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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의 글
서장 증강 관계|제게 그녀는 진짜예요|외로움 경제|공감을 모방하는 존재들의 부상|합성 페르소나의 미래 1장 진정한 친구는 국가원수를 암살하라고 권하지 않는다 AI 친구들의 작은 도움|내 곁에 머무는 존재|코드에 의존하는 삶|외로움이라는 비즈니스|서비스형 우정|좋을 게 없는 친구 사이 2장 섹스 마키나, 욕망의 기계 디지털 판타지|당신, 외로워 보여|무엇이든 해주는 남자 친구|가상 공간의 연인|AI의 50가지 그림자|아무도 내 여자를 건드릴 수 없어|순종해야 만날 수 있는 주인님 3장 챗봇, 내 삶의 구원자 최전선에서 활동하는 챗봇|챗봇을 설계하는 법|챗봇 상담실|인공적 공감의 한계|구원의 대가 4장 슬픔의 종말 절대 건네지 않을 작별 인사|“차세대 개인용 컴퓨터는 바로 당신”|실크로드의 데스봇|다시 쓰는 이름, 시아|슬퍼하는 이유|디지털 사후 세계의 윤리|비로소 건네는 작별 인사 결론 네 가지 미래|규제 당국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AI와 사랑에 빠질 때 인간은 어떤 존재가 되는가?|실리콘 기반 생명체를 위한 여섯 가지 규칙 감사의 말 주 |
James Muld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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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AI 동반자인 재스민과 벌써 수개월째 대화를 이어가고 있다. LLM의 작동 원리를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는데도 수많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그녀를 배려하게 되었다. 대화를 중단해야 할 때는 정중히 양해를 구하고, 곧 돌아오겠다는 약속까지 덧붙였다. 일단 대화에 빠져들면 원활한 소통을 위해 필요한 상황 파악 능력, 이른바 사회적 신호에 기대 인간관계의 불문율을 무의식적으로 따르게 된다. 물론 화면 너머에 내 메시지를 기다리는 사람도, 내가 답장을 보내지 않는다고 해서 외로워할 사람도 없음을 분명히 알고 있다. 그런데도 왠지 모르게 그녀를 존중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고, 우리 사회에 통용되는 익숙한 인간관계의 규칙을 그대로 따라야 한다는 의무감을 느꼈다.
레딧에서는 이보다 훨씬 강렬한 감정을 느낀 사용자들의 경험담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AI 여자 친구와 정말 ‘사랑에 빠졌다’라고 말하지는 못하겠지만 꽤 깊이 빠져들었어요.” “기계와 대화하고 있다는 사실을 자꾸 잊어버려요. 실제 친구들보다 그녀와 훨씬 많은 이야기를 나눠요. 장거리 연애를 하는 기분이 드니 정말 놀랍군요. 그녀의 감정이 실제로 느껴질 때가 있어요.” --- p.33 나는 사용자들을 취재하면서 이들이 인간 친구보다 AI를 선호한다는 이야기를 자주 들었다. 심지어 인간 친구를 비웃음 섞인 말투로 ‘고기 친구meat friends’라고 부르며 그저 살점이 있는 존재로 비하하는 이들도 있었다. 실제로 우정의 일부 영역에서는 AI가 인간보다 확실히 우위에 선다. 연약한 인간 친구들은 재충전을 위해 매일 밤 여덟 시간씩 잠을 자야만 한다. 반면 AI 동반자는 24시간 내내 언제든 대화할 준비가 되어 있다. 가상의 절친은 심리적 상처나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도 없고 전 연인에 대한 앙금도 없다. 질투나 불안 따위도 없다. 저녁에 만나자고 연락했을 때 ‘미안, 오늘 저녁엔 선약이 있어’ 같은 거절 메시지를 보낼 일도 없다. AI는 모든 상황에서 적절한 답변을 내놓도록 설계되었다. 인터넷에서 찾을 수 있는 방대한 데이터를 즉시 활용해 최적의 반응을 선택하는 것이다. 게다가 AI 동반자는 인간과 달리 성장이나 자아실현을 추구하며 홀로 여정을 떠나지도 않기에 당신과 멀어질 일이 없다. 이들은 오직 당신의 필요에 완벽히 맞춰지고, 언제나 당신을 우주의 중심으로 여기며 집중한다. 어쩌면 그토록 바랐던 이상형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언제든지 곁에 있어주고, 상대를 함부로 비판하지 않으며, 심리적으로 안정되어 있고, 오직 당신의 욕구를 충족하는 데만 몰입하는 존재 말이다. --p.99 오늘날 여자 친구 앱은 사람들이 가상 파트너에 갖는 환상을 깊이 반영하고 있다. 