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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소금 시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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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시인의 말

제1부 울타리 말뚝

만선이다__13/ 거미의 건축법__14/ 바다 상영관__16/ 뿌리의 방향__18/ 초록 창끝__20/ 땅이 톡톡 깨어나다__21/ 어떤 권력__22/ 울타리 말뚝__24/ 엄마의 마지막 계절__25/ 꽃씨, 괄호를 열다__26/ 수신__28/ 새 한 마리의 질문__29/ 허공의 식도_-30/ 방앗간 저울__31/ 삽화__32/

제2부 실시간 숲

조용한 승리자들__35/ 호박꽃 엄마__36/ 인간이라는 행성__38/ 벚꽃의 방식__40/ 모심기__41/ 칠흑의 욕조__42/ 모래가 우는 언덕__43/ 어마지두__44/ 돌이 하는 일__46/ 통속적 겨울 1__48/ 모천__49/ 투항의 노래__50/ 실시간 숲__52/ 목련이 타는 한때__53/ 오래된 낭설__54/

제3부 소신공양

기도가 흥건하다__57/ 유년의 등고선__58/ 세월은 손님처럼__60/ 사건 번호 : 봄__62/ 귀의 계곡__64/ 소신공양__65/ 모노레일 탄 것처럼__66/ 구피__68/ 통속적 겨울 2__70/ 봄날의 난동__72/ 빛 따라 흘러가는__73/ 참깨를 살릴게요__74/ 나를 읽는 중__76/ 불편한 동거__78/ 코스모스__79/

제4부 오늘의 블랙홀

오늘의 블랙홀__83/ 나는 덩굴성입니다__84/ 다시 물고기가 되기까지__86/ 아우라지 안부__87/ 좌광천 완행__89/ 장마전선, K__91/ 안구건조증__92/ 바람의 이마를 짚어보는 시간__93/ 퇴선__95/ 들판의 신간들__96/ 아스라이 집 한 채__98/ 저만치 집 한 채__100/ 덩그러니 집 한 채__101/ 현 위치 매매__102/ 여전히 낙하 중__104/

작품해설 : 정훈
사모(思母), 말 그늘에 뉜 울울한 그리움의 지도__109/

저자 소개 1

경남 창녕 우포늪 근처에서 유년기를 보내며 뻘 학교를 졸업했다. 지금도 자연학교 재학 중이며 마주치는 생명 하나, 하나와 눈 맞추며 살고 있다. 2024년 수필집 『어디쯤, 살아가는 중입니다』를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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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6년 09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132쪽 | 140*210*20mm
ISBN13
9791163251170

출판사 리뷰

시인들은 자신의 시에서 허례의 수사나 과장된 비유 혹은 감각적인 언어로 혼미한 시로(詩路)를 걷는 경우가 많은데, 이원자의 경우 일상 체험에서 강하고 오랫동안 유념해 온 대상에 관한 깊은 사유를 바탕으로 군더더기 없는 마음의 그릇과 질감을 보여준다. 번잡하지 않은 언어와 언어 사이의 여백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속에 깊은 고랑이 패어 있음을 느끼기도 한다. 이 점은 신산한 삶의 여정에서도 세계와 시인이 관계 맺는 다양한 갈래의 양상이 지니는 줄기와 곁가지들을 추리는 이성적·미적 기운을 견지하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일상을 영위하면서 체득하는 ‘언어’에 관한 사유가 창작으로 전환될 때 생겨나는 질박하면서 단아한 말의 매무새가, 압축적이고 상징적인 언어를 특징으로 하는 시에 알맞은 방식으로 갈무리되는 것이다. 이번 시집 곳곳에 그런 미덕의 양상이 드러난다. 시인은 특히 어머니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을 숨기지 않고 내보인다. 누구나 혈육의 정과 사랑이 없지 않겠지만, 이번 시집을 관통하고 하나로 수렴하는 주제 의식이 있다면 그것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가파른 언덕이든 풀덤불이든/ 푸르게 척척 뻗어 나가던 손// 손톱 밑 새까만 때가 지워진 적 없이/ 뼈마디 녹는 거야 대수냐는 듯/ 메마른 땅을 더듬던 날들// 아버지 술 냄새 묻어오는 밤이면/ 담 너머 고성이 오가고/ 밥상이 뒤집혀도// 다음 날이면/ 아무 일 없다는 듯 덤덤하게 피어나/ 우리의 그늘을 밝히던 꽃// 마디마디, 우는 것보다 꽃이 쉬워/ 구석진 자리마다 별일 아니라는 듯/ 환해지던 // 마당으로 휙 날아간 라디오가/ 다 부서진 몸으로도 노래 한 가락 멋지게 뽑아내더라고/ 그걸 흉내 내며 배꼽 빠지게 웃던// 굴곡도 농담으로 피워내던 엄마는/ 저승길을 코앞에 두고도/ 합죽합죽, 입으로 자꾸 꽃봉오리 만든다
―「호박꽃 엄마」 전문

