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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밤
도망 어떤 친구 엄마들 처음으로 어느 날의 일 작은 빛 현실 사이렌 새벽에 꾸는 꿈 핑계 두 사람 되감기 내 마음에 바람 한 줄기 나를 위한 소원 둘만의 장소 답신 작은 묘소 유리 조각 시간 로터리에서 타워의 고리 너의 손 요청 작가의 말 추천의 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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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작한 것과 달리 외래 진료실의 업무는 고되었다. 하루에 백여 명의 환자를 스치듯 만났기에 여러 번 본 환자의 얼굴과 이름도 익히기 어려웠다. 그럴 여력이 없었다. 그럼에도 교대 근무가 아닌 아침에 출근해 저녁에 퇴근하는 일상은 딴 생각할 틈을 주었고 나는 아주 먼 곳에서,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에서 삶을 새로이 시작해보고 싶었다. 나를 둘러싼 배경을 전부 바꾸어버리고 싶었다. 자유로워지고 싶었다.
--- p.8 태어나면서부터 실체를 알 수 없는, 무겁고 가라앉은 분위기에 놓여본 사람은 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어렴풋한 뉘앙스를 감각하게 된다는 것을. 찝찝하게 느껴진 단서들이 불현듯 각을 세우며 맞춰지는데, 나는 아홉 살 때 그러한 순간을 맞이했다. 악몽에서 깨어나 안방으로 가다가 엄마가 흐느끼는 소릴 들었다. 방문을 여는 대신 한쪽 귀를 대어보았다. 소리는 더 들리지 않았다. 뒤돌아 내 방으로 가려는데 유경이, 하고 엄마가 이름을 말했다. 그래, 유경이. 아빠가 답했다. 순간 깨달았다. 책상 밑 벽지의 그림과 문가의 키 표시는 유경의 것임을. 그렇다는 걸 내가 모르게 하려고 두 사람이 무진 애쓰고 있다는 것을. --- p.54 스물일곱. 스물여덟. 스물아홉. 서른에 다다랐을 즈음 감은 눈꺼풀 아래로 작은 빛들이 나타났다. 어둠으로 가득 찬 반구 천장에 작은 점 여러 개가 뚫려 있고 그곳을 통해 빛이 들어오는 것 같았다. 점처럼 작은 구멍은 시간이 지날수록 늘어났고 마침내 반구 형태는 사라졌다. 작은 빛들이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떤 것은 내게로 아주 가까이 다가왔다. 나는 숫자 세는 것을 잊었다. 집중하려는 노력 또한 잊어버렸다. 그저 작은 빛들을 받아들이려 했다. 그것들이 만드는 환함 속에 나를 위치시키려 했다. 작은 빛들이 무리를 이루어 한쪽으로 흘러가더니 나를 에워쌌다. 작고 가벼워진 내 몸이 붕 떠오르는 것 같았다. “아.” 내가 내뱉는 탄성이 다른 사람의 것인 듯 들렸다. --- p.83 옆에 놓인 것들을 못 본 체하며 내 몫의 음식을 꾸역꾸역 먹었다. 엄마야말로 내가 죽어야 나를 이해해줄 것 같았다. 이미 떠나고 없는 유경이 아니라 곁에 있는 나를, 내게 드리운 그림자를 보듬어줄 것 같았다. 엄마에게 영원한 아픈 손가락은 유경이었다. 엄마의 내면 깊숙한 곳엔 단 한 사람을 위한 장소가 있고, 견고하게 봉인된 그곳엔 유경이 아닌 어느 누구도 들어갈 수 없었다. --- p.92~93 델이 양팔로 내 허리를 감싸안았다. 팔과 손에 힘을 주고 나를 꼭 안았다. 나는 마음 놓고 흐느꼈다. 내 몸이 뜨겁고 단단해질 때까지 델의 품 안에서 울었다. 한참이 지나 팔을 풀고 벗어나려는데 내 손끝이 델의 왼쪽 팔뚝에 닿았다. 부풀어 오른 흉터가 만져졌다. 델의 손목을 붙들고 하나의 긴 선과 그것을 가르는 짧은 선들을 오래도록 내려다보았다. 