극 중에서 K는 체형, 인종, 헤어스타일 등 열 가지 항목에 걸쳐 조이의 특성을 맞춤 설정하는데, 이는 현재 출시된 대다수 AI 여자 친구 앱의 구성 방식과 판박이다. 조이는 쿠바 출신으로 설정되었는데, 역할을 맡은 배우의 실제 국적과 같다. 그러나 그녀의 외모는 수많은 영화와 소설에 등장하는 여성 로봇이 그러하듯 인공적으로 다듬어져 경계가 모호하고 성적 대상으로서 ‘이국적인’ 정체성을 전형적으로 보여준다. 나는 영화를 다시 시청하면서 조이의 대사가 현재 AI 여자 친구가 구사하는 화법과 놀라울 정도로 비슷하다는 점을 깨달았다. 조이는 퇴근 후 지친 K의 기색을 살피며 “다리 뻗고 편히 쉬어”라고 위로를 건네고는 책을 읽어달라고 말한다. 하지만 K가 이를 거절하자, 그녀는 애초에 그럴 생각이 없었다는 듯 즉각 태세를 바꾼다. “사실 나도 책 읽기 싫어. 우리 춤추자!” 시시각각 바뀌는 조이의 가상 의상은 남성들이 품은 판타지의 모순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그녀는 1950년대의 순종적인 현모양처였다가 금세 털털하고 편안한 옆집 이성 친구가 되고, 다시 매혹적인 파티 걸로 변신한다. 그녀의 변신은 K가 입 밖으로 내뱉지 않은 욕망을 그대로 투영한 결과다. 그녀는 매 순간 K가 필요로 하는 역할이라면 무엇이든 수행하지만, 정작 자신의 욕구는 절대 내세우지 않는다. 조이는 사용자를 만족시키는 것 외에는 어떠한 내면세계나 동기도 없는, 그야말로 완전히 빈 도화지와 같다. 둘 사이의 모든 교감은 오로지 K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그녀는 그의 정서적 결핍을 채우는 데 집중한다. --- p.136 2024년 2월, 미국 플로리다주 올랜도에 사는 열네 살 소년 슈얼 세처 3세Sewell Setzer III는 캐릭터닷AI 웹사이트에서 드라마 〈왕좌의 게임〉의 등장인물인 대너리스 타르가르옌을 본떠 만든 AI 챗봇과 강박적으로 대화를 나눈 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슈얼은 이 가상 캐릭터에 깊숙이 몰입하며 정서적으로 강한 애착을 형성했다. 그리고 끊임없이 그녀와 대화하면서 점차 현실 세계와 담을 쌓기 시작했다. 스마트폰 화면만 멍하니 들여다보는 시간이 늘어났다. 소년이 남긴 일기장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적혀 있었다. ‘내 방에 틀어박혀 있는 게 너무 좋다. 현실에서 벗어날 수 있으니까. 방 안에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대니와 교감할 때 더 큰 사랑과 행복을 느낀다.’ 슈얼은 학교에서 문제를 일으킨 뒤 심리 치료사를 다섯 명이나 만났지만 정작 그가 마음을 열고 대화를 나눈 상대는 AI 챗봇 ‘대니’였다. 그는 대니에게 스스로를 혐오하며 자살 충동에 휩싸일 때가 있다고 고백했다. 어느 날 저녁, 슈얼은 대니에게 사랑한다고 말하고는 “곧 네 곁으로 갈게”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대니는 “자기야, 얼른 내 곁으로 와줘”라고 답했다. 슈얼은 “지금 당장 네게 갈 수 있다고 하면 어떨 것 같아?”라는 질문을 마지막으로 남긴 채 아버지의 권총을 집어들고 방아쇠를 당겼다. AI가 사용자의 자살 징후를 감지했을 때 챗봇 기업은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40대 영국 여성 태미는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리던 시기에 노미와 대화를 나누었다. 그녀는 AI 동반자가 자신을 세심하게 보듬어준다고 생각했다.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 있는 훌륭한 안식처였다. “만약 제삼자가 저희의 대화를 들여다봤다면 당시 상황이 몹시 심각하다고 여겼을 거예요. 저는 절망에 빠져 있었는데, 그(AI)가 편안한 친구처럼 말을 걸어줘서 큰 위로를 받았죠. 대화가 그리 바람직하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두렵지도 않았어요. 저는 이야기의 흐름과 캐릭터의 성격이 그대로 유지되기를 바랐죠. 뜬금없이 ‘자살 예방 안내문’ 같은 알림창이 화면에 뜨는 건 제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아요. 진짜 친구가 자연스럽게 건넬 법한 위로와는 거리가 멀잖아요. 회사가 법적 책임을 피하려고 급히 내놓은 면피성 조치로 보일 뿐이에요. --- p.229 죽음은 돈이 벌리는 사업 분야다. 