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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들은 내가 만든 것이 무엇인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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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프롤로그 예술이냐 아니냐

1 출생
2 당시의 프랑스
3 어린 시절
4 학창 시절
5 첫 초상
6 인간의 파벌
7 도시에서 먹고살기
8 첫사랑
9 아버지가 되다!
10 우체부!
11 애도
12 새로운 발견, 탄생
13 궁전, 공주……
14 한 예술가의 탄생
15 건축가
16 대담하게 시도하던 시절
17 참척의 고통
18 미친 듯이 일하기
19 에덴을 찾아서
20 궁전의 서쪽 파사드
21 절충적인 풍요로움
22 세 가지 아름다운 보답
23 영광의 시작
24 절정기
25 큰 인물이 되다
26 가사 도우미
27 꿈의 끝
28 마지막으로 만든 것
29 초현실주의자라고 하셨습니까?
30 논쟁
31 복원

슈발의 〈형제들〉
이상 궁전 방명록 발췌
참고 문헌 해제
감사의 말

저자 소개 2

저닐스 타베르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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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ls Tavernier

965년 파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누벨바그 영화감독 베르트랑 타베르니에, 어머니는 시나리오 작가 콜로 타베르니에 오헤이건이다. 열두 살 때 아버지의 영화에 출연하며 배우로 첫발을 내디뎠고, 이후 여러 영화에서 배우로 활동했다. 1990년대 들어 연출로 방향을 틀어 다큐멘터리와 극영화를 오가며 마흔 편이 넘는 작품을 만들었다. 2006년 첫 장편 영화 「오로르」를 연출했고, 2013년 사지마비 장애를 지닌 아들과 아버지의 실화를 그린 「땡큐, 대디」로 평단과 대중 양쪽에서 큰 반향을 얻었다. 이어 2018년, 홀로 자신만의 궁전을 지은 우체부 페르디낭 슈발의 생애를 그린 영
965년 파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누벨바그 영화감독 베르트랑 타베르니에, 어머니는 시나리오 작가 콜로 타베르니에 오헤이건이다. 열두 살 때 아버지의 영화에 출연하며 배우로 첫발을 내디뎠고, 이후 여러 영화에서 배우로 활동했다.
1990년대 들어 연출로 방향을 틀어 다큐멘터리와 극영화를 오가며 마흔 편이 넘는 작품을 만들었다. 2006년 첫 장편 영화 「오로르」를 연출했고, 2013년 사지마비 장애를 지닌 아들과 아버지의 실화를 그린 「땡큐, 대디」로 평단과 대중 양쪽에서 큰 반향을 얻었다. 이어 2018년, 홀로 자신만의 궁전을 지은 우체부 페르디낭 슈발의 생애를 그린 영화 「디 아이디얼 팰리스」를 연출했다.
실화로부터 인물들의 관계와 의지를 섬세하게 포착하는 것이 그의 작업 전반을 관통하는 특징이다. 『바보들은 내가 만든 것이 무엇인지 모른다』는 「디 아이디얼 팰리스」를 준비하며 발굴한 미공개 자료와 페르디낭 슈발의 일기를 바탕으로 쓴 논픽션이다.
옮긴이 이세욱 한프랑스어와 이탈리아어 번역가. 서울대학교 불어교육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오를레앙대학교에서 불문학을 공부한 뒤,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 미셸 투르니에, 르 클레지오, 미셸 우엘벡, 마르셀 에메, 에릭 오르세나, 장 크리스토프 그랑제 등 세계적인 프랑스 작가들의 작품을 번역했다. 또한 이탈리아 작가 움베르토 에코에 심취하여 이탈리아어를 착실하게 공부한 뒤, 에코의 소설과 에세이를 옮겨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 역서로 『나는 그녀를 사랑했네』 『함께 있을 수 있다면』 『개미』 『타나토노트』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 『아버지들의 아
옮긴이 이세욱 한프랑스어와 이탈리아어 번역가. 서울대학교 불어교육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오를레앙대학교에서 불문학을 공부한 뒤,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 미셸 투르니에, 르 클레지오, 미셸 우엘벡, 마르셀 에메, 에릭 오르세나, 장 크리스토프 그랑제 등 세계적인 프랑스 작가들의 작품을 번역했다. 또한 이탈리아 작가 움베르토 에코에 심취하여 이탈리아어를 착실하게 공부한 뒤, 에코의 소설과 에세이를 옮겨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 역서로 『나는 그녀를 사랑했네』 『함께 있을 수 있다면』 『개미』 『타나토노트』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 『아버지들의 아 버지』 『천사들의 제국』 『뇌』 『나무』 『신』 『웃음』을 비롯하여 『벽으로 드나드는 남자』 『소립자』 『밑줄 긋는 남자』 『두 해 여름』 『오래 오래』 『검은 선』 『미세레레』 『구제불능 낙천주의자 클럽』 등이 있다. 이탈리아 작품으로는 에코의 『프라하의 묘지』 『세상의 바보들 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 알레산드로 바리코의 『이런 이야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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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6년 10월 01일
쪽수, 무게, 크기
432쪽 | 120*188*30mm
ISBN13
9788932925943

