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정치는 공간을 어떻게 바꾸는가
노들섬과 세운상가는 여전히 변신 중이다. 최근 도시의 공간을 바뀌는 데 결정적인 역할은 한 건 시민이 아니라 특정 정치인의 결정이었다. 시장이 바뀔 때마다 기껏 만들어놓은 걸 부수고, 만들던 걸 중단시키는 일이 한국 도시마다 비일비재하다. 이대로 괜찮을까?
2026.06.02.
손민규 사회정치 PD
|
|
책을 펴내며
1장 공간은 어떻게 정치가 되는가? 1 누가 서울을 그리는가? 2 도시공간은 어떻게 정치자산이 되는가? 3 민선시장 체제 이후 서울은 어떻게 변화해 왔는가? 2장 노들섬, 스펙터클과 일상 사이에서 1 노들섬의 탄생 2 이명박의 노들섬: 오페라하우스라는 아이디어 3 오세훈 1기의 노들섬: 한강의 랜드마크를 설계하다 4 박원순의 노들섬: 개발 말고, 시민이 쓰는 섬 5 오세훈 2기의 노들섬: 디자인 혁신의 실험장이 된 섬 3장 세운상가, 개발과 재생 사이 도시는 어디로 가는가? 1 세운상가의 탄생 2 세운상가의 급격한 쇠퇴와 재개발 계획 3 오세훈 1기의 세운상가: 세운상가를 걷어내고 녹지축을 잇다 4 박원순의 세운상가: 지워야 할 낡은 도심에서 미래 자산으로 5 오세훈 2기의 세운상가: 녹지와 빌딩숲은 어우러질 수 있을까? 4장 도시공간은 누구를 향해야 하는가? 주 참고 문헌 |
|
공간은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사회적 관계 속에서 지속적으로 재구성되는 동적인 개념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공간은 사고와 행위의 중요한 도구가 되는 동시에, 생산과 통제의 수단이 되어 지배와 권력의 도구로 활용될 수 있다. 공간은 투쟁과 갈등의 매개인 동시에, 그 자체가 쟁취의 목표가 되는 정치적 장이 된다. 르페브르가 도시공간에 주목한 이유도 그 때문이다. 도시공간은 서로 충돌하거나 모순되는 전략, 재현, 점유, 실천들이 교차하며 사회적 관계를 조직하고 권력을 유지하거나 중단시키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다.
--- p.31 기획에서 실행, 관리, 해석까지 공간을 둘러싼 모든 과정이 선출직 시장의 비전 아래 일관되게 작동하는 것이다. 결국 이러한 구조 속에서 공공 주도로 만들어지는 도시공간은 시민의 자율적 상상력에 따라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확장되기보다는 지자체장의 의도에 따라 기획되고 실행되며 해석되는 데 머물기 쉽다. --- p.32~33 새롭게 선출된 지자체장이 전임 시정이 남긴 공간을 폐기하거나 용도를 바꾸고 새로운 이미지와 상징을 덧씌워 전혀 다른 의미의 공간으로 재구성하는 양상은, 동일한 공간을 누구의 정치자산으로 전유할 것인가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이데올로기 재구성의 경합 과정에 가깝다. 이는 공간의 물리적 기능 개선이나 경제적 효용과는 별 관계가 없다. 같은 장소가 시장이 바뀔 때마다 다른 의미를 얻어온 역사는 바로, 도시공간의 정치자산화가 서울에서 작동해 온 역사이기도 하다. --- p.43 해당 공모 지침에 명시된 설계 목적 속 ‘세계적 문화 단지’, ‘랜드마크적 아트센터’, ‘한강의 문화적 변화’, ‘문화 도시 서울의 상징’ 등의 표현은 시장이 일관되게 주장해 온 서울의 문화 경쟁력 강화와 도시 이미지 제고 전략을 건축가들에게 선제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 p.84 당선작을 통해 구현된 한강 예술섬의 핵심 사용가치는, 섬이 랜드마크가 되면서 만들어낼 한강의 경관 그 자체에 있었다. 이러한 방식은 지속적인 프로그램의 기획이나 운영 주체의 적극적인 개입 없이도 공간의 활용 목적이 성립될 수 있는 구조를 제공한다. 