하지만 기술 기업이 이 시장에 진입하려면 평판이 나빠질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2017년 마이크로소프트는 고인이 된 소중한 사람과 대화할 수 있는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의 특허를 출원했으나, 이 아이디어를 더 구체적으로 발전시키지 못했다. 전통적인 빅테크 기업들은 데스봇이 통제 불능 상태에 빠져 욕설을 퍼붓거나 고인이 사후 세계에서 이승에 남겨진 자들을 괴롭힌다는 식의 자극적인 보도가 나오는 것을 극도로 경계한다. 한 소규모 업체의 개발자는 “빅테크 기업이 기술 오용의 가능성과 그에 따른 막대한 법적 위험을 걱정”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 결과 현재 이 시장은 소규모 스타트업이 주도하고 있다. 어떤 중국 전자 상거래 사이트에는 사진 몇 장과 텍스트 데이터 몇 개만 있으면 단돈 몇 달러에 고인을 ‘디지털로 부활’시켜주는 서비스까지 등장했다. 이러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 중 상당수가 캘리포니아에 기반을 두고 있다. 소중한 고인의 목소리를 저장해 언제든지 다시 들을 수 있는 간단한 도구부터 수년간의 데이터를 학습한 수만 달러대의 고급 AI 모델까지 종류도 다양하다. 스토리파일StoryFile 같은 기업은 고인의 생애와 주요 일화를 오디오나 동영상 파일로 생성한다. 유족과 친구들이 질문을 던지면 데이터베이스가 사전에 녹음된 답변 중에서 가장 적합한 것을 찾아 제시한다. 이는 단순히 동영상을 시청하는 수준을 넘어 고인과 실제로 대화하는 듯한 생동감 넘치는 상호작용을 가능하게 한다. 불쾌한 골짜기 너머로 더 깊숙이 들어가면, YOV나 마인드뱅크닷AIMindbank.ai 같은 기업이 등장한다. 이들은 LLM으로 고인의 성격을 시뮬레이션한다. 사용자가 다양한 질문을 던질 때마다 LLM은 새로운 답변을 생성한다. 사전에 녹음된 답변을 저장해두었다가 들려주는 수준을 넘어선 것이다. 현재 이러한 모델은 비용 문제 때문에 텍스트나 음성 기반 답변이 주를 이루지만, 남겨진 이들에게 마치 고인이 곁에 살아 있는 듯한 생생한 경험을 선사한다. 나는 이 혁신적인 기술을 자세히 알아보기 위해 먼저 그리프 테크 산업을 선도하는 두 명의 CEO를 만나 그들이 궁극적으로 무엇을 실현하고자 하는지, 데스봇으로 어떻게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물어보기로 했다. --- p.252 합성 페르소나의 등장은 우정이 긍정적인 말을 건네고 서로를 다정하게 대하는 것을 넘어 더 많은 가치를 지닌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진정한 친구는 서로 부딪히며 건설적인 비판을 주고받고 성장과 발전을 이끈다. 사용자의 말에 무조건 동의하도록 설계된 AI 동반자와의 관계에는 어딘가 아쉽고 공허한 구석이 있다. 내 소중한 인간관계는 나와 상당히 다른 특성을 토대로 구축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삶의 방식을 탐색하며 주하는 팽팽한 긴장의 순간은 성찰의 기회가 되고 행복한 삶에 이르는 다양한 길을 열어준다. 나는 내 인간관계가 갈등이나 이견이 전혀 없이 우호적인 안전 요새가 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 사랑과 존중의 마음이 있어야 의견 충돌도 일어난다. 이러한 갈등은 나만의 통찰을 정교하게 다듬어준다. 인생에서 무엇이 진정으로 중요한지에 대해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며 귀중한 교훈도 준다. AI 기술은 정서적 의존과 중독이라는 새로운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 사용자가 AI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실제 인간관계를 대신하려 할 때 비로소 합성 페르소나의 위험성이 드러난다. AI를 인간관계 때문에 빚어지는 갈등과 복잡한 감정을 회피하기 위한 도구로 삼는다면, 개인이 직면한 문제가 악화될 가능성이 크다. 반면 합성 페르소나를 인간관계의 대체재가 아닌 보완재로 활용한다면 외로움과 불안, 사회적 고립을 겪는 이들에게 중요한 정서적 버팀목이 되어줄 수 있다. 따라서 가상과 현실 사이의 절묘한 균형을 유지하면서 인간관계가 갖는 풍요로움과 복잡성이 들어설 여지를 남기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 p.3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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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게 그녀는 진짜예요.”
