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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면서 — 혼의 파쇄와 몸의 순복
그리스도의 통치는 어떻게 시작되는가 제1부 깨어진 혼과 보좌의 쉼 왜 고린도후서부터 시작하는가 1장 사망 선고를 받은 나 고린도후서 1:1-2:13 왜 우리는 쉬지 못하는가 · 영, 혼, 몸의 이야기 · 자기 신뢰가 무너지는 자리 · 혼의 껍질이 깨지기 시작하다 · 눈물의 편지와 상한 관계 · 왜 하나님은 우리를 약하게 하시는가 · 보좌의 쉼은 무너짐에서 시작된다 2장 그리스도의 향기와 깨어진 혼 고린도후서 2:14-3:18 왜 어떤 사람 곁에서는 쉼이 느껴지는가 · 깨지지 않은 혼은 향기를 가둔다 · 새 언약의 직분 — 존재가 편지가 되다 ·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다 · 수건이 벗겨질 때, 영광에서 영광으로 3장 질그릇 안의 보배 고린도후서 4:1-5:10 왜 하나님은 보배를 질그릇에 담으셨는가 ·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 · 겉사람과 속사람 ·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 몸의 장막과 영원한 집 4장 새로운 피조물과 화목의 직분 고린도후서 5:11-7:16 존재 교체와 새 창조 · 한 영 됨과 연합 · 하나님과 화목 · 세상 속 화평케 하는 삶 ·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으로 살아가기 5장 생각을 사로잡는 통치 고린도후서 8:1-10:18 육신의 방식 vs 영의 방식 · 생각은 존재의 주인이 아니다 · 혼의 계산과 불안 다루기 · 말씀과 기도의 강력 · 보좌의 쉼 안에서의 분별 · 연보와 나눔 6장 약함 속에서 머무는 능력 고린도후서 11:1-13:14 거짓 사도와 참된 사도성 · 셋째 하늘보다 중요한 것 · 가시와 은혜 · 나의 약함은 장애물인가 통로인가 · 너희 안에 그리스도께서 계신 줄 알지 못하느냐 브릿지 에세이 — 혼이 아버지 집으로 돌아오다 제2부 순복된 몸과 하나님의 통치 혼이 집으로 돌아온 후, 몸은 어떻게 살아가는가 7장 십자가의 도와 새로운 질서 고린도전서 1:1-4:21 고린도라는 도시와 욕망의 몸 · 자기 자랑과 분열 · 십자가의 지혜 · 육에 속한 사람 vs 영에 속한 사람 · 몸은 누구의 통치를 따르는가 · 십자가 아래 질서 잡히는 몸 8장 몸은 성령의 성전 고린도전서 5:1-7:40 몸은 통치의 현장 · 성적 타락과 존재 질서 · 몸은 주의 것 · 결혼과 독신 · 순복된 몸의 영성 9장 자유보다 사랑 — 자발적 권리 포기와 몸의 통치 고린도전서 8:1-10:13 몸의 자유는 왜 사랑 아래 있어야 하는가 · 우상의 제물 문제 · 걸림돌이 되지 않는 사랑 · 복음을 위한 몸의 절제 · 삯을 받을 권리와 자발적 버려버림 · 내 유익보다 복음의 유익 · 먹든지 마시든지 하나님의 영광 10장 애찬과 한 몸 — 성찬에서 어린양 혼인잔치까지 성찬은 단순한 의식이 아니다 · 말씀과 성찬 · 애찬 공동체와 한 상 · 몸을 분별함이란 무엇인가 · 주님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함 · 성찬과 어린양 혼인잔치 11장 사랑으로 움직이는 몸 — 은사와 공동체의 질서 고린도전서 12:1-14:40 몸의 다양성과 한 몸 됨 · 약한 지체의 영광 · 은사는 몸을 세우기 위한 선물 · 사랑이라는 몸의 질서 · 공동체를 살리는 몸의 언어 · 은사보다 더 큰 길 12장 부활한 몸이 오늘의 몸을 해석한다 고린도전서 15:1-16:24 부활은 미래가 아니라 현재의 기초 · 몸의 구속 · 썩을 몸과 영광의 몸 · 마지막 승리 · 미래의 몸이 오늘의 몸을 해석한다 · 흔들리지 않는 몸의 소망 나가면서 — 깨어진 혼, 순복된 몸 내 안에 계신 그리스도의 통치 참고자료 — 이 여정에 함께한 증인들 성경시리즈 안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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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깨어진 혼은 자아 해체가 아닙니다
