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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에 관한 잡설
공포의 헬멧 옮긴이의 말 : 미궁으로서의 세계, 세계로서의 미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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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미노타우로스는 ‘미노스의 소’라는 뜻으로, 반은 사람이고 반은 황소인 괴물이다. 해신(海神) 포세이돈은 크레타의 왕 미노스에게 제물로 쓰라고 눈처럼 흰 황소를 보냈는데, 미노스는 이 약속을 지키지 않고 황소를 살려두어 포세이돈의 노여움을 사게 된다. 포세이돈은 이에 대한 벌로 미노스의 아내인 파시파에를 이 황소와 사랑에 빠지게 했고, 파시파에와 황소 사이에서 괴물 미노타우로스가 태어난다. 미노스 왕은 미노타우로스를 가두기 위해 다이달로스에게 라비린토스, 즉 미궁을 짓게 한다.
그리고 해마다 소년 일곱 명과 소녀 일곱 명을 제물로 바치게 하여 미노타우로스가 잡아먹도록 했다. 세번째 제물이 바쳐질 때 아테네의 영웅 테세우스는 미노타우로스를 처단하기 위해 스스로 제물이 된다. 미노스와 파시파에의 딸 아리아드네는 테세우스를 보고 한눈에 사랑에 빠져 그에게 실과 검을 준다. 아리아드네로부터 받은 실을 미궁의 입구에 매어놓은 테세우스는 미노타우로스를 물리치고, 무사히 미궁을 탈출한다. “나는 나를 찾아내려는 모든 사람과 함께 나 자신마저 잃어버릴 수 있는 미궁을 만들 것이다. 누가 이렇게 말했고,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 소설은 컴퓨터 스크린에 떠 있는 이 문장으로부터 시작한다. 아리아드네라는 대화명을 가진 사람에 의해 시작된 채팅에 독특한 대화명을 가진 인물들이 하나둘 등장한다. 그들은 어느 날 갑자기 어딘지 알 수 없는 밀실로 오게 된다. 자기가 현재 어디에 있는지, 도대체 어떻게 이곳에 오게 된 것인지 알지 못하는 이들은 채팅을 통해 대화를 나누며 자신들이 어떤 상황에 처한 것인지 알아보려 한다. 이들은 곧 자신들이 모두 침대와 컴퓨터만 놓여 있는 동일한 구조의 방에 있으며, 방 밖에는 각기 다른 형태의 미궁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들은 자신이 처한 상황, 꿈 그리고 방 밖에 있는 다양한 미궁을 분석하며, 자신들의 현실을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우리는 미궁 밖에 있는가, 안에 있는가? 우리는 미노타우로스를 기다리는 희생양인가? 아니면 그를 미궁에 가둔 자인가? 처음부터 끝까지 채팅 형식을 취하고 있는 『공포의 헬멧』에서 이야기의 중심에 있는 것은 미궁이다. 등장인물들이 유일하게 소통하는 공간인 인터넷의 채팅방 역시 일종의 미궁이다. 그들은 채팅방을 통해서 이야기를 나눌 수는 있지만, 외부와 접촉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들이 있는 공간 역시 외부로 나갈 방법이 없다. 아리아드네가 자신이 꾼 꿈을 설명하며 풀어내는 이야기가 이 출구 없는 미궁을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단서이다. 그러나 그녀가 꿈을 통해 설명하는 ‘공포의 헬멧’은 그들이 처한 상황이 헬멧을 쓴 가상현실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암시한다. 우리가 늘 보고 듣고 느끼는 일상의 모든 것들이 사실은 실재(實在)가 아니라, 환상의 작용이 아닌가 하는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 아리아드네가 설명하고 있는 공포의 헬멧은 외부와 내부가 구분되지 않는 초현실적인 공간이다. 헬멧 전체가 헬멧의 일부 안에 들어 있을 수도 있다. 이렇게 안과 밖, 전체와 일부의 구분 없이 서로 무한히 중첩되는 뫼비우스의 띠 같은 구조는 무한히 확장되나 탈출이 불가능한, 열려 있으면서도 막다른 기이한 미궁을 상징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