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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말
제1부 그 자리에 꽃 하나가 - 13 북녀에게 1 - 14 북녀에게 2-임진강 - 16 50㎝ - 18 깃발 - 19 아스팔트꽃 - 20 지금도 중문을 나서면 아우성 들린다 - 22 충무로 연가 - 24 80년대 - 26 그때는 그때의 나는 - 27 88년 여름 어느 날 - 28 학생회관 - 29 동굴 - 30 2학년 늦봄 새벽 풍경 - 32 1991년 오월 우리는 초혼처럼 투쟁가를 불렀다 - 34 문익환, 91년 오월 - 36 물-단결에 대하여 - 37 오돌대 - 38 꽃씨 - 40 친구여 - 42 오 학년의 가을 - 44 제2부 그때 - 49 두 개의 불꽃 - 50 사랑하였으므로 사랑하였네라 - 52 남산 숲길에 옛사랑의 그림자를 두고 왔다 - 54 사랑하는 그녀에게 차마 이별을 - 55 겨울비에 젖은 단풍나무가 - 56 가을 향기 - 57 젊은 날의 사랑은 가고 - 58 한 사람을 위해 - 59 강 - 60 한 사람을 지웠다 - 61 봄밤 꽃비 내리는데 - 62 어느 날 길은 보이지 않고 뒷모습만 보이고 - 63 만해시비(卍海詩碑) 앞에서 - 64 친구에게 - 66 별 1 - 68 별 2 - 69 차 한잔하고 싶다, 그대여 - 70 오색 - 72 제3부 성산포 아가씨 - 77 그러니 그대와의 첫날을 - 78 첫사랑 1 - 80 첫사랑 2 - 81 사랑 1 - 82 사랑 2 - 83 사랑니 - 84 단풍 - 85 그대, 좋아 - 86 강 - 87 문득 - 88 기도 1 - 89 늦깎이 아들이 사랑스러워 - 90 하늘 아래 당신이 있었습니다 - 91 아부지 - 92 어머니 - 93 엄마 - 94 김장김치 - 95 어린이날 - 96 내 어릴 적 고향집 마당 - 97 당산 팽나무가 사라졌다 - 98 고향 들길을 걷다가 - 99 윷놀이 - 100 하얀 눈이 내려 - 101 꽃샘바람 부는 어느 봄날 오후 대나무 숲을 지나다 생에 대해 생각하다 - 102 제4부 그대가 가 버린 다음에 - 105 바람이 불어 사랑에게로 간다 - 106 나는 왜 흔들리는가 - 107 어느 날 꿈속으로 그대가 오면 - 108 그때다 - 110 가을, 하늘, 어떤 날 - 111 기도 2 - 112 생각 하나가 - 113 도솔천(兜率天) 유감 - 114 석불전 부처님 - 116 금강경 - 117 통일 - 118 언어도단 - 120 금산사(金山寺)의 밤 - 121 죽음 그 너머를 생각하다 - 122 청계천 - 123 조계사 - 124 한강수상법당 - 126 청소 - 128 빗속을 걸어요 - 129 낙산공원 - 130 죽음을 향해 간다는 건 - 131 아름드리나무 밑에서 - 132 추천사 지선 스님 - 133 발문 신동호 시인은 한 사람으로 끝나지 않는다 - 1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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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꽃이 지천으로 피어
꿈결의 약속인 듯 축복의 메아리로 퍼질 때 그대를 향한 내 마음은 코스모스처럼 한들거렸지요 그래요 삶이 그대를 속이기 전에 바람이 그대의 머릿결을 흔들고 지나갈 때 그것이 꽃처럼 아름다운 인생의 미래를 약속하진 않는다는 걸 알지만 알면서도 마냥 행복했었지요 두려움도 결코 우리를 갈라놓지 못하고 창공을 향한 눈빛을 가릴 수 없었지요 미래는 설렘으로 꿈틀거리는 보물 상자같이 기대하게 하고 부풀게 하고 꿈꾸게 했어요 그게 당신이었어요 그래요 바로 당신이었어요 그런 당신을 사랑했던 것이지요 삶이 그대를 속이기 전에 바람이 그대의 머릿결을 흔들고 지나갈 때 그걸 바라보며 온몸이 설렘으로 가득 차던 나 아 그때는 그때는 사랑이 오로지 사랑이었으므로 밤하늘의 별이 늘 내 가슴에 내려와 빛나던 시절이었지요 --- 「사랑하였으므로 사랑하였네라」중에서 봉숭아 꽃물 들이며 첫눈 올 때까지 새끼손가락에 꽃물 있으면 정말로 첫사랑이 이루어지는 줄 알았지요 첫눈 오는 날 눈썹달처럼 남아 있는 새끼손가락 끝 꽃물이 그제야 첫사랑이 떠나간 흔적인 줄 알았지요 --- 「첫사랑 2」중에서 바람이 불어 그리운 그날로 간다 잊힐래야 잊힐 수 없는 것들도 세월이 흐르면 낡은 사진첩 빛바랜 사진처럼 물 빠진 옷감처럼 탈색되지만 기억의 저편에 남아 있는 상실의 아픔은 붉은 피 뚝뚝 떨어지는 상처보다 고통스러운 법 아무도 부르지 않는 잊힌 노래처럼 세월은 흘러도 혼자 부르는 노래는 차라리 쓸쓸한 거리를 더욱 환하게 밝히지 목숨처럼 소중한 사랑을 잃어버린 사람에게는 즐거움마저 아픔이지 삼라만상이 고통이지 세월이 흘러 먼 훗날이 되어도 생을 달리해 천 번 만 번 죽고 태어나 몸을 달리해도 억겁의 굴레처럼 어찌할 수 없을 때 어찌할 수 없을 때 바람이 불어서 바람이 되어서 나는 가지 그리운 그날의 사랑에게로 가지 --- 「바람이 불어 사랑에게로 간다」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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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우리를 속이기 전에 그의 머릿결을 흔들고 지나갔던 바람은 지금 어디에서 머릿결을 흔들고 있을까.
