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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좌의 쉼으로 읽는 히브리서
황웅렬
보좌의쉼 2026.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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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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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들어가면서

제1부 더 크신 아들

히브리서 1:1-2:18
1장 천사보다 크신 아들
2장 죽음을 통과하여 많은 아들을 영광으로 이끄시는 아들

제2부 광야를 지나 안식으로

히브리서 3:1-4:16
3장 모세보다 크신 아들
4장 안식은 아직 남아 있습니다

제3부 영원한 대제사장

히브리서 5:1-7:28
5장 순종으로 온전하게 되신 대제사장
6장 더 좋은 것을 붙들고 휘장 안에 닻을 내리라
7장 영원히 살아 계신 대제사장

제4부 새 언약과 하늘 성소

히브리서 8:1-10:18
8장 새 언약의 중보자
9장 하늘 성소와 그리스도의 피
10장 단번에 이루신 완전한 제사

제5부 믿음으로 살아가는 존재

히브리서 10:19-12:29
11장 휘장 안의 거주지를 지금 여기에서 살아가라
12장 보이지 않는 실상을 현재 살아가라
13장 예수를 바라보며 흔들리지 않는 나라를 살아가라

제6부 하나님 나라 공동체

히브리서 13:1-25
14장 영문 밖에서 하나님 나라를 살아가라

나가면서 — 그리스도 안에 남은 존재
부록 | 권면의 말씀 — 보좌의 쉼으로 나아가는 히브리서의 길
참고자료 — 이 여정에 함께한 증인들
성경시리즈 안내

저자 소개 1

성균관대학교 B.A. 장로회신학대학교 M.Div 보스턴대학교 STM 영성 전공 케임브리지연합장로교회 교육목사 필라한겨레교회 2003년 개척-현재 · 저서 하나님 임재와 천국 지금 이 순간 여기에 (좋은땅) 하나님 임재와 성경일독 (좋은땅) God’s Presence and Heaven In the Present (WestBow) 2003년 봄, 저자는 보스턴에서 아내와 자식과 함께 주님의 몸이 되어 개척을 시작했습니다. 그해 여름, 주님께서 필라델피아로 가라고 하셨습니다: “너희는 소외된 자들의 벗이 되어 그들을 나에게로 인도하여라. 그곳은
성균관대학교 B.A.
장로회신학대학교 M.Div
보스턴대학교 STM 영성 전공
케임브리지연합장로교회 교육목사
필라한겨레교회 2003년 개척-현재

· 저서
하나님 임재와 천국 지금 이 순간 여기에 (좋은땅)
하나님 임재와 성경일독 (좋은땅)
God’s Presence and Heaven In the Present (WestBow)

2003년 봄, 저자는 보스턴에서 아내와 자식과 함께 주님의 몸이 되어 개척을 시작했습니다. 그해 여름, 주님께서 필라델피아로 가라고 하셨습니다: “너희는 소외된 자들의 벗이 되어 그들을 나에게로 인도하여라. 그곳은 너희가 나에게 큰 순종을 보일 수 있는 곳이다.” 소외된 목사 부부 모습 그대로를 늘 존귀하게 대하시던 주님께서 이제는 붙여주는 영혼들에게 그렇게 대하며 섬기라고 하신 것입니다. 한 달란트를 받았지만 땅에 묻지 않고 순종했습니다. 서툴고 때로는 어리석기까지 한 지난 20년의 목회였지만, 주님께서는 순종하는 저자를 토기장이의 원하심을 따라 빚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열정과 예수님을 기쁘시게 하는 교회에 대한 비전을, 저자의 생애와 사역 전반에 걸쳐 기초가 되게 하셨습니다. 현재, 하나님 앞에서 그의 유일한 소망은 한 영혼이 더 구원받아 하나님과 연합하는 것입니다. 즉, 죄 용서를 누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영 안에 있는 영혼의 거처에서 안식을 찾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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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6년 09월 22일
쪽수, 무게, 크기
192쪽 | 152*225*20mm
ISBN13
9791124989128