다시 말해 공연 전문 공간을 제외한 대부분의 영역은 복잡한 운영 체계를 필요로 하기보다는 스펙터클한 경관 그 자체로 기능하는 공간인 것이다. 한강을 중심으로 재편된 서울과 한강의 한가운데 위치한 노들섬에 만들어지는 랜드마크. 계획에 따르면 한강 예술섬은 오세훈 시장이 구상한 도시 비전을 지속적으로 환기하는 기념비적 공간으로 작동할 것이었다. --- p.88 이러한 도시농업 사업은 추진 배경에 공약 이행이라는 명분이 있었지만, 박원순 시장의 유년기 경험에 뿌리를 둔 주관적 정서와 감수성이 정책 선택에 반영된 사례라고도 볼 수 있다. [……] 도시농업이라는 정책적 선택이 행 정적 합리성이나 체계적인 의사결정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시장 개인의 경험적 서사에 영향을 받아 만들어진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 p.94 박원순 시정은 한강 예술섬 조성 과정에서 갈등의 요인이 된 맹꽁이를 주요 정책 중 하나인 도시농업의 장으로 재맥락화함으로써, 전임 시정과의 차별성을 분명히 했다. 동시에 생태와 공동체를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도시 비전을 정치적 메시지로 전달했다. --- p.95~96 결국 노들섬에서 시도된 ‘선 운영자 선정, 후 설계’라는 유례없는 실험은 관련 기반이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추진되었고, 실험 과정에서 발생한 행정적 불확실성은 사업에 참여한 이들에게 직접적인 부담이 되었다. 서울시 소유의 공간이라는 제약 없는 조건 속에서 실험적 절차는 곧 제도의 부재와 충돌했고 그로 인한 시행착오와 책임은 기획에 참여한 이들의 몫이 되어버렸다. 시민 참여와 운영 중심의 공간을 강조했음에도 불구하고, 제도적 기반 없이 추진된 이 사업은 결과적으로 이러한 구호가 수사적 차원에 머물렀음을 보여준다. --- p.102 보통은 건물을 짓고 나서 프로그램을 채워 넣지만, 박원순 시정의 노들섬 사업은 어떤 활동이 가능할지를 시민들이 먼저 경험해 보도록 이례적인 시도를 했다. 이러한 프로그램들은 생태적, 공동체적 가치를 예술성과 실험성의 언어로 풀어냈다는 측면에서는 의미 있는 시도였지만, 익숙하지 않은 프로그램 형식과 소규모 운영 방식은 파급력이 제한적이고 시민들에게 다소 생경한 인상을 주기 쉬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일럿 프로젝트를 통해 직접 공간을 써보고, 즐기고, 해석하는 경험이 쌓이며 형성된 기억과 감각은 이후 본격적인 개발 단계에서 이 사업이 왜 필요한지에 대한 공감의 토대가 되었다. --- p.105 약 560억 원의 조성비와 연간 약 27억 원의 민간위탁금이 투입된 공공 프로젝트가 어떠한 수준의 정량적 성과를 달성해야 성공한 사업으로 평가받을 수 있는지에 대한 객관적 기준을 제시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부정적 여론은 곧 시정 전반에 대한 평가로 연결되었고, 서울시로서는 이러한 상황을 간과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처럼 생태와 공동체, 시민 참여를 핵심 가치로 삼은 박원순 시정의 도시재생 담론은, 노들섬과 같이 일상적인 생활공간이 갖춰지지 않은 도시공간에 적용될 때에 성과를 안정적으로 드러내기 어려운 한계를 보였다. --- p.123 싱가포르의 슈퍼트리는 오세훈 시장이 바라는 한강과 노들섬의 경관을 압축적으로 보여주었다. 시장은 노들섬의 물리적 환경을 실제로 재구성하기에 앞서, 벤치마킹할 장소를 무대로 삼아 자신의 비전을 발표하는 동시에 도시 비전을 구체적인 시각적 이미지로 제시했다. 이러한 장면 연출은 현재 시정이 목표하는 미래를 이미 이뤄낸 다른 사례를 보여주며, 시정이 추구하는 노들섬 사업이 실제로 실현 가능하고 또 필요하다는 점을 설득하는 효과를 낳는다. 