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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 왜 욥기 다음에 마태복음인가
제1부 무너지는 공식, 흔들리는 자기 통치 (욥기 1-14장) 1장 온전하고 경외하는 자 안에 남아 있는 자기 통치 2장 설명되지 않는 고난과 하나님의 침묵 3장 신명기 공식의 한계 제2부 정죄와 자기 변호의 끝 (욥기 15-31장) 4장 정죄하는 종교와 변호하는 자아 5장 온전한 자도 끝나야 하는 이유 6장 하나님을 향한 갈망만 남을 때 제3부 하나님이 말씀하실 때 (욥기 32-42장) 7장 설명의 끝, 현현의 문턱 8장 폭풍 가운데 말씀하시는 하나님 9장 회개: 자기 통치의 철회 10장 중보: 하나님 나라가 몸을 얻는 자리 제4부 왕이 오시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오다 (마태복음 1-15장) 11장 새 창세기의 시작 12장 회개하라,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 13장 왕이 몸을 입고 걸으시다 14장 씨앗처럼 시작되는 하나님 나라 15장 부스러기에서 열방의 식탁으로 제5부 십자가, 두 나라의 충돌 (마태복음 16-28장) 16장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17장 작은 자의 나라, 자기 통치가 끝나는 공동체 18장 왕이 예루살렘에 들어오실 때 19장 십자가: 자기 보존이 끝난 존재의 왕권 20장 부활: 그리스도 안에 열린 새 창조 에필로그 — 자기 통치가 끝난 자리에서 시작되는 하나님 나라 참고자료 성경시리즈 안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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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하나님이 보좌에 계시고, 내가 그 자리를 차지하지 않아도 되는 자유
보좌의 쉼은 내가 모든 것을 이해했기 때문에 오는 평안이 아니며, 내가 옳다는 판결을 받았기 때문에 오는 안정도 아닙니다. 하나님이 보좌에 계시고, 내가 더 이상 그 자리를 차지하지 않아도 된다는 자유입니다. 욥은 답을 얻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자신의 억울함이 모두 설명된 것은 아니지만, 자신의 존재가 하나님 앞에서 제자리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바로 여기서 존재의 해방이 시작됩니다. 2. 회개는 자기 혐오가 아니라 자기 통치의 철회입니다 욥의 회개는 “나는 형편없는 인간입니다”라는 자기 파괴가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은 하나님과 다투며 붙들고 있던 자기 주장과 자기 의를 거두어들이는 사건입니다. 욥은 자신을 파괴하지 않습니다. 다만 자신을 중심에서 놓아버립니다. 회개란 자기 혐오도, 자기를 더 미워하는 것도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갇혀 있던 존재가 하나님께로 방향을 옮기는 사건입니다. 3. 새 창세기가 시작되었다 마태가 의도적으로 사용한 표현은 단순한 족보 소개 이상입니다. 게네세오스는 창세기의 언어를 떠올리게 하기 때문입니다. 마태는 처음부터 선언합니다 — 새 창세기가 시작되었다. 새 창조는 깨끗한 인간 역사 위에 세워지지 않고, 오히려 망가진 인간 역사 안으로 하나님이 들어오십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새 창조는 인간 의지의 개선이 아니며, 더 나은 윤리나 더 강한 결심, 더 경건한 노력으로 시작되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시작은 성령이며, 새 인간은 하나님에게서 오는 생명으로 시작됩니다. 4. 하나님 나라는 장소보다 통치입니다 바실레이아는 단순한 영토나 나라가 아니라 왕의 통치, 왕권의 행사, 주권이 실제로 작동하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장소보다 통치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말은 하나님의 통치가 지금 여기 한 존재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는 선언입니다. 회개란 단순히 죄를 반성하거나 도덕적으로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는 행위가 아닙니다. 회개란 통치의 전환, 더 깊이 말하면 존재의 중심 이동입니다. 그동안 자기 자신이 왕이던 자리에서 하나님이 왕이 되는 자리로 옮겨지는 사건입니다. 5. 하나님 나라는 생명처럼 자랍니다 하나님 나라는 억지로 세워지지 않으며, 밖에서 강제로 밀어 넣는 체계도 아닙니다. 열린 존재 안에서 자라나는 생명입니다. 세상은 힘으로, 속도로, 성과로, 눈에 보이는 성공으로 즉각적인 변화를 증명하려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는 다릅니다. 생명처럼 자라며, 안에서부터 변화시킵니다. 자기 통치가 끝난 자리에서, 하나님께 자신을 열기 시작한 자리에서 말씀은 씨앗처럼 자라기 시작합니다. 삶의 방식이 바뀌고 관계가 바뀝니다. 두려움 대신 신뢰가 자라고, 자기 보존 대신 타자를 향한 흐름이 생기며, 자기 증명 대신 하나님 안의 쉼이 시작됩니다. 6. 십자가에서 드러난 왕권 예수님은 체포되고, 배신당하고, 거짓 증언과 조롱을 당하며 십자가를 지시면서도 자신을 변호하지 않으십니다. 세상 왕국은 죽여서 다스리지만, 하나님 나라의 왕은 죽음을 받아들임으로 다스립니다. 하나님 나라의 왕권은 자기 비움으로 드러납니다. 그리스도의 믿음은 죽음 앞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삶이며, 상실과 배신과 십자가 앞에서도 자신을 하나님께 맡기는 신실함입니다. 복음은 우리를 그 믿음 안으로 초대합니다. “내가 산다”에서 “그리스도께서 사신다”로 옮겨지는 삶입니다. 7. 욥은 끝났고, 왕은 오셨습니다 존재는 어떻게 해방되는가? 욥은 끝났고, 왕은 오셨습니다. 이제 하나님 나라는 우리 안에서 다시 걸어가기 시작합니다 — 자기 통치에서 하나님 통치로, 닫힌 존재에서 흐르는 존재로, 두려움에서 신뢰로, 자기 보존에서 자기 내어줌으로. 그 나라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완성을 향해 걷고 있습니다.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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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경건한 사람도 끝나야 하는가?”
