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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꽃은 파스타를 먹고 잠든다
박정미
파란 2026.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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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시인의 말

제1부 다시 백지를 꺼낸다
강 넘기 - 11
제로섬 게임 - 13
첫날의 매직 - 14
겨울, 해인사 - 16
뒷모습 - 18
소리의 벽 - 20
밤의 낮 - 22
눈사람 찾기 - 24
잠수함은 교신 중 - 26
별들의 고향 - 28
올리브 상담실 - 30
경전이 말하길 - 32

제2부 달빛 가계
사과꽃은 파스타를 먹고 잠든다 - 37
종잇밥 - 40
내 이름은 - 42
파음 - 44
꽃밭에서 - 46
검은 눈 - 48
나비잠 - 50
안개 - 52
안개‥ - 54
안개… - 56
페넬로페의 거미줄 - 58
초대 - 60
명랑한 젠가 - 62
재첩, 국 - 64
퇴근길 - 66

제3부 자꾸 멈추는 날이 있다
아주 잠깐 사이 - 69
천국을 읽다 - 70
봄밤의 일 - 72
깃들다 - 74
벚꽃 엔딩 - 77
아무것도 아니다 - 80
사과 - 81
연꽃 필 때 - 84
가장 - 86
유턴 지점 - 87
세 개의 시선 - 90
티파니의 아침 - 92

제4부 착륙
햇살 유서 - 95
혼술 아닌데요 - 98
다녀왔습니다 - 100
이사를 가면 - 101
어긋났대요 - 104
빗소리듣기동호회 - 106
셋이서 쿠바 - 108
만약에 그때 - 110
저녁 일곱 시-인터라켄 - 112
회귀 - 115
다시 오고 - 118
오늘 도착한 어제 - 120
줌 아웃 - 122
허공 착륙기 - 124
밤의 바다에 그물을 던져 놓고 - 126

해설 성윤석 내부의 이야기를 꺼내 든 실루엣 - 128

저자 소개 1

부산에서 태어났다. 2019년 [문장 21]을 통해 시인으로 등단했다. 시집 [사과꽃은 파스타를 먹고 잠든다]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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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6년 09월 10일
쪽수, 무게, 크기
141쪽 | 128*208*20mm
ISBN13
9791194799436

책 속으로

소리의 벽

딸칵―
전원을 살리면 벽이 생긴다
소리로 만든 벽이다

파도가 오고 바람이 오고 물이 흐르고
새가 울고 청소기가 울고 드라이기가 운다
벽 안에서 소리들은 섞인다

바깥이 들리지 않는 것처럼
들으라는 것인지 듣지 말라는 것인지
소리는 조용하고 편안하다―그게 벽의 방식이다

딸의 방 문고리에
작고 동그란 것이 남아 있다
딸은 갔는데
백색소음기는 같이 가지 않았다
남아서, 들려준다

나는 누워 있다
밤바다 모래밭에―
파도를 건너온 바람이 솔숲으로 흩어지고
검은머리물떼새가 그 위를 간다
날개를 치며, 간다

하얗게 세워진 벽을
오랜 불면의 내가 오르고 있다
소리 없이

감은 눈이 자꾸 떠진다

불면
이제 볼 수 없는 얼굴이 있다 ■


꽃밭에서

비가 진눈깨비처럼 흩뿌리던 저녁 해주국밥집 뒷마당에서 엄마는 기타의 목을 잡고 화단 돌담에 내리쳤어 맨드라미 목이 꺾이고 있었어

순간이었지 아버지가 주먹으로 엄마의 뺨을 치고 기타를 빼앗은 건
두 사람의 눈은 번개 치는 동굴이 되고 있었어

기타는 목이 부러진 채 작은방 구석에서 소리를 내지 못하고 아버지는 아픈 자식 들여다보듯 한참씩 보곤 했어

퇴근하는데 경비실 모퉁이에 낡은 악기 가방을 멘 아버지가 서 있었어 누가 볼세라 팔을 끌고 택시를 잡아탔지

―역전 세고비아 악기점 갑시다
작정하고 왔다는 듯 단호한 목소리
신기하게도 아버지는 내가 다니는 회사를 알고 있었어 오늘이 월급날이란 것도

―수리가 가능할까요
물으려는데 이미 아버지의 눈은 벽에 걸린 기타를 보고 있었어
가방 속 단단히 넣은 월급봉투에 금이 가는 소리가 들렸어

가문비나무로 만들어 울림이 깊다는 새 기타를 메고 버스 정류장에 선 아버지
먼 산을 보고 있는 축축한 눈

매일매일 꽃밭에서는 금이 가는 소리가 들렸고
어딘가에서는 소리 없이 금이 메워지고 있었어

그런데 가문비나무는 무엇으로 울음의 깊이를 만들었을까

맨드라미 목에 새살이 돋고 있어서 다행이야 ■


만약에 그때

마지막 실업급여를 신청해 놓고
먼 곳으로 갔다

버스가 다리를 지나면서 나라 이름이 바뀌는
강을 사이에 두고 언어가 달라지는

지중해의 햇볕이 유리 가루처럼 쏟아지는
리스본 광장이었다
하필 에그타르트를 한입 베어 물던 그때

알람이 왔다 실업급여가 입금됐다는

한 오백 년은 산 것 같은데
더 이상 새로운 두려움 따윈 없을 만도 한데

왜 늘 허물어진 성 앞에 서 있는 것 같을까

국경을 넘는 게 일상인 이곳에서 태어났더라면
온몸에 무수한 선을 그으며 살지 않아도 됐을까

귀퉁이가 닳은 이력서를 또 어디에
내밀어야 하나 ■

--- 본문 중에서

출판사 리뷰

[시인의 말]

긴 장마 끝에 볕 든 날
여물지 못한 열매를
내다 말립니다

내다 말린다라 쓰고
실은 내다 버리는 것입니다

부디
훨훨 날다가
환한 꽃밭에 내려앉아
저마다의 계절로 무성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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