이 과정에서 노들섬이 앞으로 도달해야 할 이상적인 이미지 역시 시민들에게 자연스럽게 각인된다. --- p.130~131 그간 오세훈 시장의 여러 발언들을 종합하면, 그는 1기 시정부터 일관되게 도시 경쟁력 확보를 위해서는 혁신적인 디자인의 건축물이 필수적이고 이러한 건축물이 더 많은 관광객을 유치할 수 있다는 생각을 시민들에게 전한다. 이는 외부인의 시선에 기반한 경쟁력 있는 상품으로서의 도시공간을 구상하고자 하는 접근이다. 서울을 경쟁력 있는 글로벌 도시로 공고히 자리매김하기 위해 더 많은 방문객을 유치하고 국제적 인정을 획득함으로써 도시 이미지 제고를 꾀하겠다는, 외부 지향적 도시개발 철학을 명확히 보여준다. --- p.132 노들섬은 하나의 실체적인 공간이기보다 이미지로 먼저 존재하게 된다. 시각적으로 강렬한 구상안은 실제 사업의 성패와 무관하게 빠르게 확산될 수 있고, 그 자체로 새로운 비전을 선언하는 상징처럼 기능할 수도 있다. 그 결과 아직 실현 여부가 불투명한 단계에서도 이미지는 정치적으로 소비되며, 전임 시장의 공간적 흔적을 지우는 동시에 새로운 시정을 상징할 수 있게 된다. 결국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완성된 공간이 아니라 그 공간이 보여주는 장면과 메시지다. 노들섬은 그렇게 물리적 현실에 앞서, 정치적 이미지의 무대 위에서 먼저 다시 쓰이게 된다. --- p.135 박원순 시정하에서 제안된 모듈형 공간 구성은 공간의 유연성과 가변성을 내세웠지만, 결과적으로는 공 간의 고정성과 정체성을 약화시키고 말았다. 다양한 프로그램을 수용할 수 있는 개방적 구조라는 특성은 동시에 정치적 판단에 따라 공간이 손쉽게 해체될 수 있는 여지를 제공했다. [……] 이는 아이러니하게도 기존 기획의 상징과 메시지를 지우고 새로운 구상으로 덧씌우는 데 유리한 조건으로 작용했다. 공간 의 가변성은 정치적 전환 속에서 공간의 기억을 삭제하 는 수단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줬다. --- p.143~144 착공식에서 발표된 사업계획 역시 전체 사업의 중장기 공정에 대한 명확한 설명은 부족했고, 완성된 조감도를 보여주며 착공이라는 사건 자체를 통해 사업이 시작되었음을 시민들에게 부각하는 데 초점을 두었다. 이런 의미에서 해당 착공식은 완성으로 이어지는 출발점이라 기보다는, 정치적 시간표에 맞추어 ‘사업이 이미 진행 중’이라는 인식을 선점하려는 상징적 제스처에 가까운 것이었다. --- p.144 “사실 노들섬 재구조화가 당장 진행될 것처럼 말하지만 그냥 계획일 뿐이니 또 언제 바뀔지 모른다고 생각해요. 내부에서는 이미 혼란스러운지 너무 오래돼서…… 운영 계획을 세우고 싶어도 공사 때문에 어차피 못 할 거라면 아무것도 진행할 수 없잖아요.” -노들꿈섬 운영 실무자 --- p.146 행사 마지막 순서에서 ‘종로세운상가’라는 문구가 적힌 현대상가의 간판이 연막 효과와 함께 서서히 하강하는 장면이 연출되었다. 종로변에 위치한 현대상가는 세운상가군 전체를 대표하는 명칭의 간판을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인데, 실제로는 현대상가만 철거되는 상황이었음에도 이 장면이 언론을 통해 반복 보도되면서 마치 세운상가 전체가 철거된다는 이미지가 심어진 것이다. 상인들은 시민들이 세운상가가 이미 폐업한 상태라고 오인하게 되었다며 실질적인 영업 피해를 호소하고 강하게 반발했다. 퍼포먼스의 추진 경위도 논란을 키웠다. 세운상가 시장협의회는 현대상가와의 혼동을 우려해 사전에 서울시에 간판 철거를 요청했고, 서울시 역시 이를 수용하여 간 판을 미리 철거한 뒤 식을 진행하기로 약속한 상태였다. 