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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효대사
이광수 장편소설
이광수
애플북스 2014.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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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학을 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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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춘원 닮은 나 _ 고정욱

[내가 왜 이 소설을 썼나]
제행무상
번뇌무진
파계
요석궁
용신당
방랑
재회
도량

이광수 연보

저자 소개 1

李光洙, 춘원春園

호는 춘원(春園). 한국 현대소설의 새로운 장을 개척한 가장 중요한 작가다. 조선왕조의 국운이 기울어가던 구한말에 평안북도 정주에서 출생하여, 일찍 부모를 여의고도 두 차례에 걸친 일본 유학을 통하여 근대사상과 문학에 눈뜨고 이를 한국적 사상 및 문학 전통에 접맥시켜 새로운 문학의 시대를 열어나갔으며, 한국전쟁 와중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 붓을 놓지 않고 불굴의 의지로 놀라운 창작적 삶을 이어간 작가였다. 14세 때 일진회 유학생으로 도일하여, 메이지 중학부에서 공부하면서 소년회(少年會)를 조직하고 [소년]지를 발행하는 한편 시와 평론 등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와세다대학 철학과에
호는 춘원(春園). 한국 현대소설의 새로운 장을 개척한 가장 중요한 작가다. 조선왕조의 국운이 기울어가던 구한말에 평안북도 정주에서 출생하여, 일찍 부모를 여의고도 두 차례에 걸친 일본 유학을 통하여 근대사상과 문학에 눈뜨고 이를 한국적 사상 및 문학 전통에 접맥시켜 새로운 문학의 시대를 열어나갔으며, 한국전쟁 와중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 붓을 놓지 않고 불굴의 의지로 놀라운 창작적 삶을 이어간 작가였다. 14세 때 일진회 유학생으로 도일하여, 메이지 중학부에서 공부하면서 소년회(少年會)를 조직하고 [소년]지를 발행하는 한편 시와 평론 등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와세다대학 철학과에 입학, 1917년 1월 1일부터 한국 신문학 사상 최초의 장편인 『무정』을 연재했다.

1919년 도쿄 유학생의 2 ·8독립선언서를 기초한 후 상하이로 망명, 임시정부에 참가하여 독립신문사 사장을 역임했다. 1923년 동아일보에 입사하여 편집국장을 지내고, 1933년조선일보 부사장을 거치는 등 언론계에서 활약했고, 1937년 수양동우회 사건으로 투옥되었다가 보석된 뒤부터 본격적인 친일 행위를 했다.1939년에는 친일어용단체인 조선문인협회 회장이 되었으며 가야마 미쓰로라고 창씨개명을 하였다. 8 ·15광복 후 반민법으로 구속되었다가 병보석으로 출감했으나 6 ·25전쟁 때 납북되었다.

34년 동안 작가로 활동하면서 『개척자』, 『선도자』, 『재생』, 『마의태자』,『단종애사』, 『군상』, 『흙』,『유정』, 『이순신』, 『그 여자의 일생』, 『이차돈의 사』, 『그의 자서전』, 『사랑』, 『원효대사』 등 60여 편의 소설과 시가, 수필, 논문, 평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계몽주의 문학을 통하여 브나로드 운동 등 사회개혁 활동을 북돋우기도 하였다. 일제 시대 그의 친일 행각에 대한 논란이 여전히 남아 있으며, 한국전쟁 당시 납북되었다가 자강도에서 병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문학은 50년이라는 지속성을 갖고 있을 뿐 아니라 소설 외에도 시가·평론·수필 등 전영역에 걸친 방대한 규모를 드러냈다. 그러나 주류는 역시 소설이며 더불어 문학사적 가치를 1차적으로 결정해주는 것은 1910년대 계몽주의 소설들이다. 이 시기의 장편 『무정』(1917)은 우선 시제의 정확한 구별과 새롭고 의욕적인 문체 등으로 형식 면에서 근대소설로서의 획기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다. 특히 이전의 신소설과 달리 당대인들의 삶과 성격을 실감나게 그렸고, 사회현실에 대응하는 젊은 지식인의 내면세계를 잘 그려냈다는 점에서 근대성을 획득하고 있다. 또한 시대적 이념이라 할 수 있는 부르주아 계몽주의 입장에서 자유결혼 및 근대적 자아각성의 문제 제기를 통해 전통적 인습·윤리를 반대하고, 신교육·신문명을 통한 자강주의를 주장했다. 그러나 이 작품에 나타난 추상적 계몽주의, 식민지 현실에 대한 정확한 역사적 인식의 결여는 『무정』을 진정한 의미의 근대소설로의 평가를 유보하게 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무정』과 같은 계몽소설의 연장에 놓이는 『흙』은 농촌계몽소설로서, 브나로드 운동 등의 민족적 교화운동의 일환에서 나온 작품이다. 이광수의 농촌현실에 대한 관심은 이보다 앞선 1916년 『매일신보』에 발표한 『농촌계발』이라는 논문에서 발견되는데, 그는 이 글에서 우리 농촌의 결점 중의 하나로 '교육이 없음'을 지적하며 선각자적 지식인이 농촌계발에 앞장서야 함을 주장했다.