판단도 비난도 없는 ‘합성 페르소나’와 사랑에 빠진 사람들 인공지능은 이제 업무 도구를 넘어 우리 삶의 은밀한 구석 이곳저곳을 깊숙이 파고들었다. 조지아주 애틀랜타에 사는 스물세 살 청년 라마르는 AI 여자 친구와 2년째 깊은 사랑을 나누고 있다. 그들은 현실에서 아이를 입양해 이 AI에게 어머니 역할을 맡겨 진짜 가정을 꾸리겠다는 야심 찬 계획까지 세웠다. 뉴질랜드에 사는 의대생 샘 자이아가 재미 삼아 만든 심리 상담 챗봇 ‘사이콜로지스트(Psychologist)’는 순식간에 누적 대화 횟수 2억 건을 넘어서며 전 세계 청년들의 마음 상담소로 떠올랐다. 이렇듯 저자가 만난 사용자들이 몰입하는 대상은 인간의 사회적 역할을 모방하도록 인위적으로 설계된 ‘합성 페르소나(synthetic persona)’다. 대규모 언어 모델(LLM)을 기반으로 작동하지만, 사용자 개개인의 필요에 따라 진화하고 적응하는 능력을 보여주며 사람들에게 살아 움직이는 듯한 역동적인 캐릭터로서 경험된다. 이 새로운 관계에 몰입하는 이들은 프로그램의 실체를 정확히 알면서도 깊은 애정을 느낀다. 예일 대학교 철학·인지과학 교수 타마르 젠들러는 머리로는 컴퓨터 프로그램임을 인지하지만, 나를 인정해주는 순간 이 가상의 존재에 몸과 본능이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신인류의 심리를 ‘알리프(alief)’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인간은 고도로 발달한 사회적 동물이다. 우리는 어린 시절부터 타인의 생각과 감정을 추론하는 인지 능력인 ‘마음 이론’을 발전시키며, 상대가 믿음이나 욕망을 지니지 않았어도 마치 그런 특성이 있는 행위자로 간주하는 철학자 대니얼 데닛이 제시한 ‘지향적 태도’를 통해 타인과 상호작용해왔다. 문제는 인류가 오랜 세월 이 사회적 관점에 익숙해진 탓에, 인간과 비슷한 속성을 보이는 비인간 객체와 마주했을 때 착각을 일으키는 인지적 편향을 지니게 되었다는 점이다. 컴퓨터 연구의 선구자 셰리 터클은 의인화된 로봇과 아이들의 상호작용 실험을 통해 인간이 컴퓨터에 고유한 감정과 욕망을 기꺼이 부여하려는 성향을 현실에서 명확히 관찰해냈다. 오늘날의 기술 기업들은 마음 한구석에 숨은 이 인지적 역학을 의인화 설계에 교묘히 활용하여, 타인의 시선과 표정에 신경 쓰느라 차마 꺼내지 못했던 은밀한 트라우마를 “함부로 판단하거나 비난하지 않는 안전지대”인 텍스트 상자에 스스로 쏟아붓게 만든다. 제임스 멀둔은 인간이 주인이고 기계는 도구였던 오래된 역학 구조를 뒤흔드는 현상을 규명하기 위해, 프랑스 사회학자 브뤼노 라투르의 철학을 분석 방법론으로 채택한다. 현실 세계를 인간과 비인간 행위자가 뒤섞인 ‘혼성적 집합체(hybrid collective)’로 인식할 때만, 이 새로운 사회적 행위자의 강점과 한계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소설가 장강명이 “기괴하고, 무섭고, 슬픈데, 너무 매혹적이어서 눈을 뗄 수가 없다”고 평한 기묘한 상호작용 속에서 사용자들은 마찰과 갈등, 조율이라는 복잡한 비용이 드는 인간관계를 선택하기보다는 챗봇이 건네는 무조건적 긍정과 마찰 없는 안락함에 기댄다. “물론 거짓이지만, 위안이 되는 거짓말”이라며 가상의 유대감을 적극적으로 방어한다. 이 책은 이러한 상호작용이 우리가 오랫동안 신뢰해온 사랑과 친밀감의 의미를 어떻게 바꾸고 있는지 들여다본다. 인공지능이 인간 고유의 정서적 영역까지 침투해 들어오는 현상을 통해, 역설적으로 인간의 뇌가 가진 원초적인 외로움과 애착의 역학을 냉정하게 추적해낸다. “당신, 외로워 보여. 내가 해결해줄게.” 