그러나 착공식 당일 오전, 간판은 하강 퍼포먼스를 위해 다시 설치되었다. --- p.175~177 국가 차원에서도 성장 중심의 물리적 개발에서 벗어나 지역 공동체의 회복과 주민 생활환경 개선을 중시하는 도시재생이 정책 대안으로 부상했다. 2013년 「도시재생 활성화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의 제정은 이러한 흐름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이러한 시대적 분위기는 박원순 시정이 추구하던 가치관과 맞닿아 있었고, 양자가 결합하면서 도시재생으로의 패러다임 전환은 한층 더 설득력을 얻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세운상가 역시 더 이상 철거의 대상이 아니라 건축적 가치와 산업적 잠재력을 지닌 도시의 중요한 자산으로 재조명되기 시작했다. --- p.179~180 만약 박원순 시장이 당선되지 않고 오세훈 시정이 지속되었다면, 시대적 제약들을 어떻게 해석하고 극복하며 사업을 추진했을지는 단정하기 어렵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무엇을 제약 조건으로 규정하고 어떤 사안을 핵심 문제로 설정할지를 결정하는 데 있어 객관적 조건만이 판단의 근거가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동일한 여건 속에서도 도시를 관할하는 행정 권력이 어떠한 문제의식을 채택하고, 어떤 정책 서사를 구성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세운상가를 둘러싼 계획의 변화가 바로 그 사실을 잘 보여준다. --- p.182~184 보행·산업·공동체를 중심으로 하는 세운상가 도시 재생 사업은 지역 주민들의 적극적인 참여 없이는 추진 하기 어려운 성격을 지녔다. 기존 재개발 방식과 다르게 점진적 정비와 공동체 참여를 핵심 키워드로 삼았기 때문에, 주민들의 반대 여론과 사업에 대한 회의적 인식을 완화해 정책 수용성을 높이는 과정이 필수적이었다. 이에 서울시는 공식적인 설명회나 공청회 같은 행정적 절차를 마련하기보다, 일상적 접촉을 늘리고 신뢰를 형성하는 등 주민들과 우호적 관계를 구축하는 방안에 더 중점을 두었다. --- p.184~186 일반적으로 사업 착수식이 향후 조성될 공간의 형태와 물리적 변화에 대한 계획을 제시하는 데 초점을 맞추는 반면, 세운상가 재생 사업은 착수식 후 진행된 현장 프레스투어에서 공간의 설계나 물리적 정비 내용보다 내부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활동과 관계망을 전면에 내세웠다. [……] 이러한 연출은 앞으로 어떤 공간을 만들겠다는 하드웨어의 제시보다, 그 공간에 어떤 사람들이 모이고 어떤 활동이 이루어질지에 대한 소프트웨어적 비전을 강조하는 방법이었다. --- p.194~195 ‘세운상가 활성화를 위한 공공공간 설계공모’에서 지정된 설계 범위는 세운상가와 직접 맞닿아 있는 덱 공간으로 한정되었다. 이 덱의 상·하부 대부분이 국공유지였기 때문에, 사유지 개발에서 발생할 수 있는 이해관계 충돌이나 소유권 분쟁을 피하면서 비교적 단기간 내에 사업을 실행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게다가 세운상가 전 구간이 사유지인 상황에서, 이러한 설계 범위 제한은 중요한 전략적 선택이기도 했다. 공공공간의 재구성을 통해 그 효과를 인접한 사유지로 확산시키는 데 유용했기 때문이다. 형식적으로는 사유지에 대한 직접 개입을 최소화하면서도 세운상가 전체를 도시재생의 영향권 안으로 편입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 p.197 공모 당선 이후의 추진 과정에도, 시민 참여를 강조한 박원순 시정의 철학이 일관되게 반영되었다. 서울시는 설명회와 보고회를 거쳐 수렴된 의견을 실시설계에 반영하려 했기 때문에 소유자와 임차 상인을 상가별로 구분하여 설명회를 따로 개최했다. 세운상가, 청계상가, 대림 상가 등 각 상가의 입장을 수집하기 위해 주민설명회가 총 12회 진행되었으며, 설계자문위원회를 통해 전문가 의견을 반영하는 절차도 병행함으로써 계획안을 단계적으로 정교화했다. --- p.202~203 박원순 시정이 비엔날레를 매개로 행정에서 구상한 정책적 메시지를 시민과 전문가의 참여를 통해 구현하고 세운상가를 도시재생 무대로 연출했음을 보여준다. 