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친필 사인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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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1부 악몽의 세계 죽음을 보다 사라진 그 애 증거 보디가드 유일한 생존자 때와 장소 검은 얼룩 2부 현실 특별한 능력 인터뷰 죽음 정복 미션 흉터 불행의 모습 3부 인연과 악연 지독한 악몽 걸림돌 11월의 눈 숙제 견뎌야 할 이유 4부 다시, 꿈 보고 싶은 사람 죽음 꿈속이라도 마지막 인사 에필로그 작가의 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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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발자국쯤 떨어진 곳에서 한 여자애가 다가왔다. 순간, 동해는 발길이 절로 멈추어졌다. 하늘색 교복 셔츠, 남색 바지와 재킷, 흰색 스니커즈, 단발머리를 묶은 노란색 고무줄까지. 오늘 처음 본 게 분명한데도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듯 낯익었다. 그 애가 스쳐 지나가는 찰나, 코끝에 스치는 샴푸 향기까지 또렷했다.
‘이 장면, 꿈속에서 봤어.’ 꿈속에서 그 애는 버스에서 내리는 할아버지의 짐을 들어 주었다. “할아버지, 제가 들어 드릴까요?” 동해는 뒤를 돌아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진짜야?’ 할아버지는 괜찮다고 하면서도 그 애에게 고마워했다. 동해는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아니야, 착각일 거야. 이건 그저…….’ “댁이 어디세요?” 소름이 돋을 만큼 똑같았다. 수십 번 봐서 다 외운 영화 대사처럼 그 애의 말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동해는 흔들리는 눈길로 그 애의 뒷모습을 쫓았다. 이윽고 그 애가 횡단보도 앞에 섰다. 곧 신호등이 초록불로 바뀌고, 그 애가 할아버지와 함께 도로를 건넜다. 점점 들어맞는 상황에 동해는 등 뒤로 진땀이 흘렀다. 자기도 모르게 그 뒤를 밟고 말았다. 횡단보도를 거의 다 건너온 할아버지는 이제 곧 지갑을 떨어뜨린 걸 깨닫고 발길을 돌리려 할 것이다. 그 애는 자기가 가져오겠다며 바닥에 잠시 짐을 내려놓을 테고. --- pp.18-19 하늘은 동해가 이상한 게 아니라는, 여태 동해가 한 행동들이 헛된 일이 아니라는 소중하고 유일한 증거였다. 의사 선생님이 말했던 트라우마로 인한 착각이 아니라는 증거. 무엇보다도 동해는 죽음을 미리 본 덕분에 목숨을 살릴 수 있었다는 사실에 그저 감사할 따름이었다. 하늘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럼…… 우린 다시 못 보는 건가?” 그 애가 물었다. 동해는 가만히 입을 열었다. “앞으로도 무사히 살아.” 그리고 덧붙였다. “다신 보지 말고.” 죽음을 보는 나를 또 만나서 좋을 건 없으니까. --- p.33 “죽음을 멀리하려면 결국 삶을 가까이해야 한다고 했어. 뭐든 좋으니 행복한 일을 만들어 보라고.” “뭘 하면 행복할까?” 하늘의 물음에 동해는 한참 고민하다가 답했다. “뭘 해도 불행할 것 같은데.” “안 되겠다. 내일까지 하고 싶은 것 50가지 써 와. 나도 50가지 써 올게.” [중략] 둘은 하나씩 읽으며 “이건 좀 어렵지 않나?” 하고 혀를 내두르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고치지 않고 그대로 두었다. “지금 할 수 없으면 나중에라도 하면 되니까, 그치?” 하늘의 말에 동해는 순간적으로 멈칫했다. “나중? 그런 게 있을까?” 동해는 감히 상상 못 할 일을 떠올리듯 되물었다. 