이러한 그의 정신에서 나온 『흙』은 농민과의 정신적 연대성이 고조되던 당대의 상황을 반영하며 주인공 '허숭'은 자신의 신분(변호사)을 버리고 농촌으로 돌아가는 이상적인 지식인으로 그려진다. 한편 이광수의 작품 중 상당수가 남녀의 애정을 다루고 있는데 『유정』(1933)·『그 여자의 일생』(1934~35)·『사랑』(1938) 등에 나타난 남녀간의 애정은 통속적인 애정소설과는 달리 정신적인 이상주의를 지향하는 특유한 성격을 지닌다.

이광수는 『단종애사』(1928~29)를 포함한 다수의 역사소설을 발표해 역사소설가로서의 면모를 충분히 발휘했다. 그가 역사소설을 본격적으로 발표하기 시작한 시기는 1920년대 후반이며, 일제에 대한 직접적인 대항이 어려워지자 현실적인 소재보다 역사소설의 비유적 기능을 빌려 현실을 비판하고 이에 항의하려는 역사소설을 쓴 것으로 보인다. 대표작인 『이순신』(1931~32)·『이차돈의 사』(1935~36)·『공민왕』(1937) 등은 옛 것을 재현하여 민족의식을 고취시키고 역사를 대중화한 면에서 긍정적 평가를 받고 있으나, 결과적으로는 복고주의에 흘러 당대 현실에 대응한 실현적 관심을 제기하지 못했다는 비판도 받는다.

이광수의 대표적 평론은 초기의 『문학의 가치』(1910)· 『문학이란 하(何)오』(1916) 등을 들 수 있다. 이는 한국 최초의 본격적 평론이라 할 수 있으나 명확한 문학관에 입각하여 하나의 문학적 주의를 이론적으로 보여주지 못하고 서구 문학의 여러 주의를 체계 없이 나열한 한계를 드러낸다. 초기의 잡다한 주의들은 그후 톨스토이 예술론의 영향 아래 공리주의 내지 계몽주의에 뿌리를 내렸고 이후의 문학론들은 대개가 '인생을 위한 예술' 및 '도덕과 예술의 일치'를 강조하는 것으로 모아졌다. 그래서 그의 논설은 항상 주목이 되었고 당시 사회에 큰 물의를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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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14년 11월 28일
쪽수, 무게, 크기
580쪽 | 150*210*35mm
ISBN13
9788994353715

책 속으로

pp. 15~16 나는 왜 이 소설을 썼나
그는 국민으로는 애국자요, 승려로는 높은 보살이다. 중생을 건진다는 보살의 대원은 나는 때, 죽는 때에도 잊거나 잃는 것이 아니어니, 하물며 어느 때에랴. 보살의 하는 일은 모두 자비행이다. 중생을 위한 행이다. 혹은 국왕이 되고 혹은 거지가 되고 혹은 지옥에 나고 혹은 짐승으로 태이더라도 모두 중생을 건지자는 원에서다. 그러므로 원효대사의 진면목은 그의 보살원과 보살행에 있는 것이다. 내가 이 소설에 그릴 수 있는 것은 그의 겉에 나타내인 행이다. 만일 독자가 이 소설을 읽고 원효대사의 내심의 대원과 대자비심에 접촉한다 하면, 그것은 내 붓의 힘이 아니요, 오직 독자 자신의 마음의 힘이다.
나는 이 소설에서 원효를 그릴 때에 그의 환경인 신라를 그렸다. 왜 그런고 하면 신라라는 나라가 곧 원효이기 때문이다. 크게 말하면 한 개인이 곧 인류 전체이지마는 적어도 그 나라를 떠나서는 한 개인을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원효는 사람이어니와 신라 나라 사람이었고, 중이어니와 신라 나라 중이었다. 신라의 역사에서 완전히 떼어내인 원효란 한 공상에 불과하다. 원효뿐이 아니라 이 이야기에 나오는 요석공주도 대안법사도 다 신라사람이다. 그들은 신라의 신앙과 신라의 문화 속에서 나고 자란 것이다. 여기 민족의 공동 운명성이 있는 것이다.