욥의 티끌과 재에서 시작하여 임마누엘의 왕과 하나님 나라로 이어지는 성경 읽기 『욥기와 마태복음』은 욥기를 단순한 고난과 인내의 책으로, 마태복음을 예수의 생애와 교훈을 기록한 별개의 복음서로 읽지 않는다. 이 책이 붙드는 질문은 더 근원적이다 — 누가 지금 내 삶의 왕인가? 욥은 악인이 아니다. 하나님을 경외했고 온전하고 정직했다. 그런데 저자는 바로 그 경건한 사람 안에서도 하나님보다 자기 옳음을 붙들고, 설명 가능한 질서를 원하며, 삶을 통제하려는 자기 통치가 남아 있을 수 있다고 읽는다. 그렇기에 욥기의 고난은 단순한 문제 해결의 과정이 아니다. 인간이 의지하던 공식과 자기 변호가 하나씩 무너지고, 마침내 하나님을 설명하는 자리에서 하나님을 직접 대면하는 자리로 옮겨지는 존재의 여정이다. 욥의 마지막 회개 역시 자신을 혐오하는 종교적 자기 부정으로 읽지 않는다. 자신을 끝까지 정당화하려던 주장을 거두어들이고 피조물의 자리로 돌아가는 자기 통치의 철회다. 그때 욥은 자신에게 갇힌 존재에서 친구를 위해 기도하는 중보의 존재로 열린다. 그리고 바로 그 자리에서 마태복음이 시작된다. 실패한 인간이 자신을 개선하여 새로운 인간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실패한 인간의 역사 안으로 직접 들어오신다. 임마누엘의 왕이 오고 새로운 창세기가 시작된다. 이 책은 이러한 흐름을 통해 하나님 나라를 미래의 천국에만 가두지 않는다. 예수께서 선포하신 바실레이아를 지금 여기에서 작동하는 왕의 통치로 읽는다. 자기 통치가 종결되고 그리스도의 생명이 한 존재와 관계와 공동체 안에서 살아질 때, 하나님 나라는 몸을 얻는다. 십자가는 이 통치의 절정이다. 세상의 왕권이 힘과 자기 보존을 통해 자신을 증명한다면, 예수 그리스도는 자기 내어줌을 통해 왕권을 드러내신다. 그리고 부활을 통해 그 생명이 새로운 창조로 열린다. 『욥기와 마태복음』은 성경을 새로운 이론에 맞추려는 책이 아니다. 오히려 욥기와 마태복음의 본문을 따라가며 자기 통치의 종결 → 존재의 해방 → 임마누엘 → 하나님 나라 → 십자가 → 부활과 새 창조라는 복음의 흐름을 발견하려는 책이다. 고난의 이유를 찾던 독자는 어느 순간 더 깊은 질문 앞에 서게 된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가 아니라 “지금 누가 나를 통치하고 있는가?” — 그 질문 앞에서 욥은 끝나고 왕이 오신다. 대상 독자 이 책은 다음과 같은 독자를 위한 책입니다. 욥기를 단순한 ‘고난을 견디는 법’ 이상으로 깊이 읽고 싶은 독자 하나님을 믿지만 여전히 삶을 설명하고 통제해야 한다는 부담에서 자유롭지 못한 독자 회개와 자기 부인을 자기 혐오가 아니라 복음 안의 존재 전환으로 이해하고 싶은 독자 하나님 나라를 죽은 뒤 가는 장소만이 아니라 오늘의 삶에서 나타나는 하나님의 통치로 이해하고 싶은 독자 욥기와 마태복음을 자기 통치의 종결과 새 창조라는 하나의 성경적 흐름으로 읽고 싶은 목회자, 신학생, 성경공부 인도자와 성도 존재 교체, 그리스도와의 연합, 보좌의 쉼과 현재천국을 성경 본문 안에서 더 깊이 탐구하고 싶은 독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