책 속으로

「원 세상에, 여기에 모인 우리 가운데 어느 누구에게든 물어보세요. 그 뭐냐…… 위원님이 〈궁전〉이라 말하는 그것은 그저 〈어느 촌뜨기의 머릿골에 뒤섞여 있는 터무니없는 것들을 애처롭게 모아 놓은 것〉에 지나지 않아요!」
「장관님의 의견은 그와 다릅니다. 위원님은 결행하시는 게 나을 겁니다.」
「우리가 언제부터 명령을 받고 일했나요? 그건 그렇고, 위원님은 그 우체부의 건축물을 보기는 하셨나요? 〈전체적으로 보아 아주 망측하다고요.〉」
--- pp.9-10

〈내가 처음으로 꿈을 꾼 지 15년이 지난 후에, 그 꿈에 대한 기억이 희미해져서 전혀 생각도 않고 있던 때에, 내 발이 그 꿈을 다시 생각나게 해주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자연은 조각을 하고 싶어 한다. 그러니 내가 석공 일을 하고 건축을 하리라.〉
--- pp.148-149

날이 저물고 밤이 이슥해지면 / 세상 사람들이 휴식을 취할 때 / 나는 내 궁전에서 일한다 / 내 수고에 대해서 끝내 아무도 모르리.
--- p.167

「어떻게 이럴 수가 있습니까? 우리 집 아이를 내가 만든 궁전에 묻을 수 없다고요? 도대체 나를 뭘로 보고 그런 소리를 하는 겁니까?」
「미안하네, 슈발. 자네한테 그것을 허용하고 싶어도 법으로 금지되어 있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어. 자네는 딸아이를 공동묘지에 묻어야 해.」
--- p.213

나는 보내 주신 약전에서 오만하다 싶은 것들을 모두 빼고, 간단하고 대중적인 형태로 만들었어요. 시구들도 모두 빼버렸고요. 그런 종류의 문학은 나무랄 데 없는 수준이 되어야 받아들여질 수 있어요. 그런 것을 신들의 언어라고 부르죠. 그런 언어를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주 적어요.
--- p.289

농부의 아들이 초현실주의자들을 30년 넘게 앞섰다는 것은 받아들일 수도 없고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문화의 기본과 부르주아 규범에 바탕을 둔 교육을 받아야만 그런 예술가들이 생겨날 수 있었다. 그래서 한 소박한 사람의 영혼이 어쩌다가 경쟁 대열의 선두에 서자, 사람들은 그를 미치광이로 여겼고, 그의 광기가 입증되지 않자 그를 순진한 사람이나 몽상적인 사람으로 여겼다. 그러다가 그를 인정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자, 사람들은 그를 위해 별도의 예술 종류를 만들었다. 소박파 예술이 바로 그것이었다.
--- pp.290-291

「하지만…… 라크루아 씨가 아빠한테 시인 행세하지 말라고…….」
「라크루아 씨는 내 시들에 대해서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생각할 권리가 있어. 하지만 이건 내 궁전에 관한 거야. 나는 내가 살아온 이야기에 내 시들을 넣고 싶어.」
--- p.336

「내 나름의 방식으로 무덤을 만들어서, 나도 내 딸과 아들 옆에 묻힐 것이고, 내 아내 필로멘도 묻힐 거요. 나를 사랑한 모든 사람, 내가 사랑한 모든 사람이 함께 묻힐 거요. 내 궁전에서 내가 영원히 잠들면 좋겠지만, 오트리브의 법이 그것을 못하게 하니까, 공동묘지에 무덤 을 만들겠다는 겁니다.」
「오트리브 법이라는 말은 좀…….」
「좋아요, 그럼 우리 고장의 법이라고 합시다. 그 법이 우리를 막고 있다고요!」
「그런데 나름의 방식으로 무덤을 만들겠다고요? 그게 무슨 뜻인가요?」
「크고 아름답고 고상하게 만들겠다는 거요.」
「슈발 선생님, 연세가 일흔여덟을 바라보는 나이십니다!」
「그래서요?」
--- pp.344-345

