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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을 사랑해도 사랑한다
김문자
파란 2025.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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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N IS

책소개

목차

시인의 말

제1부

물의 방향 - 11
아무것도 없는 사람 - 12
침묵이 길어지면 - 14
유혹 사용 설명서 - 16
사월의 객관적 상관물 - 18
자전거를 타고 화성으로 - 20
깊어서 그래요 - 22
면식범 - 24
자유민주주의 여자 - 26
로마에서 온 편지 - 28
처음보다 끝이 아름다운 - 30
케이프타운에서 온 펭귄의 서사 - 32

제2부

유물론자 - 37
친해질 뻔했잖아 - 40
문득, 서간문 - 42
얼마나 뜨거워야 전해질까요 - 44
사랑하면 앙큼하기 - 46
분리되는 섬 - 48
딴 주머니 속 눈물 보자기 - 50
여수의 진심 - 52
홍등 - 54
내 바다 - 56
돌아갈 수 없다면 - 58
태우면 캄캄하니까 - 60
다른 사람을 사랑해도 사랑한다 - 62

제3부

밟히면 보이는 것들 - 67
동사로 살았다 - 70
쏟아지는 기분 - 72
릴리트의 별식 - 74
비바체로 내리는 하이든 - 76
착한 여자 - 78
구피는 꽃 - 80
느타리를 포르노로 해석함 - 82
비로소 - 84
목적지를 벗어날 때 - 86
돌하르방 - 88
직사각형으로 살아가기 - 90
부부별곡 - 92

제4부
무 - 97
어린 무잎 실루엣 - 98
돌아오는 맛 - 100
바람의 적도 - 102
애플망고 - 104
달로 가는 나무 - 106
스캔들 - 108
오후 다섯 시 장미 - 110
서귀포 여자 - 112
잘 죽어야 맛있는 것들 - 114
황제의 꽃 - 116
강의 반대편에 앉아 - 118
바다 우물 - 120

해설
황정산 기하학적 서정과 동사적 상상력 - 122

저자 소개 1

제주에서 태어났다. 2024년 [경인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시인으로 등단했다. 시집 [다른 사람을 사랑해도 사랑한다]를 썼다.

관련 분류

품목정보

발행일
2025년 11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139쪽 | 128*208*20mm
ISBN13
9791194799184

책 속으로

물의 방향

멀구슬나무 뿌리가 물길인가요 입구가 터진 동그라미인가요 물길의 강약은 흐르면서 저울질하죠 물에 빠져 본 사람도 그 깊이를 몰라요 물은 중력을 믿지만 힘을 빼니까 물길을 거스르면 물의 저항으로 뿌리가 박혀 버릴지도 몰라요 박힌 뿌리가 낙타의 등이라면 믿을 수 있나요 사막의 모래는 물길을 보호하는 식물 그늘을 만들어 주는 모든 식물의 뿌리는 아래로 두고 낙타와 상인에게 오래된 약속으로 오아시스를 선물하죠 물의 형태로 바위 밑이나 흙더미를 만나면 ‘물길’이라고 동그랗게 말해 보세요 호흡을 가다듬고 다시 한번 길게 말해 보세요 물방울이 모여 큰 물줄기로 흐르는 소리가 들리죠 그때 귀를 아래 방향으로 늘여 보세요 옆집 멀구슬나무 뿌리가 당신의 물길일지도 모르죠
--- 「물의 방향」


너무 뜨거워서 반으로 잘랐어요
중력으로 중심을 잡고 달리고 있어요
처음부터 덩어리라서 한 방향으로 가고 있어요
앞쪽으로 힘을 줄게요
지구의 중심은 나니까
지구가 굴러가는 속도는 다리의 힘이 아니에요
간격이죠

지구는 비타민 같아요
푸른 이끼가 자라는 땅이라면 바람이 지구를 자라게 하겠죠
페달에 힘을 주세요
분리된 지구는 뒤쪽에 심장이 있어요
소식을 마라톤으로 전한다면 지구가 조금이라도 서늘해지겠죠

지난밤 얼마나 뜨거웠는지
소리를 질렀어요
토론하면 더 늙어 버리는 얼굴, 지구를 닮았어요

심심해서 지구로 자전거를 만들었어요
앞과 뒤는 중요하지 않아요
어느 곳을 잘라도 지구는 둥글게 굴러가는 회전문
손잡이에 브레이크를 걸면 처음으로 돌아갈 수 있어요