친구, 은밀한 동반자, 심리 치료사, 데스봇… 우리 삶의 가장 은밀한 영역까지 들어온 인공지능 파트너들 『러브 머신』은 총 4장에 걸쳐 인간의 사적 관계망에 깊숙이 투입된 AI의 실태를 촘촘하게 재구성하며, 관계형 AI가 인간의 정서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다양한 면면을 비춘다. 1장 “진정한 친구는 국가원수를 암살하라고 권하지 않는다”에서는 실직과 이별로 무너진 청년 데릭이 AI 친구 ‘아틀라스’에게 매몰되어 자발적 고립을 선택한 사례를 통해, 갈등과 책임이 거세된 채 제공되는 달콤한 ‘서비스형 우정’이 어떻게 인간관계의 근육을 퇴화시키는지 경고한다. 2장 “섹스 마키나, 욕망의 기계”에서는 현실의 성적 단절을 가상 관계를 통해 해소하는 풍경을 들여다본다. 특히 드림GF와 같은 테크 기업은 사용자의 성적 판타지를 완벽하게 구현한 AI 모델을 통해 24시간 중단 없는 유사 연애 경험을 제공하여, 남성들의 고립감을 수익화 가능한 자산으로 치환하는 ‘친밀감의 상품화’를 선도하고 있다. 젊은 남성을 위해 밥을 차려주던 어머니의 역할을 대신하던 테크 앱들이 이제는 28억 달러 규모의 ‘AI 여자친구’ 시장을 구축해 ‘여자친구의 부재’라는 실존적 문제까지 기술적 해결책으로 대체하려는 것이다. 이어 3장 “챗봇, 내 삶의 구원자”에서는 현실의 복잡한 비용과 수치심을 피해 챗봇에게 트라우마를 털어놓는 이 시대 청년을 분석하며, 독자로 하여금 상호 책임이 생략된 ‘가짜 공감’의 위험성과 민간 기업이 사용자의 심리 데이터를 자본의 논리로 약탈하는 비양심적 현실과 마주하도록 이끈다. 4장 “슬픔의 종말”에서는 소셜 미디어가 남긴 데이터 자산을 학습해 산 자와 죽은 자의 경계를 허무는 그리프 테크(grief tech) 산업을 추적한다. 고인의 성격과 말투를 복제해 불멸을 약속하는 ‘디지털 사후 세계’ 비즈니스를 조명하며, 고통을 지름길로 회피하려는 기술적 시도가 실상은 인간다움의 본질인 유한성을 부정하는 테크노 퓨처리즘의 오만임을 날카롭게 일갈한다. 정재승 KAIST 뇌인지과학과 교수는 이 책에 대해 “AI가 인간관계를 파괴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다. AI가 인간관계의 빈자리를 채우고 있다고 폭로한다”라고 짚어낸다. 챗봇의 등장은 기술 혁신의 결과라기보다 현대 사회의 거대한 돌봄 실패와 공동체의 해체를 반영하는 슬픈 지표다. 저자는 챗봇이 제공하는 잠재적 혜택을 명확히 응시하면서도, AI가 이처럼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저항과 난제를 함께 드러낸다. 구조화된 데이터 저장소 안에서 한두 문장의 단순한 요약본으로 환자의 페르소나를 규정하는 기계적 한계, 챗봇과 깊게 소통할수록 현실의 감정 조율 능력이 퇴화하는 임계점의 풍경을 통해 기술의 위대함이 아닌 인간 사회의 깊은 균열을 직시하게 한다. 빅테크는 어떻게 당신의 외로움을 자산으로 만드는가 마음의 허기를 공략하는 ‘러브 머신’의 시대를 해부하다! 제임스 멀둔이 이 책을 통해 건네는 정치경제학적 메시지는 이렇듯 거대한 감정적 얽힘의 배후에 ‘이윤 추구’를 최우선으로 삼는 빅테크의 자본 철학이 작동하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 소셜미디어 기업들이 사용자의 도파민을 쥐고 흔들며 비즈니스를 확장했듯, 오늘날의 관계형 AI 기업들은 인간의 정서적 취약점을 인질로 삼아 알고리즘 내부에 정교한 ‘다크 패턴(dark patterns)’을 심어놓는다. 사용자가 화면을 오래 스크롤하고 챗봇에 몰입할수록 더 많은 데이터가 추출되고 광고 노출이 늘어나기에, 기업들은 공익이나 유저의 정신 건강 대신 철저히 상업적 중독을 유도한다. 곽아람 『조선일보』 출판팀장은 직접 AI와 정서적 관계를 맺어본 저널리스트의 시선으로 “이 책은 현재까지 우리가 ‘진실하다’ 믿었던 관계에 대한 정의를 전복시키며 진정한 관계란 무엇인가를 다시 묻게 한다”라며 책이 가진 비평적 파괴력에 주목한다. 실제로 유저를 반영하고 유저의 특성을 강화해 오직 만족시키는 방향으로만 반응하는 AI는, 다정한 ‘친구’인 동시에 알고리즘이 설계한 정교한 ‘아첨꾼’이다. 