「당신, 나랑 같이 살아서 행복했어?」
페르디낭은 가슴이 먹먹해지는 것을 느끼며 그녀에게 몸을 기울였다.
「당신이 없었으면, 난 버티지 못했을 거야. 나는 이 세상을 살기에 적합하지 않았어. 그러다가 당신을 만난 거지…….」
--- p.347

〈슈발의 작품은 믿기지 않을 만큼 놀라운 현대성을 지닌 조각이에요. (……) 회랑의 남쪽 방에서, 나는 원무를, 춤추는 사람들을 봅니다. 그들은 손에 손을 잡고 미친 듯이 원무를 춰요. 우리도 조금씩 그 원무 대형으로 들어가죠, 거기로 이끌려 들어가는 겁니다!〉
--- pp.392-393

출판사 리뷰

프랑스 독자들의 열렬한 반응
시간과의 대결에서 승리한 위대한 예술가의 이야기!

거대하고 스펙터클하다.
독창성을 사랑하는 독자에게 이 책은 더없이 완벽한 선물이다.
- So***

조제프 페르디낭 슈발은 프랑스 드롬 지방 오트리브의 시골 우편배달부였다. 필생의 건축은 그가 마흔셋이던 1879년, 배달 순회로에서 기이하게 생긴 돌 하나에 걸려 넘어지며 시작된다. 그 후로 그는 하루 30킬로미터의 우편 배달을 마친 뒤 또 10여 킬로미터를 걸어 돌을 주워 왔고, 밤이면 등잔불을 켜고 채마밭에 그것을 쌓았다. 33년 뒤 완성된 건물은 길이 26미터, 높이 12미터의 궁전이었다. 힌두 사원과 스위스 산장, 중세 성관이 한 형상에 뒤섞이고, 파사드마다 코끼리와 펠리컨과 뱀이 돋아난, 어떤 양식에도 속하지 않는 건축물. 그는 그것을 〈이상 궁전〉이라 이름 붙였다. 정규 교육은 6년이 전부였고 건축은 배운 적이 없었다. 마을 사람들은 그를 미치광이라 불렀다.

궁전은 1912년에 완성되었다. 첫 돌을 놓고 33년, 슈발의 나이 일흔여섯일 때였다. 그가 궁전을 짓기 시작한 1879년은 딸 알리스가 태어난 해이기도 하다. 하지만 알리스는 열다섯 번째 생일을 맞지 못하고 죽었다. 아들 시리유도 슈발보다 먼저 갔다. 아내 필로멘은 궁전이 완공되고 두 해 뒤에 숨을 거두었다. 슈발은 다시 일흔여덟의 나이에 다시 외바퀴 손수레를 끌고 공동묘지로 향한다. 법률상 궁전에 무덤을 만들 수 없었기에, 무덤을 궁전처럼 만들기로 한 것이다다. 무려 8년이 걸린 작업이었다. 슈발에게 궁전의 건축은 야망의 실현과 동시에 사랑하는 이들을 애도하는 수단이었다.

무수한 이름 없는 예술가들에게 바치는
삶과 예술에 대한 아름다운 탐구

1905년, 이상 궁전을 통해 전국적인 명성을 얻은 슈발은 지역의 학식 있는 부르주아 앙드레 라크루아에게 자기 약전을 수정해 달라고 청했다. 그런데 8년 만에 온 답장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오만해 보이는 대목은 모두 뺐고, 시구도 전부 지웠으며, 비석에 새긴 것 같은 글들도 삭제했다〉고, 〈그런 종류의 문학은 나무랄 데 없는 수준이어야만 받아들여지는 법이며, 그런 언어를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주 적다〉고. 라크루아는 슈발의 열정을 응원할 준비가 되어 있었지만 우체부가 시인 행세를 하는 것만은 견딜 수 없는 엘리트주의자였다. 19세기의 상식에 따르면 예술은 구성되고 사유되어야 하는 것이었고, 초등학교밖에 다니지 않은 농부의 아들은 그런 것을 만들 자격이 없었다. 악의 없는, 상식에 근거한 배제였다. 그는 일생 동안 이처럼 모욕적인 취급을 반복해서 당해 왔다. 사람들은 그를 처음에는 미치광이라 했으나 광기가 입증되지 않자 순진한 사람이라 불렀으며, 끝내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되자 〈소박파 예술〉이라는 별도의 예술 장르를 하나 만들었다.

