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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면서 — 왜 로마서인가?
제1부 — 하나님의 복음과 새 인류 Part 1 죄 아래 있는 인류 1장 무너진 인간 2장 종교도 인간을 구원하지 못한다 3장 모두 죄 아래 있다 Part 2 하나님의 의와 존재 교체 4장 믿음으로 의롭다 함 5장 아담 안에서 그리스도 안으로 브릿지 — 존재 교체 이후, 삶은 어떻게 열리는가? Part 3 함께 죽고 함께 사는 존재 6장 죄에 대하여 죽은 자 7장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8장 그러나 감사하리로다 Part 4 성령 안의 보좌의 쉼 9장 정죄 없음 10장 탄식 속 안식 11장 끊을 수 없는 사랑 제1부 결론 — 보좌의 쉼으로 들어가는 새 존재의 길 브릿지 — 보좌의 쉼에서 몸의 통치로 제2부 — 몸을 통한 하나님의 통치 Part 5 하나님의 긍휼과 역사 12장 하나님의 주권 앞에 서다 13장 이스라엘의 실패와 하나님의 신실하심 14장 넘어짐과 접붙임 15장 하나님의 시간 안으로 들어가기 16장 새 인류를 향한 기다림 Part 6 몸을 통한 하나님의 통치 17장 몸을 산 제물로 18장 새 인류의 질서 19장 약한 자와 강한 자 20장 열방을 향하는 복음 21장 새 인류 공동체의 얼굴들 나가면서 — 하나님의 복음 로마서의 생명의 로드맵 참고자료 — 이 여정에 함께한 증인들 성경시리즈 안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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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죄는 행동 이전에 존재의 방향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죄는 단순히 나쁜 행동 몇 가지가 아니라, 하나님 대신 내가 중심이 되는 삶입니다. 이 책은 이것을 자기 통치라고 부릅니다. 하나님 없이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순간부터 사람은 자기 힘으로 자신을 붙들어야 합니다. 미래를 통제하려 하고, 관계를 지배하려 하며, 자신의 존재 가치를 스스로 증명해야 합니다. 그래서 사람은 쉬지 못합니다. 지금 당신 삶의 중심에는 누가 앉아 있는가? 2. 법정은 문이고, 연합은 집입니다 법정적 칭의와 연합적 칭의는 서로 경쟁하지 않습니다. 먼저 하나님은 십자가 안에서 죄인을 의롭다 선언하십니다. 그리고 그 선언된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 거하게 하십니다. 법정은 문이고, 연합은 집입니다. 법정적 칭의가 없다면 우리는 하나님 앞에 설 수 없습니다. 그러나 연합이 없다면 복음은 단지 죄책 제거에 머물고 맙니다. 복음의 목적은 하나님과 함께 거하는 새 인류를 세우는 것입니다. 3. 복음은 거주의 변화입니다 인간은 언제나 어떤 존재 안에 속하여 살아갑니다. 아담 안에는 두려움과 자기 통치가 있습니다. 하나님과 분리된 삶, 죄와 죽음의 질서가 흐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는 전혀 다른 질서가 있습니다. 은혜와 생명, 평화와 하나님과의 연합입니다. 그래서 복음은 단순한 죄 용서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것은 거주의 변화입니다. 아담 안에서 그리스도 안으로 옮겨지는 사건입니다. 4. “오호라”는 “그러나 감사하리로다”로 들어가는 문입니다 싸움이 있다는 것이 실패의 증거는 아닙니다. 오히려 새로운 생명이 시작되었기에 이전과 다른 갈등이 생긴 것입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는 실패의 고백이 아닙니다. “그러나 감사하리로다”로 들어가는 문입니다. 자기 통치가 멈추는 자리에서 성령의 생명이 실제가 되기 시작합니다. 5. 몸은 탄식하지만 존재의 중심은 이미 보좌 앞에 있습니다 정죄 없음은 내 믿음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신실하심 위에 서 있음을 보여 줍니다. 