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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꾹질
이상한 나라의 하루: 당근이세요? 오월의 생일 케이크 개를 보내다 작가의 말 수록 작품 발표 지면 |
表明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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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6이라는 말만 나오면 엄마 아빠는 마치 숫자 놀이라도 하듯 온갖 수들을 늘어놓기 시작한다. 4·19, 5·16, 5·18, 10·26, 6·29, 5공, 6공까지 버스 번호 같은 헛갈리는 숫자들이 끝도 없이 쏟아져 나온다. 그런 얘기를 듣고 있으면 나는 머리가 어질어질할 지경이다. 엄마 아빠가 예전에 살았던 세상은 어느 수학자의 말대로 세상이 온통 수로 이루어져 있었던 모양이다.
--- p.16 「딸꾹질」 중에서 아빠는 ‘이변’에 대해서 이전과는 다르게 얘기했다. “이런 이변이 있어야 세상은 살맛이 나는 거야.” 엄마도 끼어들었다. “맞아, 이렇게 한 번씩 숨통을 틔어야지. 세네갈이 프랑스를 이기고, 한국이 이탈리아를 이기고…….” 아빠도 신나게 말을 받았다. “흑인이 백인을 이기고, 작은 놈이 큰 놈을 이기고…… 공 하나가 그 모든 걸 가능케 해 주니 얼마나 대단해!” --- p.29 「딸꾹질」 중에서 “3개월을 고민했어, 졸업장 놓고 저울질하며…….” 저울질에서 졸업장과 겨룬 것이 뭐였는지는 말하지 않았다. 짐작이 가지 않은 건 아니었다. 아니 그것이 뭔지 너무도 분명했기 때문에 따져 물을 수도 없었다. 그 고민의 3개월이 내 눈에 선히 그려졌다. 어둠 속에서 탯줄로 연결된 그 무엇이 엄마의 뱃속에서 자라고 있었거나, 요람에서 사지를 버둥대며 앵앵거리고 있었을 터였다. --- p.58 「이상한 나라의 하루: 당근이세요?」 중에서 서울에서 살 때는 역 주변에서 더러 이런 홈리스를 보았지만 이 동네에서는 처음이다. 길 잃은 미운 오리 새끼를 우연히 만나면 이런 느낌일까. 안쓰럽고 도와주고 싶지만 부리에 쪼일 것 같아 선뜻 손을 내밀기도 어려운……. --- p.67 「이상한 나라의 하루: 당근이세요?」 중에서 “그래. 엄마를 뺏긴다 생각하지 말고, 엄마로부터 해방된다고 생각해. 그 아저씨한테 넘겨 버려. 엄마에 대한 너의 부담을…….” 이런 말 할 때의 나영이는 진짜 어른 같다. 가족 문제라면 자신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는 태도다. 그건 보라와 나도 인정한다. 보라네도 우리 집도 다 문제가 있지만 나영이 경우에 비할 바는 아니다. --- p.81 「이상한 나라의 하루: 당근이세요?」 중에서 “오, 민서구나.” 민서는 대문을 열어 준 큰아빠 품에 쓰러지듯 안겼다. 어릴 적친구한테 얻어맞고 왔을 때처럼……. 큰아빠는 어리둥절해하면서도 민서를 안은 채 예전처럼 묵묵히 머리만 쓰다듬었다. --- p.99 「오월의 생일 케이크」 중에서 그해 겨울 내내 아빠는 커다란 바위 앞에서 1인 시위 하는 사람 같았다. 큰아빠가 끝까지 고집을 부리자 결국 아빠가 큰아빠 멱살을 잡는 일까지 갔다. 그때 처음으로 큰아빠는 울부짖듯 외쳤다. ‘그걸 어떻게 보상해? 국가가 어떻게 보상하냐고! 돈으로? 웃기지 말라고 그래!’ --- p.105 「오월의 생일 케이크」 중에서 민서는 왔던 길을 혼자서 갈 자신이 없었다. 아니, 그보다는 큰아빠와 같이 가 보고 싶었다. 예전처럼 큰아빠와 다시 그 길을 걸어가면 어떨까? 