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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 왜 지금 다시 마가복음인가
제1부 갈릴리 — 하나님 나라의 침투 1장 복음의 시작 — 존재 교체의 선포 2장 누가 다스리는가 — 통치의 충돌 3장 새로운 가족 — 혈과 육을 넘어 4장 풍랑 속의 안식 — 그리스도의 믿음에 처음 참여하다 5장 결박에서 자유로 — 하나님 나라의 해방 6장 고향이 거부한 왕 — 익숙함이라는 저항 7장 깨끗한 손, 더러운 마음 — 종교가 통치를 대신할 때 [경첩] 8장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 아는 것에서 참여하는 것으로 제2부 예루살렘 — 그리스도의 믿음을 따라 하강하다 9장 그의 말을 들으라 — 영광보다 앞선 믿음 10장 왕이 종이 된다 — 자기 비움의 통치 11장 산을 바다에 던지라 — 하나님 나라가 현실보다 크다 12장 누구의 형상인가 — 소속이 삶을 결정한다 13장 흔들리는 세상 속에서 — 미혹을 분별하는 자들 14장 겟세마네 — 자기 뜻의 끝, 아버지 뜻의 시작 15장 십자가 — 낮아짐이 완성이다 16장 부활 —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 에필로그 — 오늘 다시 마가복음을 읽는 이유 부록 — 마가복음 여정 묵상 가이드 참고자료 — 이 여정에 함께한 증인들 성경시리즈 안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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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성과보다 사랑이 먼저입니다
아버지는 사명보다 먼저 정체성을 주십니다. 성과보다 사랑이 먼저이고, 증명보다 관계가 먼저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스스로를 증명하는 자들의 나라가 아니라, 이미 사랑받는 존재로 살아가는 자들의 나라입니다. 예수님은 사랑받기 위해 사역하지 않으셨습니다. 이미 사랑받는 아들로 사역하셨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더 나아진 사람이 되는 길이 아니라, 이미 사랑받는 존재로 다시 살아나는 길입니다. 2. 믿음은 통제가 아니라 배의 주인을 아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풍랑 속에서도 주무십니다. 무감각하신 것도, 무책임하신 것도 아닙니다. 풍랑보다 더 큰 아버지의 통치를 신뢰하고 계셨습니다. 바로 이것이 그리스도의 믿음입니다. 끝까지 아버지를 신뢰하며, 자기를 버려버리고 아버지의 통치 안에 머무는 믿음입니다. 복음은 우리를 그 믿음 바깥에서 구경하게 하지 않고, 그 믿음 안으로 초대합니다. 믿음은 더 강한 자기 확신이 아니며, 풍랑을 없애는 능력도 아닙니다. 배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아는 존재의 신뢰입니다. 3. 풍랑은 남아 있어도 지배는 깨질 수 있습니다 상황은 즉시 바뀌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상한 일이 시작되었습니다. 밤에 잠들 수 있게 되었습니다. 풍랑이 끝나서가 아니었습니다. 풍랑보다 더 큰 실재가 생겼기 때문입니다. 풍랑은 남아 있었지만, 지배가 깨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 배의 주인은 자신이 아니었다는 것을. 4. 산보다 하나님 나라가 더 큰 실재가 될 때 믿음은 현실 부정이 아닙니다. 산을 없는 척하는 것도 아닙니다. 산은 실제로 존재합니다. 비교의 산, 불안의 산, 통제 욕망의 산, 자녀 문제의 산, 경제적 압박, 건강의 두려움, 끊임없는 자기 증명의 무게가 그것입니다. 그러나 산을 바다에 던지는 믿음이란, 산보다 하나님 나라가 더 큰 실재가 되는 것입니다. 산은 남아 있을 수 있지만, 산의 지배력은 깨질 수 있습니다. 믿음은 현실을 부정하는 힘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가 현실보다 더 큰 실재가 되는 삶입니다. 풍랑은 남아 있어도 지배는 깨질 수 있습니다. 산은 남아 있어도 통치는 바뀔 수 있습니다. 5. 겟세마네 — 내 뜻보다 아버지의 뜻이 더 큰 실재가 되는 자리 겟세마네는 자기 뜻이 완전히 사라지는 자리가 아니라, 자기 뜻보다 아버지 뜻이 더 큰 실재가 되는 자리입니다. 존재 정렬은 내가 원하는 것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것보다 더 큰 하나님의 통치 안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두려움이 없어진 것이 아니라, 두려움보다 아버지의 통치가 더 큰 실재가 된 것입니다. 4장의 풍랑 속 안식은 14장에서 가장 깊은 형태로 완성됩니다. 풍랑이 사라져서가 아니라, 폭풍보다 크신 아버지를 붙드는 믿음 때문입니다. 6. 하나님 나라의 왕은 자신을 증명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거의 침묵하십니다. 대제사장들의 고발에도, 빌라도의 재촉에도 자신을 변호하지 않으십니다. 이것은 무력함이 아니라 인간의 법정에서 자신을 증명하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겟세마네에서 “내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대로”라고 기도하신 그분은 지금 그 기도를 몸으로 살아내고 계십니다. 