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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미스터 타이거
나혜림
창비 2026.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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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쇼와 10년, 1935
계미(癸未), 1883
갑신(甲申), 1884
메이지 43년, 1910

작가의 말

저자 소개1

장편소설 《클로버》로 제15회 창비청소년문학상을 수상했다. 단편소설 〈달의 뒷면에서〉로 소설집 《항체의 딜레마》에 참여하였으며 단편소설 〈드림센스〉가 앤솔러지 《이중생활자》에 수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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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6년 05월 08일
쪽수, 무게, 크기
280쪽 | 354g | 140*210*14mm
ISBN13
9788936457488

책 속으로

젊음은 좋은 것이었다. 아름다움은 기꺼운 것이었다. 젊고 아름답다는 건 좋고 기껍다 못해 슬퍼지리만큼 먹먹한 것이었다. 아, 그것을 헤프게 흘리지 않고 경대 서랍에 아꼈다가 조금씩 꺼내 쓸 수 있다면.
---p.23

이 순간의 공기를, 소리를, 웃음을, 기꺼움을 결코 사진에 담을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노월은 그저 눈과 귀와 코와 입으로 순간을 충실히 즐길 따름이었다. 입에 문 곶감의 단맛 끝에 떫은맛이 배어났다. 늦가을 햇볕에 바짝 말린 조선의 맛. 그 맛 또한 오래 혀에 남았다. 달고도 떫었다. 희한했다.
--- p.76

“Happy New Year, Mr. Tiger.”

미리견 말로 새해 복을 빌어 주고 싶었다. 어설픈 발음, 우스운 말투라 해도 그 세계의 인사를 건네고 싶었다. 계손향이 건네는 새해 인사에 노월은 잠시 아득해진다. 어설픈 발음, 우스운 말투로 감싼 속엣말. 고작 한마디 인사에 만 리 너머의 고향이 한순간 선연해졌다가 사라진다. 그리하여 노월은 곧 다정스레 웃고 만다. 어린 붓꽃은 호랑이를 웃게 하지. 호기심으로 반짝거리는 계손향의 눈을 바라보며, 노월도 인사를 건넨다.

“Happy New Year, my sweet bright lady.”

두 사람의 머리 위로 설탕 같은 눈이 부스러졌다.
--- p.98

“혹 그 땅에서는, 문명하였다는 그 세상에서는, 여자도 무엇이 될 수 있나요? 여자도 발버둥 치고 싸울 수 있나요? 내키는 대로 시절을 욕심낼 수 있나요?”

난생처음으로 계손향은 저를 가두는 시절에 갑갑함을 느꼈다. 다가올 시절을 자유로이 욕심내 보고 싶어졌다.
--- p.125

어째서 이다지도 겨울인가. 어째서 입춘이 지났는데 봄의 향기는 찾아볼 수 없고 서릿발만 가득한가. 어째서 누군가를 그저 떠나보내야만 하는가. 결코 자신의 것이 아니었던 봄, 궁하여 팔아 버린 봄이 아쉬워졌다. 서러운 줄도 몰랐던 모든 것이 왈칵 서러워서, 계손향은 소낙비처럼 울었다. 엉엉 소리를 내며 어린애처럼 울었다. 삭풍이 불었다. 낙엽송이 바스락거렸다. 겨울새가 날아올랐다. 가지에 매달려 있던 눈이 툭 떨어졌다. 계손향이 울었다.
--- pp.145-146

“그 강의 가을 물결을 몸소 보면 어떻겠습니까?”

“네?”

“추파 말입니다.”

“…….”

“나는 지금 그대에게 추파를 던지는 거예요.”
--- p.153

“새로운 사람이 되어, 세계 끝에 무엇이 있는지 두 눈으로 직접 보는 건 어때요?”

