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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밀꽃 필 무렵
나도향
문학사상 2005.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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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노령근해露領近海
깨뜨려지는 홍등
약령기弱齡記
북국사신北國私信
프렐류드-여기에도 한 서곡이 있다
오리온과 능금
돼지
수탉
독백
계절

분녀粉女

고사리
메밀꽃 필 무렵
삽화
개살구
장미 병들다
공상구락부
산정山精
향수
일표一票의 공능功能
사냥
은은한 빛
산협山峽
엉겅퀴의 장
일요일
찾아보기
이효석 연보

저자 소개 1

羅稻香, 본명:나경손, 필명:빈(彬)

애상적이고 감상적인 작품은 물론 주관적인 애상과 감상을 극복하고 객관적인 사실주의적 경향을 보여 주는 작품까지, 폭넓은 작가세계를 보여주는 완숙한 경지의 작가이다. 1902년 서울에서 출생하였다. 본명 경손(慶孫), 호 도향(稻香), 필명 빈(彬)을 사용했다. 배재고보(培材高普)를 졸업하고 경성의전(京城醫專)에 다니다가 도일한 후 학비가 없어 귀국하였다. 1921년 단편 「추억」을 「시민공론」에 발표하여 문단에 데뷔하였으며 이상화, 현진건, 박종화 등과 함께 백조파라는 낭만파를 이루었다. 이듬해 동아일보에 장편 『환희』를 연재하여 19세의 소년 작가로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애상적이고 감상적인 작품은 물론 주관적인 애상과 감상을 극복하고 객관적인 사실주의적 경향을 보여 주는 작품까지, 폭넓은 작가세계를 보여주는 완숙한 경지의 작가이다.

1902년 서울에서 출생하였다. 본명 경손(慶孫), 호 도향(稻香), 필명 빈(彬)을 사용했다. 배재고보(培材高普)를 졸업하고 경성의전(京城醫專)에 다니다가 도일한 후 학비가 없어 귀국하였다. 1921년 단편 「추억」을 「시민공론」에 발표하여 문단에 데뷔하였으며 이상화, 현진건, 박종화 등과 함께 백조파라는 낭만파를 이루었다. 이듬해 동아일보에 장편 『환희』를 연재하여 19세의 소년 작가로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이후 홍사용, 박종화 등과 문예 동인지「백조」를 창간하고『젊은이의 시절』등 애상적이고 감상적인 작품을 발표하였다.

1923년에 『17원 50전』 『행랑자식』을 『개벽(開闢)』에, 『여이발사(女理髮師)』를 『백조』에 발표하면서 냉정하고 객관적인 자세를 보여 주었고, 1925년에 『물레방아』 『뽕』 『벙어리 삼룡이』를 발표함으로써 비로소 주관적인 애상과 감상을 극복하고 객관적인 사실주의적 경향과 날카로운 필치를 바탕으로 하여 민중들의 슬프고 비참한 삶에 촛점을 맞춘 작품을 주로 선보이다가 26세의 젊은 나이로 요절하였다.

그에 대하여 김동인(金東仁)은 다음과 같이 평하기도 하였다. "젊어서 죽은 도향은 가장 촉망되는 소설가였다. 그는 사상도 미성품(未成品), 필치도 미성품이었다. 그러면서도 그에게는 열이 있었다. 예각적으로 파악된 인생이 지면 위에 약동하였다. 미숙한 기교 아래는 그래도 인생의 일면을 붙드는 긍지가 있었다. 아직 소년의 영역을 벗어나지 못한 도향이었으며 그의 작품에서 다분의 센티멘털리즘을 발견하는 것은 아까운 가운데도 당연한 일이지만, 그러나 그 센티멘털리즘에 지배되지 않을 만한 침착도 그에게는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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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이효석
1907년 2월 23일 강원도 평창군 봉평면 창동리 남안동 681번지에서 출생. 이시후와 강경홍의 1남 3녀 중 장남, 아호는 가산, 필명으로 아세아亞細亞, 효석曉晳 등을 쓰기도 함.

1914년(8세) 평창공립보통학교 입학.

1920년(14세) 평창공립보통학교 졸업, 경성 제일고등보통학교 입학.

1925년(19세) 경성제1고등보통학교 우등으로 졸업, 경성제국대학 예과 입학. 조선인 학생회인 <문우회文友會>에 참가. 《매일신보》신춘문예에 시 <봄>이 입선. <문우회>기관지인 《문우》와 예고 학생회지인 <청량>에 유진오?이희승?이재학 등과 함께 시를 발표.

1927년(21세) 대학 예과 수료 후 법문학부 영어영문학과 진학. 단편<주리면……-어떤 생활의 단편>(《청년》3.),번역소설<밀항자密航者>(《현대평론現代評論》9.)등 발표.

1928년(22세) 단편 <도시都市와 유령幽靈>(《조선지광朝鮮之光》7.)을 발표하여 문단의 주목을 받기 시작함.

1929년(23세) 단편 <기우奇遇>(《조선지광》6.) <행진곡行進曲> (《조선문예朝鮮文藝》6.) 등 발표.