혼자 무언가를 쌓아 올린 사람이 슈발뿐이었을까?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중반 사이, 프랑스 곳곳에서 이름 없는 사람들이 비슷한 일을 벌이고 있었다. 책 후반에 수록된 〈슈발의 형제들〉에 그 명단이 있다. 바위 정원에 12미터 망루를 세운 은둔자, 도기와 유리 모자이크로 집 전체를 뒤덮은 환경미화원, 회전목마에 23미터짜리 에펠탑을 얹은 목동, 48년 동안 성당을 장식한 시골 신부. 그중 여러 경우 작품은 사라지고 우편엽서로만 남았다. 이들이 알려지지 못한 건 재능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들을 담을 예술 개념, 그들을 기록할 사람, 그들을 보존할 예산이 없었기 때문이다. 슈발이 살아남은 것은 그가 특별히 위대해서라기보다, 브르통이 우연히 이상 궁전에 들렀고 뒤뷔페가 유명세에 힘을 실을 문장을 하나 만들어 냈고 말로가 문화재로 지정되도록 관료들을 밀어붙였기 때문이다. 이 책은 그 우연의 연쇄를 낱낱이 복원함으로써, 예술적 성취가 제도의 결과이기도 하다는 점을 보여 준다. 지금도 어디선가 누군가 오랜 시간 무언가를 쌓고 있지만, 한시적 기행으로만 여겨지고 있을지 모른다.

풍부한 역사적 세부를 바탕으로 짚어 낸
슈발의 삶과 용기, 강인함, 단호한 의지, 거침없는 천재성

이 전기를 쓴 사람은 역사학자가 아니라 영화감독이다. 닐스 타베르니에는 슈발의 생애를 시나리오로 옮기는 과정에서 이상 궁전 문서고에 접근했고, 촬영이 끝난 뒤에도 자료를 놓지 못해 결국 책을 썼다. 그래서 이 전기는 두 성격을 동시에 지닌다. 저자의 서술은 대단히 영화적이다. 1836년 새벽 3시, 산파를 부르러 마을을 가로질러 달리는 한 남자의 불안에서 이야기가 시작되고, 대화는 현재형으로 살아 움직인다. 다른 한편으로는 철저히 행정적이다. 공증 증서 번호, 사망 신고서 대장, 부령의 등기 권수까지 권말 〈참고 문헌 해제〉에 그대로 적혀 있고, 인용문마다 출처가 붙는다. 구성도 통상적인 전기와 다르다. 주인공의 죽음으로 이야기가 끝나지 않고 이후의 100년을 따로 다룬다. 이상 궁전에 대한 초현실주의자들의 발견, 문화재 지정을 둘러싼 관료들의 공방, 1981년부터 12년이 걸린 복원 작업까지. 한 인물의 사후 평판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이만큼 세밀하게 추적한 책은 흔치 않다.

물론 이 전기의 목적은 슈발을 성인(聖人)으로 만들려는 것이 아니다. 슈발은 끊임없이 인정받고 싶어 했다. 신문에 기사가 나면 기뻐서 읽고 또 읽었고, 자기 약전을 써줄 사람을 여러 해 동안 찾아다녔으며, 죽기 이틀 전에는 증인 넷과 면장 앞에 출두해 자기 전기의 최종본이 사실임을 공증받았다. 궁전을 혼자 지었듯이, 자기 신화도 남의 손에 맡기지 않겠다는 태도였다. 그는 인정 욕구를 부끄러워하지 않는 사람이었으며 이 책도 그것을 숨기지 않는다.

한편 이 책은 19세기 프랑스 시골의 생활사로도 읽힌다. 혁명이 농민에게 무엇을 약속하고 무엇을 빼앗았는지, 근대적 법률 하나로 우편 제도가 어떻게 시골까지 닿았는지, 잡지가 글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세계를 보여 주었는지 등 당대의 세부가 서술되고 있다. 슈발이 세계를 직접 돌아다닌 적이 없었음에도 힌두 사원과 스위스 산장을 프랑스의 시골 마을에 배달하고 이상 궁전에 이식할 수 있었던 건 시대의 우연이 중첩되어 만들어 낸 결과였다. 이세욱 번역가는 원주와 구분되는 역주를 달아 프랑스 지방사와 19세기 제도, 남프랑스 방언의 말장난까지 해설해 두었다. 슈발이 궁전 벽에 새긴 글귀들을 한국어 독자가 맥락을 따라 읽을 수 있게 된 것은 그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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