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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화나무의 기억
조선의 선비, 오봉 정사제 이야기
양승언
청어 2026.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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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어 소설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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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서문 4

1. 광한루의 비분 11
2. 종사관 정사제 52
3. 소년의 꿈 94
4. 뿌리 깊은 나무 128
5. 길 없는 길 164
6. 이팝나무꽃 피던 봄날의 일 177
7. 난진이퇴(難進易退) 190
8. 길 위의 날들 207
9. 오봉산인 몽루옥(五峯山人 夢陋屋) 245
10. 장부의 길 259
11. 출사(出仕) 280

에필로그 301

저자 소개 1

아름다운 금강이 흐르는 백제고도, 충남 공주에서 나고 자랐다. 20대의 치열한 화두, 나를 찾아서 끊임없이 방황하며 글을 썼다. 출가납자로 산문을 기웃거리며 폐사찰에 들어가 결사적인 수행을 하였다. 여름날 숲속의 맹렬한 매미 소리를 듣고 깨닫다. 1997년 소설 「풍장소리」로 세기문학상, 2006년 소설 「워낭소리」로 농민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되었다. 시흥문학상, 철도문학상, 스포츠조선 산문 대상 등을 수상하였다. 2015 시집 『사랑은 소리 없는 침범』 2020 장편소설 『도시벌레』 2023 기행소설 『득량, 어디에도 없는』 2024 보성NEWS <양승
아름다운 금강이 흐르는 백제고도,
충남 공주에서 나고 자랐다.
20대의 치열한 화두, 나를 찾아서 끊임없이 방황하며 글을 썼다. 출가납자로 산문을 기웃거리며 폐사찰에 들어가 결사적인 수행을 하였다. 여름날 숲속의 맹렬한 매미 소리를 듣고 깨닫다.
1997년 소설 「풍장소리」로 세기문학상, 2006년 소설 「워낭소리」로 농민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되었다. 시흥문학상, 철도문학상, 스포츠조선 산문 대상 등을 수상하였다.

2015 시집 『사랑은 소리 없는 침범』
2020 장편소설 『도시벌레』
2023 기행소설 『득량, 어디에도 없는』
2024 보성NEWS <양승언의 디지털노마드, 보성e라면> 연재
2025 보성NEWS <양승언 에세이, 측간수인의 혼잣말> 연재
2026 보성NEWS <양승언의 다큐판타지, 다 함께 차차차> 연재
2026 장편소설 『회화나무의 기억』
21C 한국 사회의 단면을 독창적인 문체로 명징하게 묘사해냈다는 평가를 확보함
문장, 관계, 소통, 반려동물, 자연을 주제로 KBS 등 인문학 강연 다수
현재 전남 보성 일림산 아래 국가유산 <보성정씨 고택, 삼의당>에서 집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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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6년 09월 07일
쪽수, 무게, 크기
224쪽 | 152*225*20mm
ISBN13
9791168555075