그 상황에 다시 한번 처한다면, 무엇보다 큰아빠가 곁에 있으면, 뭔가 달라질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이전과는 분명 다를 것 같았다. 아니 달라야 할 것 같았다. --- p.109 「오월의 생일 케이크」 중에서 퇴원과 함께 진서는 태권도장은 물론 친구들과의 관계도 다 끊었다. 그 뒤로는 학교 끝나면 곧장 집으로 와 방에 틀어박힌 채 게임만 했다. 사이버 세상이야말로 정의와 평화의 세계였고, 게임 왕국에서는 진서가 최고의 영웅이었다. “둘이 빼닮았어. 진주는 애견계의 히키코모리네…….” 삼촌은 게임에 빠져 있는 진서와 외딴섬처럼 베란다에 격리돼 있는 진주를 그렇게 연결시켰다. --- p.127 「개를 보내다」 중에서 녀석은 까만 눈동자를 또록또록 굴리며 진서와 먹이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낯선 일이라 어리둥절한 모양이었다. 접시 쪽으로 다가가서도 녀석은 냄새만 맡을 뿐 선뜻 입을 대지 않았다. 몇 번이나 킁킁대다 결국 생선 살 유혹에 넘어갔다. 꼬리까지 흔들어대며 진주는 새로운 먹이를 먹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니 진서는 가슴이 뿌듯해 왔다. --- p.130-131 「개를 보내다」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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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잃은 미운 오리 새끼를 우연히 만나면 이런 느낌일까.
안쓰럽고 도와주고 싶지만 부리에 쪼일 것 같아 선뜻 손을 내밀기도 어려운…….” 표제작인 중편소설 「이상한 나라의 하루: 당근이세요?」는 경기도 어느 신도시에 사는 중학생 ‘나라’의 소소하고도 수상한 하루를 그렸다. 대기표를 받고도 한참을 기다려야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인기인 ‘추 선생 공부방’은 엄마의 일터이자 나라의 집이다. ‘인 서울’을 욕망하는 공부방 학부모들과 달리 모녀는 ‘탈 서울’을 감행해 2년 전 이곳에 정착했다. 공부방 학생들의 성적에만 관심을 둘 뿐, 나라의 성적표는 “전단지 보듯”(42면) 하는 데다 “잔소리형 관심”(37면)을 줄 새도 없이 바쁜 엄마이지만 나라는 알고 있다. 새로운 도시에 정착하는 일이 홀로 생계를 책임져 온 엄마에게 “솜뭉치 같은 구름 위에 발을 올려놓는”(53면) 일과 다름없었다는 것을. 소설은 아파트 단지에서 광역버스 정거장으로, 작은 신도시에서 서울 한복판으로 공간을 이동하며 각양각색의 인물들을 응시한다. 이주 배경을 지닌 이웃들이 자연스레 함께하는 도시의 풍경을 포착하고, “가족 구성에 구멍이 숭숭 나 있다는 공통점”(62면)을 지닌 나라와 친구들의 사연을 전한다. 더 이상 다양한 삶의 모습이 낯설지 않은, 우리의 오늘을 생생하게 보여 준다. 지극히 평범한 청소년의 일상을 통해 생생하게 그려 낸 한국 사회의 면면 그때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어른들은 아직도 2002년 이야기만 하면 흥분하는 걸까. 소설집을 여는 「딸꾹질」은 월드컵이 한창인 2002년 대한민국을 ‘지완’의 시선으로 관찰한다. ‘386 세대’인 엄마 아빠는 분명 몇 주 전까지만 해도 “정치 문화적으로 업그레이드가 안 될 것 같으니 스포츠로 승부하려는 모양이지”(13면)라며 비판적으로 굴었지만, 이제는 자정이 넘도록 같은 경기를 반복해서 보며 텔레비전 앞을 떠나지 못한다. 소설은 축구 경기장뿐 아니라 가족과 이웃의 일상에까지 찾아든 ‘월드컵의 이변’을 유쾌하고도 생생하게 보여 준다. 약자가 강자를 이기는 반전의 쾌감에 20세기 초입의 대한민국이 왜 열광했는지 알게 한다. 