떠나간 그 사람이, 오래전에 ‘힘들고 지칠 때면 밤하늘을 쳐다본다’고 했던 적이 있다. 그 후 나도 밤하늘을 쳐다보는 버릇이 생겼다. 저 밤하늘의 별들 중에 많은 별은 이미 몇 천 년, 몇 억 년 전에 사라졌다. 이미 사라진 저 별들이 이토록 찬란하게 밤하늘을 빛내고 있다. 91년 오월, 자신의 몸을 던져 어둠을 사르고 하늘의 별이 된 11명의 열사들도 지금 어딘가에서 지상을 비추고 있을 것이다. 부끄럽지만 내가 오랜 세월을 돌아 첫 시집을 내게 된 까닭이다. ‘한 손에는 짱돌, 한 손에는 시집’을 들었던 뜨겁고 아름답고 슬픈 청춘 시절의 나에게, 오월을 살다 간 모든 벗들과 오월을 살고 있는 모든 벗들께, 아, 울 엄니 아부지 그리고, 세상의 모든 어머니 아버지께 이 시집을 바친다. 2024년 뜨거운 여름 종로구 낙산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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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하사 모래 수처럼 헤아리기 힘든 인연인 정우식 거사의 시를 며칠 동안 읽었다. 시들을 읽으며 ‘이 사람! 아직도 너무 착하구나!’ 탄식을 하게 되었다. 모질고 독해도 잘 살기 힘든 시절에 변함없이 착한 성정이 한편으로는 마뜩찮다. 하긴 시를 쓴다는 것 자체로도 아직 순수하다는 방증이기도 하겠지만. 선(善)한 사람들이 큰 고통을 받는 시대, 온갖 곳에서 들려오는 소리들은 혼돈(混沌)이며 악어(惡語)이며 요설(妖說)뿐인데 이 사람 외로이 옛 마음 지니려 하니 시인의 마음으로는 갸륵하다만 걱정되고 또 원망도 된다.
내가 자구(字句) 맞추는 문인이 아니기에 시에 대해 감히 평할 수 있겠느냐만 어릴 적 어깨너머로 배운 [논어]에서 ‘시(詩)는 생각에 삿됨이 없는 것(思無邪)’이라 했으니 착하다는 말이고 치우치지 않는다는 말이며 변하지도 않는다는 말이다. 오랜 세월을 지켜봤으나 정우식 거사는 늘 생각에 삿됨을 없애려 하던 사람이다. 그가 물질적으로는 전혀 도움이 안 되는 시를 쓰는 것도 사무사(思毋邪)의 수행 방편이 아닐까 생각한다. 또 유월이고 시절은 언제나 아득하다. 나와 그가 젊었던 시절, 착한 사람들이 조금은 편안하게 지낼 세상을 위해 거리를 뛰었던 바보 같던 때가 떠오르는 새벽이다. 소나무처럼 변함없고 또 변할 일 없는 사람 정우식의 시를 나지막하게 읊조려 본다. - 지선스님 (스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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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인간의 체험 속에서 신성하다. 그 거룩한 습지에서, 시는 저잣거리도 아니고, 낱말 사전도 아닌, 그러니까 영적 제국의 텅 빈 대기권에서 우짖는 새소리처럼 들려올 때가 있다. 저 옛날 1980년대 충무로의 우식이를 나는 그런 소리로 읽었다. 그렇게 용감했고, 그렇게 무모했고, 그렇게 순수했고, 그렇게 아름다웠던……. 저 뜨거운 자리를 더불어서 몰려다니다가 전쟁 통에 손을 놓치듯이 어느 순간 잃어버린 형제의 얼굴이었다. 그래서 어떤 기억은 가까이서 뜨겁고, 어떤 추억은 너무 멀리서 아련하다. 그러나 “지워도/다 지워도/못내 그리운/반역 같은” 지금은 연기처럼 흩어진 거리의 함성이 모두 그의 뼈였고 피였다니(「그 자리에 꽃 하나가」). 그러고서 한동안 격류에 쓸려 대책 없이 부서지고 난 다음에 낯선 하류에서 또 흔적을 만난 셈이다.
그는 유독 뜨거운 물체였다. 금방이라도 폭발할 듯한 시대의 뇌관을 가슴에 담고 그간의 세월을 어떻게 견뎌 왔는지 알 수 없다. “이제 중학생인데/우리 집에서 제일 큰 아들/나보다 한참 더 큰 아들”을 발견하고(「늦깎이 아들이 사랑스러워」) ‘엄마’를 (생태계의) “임차인에게 쩔쩔매는/희한한 조물주 위의 건물주”로 객관화하기까지(「엄마」), 행간에 가득 고인 그리운 것들을 시들은 말하지 않으나 나는 들을 수 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자아를 해탈하는 그릇으로서의 시를 끝까지 버리지 않고 껴안고 가는 우식이가 오늘은 너무나 보고 싶다. - 김형수 (작가, 시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