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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냐 저것이냐 제1부
서문 1. 디아프살마타 이것이냐 저것이냐 2. 에로스적인 것의 직접적 단계, 혹은 음악적이며 에로스적인 것 무의미한 서문 1) 첫째 단계 2) 둘째 단계 3) 셋째 단계 (1) 유혹으로 규정된 감성적 천재성 (2) 음악적인 파악과 관련된 돈 환에 관한 여러 작품의 고찰 (3) 이 오페라의 내적이며 음악적인 구조 무의미한 후주(後奏) 3. 현대의 비극적인 것에 반영된 고대의 비극적인 것 4. 그림자 그림[影畵] 즉석에서 행한 인사말 1) 마리 보마르쉐 2) 돈나 엘비라 3) 그레첸 5. 가장 불행한 사람 6. 첫사랑 7. 윤작(輪作) 8. 유혹자의 일기 서문 일기 『이것이냐 / 저것이냐』 제1부 후기 「유혹자의 일기」에 대하여 |
Soren Aabye Kierkegaa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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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부를 살펴보면 「디아프살마타」는 전체가 절망적인 기쁨과, 기쁨에 넘치는 절망의 기분을 표현하고 있다. 반면에 「울티마툼」은 그 속에 담긴 건덕적인 내용이 종교적인 것을 지향하고 있다. 따라서 그 중간에 수록된 논문과 소품은 심미적인 단계와 윤리적인 단계를 묘사하고 있는 셈이다.
심미적인 단계는 「에로스적인 것의 직접적 단계, 혹은 음악적이며 에로스적인 것」이라는 논문으로 시작한다. 거기에서는 돈 주안의 성격에 대한 뛰어난 성격묘사와, 돈 주안의 테마를 모차르트가 음악적으로 취급한 점에 관하여 독특한 해석을 내리고 있다. 이어지는 「현대의 비극적인 것에 반영된 고대의 비극적인 것」에서는 비극적인 것이라는 개념을 근본적으로 추궁하고 있다. 여기에서는 비극적인 것이 발전하여, 어떻게 개인은 더욱더 자기의식(自己意識)이 뚜렷해지고, 또 어떻게 맹목적이고 비극적인 운명 역시도 이윽고는 개인의 죄로 간주될 수밖에 없는가 하는 사연을 밝히고 있다. 이 과정에서 키르케고르는 그리스의 비극 「안티네」를 예로 들고 있다. 「그림자 그림(影書)」에서는 근대에 있어서의 비극적인 여성들을 취급하고 있다. 이들 여성들은 스스로 자진하여 유혹된 여성들이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그들을 유혹한 유혹차가 여전히 자기들을 사랑하고 있는지의 여부를 생각하며 지쳐 있다. 「가장 불행한 사람」에서는 심미적인 인간은 두 개의 극한, 즉 행복과 불행 사이에서 오락가락하고 있다는 사실이 지적되고 있다. 이 두 형태는 한결같이 절망이다. 심미적인 인간은 무한한 행복과 무한한 불행 사이에서 불안과 절망을 오락가락한다. 여기서는 불행은 특권으로 간주되고 있고, 어떤 의미에서는 키르케고르 자신의 불행한 사랑을 염두에 두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첫사랑」에서는 프랑스의 작가 스크리브의 「첫사랑」을 비평하며 ‘첫사랑’의 허구성을 밝히고 있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서로 첫사랑을 보장하지만, 그들의 말에는 뒷받침해 주는 것이 없다. 「윤작」에서는 인생 자체가 권태라는 사상을 피력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권태를 극복하기 위한 심미적인 기술이 소개되어 있다. 소름끼치는 대목들이 눈에 띈다. 「유혹자의 일기」에서는 ‘반성적인 유혹자’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이 「유혹자의 일기」에 대해서는 해야 할 말이 많으므로, 여기에서는 다루기가 적합지 않은 것 같아 뒤에 「유혹자의 일기」에 대하여 라는 장을 따로 만들어 언급하기로 하겠다. 이상이 『이것이냐 / 저것이냐』의 제1부에 수록된 논문과 소품의 간단한 내용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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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을 때는, 다른 사상가의 저술을 읽을 때와 같이 처음부터 읽을 필요는 없다. 제1부를 먼저 읽든 제2부를 먼저 읽든 상관이 없다. 왜냐하면 읽고 나서 공감이 가는 인생관 쪽을 택하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물론 두 개의 인생관에 만족하지 않을 독자들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다 읽고 나서 그 두 개의 인생관을 모두 마다하고 종교적인 인생관을 지향하고 그 인생관을 택할 수도 있다. 사실 키르케고르도 이 책 마무리 부분에서는, 인생길의 제3의 단계인 이런 종교적인 인생관으로 유도하려는 은근한 의도를 암시하고 있다.