십자가는 혼을 파괴하는 사건이 아니라, 혼이 자기 왕좌에서 내려오는 사건입니다. 자기 힘으로 살아내려는 혈투를 멈추고, 다시 내 존재 중심에 계신 그리스도께 시선을 돌리는 것입니다. ‘깨어진 혼’이란 자아 해체가 아니라 오히려 본래 자리로 돌아오는 일입니다. 혼이 다시 그리스도와 연합한 생명 안에 참여하며, 몸이 그 통치에 순복되기 시작합니다. 2. 깨어진 혼 사이로 향기가 흐릅니다 자기 보호와 자기 증명, 불안과 두려움 속에 웅크린 혼은 생명을 가둡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때때로 우리의 강함을 흔드십니다. 우리를 무너뜨리기 위함이 아니라 향기를 막고 있는 혼의 껍질을 깨뜨리기 위함입니다. 옥합이 깨어질 때 향유가 흐르듯, 깨어진 혼 사이로 주님의 생명이 흘러가기 시작합니다. 우리는 내 힘으로 향기를 만드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 향기의 이름은 그리스도입니다. 3. 우리는 질그릇이지만 보배를 품은 존재입니다 몸은 여전히 약합니다. 그러나 그 몸은 버려질 껍데기가 아니라 장차 영광 가운데 새롭게 될 몸입니다. 오늘 우리의 연약한 몸 안에서도 그리스도의 생명은 이미 일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낙심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질그릇이지만 보배를 품은 존재입니다. 질그릇은 그대로입니다. 그러나 그 안에 보배가 있다는 사실을 아는 순간 우리는 더 이상 예전과 같은 존재가 아닙니다. 4. 생각은 존재의 주인이 아닙니다 생각은 존재의 중심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와 연합한 존재가 먼저입니다. 생각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생각이 통치받기 시작합니다. 혼은 보좌의 쉼 안에서 안식을 누리고, 몸은 순복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생명의 말씀이 생각을 통하여 흐르기 시작합니다. 성숙은 더 많이 생각하는 능력이 아니라 누구의 통치 아래 생각하는가의 문제입니다. 오늘 내 생각은 누구의 발 앞에 놓여 있습니까? 5. 몸은 하나님 나라가 살아지는 자리입니다 몸은 더 이상 자기 증명의 도구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가 살아지는 자리입니다. 몸은 주께 속한 성전입니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 거하십니다. 혼이 보좌의 쉼 안에 머물 때 몸은 조금씩 그리스도의 통치에 순복됩니다. 몸은 사랑을 흘려보내고 거룩을 살아내며 하나님 나라를 드러내는 통로가 됩니다. 우리의 몸은 하나님 나라가 살아지는 거룩한 현장입니다. 6. 순복된 몸은 권리보다 사랑을 선택합니다 순복된 몸은 “나는 옳은가?”보다 “무엇이 사랑인가?”를 묻습니다. 혼이 자기 증명의 자리에서 내려오고 보좌의 쉼 안에서 이미 받아들여진 존재가 되었기에, 몸은 자유를 사랑 아래 둘 수 있습니다. 권리가 없어서 놓아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정당한 권리가 있어도 사랑이 그것을 버려버릴 자유를 줍니다. 순복된 몸의 다른 이름은 사랑을 위한 자발적 권리 포기입니다. 7. 성찬은 한 몸을 살아내는 식탁입니다 성찬은 단순한 의식이 아닙니다. 신앙은 단지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참여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한 떡에 참여하기에 한 몸입니다. 그래서 성찬은 개인 영성이 아니라 몸의 영성입니다. 함께 먹고, 함께 기다리고, 함께 살아나는 하나님 나라의 사건입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가 나누는 떡과 잔은 장차 올 어린양의 혼인잔치를 미리 맛보게 합니다. 8. 미래의 몸이 오늘의 몸을 해석합니다 부활 신앙은 현실 도피가 아니라 오히려 오늘을 가장 견고하게 살아내게 하는 소망입니다. 부활을 아는 사람은 오늘의 몸을 함부로 포기하지 않습니다. 작은 사랑도 멈추지 않습니다. 눈물 속에서도 걸어가고, 넘어져도 다시 일어섭니다. 우리는 죽음을 향해 살아가는 존재가 아닙니다. 우리는 부활을 향해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미래의 몸이 오늘의 몸을 해석합니다. 9. 보좌는 비어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죽어서 가는 장소 이전에, 지금 여기 임한 왕의 통치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한 사람에게서 시작됩니다. 내 안에 계신 그리스도를 알아가는 사람, 그 사람이 가정과 교회와 도시 한복판에서 하나님 나라를 살아내기 시작합니다. 보좌는 비어 있지 않습니다. 왕은 살아 계십니다. 그리스도의 나라는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혼이 아버지 집으로 돌아오고 몸이 성령의 통치에 순복될 때, 하나님 나라는 지금 여기 살아집니다.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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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고린도전서보다 고린도후서를 먼저 읽는가?