자기 변호보다 아버지의 통치가 더 큰 실재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왕권은 높아짐이 아니라 가장 낮은 자리에서 드러납니다. 7. 다시 갈릴리로 마가복음은 갈릴리에서 시작하여 갈릴리로 돌아가라는 말씀으로 끝납니다. 이것은 단순한 지리의 반복이 아니라, 처음의 복음 —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 는 선언으로 다시 돌아가라는 초대입니다. 그러나 이제 갈릴리는 처음과 같지 않습니다. 십자가와 부활을 통과한 갈릴리이며, 실패한 제자들을 다시 부르시는 장소이자 하나님 나라의 이야기가 다시 시작되는 자리입니다. 당신이 끝났다고 닫아버린 자리는 어디입니까? 하나님은 지금 그 자리에서 갈릴리를 다시 시작하고 계십니다. 8. 마가복음은 끝났지만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풍랑 속에서도, 무너짐 속에서도, 겟세마네 같은 밤 속에서도, 끝난 것처럼 보이는 자리에서도 그리스도께서 지금 우리 안에서 그 길을 다시 걸으십니다. 마가복음은 끝났지만,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주께서 함께 역사하사...” 그분은 지금도 살아 계시며, 여전히 말씀하십니다.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그 나라는 먼 미래의 약속만이 아닙니다. 지금 여기, 그리스도의 통치 아래 살아가는 존재 안에서 시작됩니다.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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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랑을 없애는 믿음이 아니라
풍랑보다 크신 하나님 나라의 통치를 신뢰하는 믿음 오늘의 인간은 과거 어느 시대보다 많은 것을 알고 많은 것을 통제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불안과 자기 증명의 압박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 AI와 알고리즘은 끊임없이 묻는다. 더 잘하고 있는가, 더 성공했는가, 더 인정받고 있는가, 미래를 충분히 준비했는가. 『마가복음, 하나님 나라의 통치와 믿음의 실상』은 이러한 시대적 질문을 마가복음의 가장 오래된 질문과 마주 세운다. “누가 너를 다스리는가?” 저자는 마가복음을 단순한 예수의 생애나 기적 이야기로 읽지 않는다. 로마 제국이라는 거대한 통치 질서 한가운데 침투한 하나님 나라의 이야기로 읽는다. 그 통치는 먼저 한 존재 안에서 시작된다. 요단강에서 예수님은 아무것도 이루기 전에 “사랑하는 아들”이라는 선언을 듣는다. 존재가 성과보다 먼저다. 이어지는 광야와 사역, 풍랑과 배척, 겟세마네와 십자가의 길은 이미 사랑받는 아들이 끝까지 아버지의 통치를 신뢰하며 걸어가는 길이다. 특히 이 책은 마가복음 4장의 풍랑과 14장의 겟세마네를 하나의 신학적 축으로 연결한다. 풍랑 속에서 주무시는 예수님의 안식과 겟세마네에서 홀로 깨어 “내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대로” 기도하시는 순복은 서로 다른 모습이 아니다. 둘 다 아버지의 통치를 현실보다 더 큰 실재로 받아들이는 그리스도의 믿음에서 흘러나온다. 이 관점에서 믿음의 의미도 달라진다. 믿음은 더 강한 의지나 긍정적 확신이 아니며, 현실을 부정하는 기술도 아니다. 자신이 모든 것을 통제해야 한다는 믿음을 버려버리고, 풍랑보다 크신 하나님 나라의 통치 안에 머무는 것이다. 이 책은 이것을 보좌의 쉼이라고 부른다. 상황이 원하는 대로 해결되었기 때문에 얻는 쉼이 아니다. 풍랑 한복판에서도 배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기 때문에 가능한 존재의 안식이다. 그 믿음은 결국 십자가에서 가장 깊이 드러난다. 세상의 왕은 힘으로 자신을 증명하지만, 하나님 나라의 왕은 자신을 낮추고 종이 되어 자기 생명을 내어준다. 왕권은 높아짐이 아니라 가장 낮은 자리에서 드러난다. 그리고 부활은 그 하강이 실패가 아니었음을 선언한다. 빈 무덤 이후 주님은 실패한 제자들을 다시 갈릴리로 부르신다. 갈릴리는 특별한 종교 공간이 아니라 처음 부름받았던 일상의 자리다. 그곳에서 그리스도께서 다시 걸으시며 하나님 나라의 이야기를 계속하신다. 그래서 이 책이 AI 시대의 독자에게 전하는 결론은 분명하다. 풍랑은 남아 있어도 지배는 깨질 수 있다. 산은 남아 있어도 통치는 바뀔 수 있다. 마가복음의 그리스도는 과거에 길을 걸으셨던 분으로 머물지 않는다. 그리스도께서 지금도 우리 안에서 다시 그 길을 걸으신다. 대상 독자 이 책은 다음과 같은 독자를 위한 책입니다. 하나님을 믿지만 불안과 미래에 대한 통제 욕망에서 쉽게 자유롭지 못한 독자 자신의 믿음을 더 강하게 만드는 대신 그리스도의 믿음에 참여한다는 의미를 깊이 이해하고 싶은 독자 마가복음을 기적과 사건의 연속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통치라는 하나의 흐름으로 읽고 싶은 독자 AI와 알고리즘 시대의 비교, 성과주의, 자기 증명 압박 속에서 그리스도인의 존재 방식을 고민하는 독자 “산을 바다에 던지라”는 말씀을 현실 조작이나 긍정적 자기 확신이 아니라 복음의 관점에서 다시 이해하고 싶은 독자 겟세마네와 십자가에서 드러난 자기 비움과 하나님 통치의 의미를 삶에 연결하고 싶은 독자 풍랑 같은 삶의 현실 속에서 보좌의 쉼과 현재천국을 살아가고 싶은 성도 마가복음을 설교하고 가르치며 오늘의 시대와 연결하려는 목회자, 신학생, 성경공부 인도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