새로운 이름, 새로운 말, 새로운 세계, 새로운 사람. 사람이 된다는 것. 이 얼마나 달콤한 추파인지.
--- pp.205-206

“내 눈은 푸르고 그대의 눈은 검지만 우리는 같은 세계를 봅니다. 그대를 만나기 전까진 나도 몰랐어요. 그러니 믿어요. 그런 믿음도 없다면 세상이 너무 어둡지 않겠습니까?”

“…….”

“맞서요. 끝까지 싸워요.”

계손향이 뭔가 말하려 입을 열었다. 하지만 그 순간 세 번째 별똥별이 떨어졌고 빛에 취한 계손향은 할 말을 잊었다.
--- p.206

월이의 목소리가 닿은 귓바퀴가 아직 간질간질한데, 월이의 손길이 닿은 손등이 아직 훈훈한데, 세상은 불 꺼진 듯 온통 적막하다. 사람이 난 자리가 이렇게 크다. 고작 한 사람 자리가 너무 크다. 어떤 사람은 누군가에게 온 세상이다.

--- p.229

줄거리

고운 얼굴, 아리따운 목소리의 주인공 기생 ‘계손향’은 어느 날 참석한 연회에서 ‘노월’이라는 미국인을 만나게 된다. 미색의 머리칼에 시퍼렇게 매서운 눈을 가져 조선인들이 ‘푸른 눈의 호랑이’라 부르며 두려워하는 노월이지만 계손향은 그 파란 눈의 사내에게 서슴없이 다가가고, 조선 문화에 익숙하지 않아 어려움을 느끼던 노월은 계손향의 활기와 따뜻한 정에 이끌린다. 사진기를 가진 노월과 그런 그에게 조선의 더 많은 풍경을 보여 주고 싶은 계손향은 함께 한양을 누비며 다채로운 사건을 겪게 되고, 서로의 다른 점에도 불구하고 함께하는 미래를 꿈꾸는데……. 미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노월과 기생이라는 신분에 갇힌 계손향은 과연 같은 미래를 그릴 수 있을까?

출판사 리뷰

인종과 언어의 벽을 허문 ‘푸른 눈의 호랑이’와의 로맨스

1883년 고종의 보빙사절단이 가져온 서구 문명의 충격부터 1935년 하얼빈의 차가운 눈발 속에 울려 퍼지는 항일의 숨결까지, 『안녕, 미스터 타이거』는 한국 근대사의 가장 뜨거운 궤적을 따라 피어난 사랑과 성장을 담은 소설이다. 이야기는 1883년 계미년, 취운정 연회에서 조선의 열여덟 가기 계손향이 미리견(미국)에서 온 보빙사절단의 일원 노월(Lowell)을 만나며 시작된다. 당시 조선 사람들은 그를 ‘푸른 눈의 호랑이’라 부르며 두려워하고 경계했지만, 계손향은 그의 맑은 눈동자에서 깊은 호기심과 다정함을 발견한다.

“Happy New Year, Mr. Tiger.”
미리견 말로 새해 복을 빌어 주고 싶었다. 어설픈 발음, 우스운 말투라 해도 그 세계의 인사를 건네고 싶었다. 계손향이 건네는 새해 인사에 노월은 잠시 아득해진다. 어설픈 발음, 우스운 말투로 감싼 속엣말. 고작 한마디 인사에 만 리 너머의 고향이 한순간 선연해졌다가 사라진다. 그리하여 노월은 곧 다정스레 웃고 만다. (98면)

비록 언어는 원활하게 통하지 않지만, 서로의 서툰 언어를 더듬어 가며 상대방의 마음자리를 헤아려 보는 두 주인공의 모습에서 사랑의 설렘이 꾸밈없이 드러난다. 또한 인종도 성별도 계급도 다르지만, 자기가 태어난 곳을 떠나 유랑하는 서로의 영혼에 깊이 공감하며 이해해 가는 이들의 모습은 각종 편견이 지배하던 당대에 진정한 ‘마주봄’이 무엇인지 보여 준다. 저자는 이들의 사랑을 단순한 연애에 머물게 하지 않고, 상대의 고통을 위로하고 서로의 삶을 응원하는 관계로 승화시키며 시대의 격랑 속에서 이뤄진 두 영혼의 조우를 아름답게 그려 냈다.

