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롤로그 - 논문의 첫 페이지
1장 - 90일의 끝 2장 - 소은이의 새 성 3장 - 강민호의 떨림 4장 - 이혜진의 발표 5장 - 잠복기의 아이들 6장 - 윤정호의 세 번째 기사 7장 - 이서진의 졸업 8장 - 영변의 답 9장 - 황기태의 손님 10장 - 나루의 봄 11장 - 양양의 바다 12장 - 강민호의 편지 13장 - 북한의 첫 번째 의사 14장 - 소은이의 생일 15장 - 탐사의 결과 16장 - 분화 20개월 에필로그 - 두 번째 봄 |
|
매주 토요일, 가해자의 손녀가 왔다
「백두산, 천 년의 서사」 8권의 부제는 '아노이크시스(열림)'이다. 고대 그리스어 아노이크시스는 '여는 행위'를 뜻하고, 현대 그리스어에 와서 '봄'이라는 뜻을 얻었다. 열리는 계절이 봄이기 때문이다. 이 어원이 8권의 구조를 그대로 담고 있다. 이 권의 마지막 장 제목은 '두 번째 봄'이고, 5권에서 무너지고 6권에서 수습된 세계가 여기서 다시 서기 시작한다. 쓰러진 것이 첫 번째 봄이었다면 서 있는 것이 두 번째 봄이다. 무엇이 열리는가. 핵시설의 문이 세 명의 사찰단에게 72시간 열린다. 국제 의료팀이 국경을 넘어 재난 지역에 들어간다. 학술지의 심사가 통과되고, 해저의 지층이 3D 탐사로 열린다. 법원의 서류가 아이에게 새 성을 준다. 돌처럼 굳었던 감정이 상담실에서 풀린다. 작가는 이 열림들을 나란히 놓되, 어느 것도 승리처럼 쓰지 않는다. 조건부로 열리고, 제한된 시간만 열리고, 열린 뒤에도 잔여 위험이 남는다. 열림은 사건이 아니라 과정이라는 것을 이 권은 반복해서 보여 준다. 기록이 이어지는 방식은 이 권에서 가장 아픈 대목이다. 파킨슨이 진행되면서 강민호의 오른손은 글씨를 만들지 못하게 된다. 그러자 왼손이 시작한다. 50년 동안 오른손이 채운 수첩에 왼손의 첫 줄이 들어간다. 기록은 멈추지 않는다. 내 손이 멈춰도. 이 한 문장이 8권 내내 여러 사람의 손을 건너 다닌다. 수첩에서 편지로, 편지에서 논문으로, 논문에서 세상으로. 작가는 한 사람의 기록이 어떻게 여러 사람의 기록이 되는지를, 태평양을 왕복하는 봉투 두 개로 보여 준다. 이 권의 또 하나의 축은 신화의 이름으로 마음을 부르는 일이다. 재난 이후 아이들의 증상은 폐에서만 나타나지 않는다. 감정이 돌처럼 굳는 아이들이 있고, 그것을 부를 이름이 필요하다. 소설 안에서 그 이름들은 그리스 신화에서 온다. 흥미로운 것은 이 체계가 소설을 위해 지어낸 장치가 아니라는 점이다. 작가와 그의 아버지가 실제로 세워 온 연구 체계 '뮈토조에시스'가 소설 속 인물들에게 도착해 작동한다. 자기가 만든 치유의 언어를 자기가 만든 인물들에게 건네는 구성인 것이다. 그래서 이 권은 재난 이후의 이야기이면서, 이야기가 사람을 어떻게 회복시키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된다. 이 전환이 가장 선명한 인물이 이서진이다. 사회학 졸업논문을 마친 스물세 살이 상담사 인증 과정에 들어간다. 콘크리트를 설계 강도의 79퍼센트로 낮춘 사람의 손녀가, 그 붕괴로 돌처럼 굳어 버린 아이의 마음을 녹이는 쪽으로 진로를 정하는 것이다. 닫은 사람의 혈육이 여는 사람이 되는 자리다. 작가는 이것을 속죄라고 부르지 않는다. 다만 매주 토요일에 평주로 가는 기차를 계속 태울 뿐이다. 가장 오래 남는 것은 기자의 마지막 두 문장이다. 닫는 데 79퍼센트면 충분했다. 여는 데는 토요일이면 충분했다. 설계 강도의 79퍼센트짜리 콘크리트가 서른일곱 명의 삶을 닫았고, 가해자의 손녀가 매주 토요일 한 아이를 찾아가는 일이 그 닫힌 것을 열기 시작했다. 거대한 것이 닫고 작은 것이 연다. 8권을 덮으면 서 있는 것들의 목록이 남는다. 은행나무, 위패, 수첩, 만년필, 토끼, 시추선, 아이의 걸음. 무너진 자리에서 다시 선 것들이 다음 이야기를 기다리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