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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서해 40년 만에 그를 다시 만나다_ 이경혜
토혈吐血 고국 십삼 원 탈출기 향수鄕愁 박돌의 죽음 기아飢餓와 살육殺戮 보석 반지 기아棄兒 큰물 진 뒤 폭군暴君 설날 밤 백금白琴 의사醫師 해돋이 그믐밤 담요 금붕어 누가 망하나 만두 팔 개월 저류低流 동대문 이역원혼異域寃魂 최서해 연보 |
曙海, 학송(鶴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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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출기
나는 여태까지 세상에 대하여 충실하였다. 어디까지든지 충실하려고 하였다. 내 어머니, 내 아내까지도 뼈가 부서지고 고기가 찢기더라도 충실한 노력으로 살려고 하였다. 그러나 세상은 우리를 속였다. 우리의 충실을 받지 않았다. 도리어 충실한 우리를 모욕하고 멸시하고 학대하였다. 우리는 여태까지 속아 살았다. 포악하고 허위스럽고 요사한 무리를 용납하고 옹호하는 세상인 것을 참으로 몰랐다. 우리뿐 아니라 세상의 모든 사람들도 그것을 의식치 못하였을 것이다. 그네들은 그러한 세상의 분위기에 취하였었다. 나도 이때까지 취하였었다. 우리는 우리로서 살아온 것이 아니라 어떤 험악한 제도의 희생자로서 살아왔었다. 박돌의 죽음 두 눈에 불이 휑한 박돌 어미는 툇마루 놓인 방 미닫이를 차고 뛰어들어가서 그 집 주인 김 초시의 멱살을 잡았다. 멱살을 잡힌 김 초시는 눈이 둥그레서, “이…… 이…… 이게…… 무슨 일이야?” 하며 황겁하여 윗방으로 들이뛰려고 한다. “이놈아! 네가 시방 우리 박돌이를 끌어다가 불 속에 넣었지? 박돌이를 내놔라! 박돌아!” 날카롭고 처량한 그 소리에 주위의 공기는 싹싹 에어지는 듯하였다. “아…… 아…… 박돌이를 내 가졌느냐? 웬일이냐?” 박돌이란 소리에 김 초시 가슴은 뜨끔하였다. 김 초시는 벌벌 떨면서 박돌 어미 손에서 몸을 빼려고 애를 쓴다. 두 몸은 이리 밀리며 저리 쓰러져서 서투른 씨름꾼의 씨름 같다. (중략) 김 초시 집 마당에는 어린애 어른 할 것 없이 모여들었다. 그러나 모두 박돌 어미의 꼴을 보고는 얼른 대들지 못한다. “응 이놈아!” 박돌 어미는 김 초시의 상투를 휘어잡으며 그의 낯에 입을 대었다. “에구! 사람이 죽소!” 방바닥에 덜컥 자빠지면서 부르짖는 김 초시의 소리는 처량히 울렸다. 사내 몇 사람은 방으로 뛰어들어간다. “이놈아! 내 박돌이를 불에 넣었으니 네 고기를 내가 씹겠다.” 박돌 어미는 김 초시의 가슴을 타고 앉아서 그의 낯을 물어뜯는다. 코, 입, 귀…… 검붉은 피는 두 사람의 온몸에 발리었다. 만두 내 두 손은 민첩하게 가마솥 뚜껑을 열고 만두 한 개를 집어냈다. 그때 내 손이 어찌도 민첩하던지 지금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기적 같았다. 만두를 잡은 나는 기운이 났다. 커다란 널문을 박차다시피 열고 밖으로 뛰어나갔다. 문을 막 나설 때였다. “악!” 하는 소리와 같이 그 번쩍하는 도끼가 내 등골에 내려졌다. 나는 몸서리를 빠르르 치면서 머리를 홱 돌렸다. 그것은 문이 닫히는 소리였다. 모든 것은 나의 착각이었다. 나는 악을 쓰고 한참 뛰다가 비로소 큰 숨을 쉬면서 그 청인의 쾌관을 돌아다보았다. 이때 내 손에 쥐었던 만두는 벌써 절반이나 내 입에 들어갔다.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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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 중반 많은 소설이 식민지 조선의 빈궁을 소재로 다루어 고된 민중들의 삶을 폭로했지만 당시 대부분의 작가들은 엘리트 출신이거나 혹은 부유한 계층이었다. 하지만 최서해는 실제로 가난하고 못 배운 민중의 삶을 살았기 때문에 다른 작가들보다 더 사실적으로 작품 속에 민족이 느끼는 설움의 실체와 궁핍한 실상을 낱낱이, 구체적으로 보여주었다.