하늘은 그런 동해에게 믿음을 심어 주고 싶었다. “당연히 있지. 우리, 나중에, 나중에 이 리스트에 있는 거 다 할 거야.” --- pp.79-80 일상이 하늘과의 시간으로 차곡차곡 채워지는 게 나쁘지 않았다.[중략]동해는 지난 삼 년 중 최고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하늘이 없었더라면 계속 버틸 수 있었을까? 자신 없었다. 그날 동해는 하늘을 구했지만, 실은 하늘이 동해를 구한 걸지도 몰랐다. 동해는 이제 하늘과 함께할 날들을 꿈꾼다. 죽음을 보는 악몽이 아닌, 함께 웃고 행복해지는 날들을. --- p.88 “엄마는 그거면 돼. 동해야, 한 번뿐인 인생이잖아. 네 삶을 살아.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엄마의 환한 미소 위로 눈물이 흘렀다. 등 뒤에서 그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동해야.” 하늘이었다.[중략]문득 엄마에게 묻고 싶은 한 가지가 떠올랐다. 동해는 잠시 엄마를 돌아보았다. “엄마, 그날 나한테 하고 싶은 말이 뭐였어?” 사고가 났던 날, 눈을 감기 직전에 엄마가 뭐라고 말했다. 동해는 그 말을 듣지 못했다. 혹시나 엄마가 자신만 두고 떠나지 말라고 찾지는 않았는지. 그 목소리를 듣지 못한 자신을 용서할 수가 없었다. 엄마는 당연한 걸 묻는다는 얼굴이었다. “사랑한다고. 사랑해, 아들.” 왜 몰랐을까. 엄마는 죽는 순간까지도 나를 사랑했는데. 가슴 한구석에서부터 작은 불이 지펴지듯 온기가 퍼져 나갔다. --- pp.190-19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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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 후에도 삶은 계속된다 _다시 웃고 사랑해도 괜찮다는 다정한 위로
『몬스터 차일드』로 제1회 사계절어린이문학상 대상을 받고, 『식스팩』으로 제9회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상을 수상한 이재문 작가가 야심 차게 준비한 청소년 장편소설 『안녕, 안녕, 안녕!』을 선보인다. 결핍을 안고 자라는 아이들의 든든한 울타리를 그린 『마이 가디언』, 실수를 지우고 싶은 아이들의 불안을 경쾌하게 어루만진 『내 인생 치트키 : 실수를 삭제하시겠습니까?』, 연대의 힘으로 세상의 벽을 뛰어넘는 『우리들의 마녀 아틀리에』에 이르기까지, 어린이와 청소년들의 가장 내밀하고 서툰 고민을 입체적으로 포착해 온 작가는 이번 작품에서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낸 뒤 남겨진 사람들의 삶을 한 발짝 더 가까이 다가가 깊이 들여다본다. 죽음을 미리 보는 소년과 그를 지키려는 소녀의 만남에 첫사랑의 설렘을 담아, 깊디깊은 상실과 죄책감 속에서도 다시 살아갈 힘과 용기를 찾아가는 이야기를 펼쳐 낸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뒤에도 일상은 이어진다. 그러나 남겨진 이에게는 밥을 먹고, 웃고, 누군가를 좋아하는 평범한 순간조차 죄책감으로 다가오기 십상이다. 뜻하지 않은 사고로 갑자기 곁을 떠난 이를 두고 나 혼자 행복해도 되는지, 그런 상황에서 홀로 살아남은 데에 특별한 이유가 있는 건 아닌지 끊임없이 되묻기 때문이다. 『안녕, 안녕, 안녕!』은 이러한 마음을 지닌 이들에게 슬픔을 서둘러 끝내라고 재촉하지 않는다. 대신 슬픔을 안고도 누군가를 사랑하며 일상을 누려도 괜찮다고 다정하게 귀띔한다. 떠나간 사람을 기억하는 일과 자신의 행복을 찾는 일이 서로 어긋난 게 아니라는 걸 동해와 하늘, 두 아이의 용기 있는 발걸음을 통해서 따스하게 들려준다. 죽음을 막기 위해 달리는 소년과 그를 지키기 위해 달려가는 소녀 삼 년 전, 거대한 불길이 도로를 집어삼킨 유조차 폭발 사고 현장에서 열일곱 살 소년 동해는 기적처럼 살아남지만, 그곳에 함께 있었던 엄마는 세상을 떠나고 만다. 