책 속으로

1. 먼저 보좌를 보십시오
히브리서는 인간의 문제에서 시작하지 않습니다. 먼저 묻습니다. 누가 지금 만물을 붙들고 있는가, 누가 역사의 상속자인가, 누가 보좌에 앉아 있는가.
세상이 흔들려도 보좌는 비어 있지 않습니다.
그 보좌에는 아들이 앉아 계십니다.
보좌의 쉼은 마음을 안정시키는 기술이 아니라, 실제 보좌가 흔들리지 않기 때문에 누리는 존재의 안식입니다.
2. 죽음은 마지막 사건이기 전에 현재의 통치가 될 수 있습니다
죽음은 심장이 멈추는 마지막 순간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상실의 두려움, 실패의 두려움, 가난과 질병과 미래의 두려움으로 지금의 존재를 통치할 수 있습니다.
그때 인간은 자신을 지키기 위해 더 많이 소유하고 더 정교하게 계산하고 더 강하게 통제합니다. 겉으로 자유로운 것 같지만 실제로는 종입니다.
십자가는 바로 그 죽음의 통치를 끝냈습니다.
3. 안식의 문제는 환경보다 통치의 문제입니다
광야를 벗어났다고 자동으로 쉬는 것은 아닙니다. 집을 얻고 돈이 많아지고 문제가 해결되어도 자기 통치가 끝나지 않으면 사람은 쉬지 못합니다. 더 빠른 도구가 생기면 더 빠르게 자신을 몰아붙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질문은 이것입니다.
누가 나를 다스리고 있는가?
안식은 환경의 문제가 아니라 통치의 문제입니다.
4. 말씀은 드러내지만 보좌는 우리를 받아 줍니다
살아 있고 활력 있는 말씀은 혼과 영,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며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합니다. 그러나 히브리서 4장은 거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말씀 앞에 모든 것이 드러난 바로 그 사람에게 말합니다.
“은혜의 보좌 앞으로 담대히 나아가십시오.”
우리가 숨을 곳이 없어졌기 때문에 도망가는 것이 아니라, 숨을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에 나아갑니다. 이것이 파레시아이며 보좌의 쉼입니다.
5. 영혼의 닻은 흔들리는 땅에 내려져 있지 않습니다
소망은 영혼의 닻과 같습니다. 그러나 그 닻은 우리가 서 있는 흔들리는 땅에 내려져 있지 않습니다. 우리보다 먼저 휘장 안으로 들어가신 예수께 걸려 있습니다.
세상이 흔들리지 않아야 내가 안전한 것이 아닙니다.
나의 닻이 영원한 그리스도께 내려져 있기 때문에 흔들리는 세상에서도 존재는 돌아갈 자리를 압니다.
6. 단번에 이루셨기에 그리스도께서는 앉으셨습니다
옛 제사장은 매일 서서 같은 제사를 반복했습니다. 일이 끝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몸을 단번에, 에파팍스 드리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셨습니다.
그분이 이루셨기 때문에 우리는 자기 증명의 수고를 멈출 수 있습니다.
보좌의 쉼은 그리스도께서 앉으셨다는 사실에 근거합니다.
7. 담대함은 자기 확신이 아닙니다
우리는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습니다. 그 담력은 파레시아입니다. 내가 충분히 깨끗하고 강하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다는 확신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피가 충분하다는 확신입니다.
담대함은 자기 확신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완성에 근거한 존재의 자유입니다.
8. 믿음은 보이지 않는 실상을 지금 살아가는 방식입니다
믿음은 보이지 않는 미래를 막연히 상상하는 힘이 아닙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통치를 현재의 실상으로 살아가는 존재 방식입니다. 아브라함에게는 모든 정보를 담은 지도가 없었습니다. 약속이 있었습니다.
자기 통치는 모든 불확실성을 제거한 뒤 움직이려 하지만, 믿음은 약속하신 분의 신실하심 때문에 나아갑니다.
9. 흔들리지 않는 나라는 몸을 얻습니다
히브리서 12장은 흔들리지 않는 나라를 받았다고 선언합니다. 그리고 13장은 곧바로 말합니다.
“형제 사랑하기를 계속하십시오.”
이 연결은 우연이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는 추상적인 사상이 아닙니다. 사랑이 되고, 환대가 되고, 함께 아파하는 몸이 되고, 나눔과 찬양과 선행이 됩니다.
존재가 행위를 낳습니다.
10. 휘장 안에 닻을 내렸기 때문에 영문 밖으로 갈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의 마지막 부름은 영문 밖입니다. 그러나 고난 자체를 찾아가라는 말이 아닙니다.
그곳에 예수께서 계시기 때문에 나아가는 것입니다.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아가는 길과 영문 밖으로 나아가는 길은 하나입니다. 보좌에 앉으신 대제사장이 바로 영문 밖에서 고난받으신 어린양이기 때문입니다.
휘장 안에 닻을 내린 존재만이 자기 안전의 성벽을 넘어 사랑을 향해 걸어갈 수 있습니다.
--- 본문 중에서

출판사 리뷰

세상을 덜 흔들리게 만드는 신앙이 아니라
흔들리지 않는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신앙