동서양 문명이 뒤섞이는 ‘개화기’의 역동적인 풍경과 압도적 고증

이 소설은 1883년 조선의 개화기부터 1935년 만주 하얼빈에 이르기까지, 50여 년의 세월을 주인공 계손향의 삶을 통해 보여 준다. 실제 역사에 대한 철저한 조사를 바탕으로 직조된 서사는 동서양 문명이 격렬하게 충돌하고 융합하던 시대상을 생생하게 그려 낸다. 1883년의 보빙사 파견이라는 사건 위에서 계손향과 노월의 인연이 시작된 뒤, 그들 주위로 배치된 홍영식, 윤치호 등 실존 인물들의 행보를 통해 개화기 조선의 역동과 혼란이 생생하게 펼쳐진다. 1884년 갑신정변, 1894년 갑오개혁 등 계손향은 정변의 소용돌이 속에서 소중한 이들을 잃고 신분제가 무너지는 세상을 목격한다. 1899년에는 조선 땅에 처음으로 경인선 철도가 놓이며 문명화가 가속화되는데, ‘문명의 손톱’인 기차가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기회지만 누군가에게는 터전을 할퀴는 고통이 되었음을 계손향의 시선을 통해 보여 준다.
작품을 읽는 또 다른 재미는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간 듯한 생생한 역사적 배경 묘사다. 갓과 도포의 물결 사이로 전차와 가스등이 들어서고, ‘커피’라는 검은 물이 유행하기 시작한 개화기 서울의 풍경부터 러시아, 일본, 독일 등 열강 세력이 각축을 벌이던 하얼빈의 ‘다오와이’ 거리까지 한 폭의 세밀화처럼 재현된다.

자신의 이름을 스스로 명명하는 ‘주체적인 여성’의 탄생

조선의 가기로서 타인의 흥을 돋우는 존재로 살아야 했던 계손향에게, 노월과의 만남은 단순히 ‘이국적인 사랑’에 그치지 않는다. 노월이 건넨 다정한 시선과 미지의 세계에 대한 이야기는 계손향으로 하여금 ‘나 자신’으로서의 삶을 꿈꾸게 한다. 더 나아가 사랑이 열어 준 새로운 시야를 통해 조선을 넘어 연길, 하얼빈, 그리고 유럽까지 자신의 영토를 넓혀 간다. 계손향이 사랑을 통해 자신의 욕망을 긍정하고 삶의 주권을 선언한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주체적인 여성의 서사로서 그 의미를 확보한다.

“혹 그 땅에서는, 문명하였다는 그 세상에서는, 여자도 무엇이 될 수 있나요? 여자도 발버둥 치고 싸울 수 있나요? 내키는 대로 시절을 욕심낼 수 있나요?”
난생처음으로 계손향은 저를 가두는 시절에 갑갑함을 느꼈다. 다가올 시절을 자유로이 욕심내 보고 싶어졌다.(125면)

노월을 통해 얻은 삶에 대한 ‘욕심’은 훗날 그녀를 카메라를 든 사진반원 ‘소냐’로 성장시키고, 젊은 시절 느꼈던 생에 대한 뜨거운 갈망은 노년에 이르러 격동의 역사를 직접 목격하고 기록하겠다는 단단한 의지로 탈바꿈한다. 이는 남성에 의해 정의되던 여성의 일생을 스스로 명명하고 기록하는 ‘기록자’의 서사로 변모시키는 것이다. 억압적인 시대 환경 속에서도 “내가 나를 버리지 않으면 아무도 나를 버리지 못한다.”(35면)는 신념을 실천하며, 마지막까지 편도 기차표를 끊어 떠나는 그녀의 모습은 오늘날 자신의 길을 고민하는 모든 독자들에게 강렬한 용기를 선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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