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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원 닮은 나 _ 고정욱
[내가 왜 이 소설을 썼나] 제행무상 번뇌무진 파계 요석궁 용신당 방랑 재회 도량 이광수 연보 |
李光洙, 춘원春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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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p. 15~16 나는 왜 이 소설을 썼나
그는 국민으로는 애국자요, 승려로는 높은 보살이다. 중생을 건진다는 보살의 대원은 나는 때, 죽는 때에도 잊거나 잃는 것이 아니어니, 하물며 어느 때에랴. 보살의 하는 일은 모두 자비행이다. 중생을 위한 행이다. 혹은 국왕이 되고 혹은 거지가 되고 혹은 지옥에 나고 혹은 짐승으로 태이더라도 모두 중생을 건지자는 원에서다. 그러므로 원효대사의 진면목은 그의 보살원과 보살행에 있는 것이다. 내가 이 소설에 그릴 수 있는 것은 그의 겉에 나타내인 행이다. 만일 독자가 이 소설을 읽고 원효대사의 내심의 대원과 대자비심에 접촉한다 하면, 그것은 내 붓의 힘이 아니요, 오직 독자 자신의 마음의 힘이다. 나는 이 소설에서 원효를 그릴 때에 그의 환경인 신라를 그렸다. 왜 그런고 하면 신라라는 나라가 곧 원효이기 때문이다. 크게 말하면 한 개인이 곧 인류 전체이지마는 적어도 그 나라를 떠나서는 한 개인을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원효는 사람이어니와 신라 나라 사람이었고, 중이어니와 신라 나라 중이었다. 신라의 역사에서 완전히 떼어내인 원효란 한 공상에 불과하다. 원효뿐이 아니라 이 이야기에 나오는 요석공주도 대안법사도 다 신라사람이다. 그들은 신라의 신앙과 신라의 문화 속에서 나고 자란 것이다. 여기 민족의 공동 운명성이 있는 것이다. p. 291 원효는 저를 원망하고 제 마음이 단련되지 못하였음을 성화하였다. 원효는 스스로 이구離垢 행자라고 생각하였다. 아직 나는 자유자재한 자는 아니다. 억지로 저를 이기어 나가며 조금씩 조금씩 때를 벗으려는 행자에 불과하다고 생각하였다. ‘이치로는 깨달은 듯하건마는 마음이 말을 아니 듣는다.’ 원효는 이렇게 자탄하였다. ‘젖지 아니하고 물들지 아니하는 원효.’ 이것이 되려면 많은 수련이 필요한 것을 느낀 것이었다. 이렇게 생각하면 원효는 엄청난 자존심이 푹 줄어들어서 제가 몇 푼어치 아니 됨을 느꼈다. 원효는 어머니의 산소를 어두움 속에 다시 바라보았다. ‘어머니, 이 자식은 아직 어머니를 제도해드릴 힘이 없습니다. 저를 제도하지 못하였으니 어떻게 남을 제도합니까. 어머니, 이 자식의 나이가 벌써 사십을 바라봅니다. 그러하건만 아직 저를 건지지 못하였습니다.’ 원효는 턱에 자란 수염을 쓸어보았다. ‘어머니, 세상이 이 자식을 원효대사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이 자식은 남의 스승이 될 사람이 아직 못 되었습니다. 다시 어머니 산소를 찾을 때에는 반드시 정말 원효대사가 되겠습니다.’ pp. 543~544 마침 사월 파일, 온 장안이 관불회로 집집에 등을 달고 아이 어른이 모두 새 옷을 입고 거리에 가득 찬 날, 원효가 서울 거리에 나타났다. 바람과 오십 명 도적 두목과 요석공주, 아사가, 사사마 등을 데리고 오는 것이다. 