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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와 함께 읽는 우리나라 인물전

책소개

목차

알에서 태어난 아이
서라벌의 왕 박혁거세
알영을 만나다
마한과 겨루다
낙랑과의 전쟁
하늘로 올라간 두 성인
탈해를 얻은 남해왕
꿈틀대는 신라
신라의 성장
석씨 성을 가진 탈해왕
왕위를 잇는 삼성(三姓)
가야 수로왕과의 충돌
말갈을 물리치다

저자 소개 1

林東主

서울대 초빙교수, 서울출생으로 중동고와 서울대 수의대를 졸업했다. 어려서부터 역사와 문학에 조예가 깊었으며 특히 우리나라 고대사에 깊은 관심을 갖고 연구를 많이 했다. 필자는 현재 도서출판 마야의 대표이사 겸 서울대 수의대 초빙교수로 후학을 지도하고 있다. 이 책의 원작인 대하 역사소설 『우리나라 삼국지』의 저자. 『만화로 보는 우리나라 삼국지』의 제작 과정에서 교정과 감수를 맡았다. 그 밖에도 스무 권짜리 청소년 역사책인 「부모와 함께 읽는 우리나라 인물전」시리즈를 완간했다. 서울대 수의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초빙교수와 삼육대 겸임교수로 활동하며, 우리나라 역사 연구를 계
서울대 초빙교수, 서울출생으로 중동고와 서울대 수의대를 졸업했다. 어려서부터 역사와 문학에 조예가 깊었으며 특히 우리나라 고대사에 깊은 관심을 갖고 연구를 많이 했다. 필자는 현재 도서출판 마야의 대표이사 겸 서울대 수의대 초빙교수로 후학을 지도하고 있다.

이 책의 원작인 대하 역사소설 『우리나라 삼국지』의 저자. 『만화로 보는 우리나라 삼국지』의 제작 과정에서 교정과 감수를 맡았다. 그 밖에도 스무 권짜리 청소년 역사책인 「부모와 함께 읽는 우리나라 인물전」시리즈를 완간했다. 서울대 수의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초빙교수와 삼육대 겸임교수로 활동하며, 우리나라 역사 연구를 계속하여 지금까지 50여권의 책을 썼다. tv와 라디오에 출연하거나 다양한 매체에 기고하는 등 왜곡된 우리나라 역사를 바로잡는데 압장서고 있다.

임동주의 다른 상품

그림 : 이영림
무한한 상상력과 느낌이 있는 그림으로 삽화와 만화의 경계를 넘나드는 달구벌 출신이다.
샘이 깊은 그림꾼이 되고 싶어 오늘도 심학산 끝자락에서 붓과 씨름중이다.
87년에 만화계에 입문해 이현세, 박봉성 문하를 거쳐 일간스포츠 대란 삽화, 치우전기, 북벌, 엑스캅 등의 삽화를 그렸다.
동아일보 문화센터, CBS 문화센터에서 만화 강사를 역임하고 현재 조선일보 ‘맛있는 한자’만화를 집필 중이다.

품목정보

발행일
2006년 11월 01일
쪽수, 무게, 크기
166쪽 | 332g | 155*225*20mm
ISBN13
9788985821360

줄거리

박혁거세는 어질고 착하며 슬기로운 왕으로 백성들을 사랑하며 영토를 넓히고 천년사직의 길을 열었다.
일찍이 전란을 피해 남쪽으로 내려온 고조선의 유민들은 지금의 경상도 지방에 흩어져 살면서, 양산촌·고허촌·진지촌·대수촌·가리촌·고야촌 등 여섯 마을을 이루어 살아갔다.
그들 중 고허촌장 소벌 공이 양산 밑 나정이라는 우물곁에서 말이 알려준 큰 알을 얻었는데, 깨 보니 그 속에 어린아이가 있었다.
소벌 공은 그 알이 매우 커서 박과 같다 하여 성을 박이라 하고 친아들처럼 키웠다.
6부 사람들은 그의 신비한 출생과 놀라운 지혜를 접하고는 그를 우러러 받들었다.
기원전 57년, 그가 13세가 되었을 때에 그 영특함으로 이름났던 혁거세는 왕으로 추대되어 나라 이름을 ‘신라’로 정하였다.
그에게는 하늘이 정해준 배필이 있었다. 그녀는 뭇사람들에게 ‘용의 아이’라고 불리었다.
용이 알영정에 나타나 낳았다는 여자아이. 그녀는 그 우물 이름을 따라서 알영이라 이름 붙여졌다.
알영은 자랄수록 그 아름다움과 덕스러움이 남달랐다. 혁거세와 알영은 서로 꿈에서 만난 사실을 기억하여 끌리듯 만났고 혁거세는 알영을 왕후로 맞이하였다.
그는 왕후 알영과 함께 나라를 돌아보며 농사와 누에치기를 장려하였으며, 어진 정치로 백성들의 많은 존경을 받았다.
그는 73세 되던 해에 세상을 떠났는데 남해왕은 두 사람을 경주시 남천의 남쪽에 모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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