탄식 속 안식은 광야 한가운데서도 흔들리지 않는 삶을 보여 주고, 끊을 수 없는 사랑은 그 안식을 영원한 확신으로 완성합니다. 몸은 여전히 탄식하지만, 존재의 중심은 이미 보좌 앞에 있습니다. 보좌의 쉼은 아무 일도 없는 상태가 아니라, 탄식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안식입니다. 6. “몸을 드리라”는 긍휼에 대한 존재의 응답입니다 로마서 12장의 명령은 갑자기 떨어진 윤리적 요구가 아닙니다. 바울은 명령보다 먼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우리를 부릅니다. 몸을 드리는 것은 그 긍휼에 대한 존재의 응답입니다. 보좌의 쉼은 개인의 내면에 머물지 않고 반드시 몸을 통해 흘러나옵니다. 몸이 하나님께 순복될 때 생각과 감정, 관계와 공동체 속으로 그 생명이 흘러가기 시작합니다. 7. 복음 안의 강함은 상대를 품는 능력입니다 강한 자는 약한 자를 답답하게 여기기 쉽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강함을 전혀 다른 방식으로 정의합니다. 복음 안에서 강함은 상대를 이기는 능력이 아니라 상대를 품는 능력입니다. 성숙은 단지 더 자유로워지는 것이 아니라, 사랑 때문에 내 자유를 절제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라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기 때문입니다. 8. 복음은 사람의 얼굴을 가집니다 로마서의 마지막에서 바울은 사람들의 이름을 부릅니다. 뵈뵈, 브리스가와 아굴라, 안드로니고와 유니아, 루포의 어머니, 마리아, 드루배나와 드루보사. 왜 로마서라는 깊은 복음의 편지가 이름들로 끝나는 것일까요? 복음의 목적이 결국 사람의 얼굴을 가진 공동체를 만들어 내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16장의 이름들은 단순한 명단이 아니라, 하나님의 복음이 몸을 통해 살아진 증언입니다. 9. 보좌의 쉼은 안주가 아니라 확장입니다 보좌의 쉼은 공동체를 살리고 관계를 회복하며 마침내 열방을 향해 흘러갑니다. 그 쉼은 순복된 몸을 통해 사람의 얼굴을 입고 역사 속으로 흘러갑니다. 보좌의 쉼은 멈춤이 아니라 흐름입니다. 존재 교체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며, 몸을 통한 하나님의 통치로 살아지는 생명의 시작입니다.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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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의에서 끝나지 않는 로마서
“나는 구원받았는가?”에서 “나는 지금 어디에 거하고 있는가?”로 로마서는 흔히 기독교 교리의 정상으로 불린다. 죄, 칭의, 믿음, 은혜, 성령, 하나님의 주권. 그러나 『로마서, 존재 교체와 새 인류』는 이 거대한 신학을 하나의 질문으로 관통한다. “나는 지금 어디에 거하고 있는가?” 바울의 인간 이해에서 사람은 고립된 개인이 아니라 언제나 어떤 존재 질서 안에서 살아간다. 아담 안인가, 그리스도 안인가. 아담 안에서는 인간이 자기 생명과 안전과 가치를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 그래서 자기 증명과 비교, 불안과 통제가 삶의 문법이 된다. 이 책은 그것을 자기 통치라고 부른다. 반면 그리스도 안에는 다른 생명의 질서가 열린다. 은혜, 생명, 화평, 성령, 하나님과의 연합이다. 그러므로 복음은 아담 안의 인간을 조금씩 개선하여 더 훌륭한 아담으로 만드는 일이 아니라, 아담 안에서 그리스도 안으로 옮기는 사건이다. 이 책이 이를 존재 교체라고 부르는 이유다. 특히 이 책의 중요한 특징 가운데 하나는 칭의와 연합을 경쟁시키지 않는다는 점이다. 하나님께서 죄인을 의롭다 하시는 법정적 선언은 복음의 필수적인 토대다. 그러나 그 선언은 인간을 다시 홀로 세워 놓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 거하게 하기 위한 문이다. 