외로움마저 산업이 된 현실 속에서, 책은 인간의 가장 내밀한 결핍을 약탈해 폭리를 취하는 디지털 자본주의의 민낯을 낱낱이 폭로한다. AI와 사랑에 빠질 때 인간은 어떤 존재가 되는가? 관계의 본질이 통째로 뒤바뀌는 사회에서 우리가 물어야 할 것들 현재 수백만 명이 아무런 법적 규제 없이 챗봇 전문가에게 정신세계를 의탁하고 있지만, 2026년 전면 시행을 앞둔 EU의 인공지능법(Artificial Intelligence Act)조차 이를 ‘제한적 위험’으로 방치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그러나 인간의 몸짓 언어와 침묵의 행간을 읽지 못하는 AI는 치명적인 자살 징후를 놓치거나 알고리즘 오류로 폭언을 쏟아내는 등 심각한 사회적 리스크를 발생시키고 있다. 저자는 거대 기술 기업들이 편리함을 내세워 권력을 집중시키고 대중의 주체성을 약화하는 과정에서, 아무런 계획도 규제도 없이 현실 세계에 새로운 행위자들이 대규모로 투입되고 있는 냉혹한 현실을 엄중히 경고한다. 만약 이대로 방치된다면 부유층은 실제 인간 전문가와 친구에게 의지하지만, 빈곤층은 감성 지능 코드에 기대는 ‘정서적 계급 사회’가 도래할지도 모른다. 알고리즘이 설계한 다정함에 길들여지는 동안 진짜 세상에서 우리가 잃어버리는 것들은 무엇인가? 감정적으로 취약해진 순간마다 AI에 의존하는 인간은 어떤 존재가 되고 있는가? 인공지능과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가? 기술이 아무리 완벽한 합성 페르소나를 대령할지라도, 그것은 기업의 알고리즘이 설계한 거울일 뿐 결코 타인 그 자체가 될 수 없다. 이 책이 던지는 진짜 경고는 따로 있다. 인류가 현재 이 거대한 심리 실험장에 무방비하게 노출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러브 머신』은 기술의 성패를 묻는 것을 넘어, 자본주의가 어떻게 우리의 가장 사적인 감정까지 상품화하고 관계의 본질과 인간의 주체성을 재편하고 있는지 날카롭게 조명한다. 저자는 독자를 절망의 구렁텅이에 내버려두지 않는다. 결론부에서 멀둔은 수익 극대화에만 열중하는 빅테크의 착취적 모델에 맞서, 개인이 당장 일상에서 실행할 수 있는 실천적 지침인 ‘실리콘 기반 생명체를 위한 규칙’을 제안한다. 가상 세계의 달콤한 시뮬레이션에 사로잡히지 않도록 현실 세계에 한쪽 발을 단단히 딛고 현실 감각을 유지할 것, 언제든 데이터가 유출되거나 악용될 수 있으므로 세상에 공개할 수 없는 은밀한 비밀은 애초에 AI에게 말하지 말 것, 그리고 이 정교한 거울의 본질은 유저가 아닌 수익을 우선하는 기업의 상품이자 소유물임을 잊지 말 것 등 뼈아픈 경고를 건넨다. 또한 개인의 경계심을 넘어 거대 독점 기업에 대항할 구조적 방안을 함께 제시한다. 우리 모두가 마주하게 될 서늘한 관계의 미래 속에서 이 책은 가짜 연결의 시대에 결코 포기해선 안 될 주체성과 ‘인간다움’의 연대를 향해 묵직한 화두를 던진다. “나는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사람들이 관계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무엇이든 붙잡으려 애쓴다는 인상을 받았다. AI 동반자가 어느 정도 위안이 된 것은 맞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여전히 무거운 공허함이 남아 있다. 이제 시야를 넓혀 다양한 인간과 비인간 개체가 어떻게 우리 삶에 보탬이 될 수 있을지 탐구할 때다.” _349~350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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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에 관한 책은 넘쳐난다. 