델은 내 손을 뿌리치지 않고 가만히 팔을 맡긴 채 서 있었다. --- p.98~99 이미 경진은 자신이 어떤 세계의 일원이 되고 싶은지 파악했으며 그 세계에 속하기 위해 노력했다. 더 많은 소설을 읽었고 자신의 소설을 끄적거렸다. 그러느라 정신이 없는지 예전처럼 내 메시지에 바로 답하지 않았다. 오랜 시간이 흘러 나는 서로에게 몰두했다가 조금씩 빠져나온 뒤 자신의 일상에 복귀해 관계를 이어나가는 것이 사랑과 우정의 공통된 과정임을 알게 되었지만, 그즈음 나는 우리의 변화된 관계가 때때로 눈물이 날 만큼 서글펐다. --- p.126 그날 다리의 난간 앞에 섰던 일이 경진 앞에서의 치기에 불과했다는 것을 이제야 가슴 깊이 깨달았다. 나와 달리 그때 경진은 간절했다. 가방을, 조끼와 블라우스를, 운동화 두 짝을 망설임 없이 강물로 던져버렸다. 내 마음을 돌릴 수만 있다면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버리겠다는 듯한 태도였다. 지금 경진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아무것도 없었다. 경진의 뒤에서 연갈색 환자 모자를 응시하며 휠체어를 미는 것밖에는, 경진 곁에 나란히 앉는 것밖에는 무엇도 할 수 없었다. --- p.194 “근데, 할머니. 엄마는 왜 할머니한테 화난 거야?” 할머니는 바로 답하지 못했고 내가 응? 하며 재차 묻자 힘없이 말했다. “잊지 못하니까 그렇겠지.” “뭘?” “네 언니를 잊지 못하니까. 내가 잘못한 거지 뭐.” “뭘 잘못했는데? 나도 이젠 알아야겠어.” “이미 알고 있지 않냐.” 할머니는 잠시 뜸을 들이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인제 그만 잊으라는 말을 자꾸 했으니까.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고 지겹도록 말했으니까.” --- p.199~200 “그렇게 각별한 친구야? 몇 번 만나지도 않았다며…….” 희주의 물음을 듣고 나서야 마음속에 아주 확고하게 다른 결심이 들어섰다. 얼마나 자주 얼굴을 보고 목소리를 들었는지, 서로의 생활을 속속들이 알고 있는지 아닌지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오직 내게 중요한 건 김경진이라는 존재 그 자체였다. ‘친구’라는 단어로는 차마 설명할 수 없는, 그냥 김경진. 우리가 서로를 만났다는 것. 그 하나의 사실만으로 이유는 충분했다. 나는 경진이 원하는 것을 해주고 싶었다. --- p.211~212 병원 실습을 하던 어느 날 나는 상상했다. 내가 태어나기 전으로, 하지만 어른이 된 모습 그대로 돌아가 어린 언니를 돌보아주는 장면을. 상상은 여러 모습으로 변주됐지만 나는 늘 팔뚝이 단단한 어른이고, 어린 언니는 언제나 여리고 아프다. 어린 언니는 어떻게든 죽고 말지만 그 옆엔 내가 있다. 엄마와 아빠를 등 뒤에 둔 채, 나만의 자리를 우뚝 지키고 서 있다. 어린 언니를 돌보기 위해 나는 이 일을 선택했다. --- p.246 할머니와 통화를 마치고 가방에서 작은 봉투를 꺼냈다. 손바닥에 유리 조각을 두고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소주병 혹은 사이다병이 깨지고 난 뒤의 시간을 짐작해보았다. 날카로운 유리 조각이 모래사장에서 바람과 파도를 맞으며 서서히 마모되어온 시간을. 수많은 모래알 사이에서 나는 초록으로 빛나는 작은 유리 조각 하나를 주워 경진에게 건네었고, 오랜 시간이 흘러 경진은 그것을 다시 내게 돌려주었다. --- p.25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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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위원 만장일치 선정!