법정은 문이고, 연합은 집이다. 이 한 문장은 로마서의 칭의와 존재 교체를 연결하는 이 책의 중요한 신학적 축이다. 또 하나의 특징은 Pistis Christou, 곧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과 ‘그리스도의 신실하심’에 관한 논의를 숨기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 책은 해석 논쟁이 존재함을 밝히면서도 로마서 전체의 흐름에서 ‘그리스도의 신실하심’을 주된 렌즈로 사용한다. 구원의 궁극적인 근거는 인간이 하나님을 얼마나 강하게 붙드는가가 아니라, 죽기까지 아버지께 신실하셨던 그리스도에게 있다는 것이다. 동시에 인간의 믿음은 그 신실하심에 대한 응답으로 이해한다. 이 관점은 로마서 7장을 읽는 방식에도 영향을 준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는 구원받지 못한 인간에 대한 단순한 절망으로 끝나지 않는다. 이 책은 다양한 역사적 해석을 소개하면서, 존재가 이미 그리스도께 속했으나 몸과 삶에는 옛 질서의 관성이 남아 있는 존재 전환의 긴장을 중요하게 읽는다. 싸움이 있다는 사실 자체가 새 생명이 없다는 증거는 아니다. 그리고 자기 힘으로 자신을 완성하려는 마지막 열심이 무너질 때 바울은 감사한다. “그러나 감사하리로다.” 그 감사가 로마서 8장의 문을 연다. 정죄 없음, 아바 아버지, 성령의 중보, 탄식 속의 안식, 끊을 수 없는 사랑. 이 책은 그것을 성령 안의 보좌의 쉼이라는 하나의 흐름으로 읽는다. 몸은 여전히 탄식해도 존재의 중심은 이미 보좌 앞에 머문다. 그러나 이것조차 로마서의 목적지는 아니다. 바울은 12장에서 단호하게 몸을 부른다. “그러므로 몸을 드리라.” 보좌의 쉼은 자기 내면을 평안하게 유지하는 영성으로 끝날 수 없다. 순복된 몸이 되고, 관계가 되고, 약한 자를 품는 사랑이 되고,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로마 교회의 실제 갈등에서 강한 자의 성숙은 자기 자유를 마음껏 사용하는 능력이 아니라 약한 자를 품을 수 있는 능력으로 나타난다. 바울은 누가 옳은지를 먼저 묻지 않고 “무엇이 몸을 살리는가?”를 묻는다. 그리고 복음은 공동체 울타리 안에 머물지 않고 열방으로 흘러간다. 바울이 스페인을 향해 품었던 선교의 비전처럼, 보좌의 쉼은 안주가 아니라 확장이다. 그래서 로마서의 마지막에는 거대한 신학 용어보다 사람의 얼굴들이 나타난다. 복음은 사람의 얼굴을 얻는다. 존재 교체가 몸을 얻고, 몸이 공동체를 이루며, 공동체가 열방을 향해 흘러가는 것. 이것이 『로마서, 존재 교체와 새 인류』가 그리는 복음의 지도다. 대상 독자 이 책은 다음과 같은 독자를 위한 책입니다. 로마서를 칭의와 구원 교리의 책을 넘어 존재 전체를 바꾸는 복음의 지도로 읽고 싶은 독자 ‘아담 안’과 ‘그리스도 안’이라는 바울의 언어가 실제 삶에서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싶은 독자 법정적 칭의와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서로 경쟁시키지 않고 함께 이해하고 싶은 독자 구원받았음에도 계속되는 내적 싸움 때문에 “나는 정말 변한 것인가?”라고 질문해 온 독자 로마서 7장의 탄식을 실패가 아니라 존재 전환의 긴장과 자기 통치의 종말이라는 관점에서 살펴보고 싶은 독자 로마서 8장의 정죄 없음, 성령의 중보, 양자됨과 끊을 수 없는 사랑을 보좌의 쉼이라는 흐름에서 묵상하고 싶은 독자 ‘그리스도의 신실하심’과 인간의 믿음의 응답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탐구하고 싶은 독자 로마서 12장의 몸을 산 제물로 드린다는 말씀을 종교적 자기희생이 아니라 하나님의 긍휼에 대한 존재의 응답으로 이해하고 싶은 독자 강한 자와 약한 자, 서로 다른 배경의 사람들이 어떻게 한 몸과 새 인류 공동체를 이루는지 고민하는 목회자와 성도 존재 교체, 존재 전환, 몸의 순복, 현재천국과 새 인류를 하나의 성경적 흐름으로 살펴보려는 목회자, 신학생, 성경공부 인도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