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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형미술과 자연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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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제1장 조형미술과 자연의 관계

해제 - 조형미술의 빛, 자연에서 영혼으로
1. 셸링의 생애와 저작
2. 셸링 철학의 시기 구분
3.『조형미술과 자연의 관계』의 사상적 배경
4.『조형미술과 자연의 관계』에 대하여
5. 셸링 철학의 지성사적 영향과 텍스트의 현재적 의미

저자 소개 1

프리드리히 셸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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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iedrich Wilhelm Joseph von Schelling

독일 뷔르템베르크의 레온베르크에서 루터교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15세에 튀빙겐대학교에 입학해 헤겔과 횔덜린을 사귀었다. 17세 때 원죄에 관한 내용으로 학위논문을 썼으며, 1793년부터 지속적으로 철학 논문들을 발표해 독일 철학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초기 글에서는 피히테의 영향이 많이 보이지만, 1797년에 발표한 ≪자연철학에 대한 이념≫부터는 자신만의 고유한 철학 세계를 펼쳐 나가기 시작한다. 1798년 괴테의 추천으로 예나대학교의 교수로 초빙된다. 셸링은 그곳에서 괴테, 실러, 슐레겔 등 독일 낭만파 작가들과 사귀었으며, A. W. 슐레겔의 아내인 카롤리네 슐레겔을
독일 뷔르템베르크의 레온베르크에서 루터교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15세에 튀빙겐대학교에 입학해 헤겔과 횔덜린을 사귀었다. 17세 때 원죄에 관한 내용으로 학위논문을 썼으며, 1793년부터 지속적으로 철학 논문들을 발표해 독일 철학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초기 글에서는 피히테의 영향이 많이 보이지만, 1797년에 발표한 ≪자연철학에 대한 이념≫부터는 자신만의 고유한 철학 세계를 펼쳐 나가기 시작한다. 1798년 괴테의 추천으로 예나대학교의 교수로 초빙된다. 셸링은 그곳에서 괴테, 실러, 슐레겔 등 독일 낭만파 작가들과 사귀었으며, A. W. 슐레겔의 아내인 카롤리네 슐레겔을 만났다. 그녀는 1803년에 이혼하고 셸링과 결혼했다.

1802년과 1803년에 셸링은 헤겔과 함께 ≪철학 비판지(Kritisches Journal der Philosophie)≫를 제작했다. 헤겔은 그보다 다섯 살 위였지만 그를 친구이자 스승처럼 생각했고, 헤겔의 첫 번째 저술도 ≪피히테의 철학 체계와 셸링의 철학 체계의 차이≫(1801)다. 그러나 튀빙겐대학교에서부터 맺어 온 셸링과 헤겔의 우정은 헤겔이 ≪정신현상학≫(1807)을 발표한 뒤 깨진다. 셸링은 1803년 뷔르츠부르크대학교로 자리를 옮겼고, 1806년에는 뮌헨으로 가서 바이에른 학술원 회원과 미술대학 사무총장을 지내게 된다. 에를랑겐대학교에서도 강의했으며, 1827년에는 뮌헨대학교 교수직을 맡고 미술대학 학장도 지내게 된다. 1841년 프리드리히 빌헬름 4세가 베를린대학교로 셸링을 초빙했으며, 그는 그곳에서 1846년까지 교수직을 수행했다. 베를린에서 그의 강의를 들은 학생 중에는 나중에 유명해진 사람이 많았는데, 그중에는 키르케고르, 엥겔스, 부르크하르트, 바쿠닌도 있었다.

