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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족을 물리친
미천왕 안국군 달가를 죽인 봉상왕 · 9 선비족의 침략· 14 창조리의 봉기 · 20 왕이 된 소금장수 을불 · 34 미천왕의 서방정벌 · 51 낙랑군을 몰아내다 · 60 끝없는 요동싸움 · 72 바보 온달과 평강공주 간주리의 반란 · 93 온달을 찾아 나선 평강공주· 107 평강공주의 내조 · 127 배찰성 전투 · 134 태왕의 사위로 인정받다 · 154 온달 장군의 최후 · 158 |
林東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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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족을 물리친 미천왕 줄거리
서천왕의 태자 고상부가 왕위에 오르니 그가 바로 봉상왕이었다. 봉상왕은 의심이 많은 사람이었다. 그는 숙부인 안국군 고달가, 왕제인 고돌고를 차례대로 살해하여 나라가 약해지는 결과를 가져오고 말았다. 한편 큰아버지 봉상왕이 아버지 돌고를 죽일 때 돌고의 아들 고을불은 민가에 숨어 화를 면하였다. 을불은 수실촌 사람 음모의 집에서 머슴살이를 하고 사수촌 노파의 계략으로 동료인 소금장수 재모와 더불어 소금을 빼앗기는 등 고난의 세월을 겪는다. 하지만 국상 창조리 등이 봉상왕을 보위에서 몰아내자 을불은 창조리의 추대를 받아 왕위에 올랐다. 미천왕이 된 고을불은 나라의 땅을 넓히는데 힘을 다했다. 미천왕은 서기 302년 군사 3만으로 현도군을 공격, 적군 8,000명을 사로잡았다. 그는 서기 311년 요동의 서안평을 점령하였으며, 313년 낙랑군을 공략하여 적군 1,000명을 사로잡았다. 이로써 낙랑군은 완전히 멸망하였다. 서기 314년 미천왕은 낙랑군의 남쪽 대방군을 정벌하여 영토로 삼았다. 이후 미천왕은 서진을 대신해 요서의 패권국이 된 모용선비와 싸우며 고구려의 힘을 떨쳤다. 서기 331년 그는 숙적인 모용선비를 완전히 무찌르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평강공주와 온달 장군 줄거리 고구려의 평원태왕에게는 어린 울보공주가 있었다. 그 어린 공주는 늘 울기를 잘하여 평원태왕의 속을 태우기가 일쑤였다. 평원태왕은 그런 그녀의 울음을 그치게 하고자 또 놀리기도 하느라고 항상 하는 말이 있었다. “네가 울기를 잘하니 바보 온달에게나 시집보내겠다.” 그런 말에 어린 평강공주는 항상 울음을 그쳤다. 그렇게 놀림감의 대상이 된 온달은 몹시 가난하여 항상 밥을 빌어다 눈 먼 어머니를 봉양하였다. 그는 얼굴이 우습게 생겨 사람들이 그를 ‘바보 온달’이라고 하였다. 공주의 나이 16세가 되어 평원태왕이 유력귀족인 고씨에게로 시집보내려 하자 평강공주는 단호히 평원태왕에게 거부의 뜻을 밝혔다. “임금께서는 한 번 뱉은 말을 도로 입 속에 넣으실 수 없사옵니다.” 평강공주는 그렇게 궁중을 나와 온달을 찾아 부부가 되었다. 공주는 궁중에서 가지고 나온 패물을 팔아 집과 밭을 마련하고 말을 사서 준마로 키웠다. 고구려에서는 해마다 3월 3일이 되면 왕이 신하 및 병사들과 더불어 사냥을 하였다. 그런데 유독 한 젊은이의 말 타는 품이 언제나 남보다 앞서고 잡는 짐승도 많았다. 평원태왕은 그를 장하게 여겨 불러서 그 이름을 물었다. 한데 평원태왕은 그 이름을 듣고 놀라야만 했다. 그는 다름 아닌 ‘바보’ 온달이었기 때문이었다. 그 때 강북의 중원 지역을 통일한 북주의 임금 우문옹은 고구려에까지 그 컴컴한 손을 뻗어왔다. 하지만 북주의 침략은 오히려 온달을 높이고야 말았다. 온달이 선봉장이 되어 고구려를 위해 큰 공을 세웠던 것이었다. “이 사람은 나의 사위다!” 평원태왕은 크게 기뻐하며 온달에게 작위를 주고 대형의 벼슬을 내렸다. 서기 590년 평원태왕이 죽고 영양태왕이 즉위하자 온달은 신라에 빼앗긴 한강 이북 땅을 되찾을 뜻을 품고 스스로 출정하겠다는 뜻을 전했다. 온달은 신라군과 서울 광나루 북쪽의 아차산성에서 용감하게 싸우다가 그만 화살에 맞아 전사하고 말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