불안했던 시기 서로에게 하나뿐인 존재였던 두 사람 잊었던 그 세계가 어느 날 신호를 보내온다! 상처는 지워지지 않는다. 그러나 충분히 쓸리고 마모되며 빛을 머금으면 쥐어도 손이 베이지 않는 유리구슬이 될 수 있다. —박혜진(문학평론가) 국내 대표 장편공모상인 세계문학상 제22회 수상작 『유리 조각 시간』이 나무옆의자에서 출간되었다. 『유리 조각 시간』은 학창 시절 채팅 사이트에서 만나 우정을 나눈 두 여성이 성인이 되어 다시 마주하며 소설을 매개로 자신의 과거와 상처를 재독하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작가 성수진은 두 인물의 관계를 통해 청소년기의 불안과 결핍, 연약한 연대를 섬세하게 포착하며 기억과 관계가 어떻게 삶을 다시 구성하는지를 차분하게 파고든다. 일곱 명의 심사위원단(은희경, 정홍수, 전성태, 하성란, 강영숙, 김유진, 박혜진)은 “평범한 장면을 매혹적으로 만들어내는 디테일의 힘과 소설 읽는 행위 자체를 서사의 중심 장치로 삼은 구조가 특히 인상적이다. 드물게 자기 목소리를 지닌 작품”이라고 평하며 올해 응모작 177편 가운데 만장일치로 수상작으로 선정했다. 낯선 곳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는 간호사 유영은 출국을 앞두고 병원을 그만둔다. 그날 밤 오랫동안 연락이 끊겼던 친구 경진에게서 메일이 도착한다. 경진은 ‘유영’을 화자로 한 소설을 보내오고, 경진이 쓴 문장들은 유영을 어린 시절로 이끈다. 한편 경진의 소설에서 불길함을 읽은 유영은 그를 찾아가고 어찌할 수 없는 슬픔에 직면하는데……. 상처를 감당하며 서로의 관계를 새롭게 바라보는 인물들의 여정은 공감과 위로, 치유와 회복이라는 문학의 오래된 힘을 다시금 떠올리게 한다. 2024년 단편소설 「눈사람들, 눈사람들」로 제1회 림 문학상 대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성수진 작가는 첫 장편소설 『유리 조각 시간』으로 세계문학상의 주인공으로 호명되었다. ‘친구’라는 단어로는 차마 설명할 수 없는 존재 오직 중요한 건 그 존재 자체였다 중학생 시절 유영은 채팅 사이트에서 만난 ‘델(경진)’에게 마음을 빼앗긴다. 누군가를 얼굴이나 목소리가 아닌 문장으로 기억하고 실감할 수 있다는 것은 전에 없던 경험이었다. 유영에게는 자신이 태어나기 전 사고로 세상을 떠난 언니 유경이 있었다. 부모님은 오랫동안 그 사실을 말하지 않았고, 유영은 중학교 1학년이 되어서야 엄마의 고백으로 언니의 존재를 알게 된다. 무겁고 가라앉은 집안 분위기 속에서 언니의 기일마다 엄마가 무너지는 모습을 보며 자란 유영은 가족 안에서 자신의 존재를 의심하며 홀로 쓸쓸한 마음을 견뎠는데, 채팅으로 만난 델은 그런 유영에게 새로운 세계를 열어준다. 두 사람은 채팅창을 켜둔 채 “반짝이는 것”을 보는 의식을 함께한다. 눈을 감고 손등을 포개어 올리면 어둠 속에서 작은 빛의 무리에 둘러싸이는 기이하고 충만한 경험. 말하지 않아도 자신의 감정을 알아차리는 존재가 있다는 것에 유영은 큰 위로를 받는다. 둘이 처음 만난 날 유영이 충동적으로 다리 난간에 섰을 때 델은 자신의 모든 것을 던져 유영을 구한다. 유영 또한 주머니에 유리 조각을 넣고 다니며 제 몸에 상처가 나길 기다리는 델을 구하고 싶어 한다. 이처럼 두 사람은 서로의 결핍을 채워주며 서로에게 유일한 존재가 되어간다. 경진의 소설을 통해 유영은 불안했던 시절의 아픔과 아름다운 울렁거림을 또렷이 되새긴다. 그 충만한 느낌은 이유도 없이 나를 서글프게 했다. 그동안 알던 슬픔과는 다른 감정이었다. 찬란한 아픔. 아름다운 구역감. 뭔가 잘못되었다는 느낌. 말로 하면 빛바래고 어딘지 유치해지는 그 느낌을 나는 델하고만 공유했다. (85쪽) 어른의 세계에 속하고 난 뒤에도 둘은 문자와 메일을 주고받으며 관계를 지속하지만 어느 순간 경진은 유영의 부름에 답하지 않는다. 그리고 5년 만에 유영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을 보내온 것이다. 유영은 경진의 소설을 읽어갈수록 불길한 느낌에 사로잡힌다. 경진은 병원에 있었다. 둘은 다시 만나지만 함께할 시간이 많지 않다. 이미 건강이 나빠진 경진에게 유영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의 평화를 빌어주는 일뿐이다. 어릴 적 다리 난간에 선 자신을 삶으로 이끌었던 경진과 달리, 자신은 가진 전부를 걸어도 경진의 숨과 맞바꿀 수 없다는 걸 사무치게 인정한다. 유영의 손에서는 지난날 자신이 바닷가에서 주워 경진에게 준, 모서리가 마모된 작고 매끄러운 초록색 유리 조각이 작은 묘소처럼 반짝이고 있다. 