1930년(24세) 경성제국대학 영어영문학과 졸업. 단편 <노령근해露領近海>(《조선강단朝鮮講壇》1.) <깨뜨려지는 홍등紅燈>(《대중공론大衆公論》4.)<추억追憶>(《신소설新小說》5.)<약령기弱齡記><하루빈>(이상《삼천리三千里》9.)<북국사신北國私信>(《신소설新小說》9.) 등 발표

1931년(25세) 함경북도 경성鏡城출신 이경원李敬媛과 결혼. 총독부 검열계에 취직. 경성에 있는 경성 농업학원 교원이 됨. 단편<노령근해露領近海><프렐류드>(《동광東光》1931.12 ∼1932.2) 첫 창작집 《노령근해》발간 (《동지사同志社》) 등 발표.

1932년(26세) 함경북도 경성鏡城으로 이주. 경성농업학교에 영어교사로 취직.장녀 나미奈美 출생. 단편<북국점경北國點景><오리온과 능금林檎>(이상《삼천리》3.) 등 발표.

1933년(27세) 김기림?이종명?김유영?유치진?조용만?이태준?정지용?이무영 등과 구인회 결성. 단편 <시월十月에 피는 능금林檎꽃> (《삼천리》1.) <돼지豚>(《조선문학朝鮮文學》10.) <수탉>(《삼천리》11.),장편 <주리야朱利耶>(《신여성新女性》4. ∼ 미완.>등 발표.

1934년 (28세) <일기日記>(《삼천리》11.) 등 발표

1935년 (29세) 차녀 유미溜美 출생.<계절季節>(《중앙》7.)중편<성화聖畵>(《조선일보》10. 11∼31), <뎃상>(《조선일보》12. 25))등 발표.

1936년 (30세) 숭실전문학교 교수 취임. 평양 창전리 48번지로 이사. 단편 <산山>(《삼천리》1.) <분녀粉女 >(상·하)(《중앙》1∼2.) <들>(《신동아新東亞》3.) <천사天使와 산문시散文詩>(《사해공론四海公論》4.)<고사리>(《사해공론》9.) <메밀꽃 필 무렵>(《조광》10.)등 발표.

1937년 (31세) 장남 우현寓鉉 출생. 단편<약령기落葉記> (《백광白光》1.) <노령근해>((재수록《사해공론》2.)<마음에 남는 풍경風景> (《조선문학》5.) <삽화揷話>(《백광》6.) <개살구>(《조광》10.)등 발표.

1938년 (32세) 단편<장미薔薇 병病들다>(《삼천리문학三千里文學》1.) <막幕>(《동아일보》5.5∼14)<공상구락부空想俱樂部>(《광업조선鑛業朝鮮》9.) 등 발표.

1939년 (33세) 차남 영주 출생. 대동공업전문학교 교수 취임. 단편<산정山精>(《문장文章》2.) <향수鄕愁>(<황제皇帝>(《문장》증간호 7.) <일표一票의 공능功能>(《인문평론人文評論》창간호 10.)등 발표.

1940년 (34세) 부인 이경원과 사별. <은은한 빛>(일본어로 발표. 일본잡지《문예文藝》7.),장편《창공蒼空》(《매일신보》1.25∼7.28) 등 발표.

1941년 (35세) 단편<라오콘의 후예後裔> (《문장文章》2.) <산협山峽>(《춘추春秋》5.)장편소설《벽공무한》《이효석 단편선》(이상 박문서관博文書館) 장편《벽공무한》(박문서관) 등 발표.

1942년 (36세) 단편<일요일> (《삼천리》1.)<성제星帝>(《국민문학》8.) 등 발표. 결핵성 뇌막염으로 5월 25일 별세. 평창군 진부면 논골에 안장.

품목정보

발행일
2005년 11월 05일
쪽수, 무게, 크기
543쪽 | 738g | 153*224*35mm
ISBN13
9788970127224

출판사 리뷰

다시 평가받는 이효석의 정신적 편력과 문학사적 궤적
현대 역사에서 정치적 혼란기이자 문학사에 있어서도 격동기라고 할 수 있는 1920년대 에 등장한 이효석, 그는 일제 시대 빈약한 정치적?문화적 환경에서도 붓을 꺾지 않고 오히려 많은 작품을 남겼다. 좌익 이데올로기에의 봉사로 시작된 작가적 경력은 성과 자연의 세계를 추구하면서 심미주의를 지향하는가 하면 일어로 된 작품을 쓰기 시작하면서부터는 민족정기에 대한 자각과 민족혼을 드러내기도 한다. 죽는 날까지 창씨개명도하지 않았던 이효석이 태평양전쟁이 끝나도록 살았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해방과 좌우익의 대립 시기, 그리고 6?25사변1950~1960년대에 걸친 정치적 격동기에는 어떤 작품을 쓰고 있었을까? 그가 남긴 한 작가로서 정신적 편력과 문학사적 궤적은 오늘날 다시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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