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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께서 사시는 존재 : 요한복음·요한서신
황웅렬
보좌의쉼 2026.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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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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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들어가면서 — 존재란 누가 사는가의 문제입니다

제1부 존재를 계시하시는 말씀

요한복음 1-12장
1장 말씀이 육신이 되어 존재를 드러내시다
2장 존재를 부르시는 그리스도
3장 존재를 계시하시는 그리스도
4장 존재를 공급하시는 그리스도
제1부 결론

제2부 존재를 연합시키시는 그리스도

요한복음 13-17장
5장 존재는 사랑으로 연합됩니다
6장 존재는 생명으로 살아갑니다
7장 존재는 하나 됨으로 완성됩니다
제2부 결론

제3부 존재를 새롭게 하시는 그리스도

요한복음 18-21장
8장 십자가에서 옛 존재가 끝나다
9장 성령 안에서 새로운 존재가 시작되다
제3부 결론

제4부 존재가 공동체가 되다

요한1·2·3서
10장 존재는 빛 가운데 걷습니다
11장 존재는 사랑으로 살아갑니다
12장 존재는 진리 안에 머뭅니다
13장 존재는 영혼의 형통으로 완성됩니다
제4부 결론

나가면서 — 존재는 통치가 됩니다
참고자료 — 이 여정에 함께한 증인들
성경시리즈 안내

저자 소개 1

성균관대학교 B.A. 장로회신학대학교 M.Div 보스턴대학교 STM 영성 전공 케임브리지연합장로교회 교육목사 필라한겨레교회 2003년 개척-현재 · 저서 하나님 임재와 천국 지금 이 순간 여기에 (좋은땅) 하나님 임재와 성경일독 (좋은땅) God’s Presence and Heaven In the Present (WestBow) 2003년 봄, 저자는 보스턴에서 아내와 자식과 함께 주님의 몸이 되어 개척을 시작했습니다. 그해 여름, 주님께서 필라델피아로 가라고 하셨습니다: “너희는 소외된 자들의 벗이 되어 그들을 나에게로 인도하여라. 그곳은
성균관대학교 B.A.
장로회신학대학교 M.Div
보스턴대학교 STM 영성 전공
케임브리지연합장로교회 교육목사
필라한겨레교회 2003년 개척-현재

· 저서
하나님 임재와 천국 지금 이 순간 여기에 (좋은땅)
하나님 임재와 성경일독 (좋은땅)
God’s Presence and Heaven In the Present (WestBow)

2003년 봄, 저자는 보스턴에서 아내와 자식과 함께 주님의 몸이 되어 개척을 시작했습니다. 그해 여름, 주님께서 필라델피아로 가라고 하셨습니다: “너희는 소외된 자들의 벗이 되어 그들을 나에게로 인도하여라. 그곳은 너희가 나에게 큰 순종을 보일 수 있는 곳이다.” 소외된 목사 부부 모습 그대로를 늘 존귀하게 대하시던 주님께서 이제는 붙여주는 영혼들에게 그렇게 대하며 섬기라고 하신 것입니다. 한 달란트를 받았지만 땅에 묻지 않고 순종했습니다. 서툴고 때로는 어리석기까지 한 지난 20년의 목회였지만, 주님께서는 순종하는 저자를 토기장이의 원하심을 따라 빚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열정과 예수님을 기쁘시게 하는 교회에 대한 비전을, 저자의 생애와 사역 전반에 걸쳐 기초가 되게 하셨습니다. 현재, 하나님 앞에서 그의 유일한 소망은 한 영혼이 더 구원받아 하나님과 연합하는 것입니다. 즉, 죄 용서를 누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영 안에 있는 영혼의 거처에서 안식을 찾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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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6년 09월 22일
쪽수, 무게, 크기
122쪽 | 152*225*20mm
ISBN13
9791124989111