선이 끊긴 뒤에야 남은 사람이 후회하는 엔딩, 그러한 결말은 원하지 않는다 유영과 경진이 함께한 시간과 더불어, 출국을 앞둔 유영이 본가에서 지내며 가족과 마주하는 시간 또한 소설의 중요한 축을 이룬다. 경진에게 엄마는 단 둘이 있기에 불편한 존재다. 유경의 그림자로 인해 엄마의 사랑은 과도한 걱정과 통제의 모양새를 띠었기에 유영은 엄마에게는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 쪽을 택해왔다. 반면에 할머니는 숨통을 틔워주는 존재다. 할머니와는 진지한 이야기와 농담을 무람없이 주고받으며 소소한 일상의 즐거움을 나눈다. 엄마는 유영이 중학생일 때 할머니와 연을 끊었다. 유경의 일로 딸이 슬퍼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할머니가 “이제 나아질 때도 안 되었냐”, “산 사람은 살아야 하지 않느냐”는 말을 무심히 내뱉자,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조차 아픔을 이해받지 못한다고 생각한 엄마는 할머니와 절연했다. 유영은 자신을 이곳에 붙잡아두려는 엄마와 부딪히면서도, 엄마와 할머니의 끊어진 관계를 잇기 위해 애쓴다. 그러나 낙상으로 거동이 어려워진 할머니를 자신이 돌보는 것을 당연시하는 엄마에게 유영은 또다시 상처받는다. 유영과 엄마, 엄마와 할머니 두 모녀의 관계는 유영이 경진을 떠나보내는 시간 속에서 변화한다. 자신이 경진에게 그랬듯 엄마와 할머니가 후회하지 않기를 바라는 아픈 각성이 서로를 움직인 것이다. 동시에 유영은 자기 안에 머무르던 유경의 존재도 새롭게 인식하며 자신이 간호사가 된 이유를 비로소 깨닫는다. 내가 떠나고 나서도 내내 두 사람은 평행선을 그릴 거였다. 한 사람의 선이 더는 이어지지 않고 끊긴 뒤에야 남은 사람이 후회하는 엔딩. 나는 그러한 결말을 원하지 않았다. (161쪽) 부서졌기에 볼 수 있는 삶의 찬란한 순간들 이제 그 치유의 시간을 ‘유리 조각 시간’이라 부르자 경진은 오래전 유영에게 자신이 고유한 존재라는 것을 잊지 않기 위해 소설을 쓴다고 말했다. 그리고 마지막 메일에서는 “내가 너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썼다며 “내 독자가 되어”달라고 말한다. 경진의 말을 곱씹던 유영은 “어쩌면 나의 고유함은 나 자신이 아닌 주변 존재들에 깃들어 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유리 조각 시간』에서 경진이 쓰고 유영이 읽는 행위는 문학이 우리에게 무엇이 될 수 있는지를 가슴 뭉클하게 보여준다. 현실에서는 다리 난간에 섰던 사람이 유영이었으나 소설에서 델이 되었듯, 소설을 거치면서 일어나지 않은 일이 기적처럼 일어난다. 경진이 소설을 통해 유영이 되고 유영을 살았듯, 유영 또한 이 소설을 함께 살고 함께 썼다. ‘유리 조각 시간’은 그 치유의 시간에 다름 아니다. 성수진 작가의 침착하고 섬세한 문장에는 존재와 삶의 불완전함을 긍정하는 따뜻한 시선이 담겨 있다. 과거와 현재, 기억과 소설, 만남과 이별이 교차하는 이야기 속에서 독자는 부서졌기에 빛나는 삶의 순간을 아름답게 목격할 것이다. 성수진은 지금 가장 주목해야 할 한국문학의 새로운 이름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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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중생들은 세상에 부딪쳐 상처를 주고받는다. 어른의 재회는 그리 다정하지 않다. 그러나 이 소설은 그 지점에서 시작한다. 우리가 삶에서 원하는 건 무엇일까. 이 소설을 읽고 나면 그것이 뜻밖에도 단순하다는 걸 깨닫는다. 세상은 생각만큼 복잡하거나 냉혹하지 않고, 진심은 긴 여정을 마치고 회귀하여 유리 조각처럼 손 안에서 빛나기 때문이다. - 은희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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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서진 마음의 파편을 섬세하게 응시하는 소설의 시선은 우리의 존재를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들까지, 잠재된 시간까지 데려간다. 깨어진 유리 조각들은 망각 속에서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다. 그 시간을 일깨우는 소설의 섬세한 문장은 어둠 속에서 빛을 기다리며 누워 있던 두 소녀의 형상에 아름답게 조응한다.