바람으로 가는 자전거를 만들겠어요

화성인들이 지구를 식히려고 도착했어요
화성에서 온 지구인들이 자전거를 타고 지구를 돌리고 있어요

지구의 심장 소리에 자전거가 날고 있어요

화성에 갔다 올게요
--- 「자전거를 타고 화성으로」


열여덟 살까지 늘어나는 직립입니다

그건 머리통이나 두 팔이나 두 다리도 포함되는
선이지만 잘라 보면 길고 가는 원통으로
함부로 손댈 수 없는 길도 되는 도형입니다

내가 살던 최초의 물은 원입니다

원은 낮잠 자는 우주 비행사의 웅크린 중력, 아주 작은 꿈으로 시작되지만
나는 당신의 높이로 걸어 다니는 직사각형의 태몽이죠

직사각형은 구부러지고 접히는 고도로 발달된 로봇입니다
로봇은 수많은 도형으로 이루어졌고 중심을 잡아 주는 이등변삼각형도 있습니다
그건 두 팔이거나 두 다리로 직사각형의 유의어입니다
변이가 아닙니다 진화도 아닙니다
걸을 수 있다는 믿음입니다

직사각형은 열여덟 살까지 늘어난 탄력입니다
작은 직사각형으로 교집합이 된 손과 발
직사각형이 된 몸통은 원에서 분화된 유도체입니다
직사각형은 걸어 다니는 영장류의 특징입니다
적당히 밀어 주고 끌어 주는 중력이라고 하더군요
결국 중력도 원의 일부라는 증거겠지요

난 직사각형을 이어 주는 선입니다
서로 다른 도형을 이어 주는 선은 다른 것과 섞여서는 안 되는
독특한 분화구입니다

분화구가 흐르기 시작하면 함부로 손댈 수 없을 때
예민해진 선이 길을 막고 직사각형을 가둘지도 모릅니다
길은 직사각형의 숨은 기관입니다

직사각형은 수학으로 설명되는 생명입니다

--- 「직사각형으로 살아가기」

출판사 리뷰

물결인 사람

당신을 보았던 기억이 납니다
- 「시인의 말」

추천평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면서 동시에 전부’인 세계를 받아들이는 일이다(「아무것도 없는 사람」). 김문자 시인은 그 오래된 진실을 다시금 우리 앞에 부려 놓는다. 그녀는 사랑의 순간들을 결코 단순한 감정의 파편으로 기록하지 않는다. 대신 삶의 기척, 날마다 다가오는 작은 빛과 그림자의 흔적 속에서 “둥글게 굴러가는 회전문” 같은 사랑의 근원을 찾아내고, 그 심장 소리에 귀 기울인다(「자전거를 타고 화성으로」).

“침착하게 얼굴을 덮”는 빗소리와 삶의 무늬를 비추는 유리창처럼 시인은 꾸밈을 덜어 낸 채 정직하게 다가온다(「쏟아지는 기분」). 흔들리는 마음의 결, 지나간 계절의 냄새, 불현듯 찾아오는 정념은 시인의 시편마다 가만히 배어 있다. 때문에 우리는 “소리의 눈이 멀리 퍼지고 있다면 당신이 보았던 기억은 풍경”이라는 시인의 곁에 오래 머물 수밖에 없다(「깊어서 그래요」). 그리고 어느새 ‘나’의 기억이 겹쳐지고, 잊은 줄 알았던 감정들은 되살아난다.

이 시집은 사랑을 말하면서도 하나의 사랑만으로 수렴되지 않는다. 타인에 대한 연민과 상처에 대한 이해, 모세계에 대한 신뢰와 의심, 불화까지 포월한다. 어쩌면 성속(聖俗)의 중개자로서 시인은 가이아(Gaia)처럼, 설문대할망처럼 사랑이라는 중력을 넘어 언어의 “물길”을 따라 한생을 항행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물의 방향」).

[다른 사람을 사랑해도 사랑한다]는 그렇게 “달의 범람으로 하늘의 문이 열”린 이 땅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삶에 대한 위무의 기록이며(「달로 가는 나무」), “불의 혀가 되어 나를 달구”는 불완전하지만 진실한 인간 존재에게 보내는 비밀스런 고백이다(「처음보다 끝이 아름다운」). 이제 우리는 꿈이 많은 아이가 ‘최초의 나를 만나 바다 우물 속 달을 건질’ 물때를 함께 기다릴 일이다(「바다 우물」). - 전형철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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