몸의 행동을 고치기 전에, 누가 그 몸을 살아가고 있는지를 묻다 고린도서는 문제의 책이다. 분열, 음행, 소송, 결혼, 우상의 제물, 성찬의 혼란, 은사의 경쟁. 그래서 고린도서를 읽을 때 우리는 자연스럽게 문제와 해결책의 목록을 찾는다. 그러나 『깨어진 혼, 순복된 몸』은 다른 질문을 던진다. 왜 복음을 알고 은사까지 받은 사람들이 여전히 그렇게 살아가는가? 문제의 뿌리가 행동보다 깊기 때문이다. 저자는 그것을 자기 통치의 문제로 읽는다.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고백하면서도 실제 삶에서는 여전히 자신이 모든 것을 책임지고, 판단하고, 통제하고, 증명하려 할 수 있다. 생각과 감정, 인정 욕구와 두려움의 자리인 혼이 자기 왕좌에 앉아 있으면 몸 역시 그 혼의 명령에 따라 움직인다. 그래서 이 책은 의도적으로 고린도후서를 먼저 읽는다. 정경의 순서보다 존재 형성의 순서를 따르기 위해서다. 고린도후서는 강한 바울보다 깨어지는 바울을 보여 준다. 그는 사형 선고와 같은 환난을 겪고 자기 힘으로 자신을 붙들 수 없는 자리까지 내려간다. 그러나 바울은 그 경험을 실패라고 해석하지 않는다.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심이라.” 무너진 것은 바울이라는 존재가 아니라, 자기 확신과 자기 능력, 자기 통제라는 오래된 기둥이다. 그래서 이 책에서 혼의 파쇄는 인간성을 없애는 일이 아니다. 혼이 자기 왕좌에서 내려오는 일이다. 그때 혼은 본래 자리로 돌아간다. 내 안에 이미 거하시는 그리스도를 향한다. 그리고 바로 이 자리에서 보좌의 쉼이 시작된다. 이 책은 이를 “내 힘으로 살아내려는 혈투가 멈추고, 내 안에 거하시는 그리스도의 통치 안에 머무는 삶”이라고 설명한다. 고린도후서의 질그릇도 이 관점에서 새롭게 보인다. 복음은 질그릇의 연약함을 없애는 프로그램이 아니라, 오히려 질그릇 안에 담긴 보배가 누구인지 드러내는 복음이다. 따라서 약함은 반드시 제거해야 하는 장애물이 아니라 때로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머무는 통로가 된다. 이 관점은 오늘의 자기계발 문화와 정면으로 충돌한다. 세상은 더 강해지고, 더 흔들리지 않고, 더 성공하며, 더 잘 증명하라고 말한다. 그러나 바울은 자신의 약함을 자랑한다. 그리스도의 능력이 그 위에 머물기 때문이다. 이 책의 또 다른 특징은 생각의 문제를 존재론적으로 다룬다는 데 있다. 오늘 우리는 AI와 알고리즘, 뉴스와 소셜미디어, 끝없는 정보 속에서 어느 시대보다 많은 생각의 자극을 받는다. 그러나 생각은 존재의 근원이 아니다.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가 아니라, 그리스도와 연합한 존재가 먼저다. 그래서 생각은 제거해야 할 적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통치를 받아야 하는 영역이다.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께 복종시키라”는 말씀은 더 긍정적으로 생각하라는 자기계발의 명령이 아니라, 누구의 통치 아래 생각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다. 