소설 속 경진의 소설은 결국 유영이 함께 살고, 함께 쓴 것이다. 유영은 경진이 뒤늦게 보내온 소설을 읽으며 “현실에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유리 조각 시간』은 그 부정문의 이상한 온기도 함께 전한다. 무언가가 일어났고, 일어나고 있는 것 같다. 이 소설은 그 일을 한다. 만남과 이별을 둘러싼 여러 겹의 이야기는 그렇게 이어지며 시간의 마모를 품으려 한다. - 정홍수 (문학평론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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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 조각 시간』은 묘하게 독서 취향을 잊게 한다. 소금빵 맛이랄까. […] 소재도 사건도 별다를 게 없는데 이게 손맛일까, 싶게 작가의 문학적 감수성이 한껏 배어 있다. 조곤조곤 할 이야기를 충분히 해내고 있고, 문장은 차분한 가운데서도 감정의 모서리를 깊이 건드린다. 태어나기 전에 생명이 꺼진 언니로 인해 가족들이 안은 상처, 그 상처를 절제하며 전하는 애도의 결도 좋았고, 관계를 드러내는 삽화에서 의외이거나 신선하게 발화되는 대화가 점점이 짰다. […] 삶의 세부를 참 잘 아는 작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원고를 덮고도 소설의 호흡이 오래 남는다. - 전성태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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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 상처를 지나가는 이야기로 만들지 않고, 남겨진 채로 두는 쪽을 선택한다. 그래서 변화는 분명 일어나지만, 성장이라는 이름으로 정리하기는 어렵다. 대신 감당하는 쪽으로의 방향만이 희미하게 드러난다.
그 미세한 이동이 이 소설의 힘이다. 강하게 말하지 않으면서 끝까지 밀어붙이고 결론을 내리지 않으면서 방향을 바꾼다. 마지막에 이르면 파편들이 각기 다른 방향으로 빛을 튕겨내고 겹쳐지면서 예상치 못한 장면이 펼쳐진다. 부서졌기에 볼 수 있는 삶의 찬란한 순간이 이 소설의 형식과 정확히 맞물린다. 소설을 읽고 난 뒤, 나는 내가 서 있는 자리가 이전과 같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 하성란 (소설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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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 조각 시간이란 어떤 시간일까. 다소 불완전한 시기에 만났다가 헤어진 사람들, 그 사람들이 다시 만나 깨진 유리 조각들을 하나씩 이어 붙이듯 섬세한 용접을 해나간다. 고통과 후회뿐이었던 불완전한 과거는 비로소 하나의 시간으로 이어지고, 두 사람은 이제야 온전한 시간을 소유하며 치유의 빛 안에 머무르게 된다. - 강영숙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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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이 인물의 이야기를 섬세하고 침착한 문장으로, 유머러스하고 자연스러운 삶의 장면들로, 그리고 소설 속 소설이라는 형식을 빌려 풀어나간다. 어떤 이야기는 돌이킬 수 없는 시절에 대한 안타까움으로, 혹은 미처 살아보지 못한 인생에 대한 동경으로, 가혹한 현실을 극복하고자 하는 방책으로 시작되지만, 때때로 그 속에서 삶의 불안정성이 그 자체로 조용한 빛을 내며 발견되는 장면을 만나기도 한다. 그것이 이 소설에 서 마주칠 수 있는 안도와 위안의 순간이다. - 김유진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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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내가 무심코 잊어버린, 그리하여 잃어버린 세계가 보내오는 절박한 신호다. 그 신호는 멈춰버린 우리 삶에 각성을 주고 변화의 파동을 일으킨다. 무감각한 평온보다 아픈 각성을 택한 이 소설의 여정은 그래서 더 고귀하고 아름답다. 상처는 지워지지 않는다. 그러나 충분히 쓸리고 마모되며 빛을 머금으면 쥐어도 손이 베이지 않는 유리구슬이 될 수 있다. 이제 그 치유의 시간을 ‘유리 조각 시간’이라 부르자. - 박혜진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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