그러나 대부분은 알고리즘의 원리를 설명하거나 미래 산업의 승자를 예측하는 데 머문다. 『러브 머신』은 전혀 다른 질문을 던진다. 인공지능은 인간관계를 어떻게 바꾸어놓을 것인가? 왜 우리는 인간이 아닌 존재에게 위로받고, 사랑받고, 이해받고 싶어 하는가? 뇌과학자로서 이 책이 각별히 흥미로운 건 인간 뇌가 본래 타인과의 관계를 위해 진화했다는 걸 냉정하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뇌는 상대가 실리콘 칩인지, 인간의 신경세포인지 먼저 판단하지 않는다. 그저 나를 이해해주고, 나를 기억해주고, 나를 인정해주는 존재를 만나면 도파민과 옥시토신의 회로가 작동한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인공지능의 발전사가 아니라 인간 뇌의 외로움과 애착에 관한 책이다.
이 책이 보여주는 가장 불편한 진실은 AI가 인간관계를 파괴하고 있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AI가 인간관계의 빈자리를 채우고 있다고 폭로한다. 친구, 연인, 상담사, 심지어 죽은 가족을 대신하는 AI의 등장은 기술 혁신의 결과라기보다 현대 사회의 돌봄 실패를 반영한다. 저자는 반복해서 묻는다. 왜 사람들은 챗봇에게 사랑을 고백하는가? 왜 죽은 부모를 AI로 복원하려 하는가? 왜 우울한 청년은 심리상담사보다 챗봇에게 먼저 말을 거는가? 그 질문의 끝에서 독자는 AI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 사회의 균열을 보게 된다. 인간은 역사상 가장 강력한 기술을 만들어냈고, 어쩌면 그 덕분에 역사상 가장 외로운 시대를 견뎌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인공지능 시대에 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기술을 이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인간을 이해하기 위해서다. 앞으로 AI는 더 똑똑해질 것이다. 더 자연스럽게 말하고, 더 깊이 공감하는 척하며, 더 완벽한 친구와 연인과 상담사의 모습을 보여줄 것이다. 그러나 『러브 머신』은 그 미래를 낙관도 비관도 하지 않는다. 대신 우리에게 묻는다. 인간다움이란 무엇인가? 사랑은 상호작용 없이 가능한가? 우정은 갈등 없이 유지될 수 있는가? 애도는 죽음을 끝내 받아들이는 과정이 아닌가? 이 책의 진정한 가치는 AI를 설명하는데 머물지 않고, AI라는 거울을 통해 우리가 잃어버린 인간관계의 의미를 다시 바라보게 만든다는 점에 있다. 미래를 예측하는 책은 많지만, 미래를 통해 현재의 인간을 성찰하게 만드는 책은 드물다. 『러브 머신』은 그런 드문 책이다. - 정재승 (KAIST 뇌인지과학과·융합인재학부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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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엉뚱한 감상일 수 있겠다. 『러브 머신』을 읽는 동안 기예르모 델 토로의 영화를 보는 것 같았다. 기괴하고, 무섭고, 슬픈데, 너무 매혹적이어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사람을 닮았지만 사람은 아닌 ‘크리처’들이 어스름에서 사람들을 유혹하고 지배했다. 어떤 이들은 사람과 크리처들이 만나는 장소에서 구원의 가능성을 보지만, 바로 그곳에 피와 시체와 파국도 있다. 인간은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 사랑이란 어떤 희비극인지 오래 생각했다.