대표작으로는 ≪자연철학에 대한 이념≫(1797), ≪자연철학의 체계에 대한 첫 번째 기획≫(1799), ≪선험적 관념론의 체계≫(1800), ≪대학 수업 방법에 관한 강의≫(1803), ≪인간 자유의 본질에 관한 철학적 탐구≫(1809), 사후 출간된 ≪예술철학≫(1859), ≪신화 철학≫(1856), ≪계시 철학≫(1861)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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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 심철민
1963년 서울 청운동에서 3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학자로 효도하길 바라는 아버지와 헌신적인 어머니 밑에서 순탄한 청년기를 보낸 덕에, 가끔 어려운 책을 들고 다녔지만 '고뇌' 라는 말의 참뜻은 제대로 알지 못했다. 연세대학교 철학과를 다닐 때는 최루탄보다 더 지독한 혼돈과 불안이 마음의 주된 정서였다. 대학 시절 남은 것은 읽던 시집과 술로 상한 간, 그리고 인문학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 전부였다. 졸업 후 연구소 연구원과 신문기자 생활을 잠깐 했으나, 유예된 학업기를 이어간 기간이 더 많았다.

이후 루카치의 국역본을 읽으면서 미학이라는 학문에 차츰 관심을 갖게 되었다. 독일 본 대학과 트리어 대학에서 가족과 행복한 유학 생활을 하다가, 남루한 세간과 양장본 괴테 전집 한 질을 사들고 4년 만에 돌아왔다. 다시 서울대학교 대학원 미학과에 입학해 이창환 교수의 지도 아래 칸트의『판단력비판』을 다룬「칸트의 합목적성 개념과 그 선험론적 연역」으로 석사 학위를 받고 지금은 같은 학과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도서관이나 헌책방의 숨겨진 책 뒤지기가 취미라면 취미이고, 약속된 공부 모임에서 공부는 간단히 마치고 함께 맥주 마시러 가는 것을 지금까지 가장 화려한 외출로 여긴다. 예술을 자기 활동으로 삼는 사람들의 영혼에 늦게나마 관심이 싹트기 시작했고, 중세와 르네상스 그림들이 어째서 남 모를 재미와 안식을 주는지를 탐문하고 있다. 조선대학교, 동국대학교, 전남대학교 등에서 미학과 예술론을 강의하는 한편, 미학이 미술사와 교차하는 지점에서 꾸준히 공부를 진척시켜 나갈 계획이다.

관련 분류

품목정보

발행일
2002년 05월 31일
쪽수, 무게, 크기
132쪽 | 179g | 128*188*20mm
ISBN13
9788970133263

책 속으로

식물계에서와 같은 예술의 이러한 개화에는 이전의 모든 단계가 반복되고 있으니, 그렇다면 반대로 바로 저 중심점에서 나온 예술이 여러 다른 방향들로 나아가고 있다는 점도 이해됩니다. 특히 조형미술의 두 형태가 가진 타고난 차이점이 이때 매우 커다란 효력을 발휘하여 나타납니다. 말하자면 조각은 자신의 이념을 물체적인 것을 통해 표현하므로, 이 경우 최고의 작품은 영혼과 질료가 완벽하게 균형을 이루며 존립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만일 질료에 더 큰 비중을 둔다면, 조각은 자신의 고유 이념에서 추락하는 것이 됩니다. 그렇다고 조각이 질료를 희생하여 영혼을 끌어올리려 한다면 그것은 자기 자신을 뛰어넘는 일이 될 테니, 전적으로 불가능하게 보입니다. 빙켈만이 벨베데레의 아폴로의 경우를 두고 언급했듯, 완전한 조각 창조자라 한다면 자신의 작품에 결코 정신적 목적을 이루는 데 요구되는 것 이상의 질료를 취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또한 반대로 질료 속에 함께 포함되어 있는 것 이상의 힘을 영혼에 부과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정신적인 것을 고스란히 물체적인 것으로 표현해내는 바로 그 점에 그의 예술이 기초해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조각은 그런 성질들에서만 정짐에 이를 수 있으며, 이념이나 영혼에 따라 존재하는 그런 성질들이 모두 언제나 현실로, 그러니까 신적인 자연계로 화한다는 점이 조각이라는 개념에는 필연적으로 따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설령 선행하는 신화가 전혀 없더라도 조각은 그 자체를 통해 신들에 이르게 되었으며, 신을 ㅁ나나지 못했다고 해도 고안해냈던 것으로 보입니다.

--- p.4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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