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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 수원의 7평
1장 - 이혜진의 비행기 2장 - 강민호의 새 수첩 3장 - 소은이의 학교 4장 - 이서진의 논문 5장 - 옌지의 봄 6장 - 황기태의 아들 7장 - 이혜진과 강민호 8장 - 영변의 온도 9장 - 윤정호의 두 번째 기사 10장 - 소은이의 장례 11장 - 카르텔의 심판 12장 - 황해의 빨간 점 13장 - 김도훈의 입양 서류 14장 - 이혜진의 양양 15장 - 유엔 결의 16장 - 분화 1주년 에필로그 - 나루의 걸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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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년이 걸려도, 문장은 도착한다
「백두산, 천 년의 서사」 7권의 부제는 '사신의 귀환'이다. 5권이 분화의 하루를, 6권이 그 뒤의 첫 겨울을 건넜다면, 7권은 분화 1주년까지의 한 해를 건넌다. 재난 서사가 대개 다루지 않는 구간이다. 무너진 것을 치우고 나면 무엇이 남는가. 남은 사람들은 무엇을 하며 사는가. 작가는 이 질문에 사건이 아니라 동작으로 답한다. 배를 고치는 손, 서류를 접수하는 손, 무덤에 김밥을 놓는 손, 떨리면서도 수첩을 적는 손. 이 권을 관통하는 것은 순서에 대한 질문이다. 무엇이 먼저 알았는가. 양양 앞바다에서 기름 냄새를 처음 맡은 사람은 위성도 학자도 아니었다. 48년 동안 같은 바다에 나간 어부였고, 그보다 먼저는 그의 아버지였다. 그리고 그보다 천 년 앞에 죽간에 그것을 적어 둔 사신이 있었다. 위성이 발견한 것을 코가 이미 알고 있었고, 논문이 증명할 것을 기록이 이미 적어 두었다. 작가는 어느 쪽도 깎아내리지 않는다. 다만 순서를 보여 준다. 먼저 안 사람의 말이 나중에 증명되기까지, 얼마나 오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지를. '~보다 먼저'라는 문장은 이 권에서 서른 번 되풀이된다. 그리고 실험실 바깥에서 더 자주 쓰인다. 여덟 살 소은이가 좋다고 말한 두 글자는 판사의 허가보다 먼저인 동의이고, 아이가 색연필로 그린 세 사람의 그림은 서류보다 먼저인 증명이다. 잠든 세 사람의 숨소리를 두고 작가는 판사의 허가보다 먼저인 소리라고 적는다. 국경 너머에서 김응수가 핏줄이 아닌 아기의 손을 잡을 때 놓이는 질문도 같다. 잡는 것이 혈통보다 먼저인 것은 아닌가. 할아버지의 죄를 논문으로 쓰던 이서진이 논문을 덮고 평주로 향할 때는 이렇게 적힌다. 아는 것이 용서보다 먼저였다. 제도와 혈통과 판결이 도착하기 전에 사람이 먼저 알고 먼저 잡는다. 7권은 그 시차를 견디는 이야기다. 세어지지 않는 죽음에 관한 장들은 이 권의 사회적 척추다. 윤정호의 두 번째 기사는 붕괴로 죽은 사람이 아니라 숨을 쉬면서 죽어가는 사람을 다룬다. 원인을 특정할 수 없고, 통계에 잡히지 않고, 그래서 뉴스가 되지 않는 죽음이다. 기자는 이 불분명함 앞에서 오래 멈춰 있다가 결국 쓴다. 세어지지 않는 것을 세는 일,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는 일이 기록의 정의라는 듯이. 기사의 제목이 된 9,000원은 옌지의 한 달 약값 45위안을 환산한 금액이다. 서울에서는 커피 두 잔 값인 돈이 국경을 넘으면 한 사람의 폐를 살리는 돈이 된다. 통계 대신 지갑에 있는 금액을 제목으로 고르는 대목에서, 기자가 무엇을 해내려 하는지가 분명해진다. 법정과 밥상을 나란히 놓는 구성도 이 권의 특징이다. 카르텔 세 사람의 형량이 선고되는 날, 평주의 18평에서는 여덟 살 아이가 된장국을 먹으며 맛있다고 말한다. 작가는 판결의 통쾌함을 오래 붙들지 않는다.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12년이 아니라 매일 차려지는 밥상이라는 것을, 형량보다 오래 계속될 심판은 그 밥상이라는 것을 담담하게 적는다. 그리고 가해자의 손녀가 그 밥상 옆에 앉는다. 스물세 살 이서진이 자기 성을 밝히고 평주를 찾아가는 장면은, 기록을 축으로 달려온 이 시리즈가 사람에게 도달하는 방식이다. 7권에는 여러 종류의 귀환이 있다. 어부는 3년 만에 바다로 돌아가고, 아이는 무덤에서 돌아와 배고프다고 말하고, 열두 달 된 아기는 스무 걸음을 걸어 노인의 품으로 온다. 그리고 946년의 한 구절이 가장 먼 길을 돌아온다. 나무에 새긴 글자가 학자의 수첩으로, 수첩에서 논문으로, 논문에서 IAEA 보고서로, 보고서에서 유엔 안보리의 결의안으로 옮겨 간다. 그 소식을 전해 들은 일흔네 살의 학자는 한 줄로 답한다. 죽간이 여기까지 왔군요. 기록은 보내라고 있는 것이라던, 평생 수첩을 적어 온 사람의 문장이 여기서 증명된다. 7권을 덮으면 남는 것은 발견의 흥분이 아니라 기다림의 길이다. 냄새가 이름을 얻기까지 천 년이 걸렸다. 그동안 냄새는 매일 올라오고 있었다. 그리고 천 년이 걸려도 문장은 끝내 도착했다. 다만 도착은 저절로 오지 않는다. 죽간을 번역한 손, 수첩을 이어받은 손, 냄새를 잊지 않은 코가 그 사이를 이었기 때문에 온다. 먼저 아는 일과 받아 적는 일 - 이 권은 그 두 가지가 만나는 데 걸리는 시간에 대한 소설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