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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냐 저것이냐 제2부
9. 결혼의 심미적 타당성 10. 인격형성에 있어서의 심미적인 것과 윤리적인 것의 균형 11. 울티마툼(ULTIMATUM) 우리는 항상 하느님에 대하여 옳지 못하다는 사상 속에 깃들인 교훈 『이것이냐 / 저것이냐』 제2부 후기 『이것이냐 / 저것이냐』 전체의 후기 |
Soren Aabye Kierkegaa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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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미주의자는 여성의 아를다움과 사랑의 감미로움을 찬양하며 향락하지만, 책임이 수반되는 ‘결혼’을 싫어한다. 심미주의자는 결혼에 깃들어 있는 실상은, 습관이고 단순한 되풀이이고 구속뿐이기 때문에 거기에는 진정한 자유와 심미적인 요소가 없다고 한다. 이에 한해 윤리주의자인 B는, 심미주의자는 진정한 사랑(에로스)을 모르고 있다. 따라서 사랑의 아름다움도 모른다. 그가 추구하고 있는 것은 오로지 감성적인 향락뿐이라고 한다. 심미주의자는 한 사람의 여성을 정복하고 나면 헌신짝처럼 미련없이 그녀를 버리고 다시 새로운 여성을 정복하려 나선다. 따라서 거기에는 ‘지속’이라는 것이 없다. 단지 있는 것이라고는 각기 아무런 연관성이 없는 사건들뿐이다. 그러나 진정한 사랑에는 ‘영원성’이 깃들어 있다. 그러니만큼 진정한 사랑은 의당 결혼에까지 이르지 않을 수 없다. 결혼에까지 이르지 못하는 사랑은 일시적인 향락이지 진정한 사랑이 아니다. 결혼은 일종의 ‘소유’이지만 그것은 물건을 소유하듯이 한 번 소유하면 영원히 소유할 수 있는 그런 소유가 아니라, 매일매일 새롭게 회득해야만 하는 소유인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겸손’과 ‘종교성’과 ‘인간성’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심미주의자가 윤리적인 것과 심미적인 것은 서로 모순된다고 주장하는 것은 잘못이다. 오히려 참다운 심미주의적인 것은 윤리적인 것의 바탕 위에 성립된다.
심미주의자의 근본적인 결함은, 그에게는 ‘진지성’이 결여되어 있다는 점이다. 자신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또 남이 무엇인지도 모른다. 인간의 영혼이 무엇이며, ‘인격’이 무엇인지를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의 대상인 인격에 관해서도 아무것도 모른다. 사랑은 유회가 아니고 엄숙한 사건이다. 왜냐하면 사랑은 보편적인 것과 개별적인 것의 종합이기 때문이다. 심미주의자가 개별적인 것을 향락하려고 할 때, 그는 자신의 반성을 통하여 개인적인 것을 보편적인 것으로부터 제거하고 고립화시킨다. 보편적인 것과 개별적인 것이 서로 침투하고 있으면 있을수록 그 사랑은 더욱 아름답다. 결혼은 사람보다 더욱 엄숙한 사건이다. 결혼의 선서가 하느님 앞에서 이루어지고 있지만, 이것은 단지 하나의 형식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결혼은 윤리적인 요소를 내포하고 있다. 결혼은 영혼과 영혼의 결합이다. 그러므로 서로가 상대방의 영혼을 존중하지 않는 결혼은 진정한 결혼이라고 말할 수 없다. 이렇게 주장하며 B는, 무엇을 위해서 하는 결혼을 배격한다. 돈이나 명예나 그 밖의 공리적인 목적을 위해서 하는 결혼은 물론이거니와, 생활의 불편을 덜기 위해서나 자식을 얻기 위한 결혼은 옳지 않다고 단정한다. 요컨대 ‘왜’ 혹은 ‘무엇을 위하여’라는 결혼은 옳지 않다는 것이다. 결혼은 신성하다. 결혼은 그 자체가 목적이고, 무엇인가를 위한 하나의 수단이 될 수는 없다. 따라서 사랑이 없는 결혼은 죄(罪)다. 결혼은 사랑을 전제로 하고, 부부 사이에 태어나는 자식들은 하느님의 선물이다. 그렇기에 공정과 정직과 진실이 결혼생활을 지배해야 한다고 B는 주장한다. 요컨대 B는 「결혼의 심미적 타당성」에서 사랑의 본질부터 따지기 시작하여 사랑의 본질의 구현으로서의 결혼을 논하고, 결혼의 윤리적이고 종교적 표현으로서의 결혼식의 본질, 그리고 이어서 결혼생활의 역사성과 부부 사이의 사랑의 비의(秘意)와 결혼생활에서 일어날 수 있는 어려움을 논하고, 끝으로 결혼을 사랑과 의무의 통일체라고 단정하고 있다. 인격형성에 있어서의 윤리적인 것과 심미적인 것의 균형에 있어서 B는, ‘선택’의 문제를 거론하며 그 일반적인 의미를 논하고, 윤리적인 결정과 심미적인 무차별한 선택을 관찰하고 선택의 현실성으로 이끌어간다. 이어서 B는 윤리적인 관점에서 본 심미적인 인생관을 개관하고, 심미적인 인생관을 ‘절망’이라고 단정한다. 다음으로 B는 윤리적인 인생관과 심미적인 인생관의 관계를 살피며, 거기에서 야기되는 문제를 구체적으로 열거하며, 끝에 가서는 빈곤과 노동과 직업과 결혼생활 그리고 우정의 문제를 논한다. 또한 마지막으로 B는 이런 것들이 개인에게 어떻게 적용되며 예외자(例外者)에게는 어떻게 적용되는가를 언급하여, 후에 키르케고르의 근본사상의 하나인 예외자의 개념을 등장시킨다. 이상의 두 편의 논문(편지)이 쓰여진 것이 키르케고르의 약혼과 파혼이라는, 그에게는 결정적인 기간 동안이었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결혼과 사랑의 본질, 그리고 인격형성의 요소들을 이 정도까지 샅샅이 따지고 검토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약혼을 파기하지 않을 수 없었던 본질적인 고민이 어디에 있었는가 하는 것을 우리는 다시 한 번 조명해 볼 필요가 있다. 그러나 여기서 그것을 살핀다는 것은 그 장소가 적당하지 않기 때문에, 독자는 단지 이 책 끝부분에 등장하는 ‘예외자’의 개념에 각별히 유의하여 후속되는 그의 저서에서 그 흐름을 더듬어 주시기 바랄 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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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을 때는, 다른 사상가의 저술을 읽을 때와 같이 처음부터 읽을 필요는 없다. 제1부를 먼저 읽든 제2부를 먼저 읽든 상관이 없다. 왜냐하면 읽고 나서 공감이 가는 인생관 쪽을 택하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물론 두 개의 인생관에 만족하지 않을 독자들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다 읽고 나서 그 두 개의 인생관을 모두 마다하고 종교적인 인생관을 지향하고 그 인생관을 택할 수도 있다. 사실 키르케고르도 이 책 마무리 부분에서는, 인생길의 제3의 단계인 이런 종교적인 인생관으로 유도하려는 은근한 의도를 암시하고 있다.