책 속으로

1. 존재는 “누가 사는가”의 문제입니다
우리는 흔히 존재를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더 깊이 묻습니다.
“지금 내 안에는 누가 살고 있는가?”
내가 삶의 중심에서 판단하고 결정하며 살아가는가, 아니면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주인으로 사시는가. 존재 교체는 다른 사람이 되는 일이 아니라 삶의 주인이 바뀌는 사건입니다.
2. 복음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자신의 집으로 삼으시는 이야기입니다
요한은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 사셨다”고만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장막을 치셨다.” 광야의 성막에서 시작된 하나님의 거주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몸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성령 안에서 그리스도와 연합한 사람들 가운데 계속됩니다.
하나님의 마지막 목적은 건물이 아니라 사람입니다.
복음은 사람이 하나님께 갈 집을 찾는 이야기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사람을 자신의 거처로 삼으시는 이야기입니다.
3. 자유는 거함의 열매입니다
예수님은 “내 말에 거하면 진리를 알게 되고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순서가 중요합니다. 먼저 말씀 안에 거합니다. 그리고 진리를 압니다. 그 결과 자유가 옵니다.
자유는 더 강한 자기 통치가 아닙니다.
아들이 우리 안에 사시는 것이 참 자유입니다.
4. 카토스는 모방이 아니라 참여의 문법입니다
아들이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신 것 같이 우리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삽니다.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신 것 같이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셨고,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 같이 우리도 서로 사랑합니다.
이 ‘같이’, 카토스(καθώς)는 단순한 흉내의 명령이 아닙니다.
먼저 그분 안에 거하고, 그분의 생명이 우리 안에서 살아지는 참여의 문법입니다.
거함이 먼저이고 행함은 열매입니다.
5. “다 이루었다”는 옛 존재의 종결과 새 창조의 문입니다
테텔레스타이는 패배의 탄식이 아닙니다. “완성되었다. 목적에 이르렀다.” 성육신으로 시작된 하나님의 구원이 십자가에서 완성되었다는 왕의 선언입니다.
십자가에서 자기 통치의 옛 존재는 종결되고, 그리스도의 생명이 믿는 사람들 안으로 흘러가는 새 창조의 길이 열립니다.
6. 새로운 존재는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숨으로 시작됩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제자들에게 숨을 내쉬며 말씀하셨습니다. “성령을 받으라.” 첫 창조에서 하나님의 숨이 사람에게 생명을 주었다면, 새 창조에서는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숨이 새로운 생명을 시작합니다.
새로운 존재는 자신을 고쳐서 만들어 낸 사람이 아닙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생명을 받은 사람입니다.
7. 하나님은 내 마음보다 크십니다
마음이 나를 책망할 때 우리는 쉽게 자신의 마음을 최종 재판관으로 삼습니다. 그러나 요한은 말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마음보다 크십니다.
자기를 높이는 것만 자기 통치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판결하신 사건을 내 마음이 다시 열어 나 자신을 최종적으로 정죄하는 것 역시 자기 통치가 될 수 있습니다.
보좌의 쉼은 내 마음의 소리보다 하나님의 판결을 더 크게 받아들이는 자리입니다.
8. 그리스도보다 앞서가는 것이 성숙은 아닙니다
요한이서는 프로아곤(προάγων)을 경고합니다. 거짓 교사들은 자신들이 뒤처졌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더 앞섰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지나쳐 나아간 곳에는 하나님이 계시지 않습니다. 그리스도는 통과해야 할 단계가 아닙니다.
그분은 머물러야 할 생명입니다.
새로운 피조물의 길은 지나침이 아니라 거함입니다.
9. 으뜸 되기를 사랑하면 공동체가 무너집니다
디오드레베에게 사용된 말은 필로프로튜온, ‘첫째 되기를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요한은 그의 교리보다 사랑의 방향을 문제 삼습니다. 그리스도가 아니라 첫째 자리를 사랑했습니다.
첫째 자리는 하나뿐이기 때문에, 그 자리를 지키려면 결국 다른 사람을 밀어내야 합니다.
으뜸 사랑은 자기 통치가 공동체 안에서 취하는 모습입니다.
10. “네 영혼이 잘됨 같이”는 존재의 형통입니다
영혼의 형통은 세상적인 성공을 뜻하지 않습니다. 혼이 본래 있어야 할 자리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이미 그리스도와 한 영 된 생명의 실재에 혼이 참여하고, 생각은 새로워지며, 감정은 보좌 앞에서 쉼을 얻고, 의지는 하나님의 통치에 순복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존재의 중심에서 다스리시는 것, 이것이 존재의 형통입니다.
--- 본문 중에서