사람은 흔들리지 않기를 원한다. 그래서 돈을 모으고, 건강을 관리하고, 관계를 확보하며 미래를 예측한다. 기술도 같은 방향으로 발전한다. 더 많은 데이터를 모으고, 더 빠르게 계산하며, 더 정확하게 미래를 예측한다.
그러나 인간은 과연 그만큼 더 안식하게 되었는가? 『보좌의 쉼으로 읽는 히브리서』는 전혀 다른 방향을 가리킨다.
하나님은 흔들리는 것을 흔들리지 않게 고정시키시는 분이 아니라, 흔들리는 것을 지나가게 하여 영원한 것만 남게 하시는 분이다.
그래서 이 책의 핵심 질문은 “어떻게 하면 삶이 흔들리지 않을까?”가 아니다.
“나는 무엇에 닻을 내리고 있는가?”
히브리서의 성도들은 박해와 상실 속에서 눈에 보이는 옛 종교 질서로 돌아가고 싶었다. 성전은 보였고, 제사장은 보였으며, 제사는 반복되었다. 반면 하늘 성소와 보좌, 영원한 대제사장은 눈에 보이지 않았다.
오늘의 인간도 구조는 다르지 않다. 눈에 보이는 소유, 숫자, 결과, 데이터와 예측을 붙잡으면 더 안전할 것처럼 느낀다. 그러나 히브리서는 처음부터 시선을 다른 곳으로 옮긴다.
먼저 보좌를 보라.
그 보좌에는 아들이 앉아 계신다. 보좌의 쉼이 가능한 이유는 인간이 자신의 마음을 잘 다스렸기 때문이 아니다.
보좌 자체가 흔들리지 않기 때문이다.
이 책의 중요한 특징 가운데 하나는 죽음의 두려움과 자기 통치를 연결한다는 데 있다. 인간은 아직 죽지 않았는데도 죽음에 종노릇한다. 잃을까 두려워하고, 실패할까 두려워하고, 늙고 병들까 두려워하고, 미래를 통제하지 못할까 두려워한다. 그래서 삶을 계산하고 끊임없이 정탐한다.
그리스도께서는 그 두려움을 멀리서 제거하지 않으셨다. 직접 죽음을 맛보셨다. 그리고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권세를 무너뜨리셨다. 따라서 십자가의 해방은 단순히 죽은 뒤 천국에 갈 자격을 얻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죽음의 통치 아래 살아가던 존재가 지금 그리스도의 통치 안으로 옮겨지는 사건이다.
이 존재 교체가 히브리서 4장의 안식으로 이어진다. 안식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상태가 아니다. 환경이 모두 정리된 상태도 아니다.
자기 일을 쉰다는 것은 자기 자신이 삶의 근거가 되는 일을 멈추는 것이다.
사람은 여전히 일하고, 책임지고, 사랑하고 섬긴다. 그러나 이제 생명의 근거는 자기 자신에게 있지 않다. 그래서 이 책의 보좌의 쉼은 수동성이 아니라 통치의 이동이다.
그리고 그 쉼에는 놀라운 담대함이 있다. 파레시아. 자신이 완벽해서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기 확신이 아니다. 큰 대제사장이 있기 때문에, 예수의 피가 있기 때문에 나아가는 자유다.
이후 히브리서의 대제사장론은 이 담대함의 근거를 더 깊게 한다. 인간의 제사장은 죽어서 바뀐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파괴될 수 없는 생명의 능력으로 영원히 살아 계신다. 따라서 소망의 닻은 흔들리는 땅에 내려져 있지 않다.
휘장 안에 들어가신 그리스도께 걸려 있다.
이 이미지는 이 책 전체를 대표할 만큼 강력하다. 배가 흔들리지 않는 이유는 파도가 없기 때문이 아니다. 닻이 어디에 걸려 있는지가 다르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핵심은 에파팍스, ‘단번에’다. 반복되는 제사와 달리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몸을 단번에 드리셨다. 옛 제사장은 계속 서 있지만 그리스도께서는 앉으셨다. 완성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신앙은 이미 끝난 제사를 마음속에서 다시 반복하는 삶이 아니다. 자기 안에 계속 재판정을 만들고 지난 죄를 다시 꺼내 자기 자신을 처벌하는 삶도 아니다. 그리스도의 피는 양심을 정결하게 한다.
정결한 양심은 보좌 앞으로 나아간다.
그리고 그 자리에 오래 머문 존재는 성숙한다. 히브리서가 말하는 장성함은 새로운 정보의 축적만이 아니다.
지각을 사용하여 선악을 분별하도록 연단된 존재다.
무엇이 흔들리는지를 알아차리고 그것을 버려버릴 수 있는 능력이다. 자기 통치는 흔들리는 것을 더 강하게 붙든다. 보좌의 쉼에 거하는 존재는 하나님께서 흔드시는 것을 가볍게 놓고, 흔들리지 않는 그리스도께 더 깊이 거한다.
그것이 히브리서 11장의 믿음으로 연결된다. 믿음은 자신의 확신을 현실 위에 투사하는 힘이 아니다.
하나님의 실재를 현재 살아가는 존재 방식이다.
아벨의 믿음은 죽음을 피하게 하지 않았다. 노아의 믿음은 아직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을 오늘의 노동으로 만들었다. 아브라함은 지도를 받은 사람이 아니라 약속을 받은 사람이었다.
그래서 믿음의 장 이후 히브리서는 시온산과 흔들리지 않는 나라를 선언한다. 성도는 언젠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만을 기다리는 사람이 아니라, 이미 흔들리지 않는 나라를 받은 사람이다.
그렇다면 그 나라를 받은 사람은 어떻게 사는가? 히브리서 13장이 대답한다.
형제를 사랑한다. 나그네를 환대한다. 갇힌 자와 함께한다. 돈의 통치에서 벗어난다. 찬송하고, 선을 행하고, 나눈다.
히브리서의 최고봉 같은 하늘 성소의 신학이 지극히 평범한 사랑과 환대의 삶으로 내려온다. 행위가 존재를 만드는 것이 아니다.
존재가 행위를 낳는다.
이미 흔들리지 않는 나라를 받았기 때문에 그 나라를 몸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부름은 영문 밖이다. 이것이 이 책의 중요한 역설이다.
보좌의 쉼은 세상에서 물러나는 안전한 영성이 아니다. 오히려 보좌에 거하기 때문에 영문 밖으로 나갈 수 있는 영성이다. 휘장 안에는 대제사장이 있고, 영문 밖에는 고난받으신 예수가 있다. 그러나 둘은 한 분이다.
따라서 보좌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은 결국 예수가 계신 영문 밖으로 나아간다. 그곳에서 보좌의 쉼은 사랑과 환대, 선행과 나눔이라는 몸을 얻는다.
『보좌의 쉼으로 읽는 히브리서』는 그래서 독자를 더 안전한 종교의 성벽 안으로 초대하지 않는다.
영원한 그리스도께 존재를 정박시킨 뒤, 흔들리는 세상 한복판에서 흔들리지 않는 나라를 살아가도록 부른다.