원효가 요석공주와 유모에게 업힌 설총과 아사가를 데리고 앞을 서고 사사마가 칼을 차고 바람 이하 오십 명 도적의 두목을 숙마바로 손과 허리를 묶어서 그 끈을 사사마가 잡고 끌었다. 수백 명 거지떼가 의명의 인솔을 받아서 원효를 맞아 모두 절하고 뒤를 따랐다. 대각간 유신이 부인 지조공주와 함께 나와 원효를 맞고 수없는 백성들이 이 광경을 보려고 길가에 도열하였다. 유신은 원효의 앞에 와서 말을 내리고 지조공주도 가마에서 내려서 형 요석공주와 만났다. 원효는 길에 무릎을 꿇은 바람과 오십 명 도적 두목을 가리켜, “이 사람들이 전날 죄를 뉘우치고 나라 법대로 벌을 받는다고 자진하여 결박을 지고 왔소.” 하고 또 사사마와 아사가가 충신 장춘랑의 후손인 것을 말하였다. 유신은 바람과 오십 명 두목을 향하여, “너의 죄 만 번 죽어 마땅하거니와 원효대사의 제도를 받았다는 뜻 들으시고 상감마마 분부하시기를 이로부터 나라에 충성하기를 맹세할진댄 모든 죄를 용서하실뿐더러 각각 재주 따라 나라 일에 씁신다 하셨으니 그리 알아라.” 하고 어명을 전달하였다. 바람과 일동은 머리를 조아렸다. 바람은 왕자의 대우를 받아 서당장군이 되고 다른 두목들도 각각 군직을 받게 되었다. 이로부터 몇 해 뒤에 신라가 백제를 칠 때에 황산 싸움에 용감히 싸운 장수들이 이들이요, 또 죽기를 무릅쓰고 백제와 고구려의 국정을 염탐한 것이 거지떼들이었다. 원효는 산간에 숨어서 도를 닦고 제자들을 가르치고 요석공주와 아사가는 평생에 원효를 따르는 비구니가 되었다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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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학을 권하다 시리즈]는 누구나 제목 정도는 알고 있으나 대개는 읽지 않은, 위대한 한국문학을 즐겁게 소개하기 위해 기획되었다. ‘즐겁고 친절한 전집’을 위해 총서 각 권에는 현재 문단에서 활발하게 활동 중인 10명의 작가들이 “내 생애 첫 한국문학”이라는 주제로 쓴 각 작품에 대한 인상기, 혹은 기성작가를 추억하며 쓴 오마주 작품을 어려운 해설 대신 수록하였고, 오래전에 절판되어 현재 단행본으로는 만날 수 없는 작품들까지도 발굴해 묶어 국내 한국문학 총서 중 최다 작품을 수록하였다. 한국문학을 권하다 《원효대사》에는 청소년들에게 큰 사랑을 받고 있는 고정욱 작가가 쓴 춘원 이광수 작품을 처음 읽었을 때 느꼈던 감동과 재미를 담은 인상기가 실려 있다. 고정욱 작가는 고등학생 시절, 짝사랑 소녀를 멀리서 훔쳐보고 설레는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와 이팔청춘의 긴 밤에 춘원 이광수의 소설을 읽으며 다시 한 번 설?다는 에피소드를 털어놓으며, 춘원 작품의 대중적 재미와 마력과도 같은 흡인력, 섬세한 인물묘사에 대해 작가로서 영감을 받았음을 이야기한다. 《원효대사》는 춘원 이광수가 수양동우회사건, 안창호의 죽음, 친일 등의 시련을 겪으면서 정신적 갈등이 심화되었던 1942년에 226회에 걸쳐 [매일신보]에 연재한 그의 마지막 장편 역사소설이다. 우리말과 우리글을 일체 쓸 수 없도록 한 암흑의 시기, 순우리말로 쓰인 작품으로 마지막까지 민족의 정신인 언어를 지키려 한 소설로도 평가받을 수 있다. 문학적 원숙기인 지천명의 나이에 쓴 이 작품은 신문 연재라는 불리한 점을 이기고 소설적 재미와 유려한 문체 둘 다를 잡은 것으로 평가되어 그의 수많은 역사소설 가운데서도 으뜸으로 꼽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