위 시에 형상화된 어머니는 특별히 아름답거나 눈물겨운 체험에서 승화된 존재가 아니다. ‘어머니’가 문학에서 표현되는 상징성은 익히 알고 있듯이 헌신이나 무조건적인 사랑, 그리고 한없이 깊고 넓은 마음으로 드러난다. 시인은 “저승길을 코앞에” 둔 어머니를 보며 지난날 어머니가 아버지와 아등바등 살림을 꾸리던 여러 장면을 회상하면서, “아버지 술 냄새 묻어오는 밤이면/ 담 너머 고성이 오가고/ 밥상이 뒤집혀도/ 다음 날이면/ 아무 일 없다는 듯 덤덤하게 피어나/ 우리의 그늘을 밝히던 꽃”으로 어머니를 비유하기도 한다. “우리의 그늘을 밝히던 꽃”은 어머니를 직접 가리키는 시적 은유이기도 하고, 신산했던 젊은 날을 보내었던 시절 어머니가 차지했던,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지탱하고 거칠지만 따뜻했던 몸과 마음으로 집안을 드넓게 드리웠던 등불과 같은 의미로 받아들이고 싶다. ‘어머니’가 지니는 보편적인 상징과 의미를 보듬으면서, 시인이 지나온 삶의 물결에 포근하게 동행했던 존재로서 영원히 지워지지 않고 시인을 감싸는 커다란 꽃잎으로 형상화한 것이다.

밭 들머리에 서면/ 엄마의 수위(水位) 속으로 잠긴다// 흙내 들이켜는 걸/ 지느러미가 먼저 알아/ 단숨에 이랑을 헤집고 다닌다// 아가미로 탁한 내를 털어내며/ 비늘마다 어릴 적 새벽에 닿는다// 깨금발 드는 열무잎/ 해마다 둑을 넘는 유채의 노란 물살// 흙 칠갑한 몸으로/ 아득한 시간 속으로 거슬러 들어가면/ 물컹하게 와닿는 젖줄// 엄마는 나를 이곳에 부화시켜 두고/ 바다로 갔다
―「모천」 전문

「모천」의 주요 소재 또한 앞의 「호박꽃 엄마」에서 형상화한 어머니다. 어머니가 주로 일하던 “밭 들머리에 서면/ 엄마의 수위(水位) 속으로 잠긴다”는 표현에 주목한다. 시인에게 밭은 단지 어머니가 가족을 위해 먹을거리를 수확하던 장소의 의미를 넘어 ‘바다’의 영역이자 공간으로 확장된다. “흙 칠갑한 몸으로/ 아득한 시간 속으로 거슬러 들어가면/ 물컹하게 와닿는 젖줄”이다. 여기서 밭과 어머니는 시인에게는 늘 보아왔던 풍경이지만, “아득한 시간 속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젖줄”이자 “나를 이곳에 부화시켜 두고/ 바다로” 간 어머니가 펼쳐 놓은 세계이자 자궁 속이다. 이러한 어머니에 관한 표상은 오랫동안 그 존재를 믿고 지켜본 시인에게 각인된 진실한 형식이자 존재의 토대에 직결된다. 단순하게 ‘혈육’이라는 관계에 묶인 존재가 아니라 시인의 온 삶을 지탱하면서 기르고 양분을 제공했던 힘과 에너지다. 이러한 관계로 설정할 때 어머니가 남긴 유산은 시인에게는 절대 잃어버리거나 손실되지 않는 마음의 안식처가 된다. 생전 어머니의 자취와 흔적을 헤아리면 언제든 떠오르는 당신의 모습이 기억에서 생생하게 되살아나는 순간을 매번 겪었을 시인의 애틋한 심사(心思)를 생각한다. 한 번 가면 다시 돌아오지 못하는 인간 운명이지만, 세간(世間)에서 맺은 인연이 남긴 향기는 사라지지 않고 위 시처럼 기록으로 영원히 남게 되는 것이다.

들판은 계속 쓴다// 귀퉁이 작은 밭에/ 이름 날 일 없는 풀들끼리/ 빈자리가 하나 없다// 모여 있어도/ 모여 있다는 생각은 없이// 밤낮으로/ 흙의 말씀을 더듬는 잔뿌리들// 제 이름 끝까지 밀고 들어가/ 씨앗을 남겼다// 마침표, 쉼표/ 느낌표도 보이고/ 느낌표에 날개를 단 것도 있다// 풀섶 서고에/ 신간이 가득 들어찼다
―「들판의 신간들」 전문