출판사 리뷰

더 나은 ‘나’를 만드는 신앙에서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존재’로

현대인은 자신의 존재에 이전 어느 시대보다 많은 관심을 기울인다. 나는 누구인가, 무엇을 원하는가, 어떤 사람으로 살아야 하는가. 그러나 그 질문의 중심에는 여전히 ‘나’가 있다. 내가 나를 발견하고, 내가 나를 발전시키며, 내가 내 삶을 완성한다.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존재』는 요한복음의 질문을 통하여 그 중심 자체를 흔든다.
존재는 내가 나를 어떻게 만들어 가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내 안에 누가 사는가의 문제다.
이 책의 첫 문장은 방향을 분명하게 보여 준다. 존재는 삶의 주인을 결정하는 자리이며, “내가 사는가 그리스도께서 사시는가”의 문제다.
요한복음은 인간에게서 시작하지 않는다. 태초부터 계신 말씀에게서 시작한다. 그리고 그 말씀이 인간에게 도달하는 방식은 인간이 하늘로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내려오시는 것이다.
말씀이 장막을 치신다. 성육신은 그래서 단순한 기독론적 교리가 아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자신의 거처로 삼으시려는 거대한 구속사의 시작이다.
이 책의 특별한 강점은 이 장막의 언어를 요한복음 전체의 머무름과 연결한다는 데 있다. 생명의 떡을 먹으며 그리스도 안에 머물고, 말씀 안에 거하며, 포도나무와 가지처럼 서로 안에 거한다. 신앙은 밖에 계신 예수를 닮으려는 종교에서 안에 계신 그리스도의 생명에 참여하는 연합으로 옮겨진다.
그래서 이 책에서 카토스(καθώς)는 매우 중요한 단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이 ‘같이’는 도덕적 복사 명령이 아니다. 아버지와 아들에게 이미 있는 생명과 사랑에 참여하라는 초대다.
거함이 먼저이고 행함은 열매다.
이 원리는 십자가에서도 동일하다. “다 이루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인간에게 이제부터 더 열심히 자기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요구하는 출발점이 아니다. 그리스도께서 이미 이루신 종결과 새 시작의 사건이다.
그래서 이 책의 존재 교체는 자기 개선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옛 존재를 더 좋은 존재로 발전시키는 것이 아니다.
삶의 주인이 바뀐다.
그 변화는 부활의 아침에 새 창조로 열린다. 두려움으로 문을 잠근 제자들에게 주님은 평강을 선포하시고 숨을 내쉬신다. 그리스도의 숨은 단순한 격려가 아니라 창세기의 첫 창조를 연상시키는 새로운 창조의 행위다.
그때부터 신앙은 예수께서 과거에 어떻게 사셨는지를 기억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생명이 성령 안에서 믿는 사람들 가운데 살아가기 시작한다.
그러나 이 책은 그 연합을 개인주의적 신비 체험으로 끝내지 않는다. 요한서신으로 넘어가면서 존재는 공동체가 된다. 빛 가운데 걷고, 서로 사랑하고, 진리 안에 머무른다.
특히 “하나님은 우리 마음보다 크시다”는 말씀은 자신의 감정과 자기 평가에 갇힌 현대인에게 중요한 복음이 된다. 우리는 자신을 높이는 것만 자기 통치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스스로를 끊임없이 정죄하고 스스로 최종 판결을 내리는 것 역시 마음을 하나님의 자리 위에 올려놓는 자기 통치가 될 수 있다. 복음은 내 마음의 판결보다 하나님의 판결이 더 크다고 선언한다.
반대로 요한이서와 요한삼서에서는 신앙의 또 다른 위험이 드러난다. 더 새롭고, 더 깊고, 더 앞선 것을 찾으려는 프로아곤, 그리고 공동체 안에서 으뜸이 되려는 디오드레베의 욕망이다.
둘은 서로 달라 보이지만 뿌리는 같다. 자기 통치다. 하나는 그리스도보다 앞서가려 하고, 다른 하나는 공동체 안에서 첫째 자리를 차지하려 한다.
요한이 제시하는 길은 놀라울 만큼 단순하다.
머물러라.
그리스도는 지나가야 할 단계가 아니다. 그분은 생명이다. 그리고 그 생명 안에 머물 때 참된 형통이 시작된다.
“네 영혼이 잘됨 같이”는 더 많은 성공과 소유를 약속하는 문장이 아니다. 혼이 본래의 집으로 돌아가고, 그리스도와의 한 영 됨에 참여하고, 몸과 관계와 공동체가 그 통치 아래 정렬되는 존재의 형통이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존재』가 마지막에 도달하는 결론은 제목 그대로다.
내가 그리스도를 위해 사는 것보다 더 깊은 복음은,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서 사시는 것이다.
그리고 그 생명이 몸과 관계와 공동체를 통하여 흘러갈 때,
존재는 통치가 된다.

대상 독자

이 책은 다음과 같은 독자를 위한 책입니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넘어 “내 안에 누가 사는가?”라는 복음의 질문을 붙들고 싶은 독자
요한복음과 요한서신을 성육신·십자가·부활·연합·공동체라는 하나의 흐름으로 읽고 싶은 독자
요한복음의 메노(머무름)가 그리스도인의 실제 삶에서 무엇을 뜻하는지 깊이 알고 싶은 독자
포도나무와 가지의 연합을 종교적 모방보다 그리스도의 생명에 참여하는 삶으로 이해하고 싶은 독자
카토스(καθώς)의 ‘같이’를 자기 노력의 명령이 아니라 연합과 참여의 문법으로 읽고 싶은 독자
“다 이루었다”와 부활하신 예수님의 숨을 존재 교체와 새 창조의 관점에서 묵상하고 싶은 독자
자신의 생각과 감정, 특히 자기 정죄에 사로잡혀 하나님의 은혜보다 자기 마음의 판결을 크게 느끼는 독자
더 새롭고 더 특별한 영성을 찾아 ‘그리스도를 지나쳐 가는’ 위험에서 벗어나 단순히 그리스도 안에 머물고 싶은 독자
교회 안의 자기 권리와 으뜸 됨의 욕망을 내려놓고 사랑과 진리의 공동체를 세우고 싶은 목회자와 성도
요한삼서의 “네 영혼이 잘됨 같이”를 세속적 번영이 아닌 존재의 형통으로 다시 읽고 싶은 독자
존재 교체, 한 영 됨, 혼의 구원, 몸의 순복과 보좌의 쉼이 어떻게 공동체와 하나님 통치로 이어지는지 탐구하려는 목회자, 신학생, 성경공부 인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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