전시에는 50여 개 도시와 120여 개 기관이 참여했으며, 이를 통해 세운상가를 중심으로 한 서울시의 도시재생 정책은 국제적 담론 속에 자리하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이 행사는 정책과 공간, 그리고 창의제조산업의 혁신 기지라는 이미지가 결합된 퍼포먼스의 장을 넘어, 세운상가를 글로벌 네트워크와 연결하는 홍보의 장까지 되었다. --- p.214 이미 보상이 완료된 구역에 개입할 수 있는 행정의 권한은 사실상 제한적이었다. 이는 산업·보 존·재생이라는 정책의 핵심 키워드가 현실의 복잡한 도시 맥락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 채 작동했음을 보여준다. 눈에 잘 드러나지 않는 산업 생태계의 관계망보다는 건축물 중심의 가시적 보존에 초점이 맞춰지면서, 정책의 의도와 실행 사이에 구조적 간극이 발생하고 말았다. --- p.220 오세훈 시장 취임 이후 단행된 예산 삭감과 인력 감축이 단순한 효율화 조치가 아니라, 전임 시정의 정책 기반을 점진적으로 축소하고 무력화하는 수단으로 작동했음을 보여준다. 박원순 시정하에서 형성된 거버넌스 구조와 협력 네트워크는 시장이 교체된 이후 급속히 약화되었고, 내부 의사결정 라인이 해체되면 서 공무원과 입주자 간의 접점 또한 단절되었다. --- p.227~228 박원순 시정 시기 서울시는 세운상가 군 전 구간을 입체 보행로로 연결하여, 그 위에서 기술 장인과 신규 입주자 간 협력을 통한 산업 재생을 이루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그러나 2단계 구간에 속하는 상가의 상인들은 철거와 보상을 염두에 둔 상태에서 기존 영업 질서를 유지하는 데 집중하고 있었고, 새로운 협업 구조에 참여할 이유도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외부에서 유입된 세운메이커 입주자들은 기존 질서를 흔드는 낯선 존재로 인식되었을 것이다. 결국 갈등은 개인의 태도나 의지의 문제라기보다는, 공간을 설계한 방식과 실제 현장의 산업 구조가 맞아떨어지지 않아 발생한 문제였다고 할 수 있다. --- p.233 메이커스큐브는 박원순 시정하에서 공공성과 지역 기반의 협업을 핵심 가치로 삼는 산업 재생의 거점이었다. 그러나 오세훈 시정에 들어선 후 공간 자체는 당분간 유지되고 있지만 그 성격은 창업을 위한 임대 공간이나 아티스트 작업실에 가깝게 변모했다. 같은 장소가 정책의 방향성에 따라 전혀 다른 사회적 기능을 수행하게 된 것이다. 이는 공간이 물리적으로 존속하더라도 그것이 담고 있던 사회적 의미와 역할이 새로운 시장의 정책 기조에 따라 근본적으로 뒤집혔음을 보여준다. 시장이 바뀌면서 어떤 공간이 형태적으로 지속된다 하더라도 그 공간이 상징하는 의미까지 반드시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을 드러내는 장면이기도 하다. --- p.236 박원순 시정에서 도시재생과 산업의 혁신 기지로 정의되었던 세운상가 일대는 오세훈 시장의 취임과 함께 정비가 시급한 낙후된 도심으로 의미가 전환되었다. --- p.243~244 시장이 바뀔 때마다 반복되는 도시공간의 전 면적 재편은 해당 공간을 이용해 온 시민들에게 너무나 오랫동안 불확실성을 감내하도록 만들었다. 장기간 축적되어 온 사회적·경제적 기반이 정권의 변화와 함께 쉽게 해체되고, 다른 장소로 재구축되어야 하는 상황에 내몰렸다. 세운상가는 도시공간이 시장의 구상 속에서 계속 해서 다른 의미를 지니게 되고, 그 과정에서 축적과 단절이 교차하는 현실을 드러내는 사례라 할 수 있다. --- p.246~247 |
|
강력한 정치 홍보 수단이 된 도시공간
