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 이해조
1869년 2월 27일 경기 포천에서 태어남. 호는 열재悅齋, 이열재怡悅齋, 동농東濃. 필명은 선음자善飮子, 하관생遐觀生, 석춘자惜春子, 신안생神眼生, 해관자解觀子, 우산거사牛山居士 등을 썼다.
1903년 《제국신문》 기자로 근무. 《황성신문》·《매일신보》의 편집과 문화부 관계의 일을 하면서 이들 신문에 작품을 발표.
1906년 《소년한반도》의 편집을 맡아 활동하면서 첫 작품인 한문 현토소설 《잠상태》 연재.
1907년 광무사 발기인으로 참여, 본격적으로 애국계몽운동에 투신. 《제국신문》에 <고목화>, <빈상설> 연재.
1908년 《기호흥학회월보》 편집인으로 활동하면서 <윤리학> 연재. 대한협회 평의원 재선. 워싱턴 전기인 《화성돈전》을 회동서관에서 간행. 《제국신문》에 <원앙도>, <구마검>, <만월대>, <홍도화> 연재. 번역소설 《철세계》를 회동서관에서 간행.
1909년 기호학교 교감으로 취임. 《제국신문》에 <모란병>을, 《대한민보》에 <현미경>을 연재.
1910년 중추원 의관 역임. 《매일신보》 기자로 활동. 《대한민보》에 <박정화>, <자유종> 연재. 《매일신보》에 <화세계> 연재.
1911년 《매일신보》에 <월하가인>, <화의 혈>, <화세계>, <소양정> 연재. <모란병> 발표.
1912년 《매일신보》에 <구의산>, <춘외춘> 발표. 판소리계 소설을 개작한 <옥중화>, <강상련> 발표.
1913년 《매일신보》 퇴사. 판소리계 소설을 개작한 <연의 각>, <토의 간> 발표. 《매일신보》에 <우중행인>, <소학령> 발표. 신구서림에서 《비파성》 간행.
1918년 역사소설 《홍장군전》, 《한씨보응록》을 오거서창에서 간행.
1927년 5월 11일 포천에서 뇌일혈로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