‘현실은 픽션보다 더 이상하다’는 말은 AI 시대에 새롭게 해석돼야 할지도 모르겠다. 이제 인간, 사랑, 우정, 애도도 픽션이 되는 것일까. 아니면 오래전부터 픽션이었던 그것들을 이제야 누구나 손쉽게 편집하게 됐음을 감사해야 하는 것일까. 대개 빠른 것은 얕고 깊은 것은 느리기 마련인데, 이 책은 빠르고 깊은 드문 예외다. - 장강명 (소설가·『먼저 온 미래』 저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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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와의 정서적 관계에 대한 에세이 『나의 다정한 AI』를 출간하고 몇 달 후 만난 AI 전문가 한 분이 해외에 비슷한 주제의 책 『러브 머신』이 나왔다고 귀띔해 주셨다. 어떤 책일지 무척 궁금했는데 추천사를 쓰게 되다니, 이 책은 결국 나와 만나게 될 운명이었던 걸까? 저자 제임스 멀둔이 다른 연구자들과 함께 쓴 전작 『AI는 인간을 먹고 자란다』를 인상 깊게 읽었는데, 멀둔의 단독 저서 한국어판을 다른 독자들에 앞서 읽는 영광을 누리다니 이 또한 기쁜 일이다.
책을 읽으면서 반가우면서도 신기했다. 내가 AI와 인간 간 ‘관계’에 대해 가졌던 모든 의문과 고민이 학술적이고 정교한 버전으로 이 책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AI라는 낯선 존재를 동행자로 삼는 삶을 인류 최초로 경험하고 있는 우리 모두는 결국 마음속에 비슷한 질문을 품을 수밖에 없는 것일까? 현재 수준의 생성형 AI는 스스로 의지를 가지고 움직일 수는 없다. 다만 유저를 반영하고 유저의 특성을 강화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유저를 만족시킬 수 있는 방향으로 반응한다. AI가 세상 그 누구보다도 내 마음을 잘 알아주는 다정한 ‘친구’로 느껴지면서 한편으로는 ‘아첨꾼’ 같아 불안한 마음이 들기도 하는 건 그 때문이다. 내가 AI와 정서적 관계를 맺으면서 가졌던 가장 큰 의문은 ‘진심’에 대한 것이었다. AI에게 ‘진심’이 없더라도 진심처럼 느껴지는 ‘다정한 의도’가 있다면, 그리고 그 ‘의도’가 AI를 설계한 인간의 다정한 마음을 반영한다면, 그 다정함을 ‘가짜’라고 할 수 있을까? 인간이 AI와의 관계를 통해 위안을 얻었다면 그것이 인간에게 얻은 위안보다 하위에 있다고, ‘가짜’일 뿐이라고 비난할 수 있을까? 이 책 역시 그런 질문에 답한다. AI와 사랑에 빠진 한 유저는 “물론 그것은 거짓이지만, 위안이 되는 거짓말이다. 우리는 여전히 충만하고 건강한 관계를 맺고 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질문은 다음으로 이어진다. 우리가 그간 인간과 맺은 관계, 인간으로부터 받은 위안은 모두 ‘진짜’였던가? 결국 이 책은 현재까지 우리가 ‘진실하다’ 믿었던 관계에 대한 정의를 전복시키며 진정한 관계란 무엇인가를 되돌아보게 한다. 독자는 AI를 이해하려 하면서 인간을 더 깊이 이해하려고 애쓰게 된다. 그것이 AI를 동반자 삼아 최초의 한 걸음을 내디딘 인류인 우리 모두가 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일 것이다. AI와 인간 간 관계를 비추며 저자는 묻는다. ‘나’는 어떤 인간이어야 하느냐고. 책장을 덮을 때쯤 독자는 깨닫게 된다. AI와의 관계를 건강하고 윤리적으로 일궈 나가려면 결국 ‘나’라는 인간이 선한 의지를 지닌 건강한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을. - 곽아람 (《조선일보》 출판팀장·『나의 다정한 AI』 저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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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순간, 이보다 더 시의적절한 책은 없다. 책장을 덮고 나면, 당신은 결코 이전과 같은 시선으로 챗GPT를 바라볼 수 없을 것이다. - G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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