키르케고르의 저술은 크게 나누어, 심미적인 저술(『이것이냐 / 저것이냐』, 『공포와 전율 / 반복』, 『인생길의 여러 단계』, 『불안의 개념』)과 철학적인 저술(『철학적 단편』, 『후서』)과 종교적인 저술(『현대의 비판』, 『사랑의 역사』, 『죽음에 이르는 병』, 『그리스도교의 훈련』, 『순간』 및 많은 『종교적인 강화』) 로 대별할 수 있다. 비록 개개의 저술에는 그것에 걸맞은 키르케고르의 내적인 정신의 발전과 사회적인 사건이 동기가 되어 있다고 하지 않을 수 없지만, 그래도 역시 레기네 올센과의 불행한 사랑의 결말이 전체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1841년 10월 레기네와 파혼을 결행한 키르케고르는 곧장 베를린으로 떠난다. 『이것이냐 / 저것이냐』의 내용을 이룩하고 있는 것들 중의 일부, 즉 제2부에 수록된 「결혼의 심미적 타당성」 등은 이미 이 이전에 앞서 쓰였지만, 베를린에 도착하여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하여 제2부의 두 번째 논문 「인격형성에 있어서의 심미적인 것과 윤리적인 것의 균형」을 탈고하고(1841년 12월), 1842년 1월에는 제1부에 수록된 「현대의 비극적인 것에 반영된 고대의 비극적인 것」을, 그리고 그 해 3월 코펜하겐에 돌아온 그는 4월에는 「유혹자의 일기」를 탈고하였고, 11월에는 편저자인 빅토르 에레미타의 「서문」을 탈고하였다. 이렇듯이 『이것이냐 / 저것이냐』는 제2부가 먼저 쓰여지고, 제1부가 후에 쓰여졌던 것이기 때문에 앞서 독자들에게 제1부부터 읽든 제2부부터 읽든 무방하다는 말을 하였지만, 역시 순서대로 읽어가며 두 인생을 비교 정리해 독자 자신들의 태도를 결정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하여간에 『이것이냐 / 저것이냐』는 키르케고르가 이 책을 내기까지의 자신의 체험과 사색을 총결산한 것으로 보아도 좋다. 물론 우리는 그가 이 책을 쓰게 된 동기를 짐작해 볼 수 있다 - 자신의 우울증을 표현해 보고 싶은 욕구와 헤어진 약혼녀 레기네가 자신의 고민의 갈등을 알아주었으면 하는 갈망, 자신 속에 꿈틀거리는 로맨틱한 욕구, 공상적인 것을 꿈꾸는 자신에 대한 비판, 현존재로서 인간에게 지워진 짐을 벗어보고 싶은 충동, 세계 안에서의 자신의 정립(定立), 그리고 저술가로서의 자기확립(自己確立) 등이 그 동기였을 것으로 생각해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동기의 어느 하나를 꼭 집어서 이것이다 라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오히려 이런 허다한 동기가 한데 어울려서, 키르케고르의 각기 다른 분신(分身)이 자신을 주장하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이 책에 수록된 논문이나 소품이나 작품의 어느 하나를 꼭 집어서, 이것이 키르케고르의 참모습이 라고 주장하는 태도는 삼가야 한다. 그럴 수밖에 없다는 사실은, 이어 계속하여 출판된 키르케고르의 저술의 내용과 거기에 담긴 키르케고르의 정신사를 더듬어 보아도 잘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독자는 단지 읽고 자신의 선택을 하면 그만일 것이다. 그러나 독자들은 인생에는 심미적인 인생관과 윤리적인 인생관 이외에도 종교적인 인생관이 있다고 시사하는 키르케고르의 암시를(이것은 『인생길의 여러 단계』참조)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또 이 책의 끝 대목에 나오는 ‘예외자(例外者)’라는 개념에 각별히 유의하시고 관심을 가져 주기 바란다. 이 개념은 후의 키르케고르의 정신발달사를 이해하는 일에 크게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