그날 이후 동해는 꿈속에서 타인의 죽음을 보기 시작한다. 엄마를 구하지 못했다는 ‘생존자 죄책감’에 짓눌린 동해에게 이 예지몽은 특별한 능력이 아닌 가혹한 족쇄로 작용한다. 동해는 자신이 살아남은 이유를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위험을 무릅쓰고 꿈에서 본 사고 현장으로 무작정 뛰어든다. 그러던 어느 날, 일촉즉발의 교통사고 위기에서 동갑내기 소녀 하늘을 구해 낸다. 그 후로 하늘은 죄책감의 늪에 빠져 위태롭게 흔들리는 동해의 곁을 꿋꿋이 지키며 다정한 버팀목이 되어 준다. 이 작품은 동해와 하늘의 시점으로 번갈아 서술하며 두 아이의 관계를 입체적으로 포착해 낸다. 동해가 스스로에게 씌운 죄책감 때문에 애써 억누르는 설렘과 불안, 그런 동해의 그늘을 눈여겨보며 조심스레 보폭을 맞추는 하늘의 애틋함이 섬세하게 교차한다. 서로에게 말을 건네기 전의 망설임, 어색함을 감추기 위해 애써 던지는 농담, 문자 메시지를 기다릴 때의 기나긴 초조함 등 십 대 특유의 투명하고 서툰 감정선이 행간마다 촘촘하게 살아 숨 쉰다. 100가지 ‘죽음 정복 미션’으로 채워 가는 평범한 내일 두 아이의 변화가 본격적으로 펼쳐지게 되는 계기는 이른바 ‘죽음 정복 미션’이다. “죽음을 멀리하려면 삶을 가까이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두 아이는 각자 하고 싶은 일 50가지를 적어 100가지 버킷 리스트를 완성한다. 거창한 제목과 달리 목록을 채운 것은 카페에서 공부하기, 햄버거집에서 시그니처 메뉴 먹기, 한강 공원에서 자전거 타기, 대학로에서 연극 보기처럼, 또래 아이들이 일상에서 흔하게 누리는 평범한 소망들이다. 참사 이후 스스로에게 그 어떤 기쁨도 허락하지 못했던 동해는 하늘과 함께 목록을 하나씩 지워 나가며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즐거움을 되찾는다. “지금 할 수 없는 일은 나중에 하자.”며 다음을 기약하는 하늘을 보면서, 동해는 상상하기조차 어려웠던 미래를 향해 조심스레 발을 디딛어 본다. 참사의 진실을 마주하는 용기, 그리고 세 번의 ‘안녕’ 그렇게 두 아이가 함께 웃는 내일을 꿈꾸기 시작한 순간, 삼 년 전 유조차 폭발 사고 뒤편에 묻혀 있던 거대한 비밀이 수면 위로 떠오른다. 하늘이 차마 털어놓지 못했던 상처가 참사 현장의 진실과 교묘하게 얽히면서, 두 아이를 단단하게 이어 주었던 고리가 끊어질 위기에 놓인다. 작가는 원망과 연민이 뒤엉켜 혼란스런 감정에 직면한 아이들의 선택을 차분히 따라가며, 타인의 상황을 온전히 이해하고 스스로에게 씌웠던 죄책감의 굴레를 벗어던지는 과정이 얼마나 치열한 용기를 필요로 하는지 설득력 있게 서술해 낸다. 이재문 작가는 ‘작가의 말’에서 제목 ‘안녕, 안녕, 안녕!’을 이렇게 설명한다. 첫 번째 안녕은 지나간 슬픔을 향한 작별이고, 두 번째 안녕은 곁에 다가온 온기를 향한 반가움이며, 마지막 안녕은 다시 살아갈 내일을 향한 응원입니다. 꽁꽁 얼어붙은 절망의 끝에서도 손을 내미는 용기만 있다면 삶은 다시 시작될 수 있습니다. 부디 이 이야기가 상처 입은 모든 마음의 작은 볕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_작가의 말에서 세 번의 ‘안녕’은 결국 아이들이 비극의 터널을 지나 가닿는 회복의 여정임을 일깨운다. 떠난 이를 기억하면서도 오늘을 꿋꿋이 살아가는 것, 그리고 그에게서 받은 사랑을 곁에 있는 다른 이에게 건네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애도임을 되새기게 한다. 이처럼 『안녕, 안녕, 안녕!』은 타인의 죽음을 꿈으로 예견하는 소년 동해와, 그 손길 덕분에 목숨을 구한 소녀 하늘이 서로의 손을 맞잡고 각자의 상처를 치유해 가는 과정을 밀도 있게 그려낸다. 사고 현장에서 살아남은 이들이 짊어진 ‘생존자 죄책감’에 스릴 넘치는 예지몽 서스펜스를 섬세하게 덧씌워 읽는 재미와 함께 깊은 감동을 선사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