책 속으로

1594년 5월 9일.
전란의 여름은 우울하였다. 나라의 역법이 양력으로 고쳐진 때가 1896년이었으므로 음력의 이날은 양력으로 6월 26일이었다. 두 해 전, 1592년 시작된 임진왜란은 다소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1592년 12월부터 1593년 1월에 걸쳐 명나라에서는 이여송을 총사령관으로 5만여 명의 대규모 2차 원군을 파견했다. 전쟁 발발 후 조선의 한양이 함락된 뒤 7월에야 명나라에서는 장수 조승훈을 내세워 1차 원군 5천 명을 파병했으나 평양성 탈환에 실패했다.
명나라의 2차 원군 파병 후 전쟁의 흐름은 바뀌기 시작했다. 이여송 군대는 평양성 탈환에 성공했고 더 이상의 일본군 북진을 저지할 수 있었다. 물론 1592년 5월 이순신의 수군이 옥포, 합포, 적진포의 해전 승리를 비롯 7월에 한산도 대첩에서 일본 수군을 크게 격파함으로써 적의 보급품을 차단한 것이 전쟁 억제의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또 각처에서 불같이 일어난 의병들의 목숨 건 활약은 미처 왜군이 상상하지도 못한 복병이었다.
명나라의 이여송 군대는 평양성 탈환에는 성공했으나, 1593년 1월 벽제관 전투에서는 패배하였다. 2월에 권율 장군이 행주대첩에서 승리함으로써 왜군은 비로소 한양을 포기하고 남해안으로 후퇴하였다. 하지만 이여송은 일본군을 조선에서 완전히 몰아내기는 어렵고 전쟁 비용도 너무 크다고 판단하여 강화를 시도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 역시 조선을 완전 정복하기는 어렵다고 판단하여 강화에 적극적이었다. 양측 모두 휴전을 원했다. 하지만 일본 측 요구는 터무니없었다. 명나라 공주를 일본 천황에게 시집을 보내라거나 조선의 남부 4도, 경상 전라 충청에다 강원도나 경기도 일부까지 영토를 내놓으라는 것이었다. 특히 히데요시는 곡창지대이며 병참기지인 전라도를 탐냈다. 도저히 화의할 수 없는 조건이었다.
일본과 명나라가 강화회담을 주도하고 있었지만 누구도 전쟁이 끝났다고 믿지 않았다. 호남은 군량미 공급의 중심지였고 병참기지의 역할을 하는 남원은 전라도 방어의 핵심 지역이었다. 일시 후퇴한 왜군이 언제 다시 북상할지도 몰랐다.
장마 구름이 남원의 요천 들녘 위로 낮게 드리웠다. 광한루 연못가의 버드나무 가지만 세상 동정 모르고 태평하게 흔들렸다. 왜적의 대군은 보이지 않았으나 지리산 방면에서 들려오는 소문은 끊이지 않았다. 성문마다 군졸이 창을 세우고 밤낮으로 순찰을 돌았다. 의병들은 갑옷을 벗지 못한 채 광한루 주변 객사와 훈련장에서 머물렀다. 전쟁의 와중에도 백성들은 농사일에 분주한 가운데 수시로 북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전쟁은 잠시 숨을 고르고 있었을 뿐, 끝난 것이 아니었다.
─맥금이.
오봉 정사제(鄭思悌)는 가뭇해지는 정신을 차리고자 안간힘을 썼다. 왜군의 화살과 탄환을 온몸에 맞은 그는 이미 심한 부상을 입은 상태였다. 숨을 잇기 힘들었다. 사그라드는 불꽃처럼 그의 생명은 급속히 꺼지고 있었다. 검붉은 피범벅이 되어 쓰러졌음에도 그의 기상은 도리어 장렬하기만 했다. 그는 신음하고 있었지만 눈빛은 형형하여 푸른 광채가 났다. 한 생명의 마지막 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최후의 정념이었다.
곁에 무릎을 꿇고 있던 종 맥금이 고개를 들었다.
─예, 서방님! 정신줄 놓으시면 아니 됩니다요.
맥금은 울음이 터져 나오려는 것을 가까스로 참으며 목이 멘 소리로 대답했다. 그는 피 묻은 두 손으로 오봉의 어깨를 붙든 채 연신 몸을 떨었다.
오봉은 희미하게 웃었다.
─사람 목숨이란 게, 다 때가 있는 법이제.
─서방님, 서방님 조금만 버티십시오.
오봉의 입가에 핏물이 번졌다.
종, 맥금이 도리어 말을 잇지 못하였다. 그는 연신 눈물을 흘리며 심하게 몸을 떨고 있을 뿐이었다. 오봉은 신분은 노비이나 한 핏줄이나 마찬가지인 종의 이름을 어느 때는 맥금(麥金), 또 어느 때는 쉬운 말로 보리쇠라 부르기도 하였다. 평생 집안의 농사와 고된 가사를 도맡아온 맥금을 향한 오봉의 마음은 참으로 간절하고 오롯하였다. 신분사회의 차별은 어쩔 수 없었으나 오봉에게 그는 형제와 같은 존재였다. 그는 요령 피우지 않고 집안의 대소사를 떠맡아 묵묵히 수고하였다. 어린아이들의 고사리손은 물론 하다못해 부지깽이 하나라도 빌려와야 할 판인 봄, 여름, 가을의 농번기는 말할 것도 없고 겨울 농한기조차 그는 손 놀릴 틈 없이 부지런하였다. 낮에는 산에 가서 나무를 해 오고 밤이면 혼자 사랑채에 들어가 자시까지 새끼를 꼬며 집안을 지킨 충직한 일꾼이었다. 맥금 없이는 어떤 작은 일 하나라도 수월하게 성사되지 않았다. 어쩔 수 없는 집안의 노속이라 하더라도 맥금처럼 성실한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더구나 그는 전쟁터까지 따라와 오봉과 생사를 함께 하고 있었다. 절명의 시간까지 그가 곁에 지키고 있음을 오봉은 하늘에 감사드렸다.
오봉은 흐려지는 눈으로 맥금을 바라보며 나직이 말했다.
─보리쇠.
맥금의 쉬운 말 이름 보리쇠는 오봉이 어릴 때 그를 부르던 이름이었다. 오봉은 불현듯 서녘 하늘의 휘황한 노을처럼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마천리 뒷산에서 함께 진달래꽃을 따 먹고 칡뿌리를 캐서 입술이 시커멓도록 씹었다. 정강이까지 바짓가랑이를 걷고 무논에 들어가 우렁이를 잡고 게를 훔치기도 했었다. 아득한 시간들이 꿈처럼 스쳤다. 그 신분이 노비인 것을 아랑곳하지 않고 집안의 형제처럼 어울리며 놀던 그리운 시절이었다.
─예…, 예. 서방님.
오봉은 가까스로 맥금의 손을 잡았다.
─내 죽거든… 집안 좀 잘 살펴주시게.
맥금은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서방님, 서방님….
맥금은 오봉의 손등에 얼굴을 묻은 채 흐느껴 울었다. 그도 알고 있었다.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닥쳤다는 것을.
─소 씨 부인에게도 미안했다고 전해…
오봉은 말을 잇기 힘들어했다.
─히히, 히잉!
대여섯 걸음 사이를 두고 서 있던 말도 오봉의 모습을 보고는 한 차례 사납게 머리를 흔들고는 입을 크게 벌리며 울어댔다. 말을 하지 못할 뿐 전장에서 사투를 벌이며 수많은 위기를 함께 한 짐승도 어떤 상황인지 이해하고 있는 듯했다. 말의 몸도 성한 곳이 없었다. 목 아래 가슴팍에 박혔던 화살 자국에서는 날이 더워지자 진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전쟁 통에 사람이고 짐승이고 들판의 곡식에 이르기까지 온전한 것들은 없었다. 하다못해 대기의 공기조차 쿰쿰한 냄새를 퍼뜨렸고 바람은 괴이한 비명을 지르며 사라지곤 하였다. 조선의 산하가 모두 불안에 떨고 있었다.
오봉은 금방이라도 폭우가 쏟아질 것만 같은 흐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생의 시간은 짧고 허망하기만 하였다.
--- 본문 중에서