키르케고르의 저술은 크게 나누어, 심미적인 저술(『이것이냐 / 저것이냐』, 『공포와 전율 / 반복』, 『인생길의 여러 단계』, 『불안의 개념』)과 철학적인 저술(『철학적 단편』, 『후서』)과 종교적인 저술(『현대의 비판』, 『사랑의 역사』, 『죽음에 이르는 병』, 『그리스도교의 훈련』, 『순간』 및 많은 『종교적인 강화』) 로 대별할 수 있다. 비록 개개의 저술에는 그것에 걸맞은 키르케고르의 내적인 정신의 발전과 사회적인 사건이 동기가 되어 있다고 하지 않을 수 없지만, 그래도 역시 레기네 올센과의 불행한 사랑의 결말이 전체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1841년 10월 레기네와 파혼을 결행한 키르케고르는 곧장 베를린으로 떠난다. 『이것이냐 / 저것이냐』의 내용을 이룩하고 있는 것들 중의 일부, 즉 제2부에 수록된 「결혼의 심미적 타당성」 등은 이미 이 이전에 앞서 쓰였지만, 베를린에 도착하여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하여 제2부의 두 번째 논문 「인격형성에 있어서의 심미적인 것과 윤리적인 것의 균형」을 탈고하고(1841년 12월), 1842년 1월에는 제1부에 수록된 「현대의 비극적인 것에 반영된 고대의 비극적인 것」을, 그리고 그 해 3월 코펜하겐에 돌아온 그는 4월에는 「유혹자의 일기」를 탈고하였고, 11월에는 편저자인 빅토르 에레미타의 「서문」을 탈고하였다. 이렇듯이 『이것이냐 / 저것이냐』는 제2부가 먼저 쓰여지고, 제1부가 후에 쓰여졌던 것이기 때문에 앞서 독자들에게 제1부부터 읽든 제2부부터 읽든 무방하다는 말을 하였지만, 역시 순서대로 읽어가며 두 인생을 비교 정리해 독자 자신들의 태도를 결정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하여간에 『이것이냐 / 저것이냐』는 키르케고르가 이 책을 내기까지의 자신의 체험과 사색을 총결산한 것으로 보아도 좋다. 물론 우리는 그가 이 책을 쓰게 된 동기를 짐작해 볼 수 있다 - 자신의 우울증을 표현해 보고 싶은 욕구와 헤어진 약혼녀 레기네가 자신의 고민의 갈등을 알아주었으면 하는 갈망, 자신 속에 꿈틀거리는 로맨틱한 욕구, 공상적인 것을 꿈꾸는 자신에 대한 비판, 현존재로서 인간에게 지워진 짐을 벗어보고 싶은 충동, 세계 안에서의 자신의 정립(定立), 그리고 저술가로서의 자기확립(自己確立) 등이 그 동기였을 것으로 생각해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동기의 어느 하나를 꼭 집어서 이것이다 라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오히려 이런 허다한 동기가 한데 어울려서, 키르케고르의 각기 다른 분신(分身)이 자신을 주장하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이 책에 수록된 논문이나 소품이나 작품의 어느 하나를 꼭 집어서, 이것이 키르케고르의 참모습이 라고 주장하는 태도는 삼가야 한다. 그럴 수밖에 없다는 사실은, 이어 계속하여 출판된 키르케고르의 저술의 내용과 거기에 담긴 키르케고르의 정신사를 더듬어 보아도 잘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독자는 단지 읽고 자신의 선택을 하면 그만일 것이다. 그러나 독자들은 인생에는 심미적인 인생관과 윤리적인 인생관 이외에도 종교적인 인생관이 있다고 시사하는 키르케고르의 암시를(이것은 『인생길의 여러 단계』참조)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또 이 책의 끝 대목에 나오는 ‘예외자(例外者)’라는 개념에 각별히 유의하시고 관심을 가져 주기 바란다. 이 개념은 후의 키르케고르의 정신발달사를 이해하는 일에 크게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