청계천이 증명했고, 노들섬과 세운상가가 반복했다 지난 20년 동안 서울의 도시공간은 정치적 성향도 비전도 완전히 다른 두 시장의 계획이 세워졌다 사라지기를 반복해 왔기에, 공간의 변화에 대한 논의는 대부분 각 시장의 업적을 평가하고 공과를 따지는 것에 매몰되고 만다. 하지만 앞으로 4년간 서울을 이끌 시장을 뽑는 지방선거를 목전에 둔 지금, 저자는 논의를 원점으로 돌리는 어렵고도 대범한 시도를 한다. 시장의 업적을 평가하는 데 갇히는 대신 도시건축 사업의 시작과 결과, 의의와 한계를 명확히 짚어내어 공간의 미래를 논의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 낸다. 오세훈과 박원순 시장 모두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사업을 추진했던 노들섬과 세운상가는 이 작업에 더없이 적합한 사례다. 여기서 더 나아가, 그렇다면 두 시장은 왜 이렇게 ‘공간’에 집중했을까? 사실 이건 오세훈과 박원순, 두 사람에게만 나타나는 모습이 아니다. 서울만의 문제도, 그리고 시장만의 문제도 아니다. 전 세계 많은 정치 리더들은 도시에 자신의 흔적을 남기기 위해 경관을 바꾸려는 시도를 거듭해 왔다. 가장 가시적으로 자신의 업적과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는 거대한 도시 경관에 집중하는 일은 인류의 역사에서 반복되어 온 일이다. 그럼에도 선거를 통해 권력을 획득할 수밖에 없는 현대사회에서 정치인의 홍보와 브랜딩은 특히 굉장히 중요한 과업이 되었다. 자신을 끊임없이 노출시키고 각인시키는 일이 더는 선택의 영역이 아니다. 도시공간의 변화를 통해 자신의 입지를 다지는 데 성공한 대표적인 사례로 이명박 전 대통령의 청계천 복원 사업을 들 수 있겠다. “뉴타운 사업이나 청계천 복원과 같은 대규모 개발 사업의 신속한 추진과 가시적인 성과가 민선 자치단체장 최초의 대통령 당선이라는 결과로 이어지며, 서울시장 대권 주자로 적합하다는 인식을 확산시키는 계기가 되었다.”(51쪽) 이후 서울시장이 된 오세훈과 박원순에게도 청계천 사업이 주는 교훈은 유효했다. 두 사람 모두 열성적으로 스스로를 홍보하는 일에 공을 들였고, 노들섬과 세운상가를 비롯한 도시공간을 자신의 비전을 가시적으로 각인시킬 수 있는 무대로 삼았다. 그리고 이 또한 두 시장만의 이야기가 아닐 것이다. 지방선거를 앞둔 지금, 서울시장 후보자들도 도시공간을 자신을 각인시킬 상징으로 삼아 공약을 쏟아내고 있다. 『노들섬과 세운상가』는 그 과정을 정확히 이해하게 해준다. 개발과 재생이라는 정반대의 비전, 공간에 권력을 새기는 하나의 문법 반복되는 단절을 끊어낼 힘은 우리의 질문에 있다 서울시에서 10년간 건축 분야 프로젝트를 담당했던 저자는 박원순 시장의 갑작스러운 부재로 한 차례 시장의 교체를 겪는다. 정책 방향성은 크게 달라졌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시장의 강력한 권한이 사업의 기획부터 실행까지 모든 과정에 작동하고 있음을 몸으로 느꼈다. 계획이 수립되는 방식, 설계의 방향이 정해지는 과정, 사업의 우선순위가 결정되는 순간들, 그 모든 과정에서 시장의 존재는 명시적이든 암묵적이든 언제나 작동하고 있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업무를 수행하는 과정 내내 새로운 시장이 무엇을 더 선호할지, 어떤 방향이 그의 취향에 부합할지 가늠했고, 이전 시정의 연속선상에 있는 사업처럼 보이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조율한 시간들도 있었다.”(11쪽) 시각적으로 매력적인 ‘디자인’을 중시하며 대규모 개발과 서울을 대표할 만한 랜드마크 건설을 통해 서울을 ‘전 세계인들이 방문하고 싶은’ 도시로 만들고자 했던 오세훈 시장. ‘시민 참여’의 가치를 강조하며 개발 대신 재생을, 철거 대신 존치를 통해 서울을 지속 가능한 도시로 만들고자 했던 박원순 시장. 두 시장이 그렸던 서울의 미래는 완전히 다르지만 공간을 권력의 언어로 삼았다는 점에서 두 시장은 닮아 있다. 