유년 시절 아버지를 여의고 보통학교조차 졸업하지 못한 채 가난에 시달리다 간도로 이주했던 체험을 서간체 소설 형식으로 담아낸 [탈출기]뿐만 아니라 가난한 농민들의 궁핍함을 그린 [박돌의 죽음] [기아와 살육] [큰물 진 뒤] [폭군] [이역원혼] 등 24편의 작품에서 핍박받는 자의 입장을 대변하는 작품 경향을 읽을 수 있다. 그가 그린 가난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사회의식 소산이 아니라, ‘체험의 작품화’라 할 수 있겠다. 그는 문체와 기법적인 면에서도 탁월함을 보여 작품의 미학적 측면도 결코 소홀하지 않았던 작가였다. 애플북스의 〈한국문학을 권하다 시리즈〉는 그동안 전체 원고가 아닌 편집본으로 출간되었거나 잡지에만 소개되어 단행본으로 출간된 적 없는 작품들까지 최대한 모아 총서로 묶었다. 현재 발간된 한국문학 전집 중에서 가장 많은 작품을 수록한 전집이라 하겠다. 종이책은 물론 전자책으로도 함께 제작되어 각 초등학교와 중고등학교, 대학교의 도서관은 물론 기업 자료실에도 꼭 필요한 책이다. 내용 소개 [토혈]은 최서해가 간도 체험을 바탕으로 [동아일보]에 발표한 첫 데뷔작이다. 큰 뜻을 품고 고국을 떠났다 간도에서 무일푼으로 돌아와 도배장이가 된다는 내용의 [고국], 가난에 시달리다 견디지 못해 간도로 이농한 후의 궁핍하고 처참한 삶을 예리한 사회의식을 가지고 형상화시킨 [탈출기] 등은 우리 민족의 비참한 삶을 사실적으로 묘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후 상한 고등어를 먹고 돈이 없어 약도 써보지 못한 채 죽음에 내몰리는 [박돌의 죽음], 홍수로 집과 자식을 잃은 뒤 가난을 견디다 못해 부자인 이 주사에게 돈을 강탈하러 가는 [큰물 진 뒤], 극도의 궁핍한 처지에 몰려 가족과 행인을 무차별적으로 살해하는 [기아와 살육] 등의 작품을 통해 불합리한 사회 제도 때문에 민중의 삶이 빈곤과 죽음, 피와 살인 등의 극한 상황으로 점점 더 내몰리는 상황을 가감 없이 보여주었다. 사상 투쟁으로 감옥에 갇힌 아들을 두고 처량한 모습으로 귀국하는 어머니를 그린 [해돋이], 민간전승에 바탕을 두고 변혁의 기대를 희망하는 [저류], 너무 많이 먹어서 병을 앓는 여인과 너무 가난해서 병을 앓는 병자 사이에서 고민하다 병원을 불사르고 봉천행 열차를 타는 [의사] 같은 작품 속에서는 참담한 현실을 개혁하고자 하는 의지도 엿보인다. 소시민적 정서가 짙게 스며 있는 [금붕어] [보석 반지] [동대문] 등과 같이 안온한 생활 속으로 빠져드는 과도기적인 작품도 몇몇 선보였지만, 자기 자식을 살리기 위해 하인을 죽음으로 모는 [그믐밤], 자신의 아이를 남의 집 앞에 버리는 [기아], 배고픔을 참지 못하고 중국집에서 만두를 훔쳐 먹는 [만두]와 같은 작품들을 통해 최서해는 하층민의 처절한 삶을 사실적으로 보여주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