그리고 고린도전서로 넘어가면서 그 통치는 몸을 얻는다. 몸은 성령의 성전이다. 성, 결혼, 먹는 것, 돈, 자유와 권리, 은사와 말, 성찬과 관계 모두가 영성과 분리된 부수적인 문제가 아니다. 몸은 하나님 나라의 통치가 실제로 나타나는 현장이다. 특히 이 책은 고린도전서의 자유를 ‘내가 할 수 있는 것’의 확대가 아니라 사랑을 위해 내가 하지 않을 수도 있는 자유로 읽는다. 바울에게는 권리가 있었다. 그러나 복음을 위해 사용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 자기 통치 아래 있는 몸은 권리를 끝까지 주장하지만,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안전한 몸은 사랑을 위해 자유를 절제할 수 있다. 그래서 복음의 질문은 바뀐다. “나는 옳은가?”에서 “무엇이 사람을 살리는가?”로. 그 사랑의 몸이 가장 구체적으로 나타나는 곳이 식탁이다. 성찬은 한 몸 된 공동체가 함께 먹고 기다리며 살아나는 하나님 나라의 사건이다. 그리고 그 식탁 너머로 어린양의 혼인잔치가 보인다. 미래가 현재 속으로 들어온다. 현재천국은 추상적인 영적 감각이 아니라 함께 떡을 떼는 몸과 관계의 자리에서 구체화된다. 마지막에 바울은 부활을 말한다. 복음은 혼을 몸에서 탈출시키지 않는다. 몸을 구속한다. 오늘의 몸은 약하고 늙으며 지치지만 장차 영광으로 입혀질 몸이다. 그래서 미래의 부활은 오늘을 포기하게 하지 않고, 오늘의 작은 사랑과 수고를 계속하게 한다. 혼은 보좌의 쉼으로 돌아오고, 몸은 사랑에 순복되며, 약함 속에서 그리스도의 통치가 드러난다. 『깨어진 혼, 순복된 몸』은 바로 그 여정을 따라가는 책이다. 대상 독자 이 책은 다음과 같은 독자를 위한 책입니다. 신앙생활을 오래했지만 여전히 자신이 모든 것을 책임지고 붙들어야 한다는 긴장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하는 독자 ‘혼의 파쇄’를 자아 파괴가 아니라 자기 통치의 종결과 그리스도와의 연합으로의 귀환으로 이해하고 싶은 독자 고린도후서의 사형 선고, 질그릇, 가시와 약함을 보좌의 쉼이라는 흐름에서 읽고 싶은 독자 생각과 감정을 존재의 주인으로 삼지 않고 그리스도의 통치 아래 정렬하는 삶을 배우고 싶은 독자 AI와 알고리즘 시대의 정보와 생각의 소음 속에서 존재의 중심을 다시 찾고 싶은 독자 몸과 성, 결혼, 물질, 자유와 권리를 영성과 분리하지 않고 하나님 통치의 문제로 바라보고 싶은 독자 복음의 자유를 자기 권리의 확대가 아니라 사랑을 위한 자발적 버려버림으로 살아가고 싶은 독자 성찬을 개인적 종교의식보다 한 몸과 한 식탁, 현재천국의 공동체적 사건으로 깊이 이해하고 싶은 독자 은사와 능력보다 사랑이라는 몸의 질서를 세우는 공동체를 꿈꾸는 목회자와 성도 부활의 몸과 새 창조의 소망으로 늙음과 질병, 연약함과 오늘의 수고를 다시 바라보고 싶은 독자 존재 교체, 혼의 귀환, 몸의 순복, 보좌의 쉼과 현재천국을 하나의 흐름으로 탐구하려는 목회자, 신학생, 성경공부 인도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