대상 독자

이 책은 다음과 같은 독자를 위한 책입니다.
삶이 흔들릴 때마다 더 많이 계산하고 통제해야 안심할 수 있다고 느끼는 독자
죽음의 두려움을 임종의 공포만이 아니라 자기 보존과 자기 통치의 깊은 구조에서 이해하고 싶은 독자
히브리서 3-4장의 광야와 안식을 보좌의 쉼이라는 관점에서 깊이 읽고 싶은 독자
카타파우시스와 사바티스모스, ‘자기 일을 쉰다’는 말씀의 의미를 실제 삶과 연결하여 묵상하고 싶은 독자
살아 있는 말씀의 찔림과 은혜의 보좌 앞의 파레시아가 어떻게 연결되는지 알고 싶은 독자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영원한 대제사장과 ‘파괴될 수 없는 생명의 능력’이 오늘의 신앙에 어떤 의미를 갖는지 탐구하고 싶은 독자
반복되는 자기 정죄에서 벗어나 그리스도의 단번의 제사와 정결한 양심을 누리고 싶은 독자
믿음을 현실을 바꾸는 자기 확신의 기술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실상을 현재 살아가는 존재 방식으로 이해하고 싶은 독자
고난과 흔들림 속에서 무엇을 붙들고 무엇을 버려버려야 하는지를 분별하는 성숙을 배우고 싶은 독자
시온산과 흔들리지 않는 나라를 먼 미래만이 아니라 현재적 하나님 나라의 삶과 연결하고 싶은 독자
보좌의 쉼을 개인적 평안에 머물게 하지 않고 사랑과 환대, 나눔과 선행으로 살아가고 싶은 목회자와 성도
‘영문 밖’의 의미를 종교적 성공이나 안전지대를 넘어 그리스도께 나아가는 제사장적 삶으로 이해하고 싶은 독자
존재 교체, 혼의 구원, 몸의 순복, 공동체와 하나님 나라라는 성경시리즈 전체의 흐름을 히브리서에서 완결하여 보고 싶은 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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