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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말
제1부 숨은그림찾기 철학__13/ 생각 공장__14/ 인생·1__15/ 내 안의 도둑__16/ 말의 온도__18/ 지금은 운전 중__20/ 허풍선__22/ 희망 신문__23/ 나이롱 천국__24/ 혁명__25/ 짜장면 주문하기__26/ 숨은그림찾기__27/ 이생을 끊임없이 도망 중이다__28/ 맨발 걷기__29/ 플라스틱 러브__30/ 제2부 시간의 완성 철 들다__33/ 꼬리뼈__34/ 시간의 완성__35/ 우리 속에 우리가 없다__36/ 잠도 나이가 든다__37/ 가죽__38/ 손금__39/ 중년__40/ 환승역__41/ 티눈__42/ 은빛마루 요양원__43/ 발가락 닮았다__44/ 초원의 아침__45/ 족저근막염__46 대화__48/ 제3부 거위의 꿈 차경__51/ 통역__52/ 파도__53/ 눈사람__54/ 오골계__56/ 젖지 않는 땅__57/ 자벌레__58/ 어물전戰__59/ 입동__60/ 상강__61/ 거위의 꿈__62/ 온난화__63/ 웃음__64/ 백수__66/ 두 마음__67/ 제4부 길을 잃다 석이버섯__71/ 진화의 역설__72/ 두부__73/ 괄호__74/ 관통__75/ 한 줌의 말씀__76/ 길을 잃다__77/ 낙타와 야크__78/ 말__80/ 건빵과 별사탕__82/ 삼각팬티와 사각팬티__83/ 조개 무덤__84/ 악수__85/ 물증__86/ 인생·2__8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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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중기 시인의 시는 우리가 매일 마주치는 사물과 풍경, 몸의 기억과 생활의 언어 속에서 출발한다. 개미와 달팽이, 발가락과 꼬리뼈, 건빵과 별사탕, 조개껍데기와 족저근막염까지. 평범한 사물과 현상을 통과한 시인의 시선은 어느 순간 인간 존재의 본질과 삶의 의미를 향해 나아간다.
시집의 첫머리에 놓인 「철학」은 이 시집 전체를 관통하는 선언과도 같다. 소크라테스에게만 철학이 있는 것이 아니다. 쉼 없이 줄지어 가는 개미의 가는 다리에도 철학이 있고 잠들지 않고 천적을 감시하는 물고기의 눈 속에도 철학이 있고 집 한 채 지고 한평생 살아가는 참달팽이의 배밀이 속에도 철학이 있다. 푹신한 신발로 직립보행 하며 안락한 침대에 쉬이 잠드는 육신만 철학이 몸 밖에 있다. 입속에 있다. ―「철학」 전문 시인은 철학을 특별한 학문이나 사유의 영역으로 한정하지 않는다. 살아 있는 모든 존재와 삶의 방식 속에 이미 철학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이러한 관점은 시집 전편에 흐르는 중요한 토대가 된다. 사소한 사물 하나도 그의 시 속에서는 존재의 의미를 품게 된다. 표제작 「말의 온도」는 오늘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언어를 날카롭게 비춘다. 마음을 끌어안은 말/ 옛말이 되고// 공장에서 제조된 햇반과 밀키트의 정형화된/ 가부장적 권위를 잃고 무너진/ 독백의 시간이 길어진/ 점성이 떨어진// 영혼과 분리된 말/ 신조어가 되고// 감성이 식고 먹다 남은 말/ 냉장고 속으로// 냉장 온도 5°C/ 냉동 온도 -19°C ―「말의 온도」 부분 한때 사람의 체온을 품고 있었던 말은 점점 기능적인 언어로 변해간다. 즉각 소비되고 폐기되는 말들 속에서 시인은 사라져 가는 관계의 온도를 발견한다. 이 작품은 단순히 언어에 대한 성찰을 넘어 현대인의 소통 방식과 삶의 풍경을 응축하여 보여준다. 박중기 시의 또 다른 특징은 독특한 비유와 전복적 상상력이다. 「생각 공장」에서는 구로기계공구상가를 ‘생각을 생산하는 공장’으로 바꾸어 놓는다. 절삭 공구는 생각을 다듬고, 용접 공구는 끊어진 생각을 이어 붙이며, 연마 공구는 거친 생각을 매끄럽게 만든다. 산업 현장의 풍경은 어느새 인간 정신의 생산 과정으로 변모한다. 