p. 291
원효는 저를 원망하고 제 마음이 단련되지 못하였음을 성화하였다. 원효는 스스로 이구離垢 행자라고 생각하였다. 아직 나는 자유자재한 자는 아니다. 억지로 저를 이기어 나가며 조금씩 조금씩 때를 벗으려는 행자에 불과하다고 생각하였다. ‘이치로는 깨달은 듯하건마는 마음이 말을 아니 듣는다.’
원효는 이렇게 자탄하였다.
‘젖지 아니하고 물들지 아니하는 원효.’
이것이 되려면 많은 수련이 필요한 것을 느낀 것이었다.
이렇게 생각하면 원효는 엄청난 자존심이 푹 줄어들어서 제가 몇 푼어치 아니 됨을 느꼈다.
원효는 어머니의 산소를 어두움 속에 다시 바라보았다.
‘어머니, 이 자식은 아직 어머니를 제도해드릴 힘이 없습니다. 저를 제도하지 못하였으니 어떻게 남을 제도합니까. 어머니, 이 자식의 나이가 벌써 사십을 바라봅니다. 그러하건만 아직 저를 건지지 못하였습니다.’
원효는 턱에 자란 수염을 쓸어보았다.
‘어머니, 세상이 이 자식을 원효대사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이 자식은 남의 스승이 될 사람이 아직 못 되었습니다. 다시 어머니 산소를 찾을 때에는 반드시 정말 원효대사가 되겠습니다.’
pp. 543~544
마침 사월 파일, 온 장안이 관불회로 집집에 등을 달고 아이 어른이 모두 새 옷을 입고 거리에 가득 찬 날, 원효가 서울 거리에 나타났다. 바람과 오십 명 도적 두목과 요석공주, 아사가, 사사마 등을 데리고 오는 것이다. 원효가 요석공주와 유모에게 업힌 설총과 아사가를 데리고 앞을 서고 사사마가 칼을 차고 바람 이하 오십 명 도적의 두목을 숙마바로 손과 허리를 묶어서 그 끈을 사사마가 잡고 끌었다.
수백 명 거지떼가 의명의 인솔을 받아서 원효를 맞아 모두 절하고 뒤를 따랐다.
대각간 유신이 부인 지조공주와 함께 나와 원효를 맞고 수없는 백성들이 이 광경을 보려고 길가에 도열하였다. 유신은 원효의 앞에 와서 말을 내리고 지조공주도 가마에서 내려서 형 요석공주와 만났다.
원효는 길에 무릎을 꿇은 바람과 오십 명 도적 두목을 가리켜,
“이 사람들이 전날 죄를 뉘우치고 나라 법대로 벌을 받는다고 자진하여 결박을 지고 왔소.”
하고 또 사사마와 아사가가 충신 장춘랑의 후손인 것을 말하였다.
유신은 바람과 오십 명 두목을 향하여,
“너의 죄 만 번 죽어 마땅하거니와 원효대사의 제도를 받았다는 뜻 들으시고 상감마마 분부하시기를 이로부터 나라에 충성하기를 맹세할진댄 모든 죄를 용서하실뿐더러 각각 재주 따라 나라 일에 씁신다 하셨으니 그리 알아라.”
하고 어명을 전달하였다. 바람과 일동은 머리를 조아렸다.
바람은 왕자의 대우를 받아 서당장군이 되고 다른 두목들도 각각 군직을 받게 되었다. 이로부터 몇 해 뒤에 신라가 백제를 칠 때에 황산 싸움에 용감히 싸운 장수들이 이들이요, 또 죽기를 무릅쓰고 백제와 고구려의 국정을 염탐한 것이 거지떼들이었다.
원효는 산간에 숨어서 도를 닦고 제자들을 가르치고 요석공주와 아사가는 평생에 원효를 따르는 비구니가 되었다

---본문 중에서

출판사 리뷰


[한국문학을 권하다 시리즈]는 누구나 제목 정도는 알고 있으나 대개는 읽지 않은, 위대한 한국문학을 즐겁게 소개하기 위해 기획되었다. ‘즐겁고 친절한 전집’을 위해 총서 각 권에는 현재 문단에서 활발하게 활동 중인 10명의 작가들이 “내 생애 첫 한국문학”이라는 주제로 쓴 각 작품에 대한 인상기, 혹은 기성작가를 추억하며 쓴 오마주 작품을 어려운 해설 대신 수록하였고, 오래전에 절판되어 현재 단행본으로는 만날 수 없는 작품들까지도 발굴해 묶어 국내 한국문학 총서 중 최다 작품을 수록하였다.
한국문학을 권하다 《원효대사》에는 청소년들에게 큰 사랑을 받고 있는 고정욱 작가가 쓴 춘원 이광수 작품을 처음 읽었을 때 느꼈던 감동과 재미를 담은 인상기가 실려 있다. 고정욱 작가는 고등학생 시절, 짝사랑 소녀를 멀리서 훔쳐보고 설레는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와 이팔청춘의 긴 밤에 춘원 이광수의 소설을 읽으며 다시 한 번 설?다는 에피소드를 털어놓으며, 춘원 작품의 대중적 재미와 마력과도 같은 흡인력, 섬세한 인물묘사에 대해 작가로서 영감을 받았음을 이야기한다.
《원효대사》는 춘원 이광수가 수양동우회사건, 안창호의 죽음, 친일 등의 시련을 겪으면서 정신적 갈등이 심화되었던 1942년에 226회에 걸쳐 [매일신보]에 연재한 그의 마지막 장편 역사소설이다. 우리말과 우리글을 일체 쓸 수 없도록 한 암흑의 시기, 순우리말로 쓰인 작품으로 마지막까지 민족의 정신인 언어를 지키려 한 소설로도 평가받을 수 있다. 문학적 원숙기인 지천명의 나이에 쓴 이 작품은 신문 연재라는 불리한 점을 이기고 소설적 재미와 유려한 문체 둘 다를 잡은 것으로 평가되어 그의 수많은 역사소설 가운데서도 으뜸으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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