‘틈’에 관한 시인의 관심은 혈육(어머니)을 넘어 모든 생명체와 존재들이 맞닿은 자리를 건성으로 보아 넘기지 않고 세심하고도 알뜰하게 눈여겨보는 삶의 태도와도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시인에게 이 세상의 모든 존재는 거대한 사유의 흐름이다. 사람에게서는 사단(四端)의 기운과 이치가 실현되는 고귀한 의식이, 자연과 사물에는 미묘한 생명의 발현과 흐름으로 유기적으로 얽힌 눈에 보이지 않는 질서나 감각으로 다가온다. 위 시 「들판의 신간들」은 들판에 피어나는 수많은 풀을 “풀섶 서고에/ 신간이 가득 들어”찬 것으로 비유하는 작품이다. 이런 시각은 단지 들판을 서고나 신간으로 가득 메운 책장으로 바라보는 기발한 착상을 넘어, 생명이 지닌 무조건적 생장과 다툼 없는 결속을 통한 상생의 법칙을 읽어내는 눈길이기에 가능하다. 그러니까 “밤낮으로/ 흙의 말씀을 더듬는 잔뿌리들”을 발견하는 마음의 눈을 확인하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흙의 말씀”이란 생명의 주요 기반인 흙의 기능과 의미가 작동되는 법칙이자 이법이다. 이러한 흙의 본질에서 아낌없이 생겨나는 숱한 식물들은 “제 이름 끝까지 밀고 들어가/ 씨앗을 남”기며 빼곡하게 들어차 숨을 쉬는 세계를 형성한다. 시인에게 이러한 사실은 늘 새롭고 언제라도 환희에 찬 말씀을 들려주는 서고, 다시 말해 제각각 다양한 양상으로 펼쳐지는 생명의 빛깔과 소리를 물리지 않도록 시원하게 들을 수 있는 진귀한 발견으로 전이되는 것이다.

엄마를 산에 묻은 날

흩어졌다 모인 형제들
텅 빈 자리에서
서로 낯선 얼굴로 목소리를 높인다

단란했던 한때의 껍질이
벗겨지는 시간
살이 아프다

처마 밑으로
어마지두, 장대비가 쏟아진다

골방도 빗소리에 귀를 열고
봉지마다 숨죽인 종자들 흐릿하다

속는 줄도 모르고 품었던 씨앗,
속아서 그래도 살아졌을지

무엇을 기다렸기에
호미나 낫은 저리 닳았을까
도망치듯 돌아 나오다가
어마지두, 한 줌씩 챙겨 나오는
엄마라는 절기

씨를 뿌리고
다시 애태울 일로
손바닥 위엔 벌써, 싹이 튼다
―「어마지두」 전문

위 시의 제목인 ‘어마지두’는 시인에 따르면 “엄마가 남긴 말의 씨앗”이다. 사전을 보면 “놀라거나 두려워서 정신이 얼떨떨하여”로 풀이하고 있다. 시인이 풀이한 뜻과 사전적인 용법을 비교하면 아마도 엄마의 죽음과 매장을 계기로 “흩어졌다 모인 형제들”이 “서로 낯선 얼굴로 목소리를 높”이는 속에 경황없는 놀라움과 얼떨떨한 정신을 나타낸 말이 아닐까 추측한다. 이 또한 시인에게는 어쩔 수 없이 “엄마가 남긴 말의 씨앗”이 되는 셈이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게 부모의 죽음과, 이에 연결되는 남은 가족들의 슬픔과 넋두리 혹은 마지막으로 고인(故人)에 대한 추념으로 이어지는 속에 일어나는 소란일 것이다. “무엇을 기다렸기에/ 호미나 낫은 저리 닳았을까/ 도망치듯 돌아 나오다가/ 어마지두, 한 줌씩 챙겨 나오는/ 엄마라는 절기”의 진술에는 시인이 생각하는 어머니에 대한 마음이 절묘하게 들어 있다. 시인에게 어머니는 고향이자 온전한 세계요, 영원한 숨결로써 놓인 존재의 바탕이다. 어머니의 죽음이 불러일으킨 절망과 슬픔에는 이루 헤아리지 못할 인연의 고랑이 켜켜이 접혔다 흘러간다. “한 줌씩 챙겨 나오는/ 엄마라는 절기”, 이 무진장한 나눔과 은혜가 되풀이되는 이 세계의 젖줄에 우리는 기대어 산다. 보듬고 안아 키워 세상에 내보내는 ‘어머니’라는 이름의 세계를 생각하면, 언어로써 나타낼 수 없는 먹먹하고도 울컥한 흐느낌만 가득할 뿐 그 어떤 말로서도 지칭할 수 없는 원대한 사랑이 흐른다. 이 사랑을 먹고 자라는 우리에게 세계는 어머니와 주고받았던 말들이 드리운 그늘에서 마냥 드러눕고만 싶어 한다. 이 마음의 귀퉁이에 번지는 그리움의 지도를 시인은 그리며, 새기며, 매만진다. 이번 시집이 드러내는 의미가 있다면 바로 이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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