출판사 리뷰

■ 서문

조선의 선비, 오봉 정사제 이야기

오봉이 나고 자란, 전라남도 보성군 득량면 마천리 마을 입구 우물가에는 수백 년 된 회화나무가 있다. 회화나무 종자는 마른 땅, 습기가 없는 곳에서는 잘 발아하지 못한다. 나무나 식물의 씨앗, 종자가 바람에 날려 아무 곳에나 흩어지는 듯해도 자연의 생명은 제 살 곳에 터를 잡는다. 마천리 입구 우물가에 회화나무 씨앗이 떨어져 자란 까닭이 있다.
회화나무를 학자수(學者樹)라고 일컫기도 한다. 조선시대에는 궁궐에 회화나무를 심고 삼정승이 회화나무를 향해 앉아 정사를 돌보도록 했다. 회화나무는 궁궐뿐만 아니라 학자나 고관대작의 집 정원, 유생들의 서원 등에 주로 심었다. 회화나무를 상서로운 나무로 여기고 학자수라고 부른 까닭이다.
인간은 우주의 생명체 중 주요 대상이다. 과학의 발달로 다른 행성에도 생물체가 살고 있을 것이라는 가설은 조금씩 사실로 밝혀지고 있다.
외계인이라거나 UFO, 해마다 수천 건의 미확인 비행 물체에 대한 사례가 보고된다. 여전히 세계의 밝혀지지 않은 비밀은 무수하다.
역사는 해석의 영역이라던가.
계유정난(癸酉靖難)은 1453년(단종 1) 수양대군이 단종의 보좌 세력이자 원로대신인 황보인·김종서 등 수십 명을 살해하고 정권을 잡은 사건을 가리킨다. 문종이 재위 2년 만에 죽고 단종은 12세의 어린 나이로 왕에 오른다. 문종은 어린 왕의 불안한 권력을 보호하기 위해 황보인, 김종서 등에게 왕실 보호의 유언을 남긴다. 수양은 결국 왕세자를 거치지 않고 조선에서 처음으로 정변을 일으켜 즉위한 조선의 7대 국왕이 된다. 세조가 왕에 오른 뒤에도 두 차례의 단종 복위 사건으로 대숙청이 단행된다. 사육신 일가가 멸문의 화를 당했다. 세조는 어린 조카 단종을 몰아내고 끝내 사약을 내린 패륜의 끝판왕이었지만 왕으로서의 업적에는 몇 가지 평가가 따른다. 왕권을 강화하였고 국방을 튼튼히 했다. 국가 제도를 정비하고 서적을 편찬하여 학문을 발전시켰다. 그의 여러 가지 정책은 집권의 방식이 비슷했던 태종 이방원과 유사했다.