「오월의 생일 케이크」에서 ‘민서’는 큰아빠의 생일을 맞아 할머니 댁을 찾는다. 1980년 5월, 군인이었던 큰아빠는 광주에 투입되었다. “요샛말로 엄친아, 둘도 없는 모범생”(93면)이었던 큰아빠는 군에서 조기 제대한 이후 대학에 돌아가지 못했고, 그때의 트라우마는 여전히 그의 삶에 크게 남아 있다. 국가가 자행한 폭력이 가족에게 남긴 상처를 청소년의 시선에서 세심하게 들여다보며 우리의 아픈 현대사를 되짚는다. 「개를 보내다」는 돌봄의 책임을 배우고 성장하는 ‘진서’의 이야기를 담았다. 친구들과의 관계에서 상처받은 후, 게임의 세계에 몰두하게 된 진서는 생일 선물로 유기견 ‘진주’를 만나게 된다. 충분한 준비 없이 이루어진 입양 탓에 시작은 삐걱거렸지만, 진서는 마음의 문을 열고 진주를 돌본다. 하지만 사람 나이로 이미 노년에 접어든 진주는 점점 기력을 잃기 시작한다. 개와 함께하며, 또 ‘개를 보내고’ 난 뒤에 남는 마음을 애틋하면서도 담담하게 살핀다. 시대와 얽힌 채 살아갈 수밖에 없는 우리 모두를 향한 이야기 『당근이세요?』는 1980년과 2002년, 그리고 오늘에 이르기까지 한국 사회가 거쳐 간 시대의 빛과 그림자를 생생하게 담고 있다. 전 세계로 뻗어 나가는 한국 문화를 목격하며 자부심 넘치는 선진국이 된 오늘을 살아가는 청소년들이지만, 이 소설집이 전하는 감각들이 낯설지만은 않을 것이다. 우리에게는 여전히 지켜내야 할 민주주의가 있고, 사회적 참사에 함께 슬퍼하고 애도한 시간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표명희의 소설들은 우리 사회의 일은 곧 나의 가족과 이웃의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한다. 한편, 작가가 생생하게 그려 낸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내가 쓰지 않는 물건을 필요한 이웃에게 ‘나눔’ 하는 작은 선의 또한 우리 주변에 흔하다는 생각이 든다. 나와 가족, 이웃이 모여 사는 한국 사회가 어쩌면 그리 삭막하지만은 않다는 기대를 품게 하는 책으로, 다양한 세대의 가족 구성원이 함께 읽고 이야기를 나눌 만한 특별한 작품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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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집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만나는 평범한 청소년들이다. 도시에 살며 입시 부담에 짓눌리고, 사회문제에 딱히 관심이 있지도 않고, 정의나 인류애 따위에도 그다지 관심 없는 청소년들. 작가는 이 지극히 평범한 청소년들을 통해 한국 사회의 현실을 담담하게 그려 낸다. 이주 배경을 가진 학생이 20만 명이 된 한국 사회에서 친구 중 한두 명은 이주 배경을 가지고 있을 테고, 네 가정 중 한 가정 이상이 반려동물과 함께 살며, 한부모가족 또한 낯설지 않다. 우리 사회가 겪은 사회적 참사, 역사적 사건은 남의 일이 아니라 우리 가족의 일이거나 이웃의 일일 가능성이 크다.
작가가 세밀하게 그려 낸 한국 사회의 현재가 너무 생생해서일까, 소설 속 인물 하나하나가 아파트 엘리베이터, 편의점 혹은 학교 복도에서 만난 친구처럼 느껴진다. 그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내가 사는 현실을 돌아보게 되고, 공감하는 마음에 저절로 고개를 끄덕이고, 가슴이 뭉클해진다. - 김중미 (소설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