, 저는 결국 ‘사람’에 관한 이야기라고 느꼈습니다. 현장을 지키는 교도관들과 실무자들, 그리고 그 안에서 함께 고민해온 저자의 모습은 우리가 왜 이 고단한 일을 계속해야 하는지 그 이유를 되묻게 합니다. 현장에서 함께 발을 맞춘 사람으로서, 저자가 이 공간과 사람을 결코 가볍게 다루지 않았음을 분명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사람을 쉽게 단정하지 않고 끝까지 '사람'으로 보려 했던 그 따뜻한 시선이 이 책을 읽는 모든 이의 가슴에도 깊이 머물기를 바랍니다. - 서동진 (여주교도소 심리치료팀 계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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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의 틈을 금빛으로 채우는 ‘킨츠기’의 미학]
교정은 깨진 도자기를 금이나 은으로 이어붙여 예술작품으로 승화시키는 킨츠기와 같습니다. 사라져야할 서사가 복원과 회복의 서사가 되어 새로워지는 과정은 마치 불을 통과하는 의례와 같지요. 말하지 않고 느끼지 못하는 듯한 사람들의 이야기라도 처벌의 차가운 공간에서 뜨끈한 사랑의 입김과 시선을 통과하며 복원의 역사가 됩니다. 부서진 삶을 더 단단하고 아름답게 되살리도록 믿음이라는 불로 봉합하기에, 교정은 버림받거나 스스로를 버린 이들의 새로운 선택과 이들을 위해 기도하고 애쓰는 이들의 오랜 기다림과 기원으로 만들어가는 창조의 서사라 할만 합니다. 이 책은 교정현장을 넘어, 상처가득한 이들과 함께 회복으로 부르는 노래이자, 수감된 듯 살아가며 손상된 마음으로 회복을 기다리는 이들에게 치유적 묘약이 되는 심리학적이면서도 시적인 킨츠기의 기록입니다. - 이호선 (상담전문가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