「인생·1」에서는 씹다 버린 껌을 통해 삶을 이야기한다. “일단 한 번 씹은 껌은 침샘이 마를 때까지 씹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 유머러스한 표현 속에는 삶에 대한 책임과 인내의 의미가 묵직하게 배어 있다. 제2부 「시간의 완성」에 이르면 시인의 시선은 인간의 몸과 나이 듦의 문제로 향한다. 「철 들다」, 「꼬리뼈」, 「잠도 나이가 든다」, 「중년」, 「발가락 닮았다」 등은 세월이 남긴 흔적을 통해 인생을 성찰하는 작품들이다. 특히 「철 들다」는 인상적이다. 바람 차고 물 먹고몸 산화되면서화석의 발자국에서 발가락이 나오듯녹물이 흘러나온다. ―「철 들다」 부분 철이 녹슬어 가는 과정은 인간이 성숙해 가는 과정과 겹쳐진다. 젊음의 단단함이 아니라 상처와 마모를 통해 얻어지는 깊이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 시집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특유의 풍자 정신이다. 「희망 신문」은 존재하지 않는 뉴스를 만들어 현실을 비춘다. 모두가 행복해지는 기사들로 가득한 신문을 상상하면서 오히려 현실의 결핍을 드러낸다. “희망이 외롭다.”의 이 짧은 마지막 한 줄은 오랫동안 마음에 남는다. 「혁명」 역시 단 몇 줄로 집단 심리와 권력의 구조를 통렬하게 풍자한다. “개 한 마리가 짖는다./ 동네 개 모두 따라 짖는다./ 온 세상 모든 개 따라 짖는다.(「혁명」 부분)”에서는 짧지만 강한 언어로 사회의 본질을 질타한다. 시집 제3부에서는 자연과 생태, 인간 사회가 교차한다. 「파도」는 욕망과 부패, 미련과 허영을 바다에 떠 있는 부유물로 형상화하고, 「눈사람」은 태어남과 사라짐의 순환을 통해 생의 본질을 보여준다. 「오골계」, 「젖지 않는 땅」, 「어물전戰」 등에서는 생태적 상상력과 인간 사회에 대한 풍자가 절묘하게 결합한다. 거위털 파카에서 삐져나온 가슴털 하나 하늘 난다. 체온 빼앗고 비상 마름질 속 가두고 노스페이스, 나이키, 아이더, 네파… 깃털로 만든 인조 거위 온溫 세상 꿈꾸며 헛된 꿈의 비상이라니 혹한의 안부도 잊은 채 한 무리 팔아 겨울 품 따뜻하다. ―「거위의 꿈」 전문 위의 시 「거위의 꿈」은 이 시집을 대표하는 작품 가운데 하나다. “거위털 파카에서 삐져나온/ 가슴털 하나/ 하늘 난다.”의 이 구절은 한 마리 거위의 털이 누군가의 겨울을 따뜻하게 만드는 과정은 존재의 의미와 희생의 가치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제4부에 이르면 시인의 사유는 더욱 깊어진다. 「길을 잃다」, 「관통」, 「낙타와 야크」, 「말」 등은 종교와 인간, 존재와 구원의 문제를 다룬다. 「길을 잃다」의 마지막 구절은 강렬하다. 절 입구 공사가 한창이다. 일주문 짓겠다고 일제 강점기 때 송진 채취로 지울 수 없는 상처 안고도 백 년 넘게 살아남은 소나무들 뿌리째 뽑아내고 봄 만개 중인 벚나무 사정없이 잘라낸다. 시뻘건 황토 속 드러나면서 잠자던 벌레들 졸지에 삶의 터전을 잃는다. 세속의 권위 높이 솟은 일주문 세워지고 아스팔트 깔리면 자가용 타고 드나들 스님들아, 그 길로 부처가 순례 다녀가실까? 높고 크고 화려한 교회 앞에서 예수가 길을 잃었듯이 ―「길을 잃다」 전문 마지막 부분의 “높고 크고 화려한 교회 앞에서/ 예수가 길을 잃었듯이”의 이 구절을 통해 시인은 종교적 형식은 남았지만 본질은 잃어버린 시대에 대해 통렬한 질문을 던진다. 박중기의 시는 세상을 향해 큰 목소리를 내지 않는다. 대신 생활의 현장에서 길어 올린 언어로 우리를 천천히 설득한다. 웃음 속에 철학을 숨기고, 풍자 속에 연민을 담고, 사물 속에 인간을 비춘다. 그의 시는 어렵지 않지만 가볍지 않고, 친근하지만 가볍지 않다. 『말의 온도』는 삶을 오래 통과해 온 시인의 눈으로 바라본 세계의 기록이다. 몸에 새겨진 시간의 흔적, 관계 속에서 식어가는 언어의 체온, 나이 들며 비로소 보이는 삶의 진실들이 담담하게 펼쳐진다. 독자는 시집을 덮고 난 뒤 비로소 깨닫게 된다. 철학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곁의 사소한 것들 속에 숨어 있으며, 시는 바로 그 숨은그림을 찾아내는 일이라는 사실을 비로소 알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