수양대군, 세조는 어떤 인물인가?
역사의 평가는 언제나 다양하다. 군주 시대였던 만큼 강력한 왕권을 바탕으로 통치한 것은 훌륭한 일이라고 치켜세우는 쪽이 있다. 반면 권력욕에 사로잡혀 친족을 몰살한 흉악한 폭군에 불과하다고 혹평하는 이들도 있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고 한다. 모든 기록은 서술자의 가치에 따라 달라진다. 폭군이 선왕이 될 수도 있고 얼마든지 그 반대가 될 수도 있다.
그릇된 사실이 오랜 기간 정설로 받아들여진 대표적인 사례는 천동설(天動說)이다. 지구는 우주의 중심이고 움직이지 않으며 그 주변을 태양과 달이나 행성이 돈다고 믿었던 것이다. 폴란드 출신의 사제이자 천문학자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는 천동설을 뒤집고 지구가 돈다는, 지동설을 주장하였다.
─그래도 지구는 돈다.
이탈리아의 천문학자이며 물리학자인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명언으로 유명한 말. 그는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을 옹호한 이유로 1616년 2월 26일 지동설 옹호 금지 경고를 받는다. 이후 1633년 종교재판에서 유죄 판결을 받고 지동설을 철회한다. 그가 교황청에서 재판을 받고 나서면서 그래도 지구는 돈다라고 말했다고 알려졌으나 실제 이 말을 한 사람은 다른 사람들이다. 비록 갈릴레이가 서슬 퍼런 종교 법정에서 어쩔 수 없이 지동설을 포기한다고 서약했으나 그럼에도 지구는 태양의 주위를 돈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한 표현으로 등장했다.
당시의 교황청 벨라르미노 추기경은 갈릴레이에게 다음과 같이 경고했다.
─태양이 세계의 중심이고 돌지 않으며 지구는 돌고 있다는 견해를 완전히 포기해야 한다. 그는 지금부터 말과 글을 포함하여 어떤 방식으로든 그 견해를 지속적으로 주장하거나 가르치거나 옹호하지 말아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추기경위원회의 제재가 가해질 것이다.
갈릴레이는 이러한 지시에 따르고 순종할 것을 약속했다. 위원회의 경고가 잘못되었고 지동설이 맞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는 현실의 권력자에게 굴종하지 않을 수 없었다.
모든 사실이나 진실이 시간이 흐른다고 다 밝혀지는 것도 아니다. 오류가 진실로 굳어진 경우도 많다. 인간의 역사에는 위·변조가 상당히 포함되어 있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일제강점기 독립군 검거에 앞장서고 친일 매국한 자를 그 후손이 비석을 세워 애국자로 둔갑시키고 훈장까지 받게 했다가 나중에 탄로 나는 사례마저 있다.

마천리 입구 우물가 회화나무는 오봉의 생애를, 당대의 역사를 기억하고 있다.
─인간이 기록하는 역사의 진실이란 위험한 기억에 불과하다. 그것은 때로 맞기도 하고 틀릴 때도 있다. 부풀려지기도 하고 과장된 경우도 많고 거꾸로 아예 잊히는 사례도 많다. 기록되고 언급된 사람이 모든 공과를 차지하기도 하고 일가의 몰락을 각오하고 나라에 목숨을 바친 숭고한 희생이 가려지기도 한다. 병졸 없는 장수가 있을 수 없으며, 국민 없는 국가가 있을 수 없다.
서른아홉 오봉의 생을 증거하리라.
사회와 국가는 보통 사람들의 성실한 노력으로 지켜지는 것이다. 그들은 특별한 월계관을 쓰기 바란 적 없고 어느 때 제 생이 복무해야만 할 역사와 마주쳤을 때 숙명으로 여기고 몸과 마음을 바쳤던 것이다.
기록을 남기는 후세의 사람들이여.
보이는 것은 보이지 않는 부분의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으니 숨어 있는 유장한 역사를 들추어 말하라. 땅과 하늘과 오백 년 수령을 이어오는 회화나무가 본 것이 무엇인지를!
빙산의 일각. 수면 위로 드러난 작은 얼음산, 그 수면 아래에는 드러난 부분보다 몇천 배 더 큰 산이 버티고 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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