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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함이라는 착각
01 AI 슬롭의 등장과 정의 02 AI는 왜 다 비슷하게 쓰는가 03 불완전성의 미학사와 AI 시대의 인간 증명 04 AI가 그릴 수 없는 단 하나, ‘실수’ 05 글리치 아트와 감시에 대한 시각적 저항 06 Y3K 미학과 디지털 불안의 인식론 07 카오스 패키징과 AI 시대 잉여의 경제학 08 레트로 퓨처리즘과 아날로그 향수 09 알고리즘이 흉내 낼 수 없는 생장 10 결함을 지키는 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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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에서는 AI 슬롭을 두고 ‘언제나 있어 왔던 저품질 콘텐츠의 연장선’이라거나 ‘기술이 발전하면 자연히 해결될 과도기적 현상’이라고 가볍게 넘기기도 한다. 그러나 이 낙관론에는 중요한 맹점이 있다. 코머스 등이 지적하듯, AI 슬롭은 단순히 ‘나쁜 콘텐츠’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정보를 받아들이고 판단하는 환경, 즉 인식론적 환경(epistemic environment) 자체의 문제다. 나쁜 콘텐츠가 많아지는 것과 무엇이 믿을 만한 정보인지 판단하는 능력 자체가 흔들리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AI 슬롭은 후자에 해당한다.
---「01_“AI 슬롭의 등장과 정의”」중에서 이쯤에서 우리는 한 발짝 물러서 물어야 한다. 러스킨과 모리스, 그리고 와비사비와 킨츠기. 시대도 다르고 문화권도 전혀 다른 이 전통들이 공통으로 가리키는 것은 무엇인가? 하나의 명제로 수렴된다. 불완전성은 생명 있는 것이 시간 속에서 존재했다는 증거이며, 그 증거야말로 아름다움의 진정한 원천이라는 것. 흠은 결핍이 아니라 현존의 흔적이다. 균열은 실패가 아니라 살아온 시간의 기록이다. 그리고 완벽이 제거하려는 바로 그것이 사실은 우리가 지켜야 할 가장 소중한 것이다. 이 명제는 AI 글쓰기의 구조적 완벽주의와 정확히 대척점에 놓인다. AI는 흔들림을 제거하고, 망설임을 지우고, 마찰을 없애도록 훈련된다. 그러나 미학사의 가장 깊은 맥락에서 보면, AI가 제거하려는 바로 그 마찰이 인간이 글을 썼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AI에게 요구하는 완벽함은 어쩌면 아름다움을 향한 요구가 아니라, 생명의 흔적을 지워 달라는 요구일지도 모른다. ---「03_“불완전성의 미학사와 AI 시대의 인간 증명”」중에서 그렇다면 이 장에서 말하는 디지털 불안이란 정확히 무엇인가. 그것은 특정한 역사적 조건 속에서 만들어지는 구조적 감각이다. ‘구조적’이라는 표현이 핵심이다. 이는 개인의 성격이나 정신 상태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공통으로 처해 있는 상황 자체에서 비롯되는 감각이라는 뜻이다. 그 조건을 한 문장으로 정의하면 다음과 같다. 우리가 매일 살아가고 있는 정보 환경의 기반 그 자체가, 더 이상 자명하게−아무런 의심 없이 당연하게−신뢰될 수 없게 된 상태. 예를 들어보자. 예전에는 인터넷에서 어떤 글을 읽으면 적어도 ‘이것을 쓴 사람이 있다’는 사실만큼은 의심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지금 내가 읽고 있는 이 글, 이 이미지, 이 댓글이 정말 사람이 쓴 것인지, 아니면 AI가 자동으로 생성한 것인지 확신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이 근본적인 신뢰의 붕괴가 바로 디지털 불안의 구조적 조건이다. ---「06_“Y3K 미학과 디지털 불안의 인식론”」중에서 이 오브제들이 진정으로 주장하고자 하는 바는 이미지의 유일성이 아니라, 물질이 거쳐 온 생장 과정 자체의 비반복성이다. 균사체 의자는 완전히 동일한 설계도와 완전히 동일한 균주를 사용하여 제작하더라도, 결코 두 번 다시 똑같이 만들어질 수 없다. 온도의 1도 차이, 습도의 미세한 변동, 균사가 실제로 접촉한 기질의 섬유 배열이 최종적인 형태를 결정짓기 때문이다. 이것은 어떠한 알고리즘도 원리적으로 복제해 낼 수 없는 종류의 우연성이다. 최적화 함수라는 것은 애당초 “이미 일어나버린 구체적 생장의 흔적”을 입력값으로 받아들일 변수 자체를 갖고 있지 않다. 바로 이것이 AI 시대에 새롭게 요청되는 아우라의 형식이다−그것은 더 이상 이미지의 유일성으로부터가 아니라, 물질이 겪어낸 시간의 비반복성으로부터 발원하는 아우라다. ---「09_“알고리즘이 흉내 낼 수 없는 생장”」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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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슬롭에 맞서 인간의 흔적을 다시 읽다
생성형 AI가 만든 글과 이미지가 인터넷을 뒤덮고 있다. 문법은 정확하고 문장은 유려하지만, 다 읽고 나면 남는 것이 없다. 이렇게 대량 생산된 무난하고 공허한 콘텐츠를 ‘슬롭’이라 부르며, 그 배후에서 사라지는 인간의 흔적을 추적한다. 이 책은 슬롭을 단순한 저품질 콘텐츠의 문제가 아니라, 평균과 최적화를 향해 설계된 AI가 정보 환경 전체를 균질하게 바꾸는 현상으로 바라본다. 모두를 만족시키려는 문장은 결국 아무에게도 깊이 닿지 못하며, 흠 없는 표면은 오히려 그 뒤에 아무도 없다는 징후가 된다. 러스킨과 모리스, 와비사비와 킨츠기, 베냐민의 아우라, 포스트현상학을 경유하며 인간다움의 조건을 완벽함이 아니라 결함에서 찾는다. 손의 흔적, 실수, 균열, 망설임은 실패가 아니라 특정한 사람이 특정한 시간과 장소에 존재했다는 서명인 것이다. 이어 글리치 아트, Y3K 미학, 카오스 패키징, 레트로 퓨처리즘, 유기적 디자인을 통해 오류와 불안, 과잉과 생장이 어떻게 알고리즘의 매끄러움에 저항하는지도 살피며 완벽함이 아니라 결함이야말로 지금 우리가 지켜야 할 것임을 논증한다. 인간 역시 AI의 문체를 닮아 가는 시대, 불완전성을 지키는 일은 더 이상 자연스러운 상태가 아니라 의식적인 창작과 독해의 실천이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