동시에 『노들섬과 세운상가』는 거시적인 정책의 흐름만을 좇지 않고, 오랫동안 그 자리를 지켜온 이들, 삶의 터전을 잃거나 생계를 위협받은 이들, 새로운 가능성을 꿈꾸며 모여든 이들의 목소리를 함께 담고 있다. 오세훈-박원순-오세훈이라는 시장의 반복된 교체 속에서 상반된 정책이 맞부딪히며 도시 서울에는 장기적 계획이 자리 잡지 못했고, 업적 세우기와 흔적 지우기가 되풀이되는 사이 공간은 표류했다. 그리고 2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그 대가를 치러야 했던 건 노들섬과 세운상가와 관계를 맺고 일상을 구축해 온 사람들이다. “노들꿈섬을 꿈꾼 자들은 멋있을 수 있지. 근데 그 꿈에 뛰어든 자들은 피를 철철 흘려야 된다는 걸 온몸으로 겪었어요.”(101쪽) “오 시장님 취임하고 ‘피 토하는 심정’이라는 발언을 보고 ‘아, 오세훈 시장이 1기 시정에서 하려던 일을 그대로 할 생각이구나.’ 싶었어요. 박시장님 때는 적어도 과장금 미팅을 격주 또는 매주 했어요. [……] 오 시장님 오시고 나서는 회의가 급속도로 없어졌죠.”(227쪽) 공간이 권력의 도구가 된 이상, 이 고통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도시공간을 다시 시민의 것으로 되찾는 일이 필요하다. 누가 공간을 결정하고, 그 결정이 어떤 과정을 거쳐 이루어지며, 그 결과를 누가 감당할 것인지 계속해서 물어야 한다. 이 책은 그 질문을 향해 나아가는 데 탄탄한 기반이 되어 줄 것이다. |
|
정치적으로 대립하기에 앞서 우선 팩트를 확인하고 공유하는 문화가 한국에서는 아직 약하다. 서울의 행정에 대한 지난 20여 년간의 논란 역시 그러하다. 오세훈 1기, 박원순, 오세훈 2기 시정으로 이어지는 행정, 그리고 전면적으로 다루고 있지 않지만 기저에 깔린 이명박 시정의 행정까지, 지자체장이 바뀔 때마다 서울의 행정은 급진적으로 바뀌었다. 저자는 노들섬과 세운상가라는 아주 다른, 하지만 시장들이 큰 관심을 보이고 정책을 추진해 왔다는 공통점을 지닌 두 공간에 집중해, 행정의 변화와 충돌 과정을 검토한다. 세 명의 시장, 네 번의 임기 중 일어난 변화에 대한 호오는 각기 다를 것이다. 하지만 정치적 대립에 앞서 필요한 것은, 이 시기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확인하고 공통의 팩트를 공유하는 일이다. 이 과정을 거쳐야 ‘논쟁을 위한 논쟁’이 아닌 ‘미래를 위한 논쟁’이 가능해진다. 지방선거를 앞둔 현재, 무엇보다 필요한 것이 바로 이 작업이다. 이 작업을 충실히 해낸 저자가 세상에 내놓은 책이, 서울의 미래를 생각하는 독자들에게 좋은 지침서가 되어주리라 믿는다. - 김시덕 (도시문헌학자)
|
|
청계천 복원 사업은 도시공간이 정치적 자산으로 변모한 상징적 사건이었다. 이명박 서울시장이 밀어붙인 도시 개선 사업은 대권으로 향하는 거대한 트로피가 되었다. 그리고 오세훈-박원순-오세훈 시장의 20년을 지나며 서울의 도시공간은 치적 쌓기와 지우기가 반복되어 왔다. 4년의 임기는 연임을 위해 빠른 성과를 요구하고, 절차는 그 속에서 손쉽게 단순화된다. 문득 의문이 든다. 이것은 시민을 위한 비전인가, 자치단체장을 위한 비전인가. 서울시 도시공간 기획 현장의 실무자이자 관찰자였던 저자는 노들섬과 세운상가 프로젝트의 20년을 추적하며, 도시공간의 비전과 계획이 지방자치단체장의 ‘기획 권력’을 통해 어떻게 구체화되고 작동해 왔는지를 학술적으로 분석한다. 그리고 서울의 도시공간에 가장 큰 결정권을 쥔 시장의 기획 권한이 과연 합리적으로 작동해 왔는가를 묻는다. 중요한 것은 권력이 도시공간을 다루는 방식이라는 저자의 말처럼, 지방자치단체장 선거를 앞둔 지금 가장 필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서울이라는 도시 공간은 누구를 위해, 어떻게 그려져야 하는가. - 임진영 (건축 저널리스트, 기획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