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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긴이의 말
머리말 1 라이트 스스로 재구성한 어린 시절 2 프뢰벨과 러스킨 그리고 에머슨 3 건축역사의 화려한 실험장, 시카고 4 제도사에서 건축가로, 위대한 이행 5 1895~1909년, 첫번째 전성기와 다가오는 침체기 6 잃어버린 세월 그리고 참혹한 학살극 7 미리암 노엘의 등장과 제국호텔 건축 8 건축상의 미개척지, 캘리포니아 9 탤리에신 펠로우십 10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 새로운 전성시대 11 구겐하임 미술관의 탄생 12 죽음 이후 또 한번의 스캔들 감사의 말 찾아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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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삶은 거짓과 함께 시작된다. 그는 출생년도를 1867년에서 1869년으로 바꾸었다. 악의는 없는 하얀 거짓말이었다. … 나이를 2년 줄임으로써 1890년대에 시카고에서 매우 젊은 나이에 일찍 성공을 거둔 유망한 건축가가 되었다. 또한 1950년대 인생의 말년에 눈부신 활약을 펼치던 시기에 와서는 자신의 나이가 90대란 것을 늘 꺼림칙하게 생각했는데 92세 생일을 두 달 앞두고 1959년 4월에 숨을 거두면서 90세가 되기 직전에 사망함 셈이 되었다.---1장 라이트 스스로 재구성한 어린 시절p. 20
오점과 실패는 라이트 전설에서 빠뜨릴 수 없는 요소가 되었다. 세상 사람들은 오점과 실패로 인해서 영웅이나 예술가 또한 우리와 같이 보통사람에 지나지 않는다는 만족감을 갖는 법이다. 진실이건 거짓이건 간에 라이트의 빌딩에 비가 샌다는 이야기는 무수히 많다. 양동이 하나인 집, 양동이 둘인 집, 양동이 셋인 집 들이 있다. 그 숫자는 필요에 따라 증가한다. … 물이 책상 위로 샌다는 불평을 하는 고객에게 라이트가 대답한 말 가운데 유명한 것이 있다. "책상을 옮기시오." 다른 한 고객이 흘러내리는 물을 받기 위해 양동이와 냄비 등을 여기저기 놓자 그의 아내가 말했다. "예술작품(집)을 빗속에 방치했기 때문에 그렇게 된 거예요."---4장 제도사에서 건축가로, 위대한 이행, p. 85~86 제국호텔의 명성은 대체로 일본 역사상 최악의 지진이라고 불리는 1923년 9월 1일의 관동대지진을 이겨냈다는 사실에 있다. 그때 10만 명 이상이 사망하고 대부분의 도쿄 건물이 파괴되었다. … 통신이 완전히 두절된 상태였기 때문에, 며칠이 지나서야 라이트는 유명한 문구가 들어간 전보를 받았다. "호텔은 귀하의 천재성의 기념비처럼 피해를 당하지 않고 우뚝 서 있음." 전보의 서명은 오쿠라 남작의 것이었다. … 호텔이 살아남은 이유는 그가 자랑하던 플로팅기초공법, 다시 말해 기초가 충격에 부서지는 대신 바로 밑에 있는 부드러운 진흙과 함께 움직이게끔 만든 공법에 있었다. 더불어 라이트가 디자인 겸 화재안전설비로서 연못을 설치하자고 주장했던 것에도 있었다. 그로 인해 호텔은 지진과 함께 뒤따른 맹렬한 화재를 견딜 수 있었다. 수백 명의 집 잃은 사람들이 그 호텔로 대피했다. ---7장 미리암 노엘의 등장과 제국호텔 건축,p. 178~179 전하는 바에 따르면, 도면을 애타게 기다리던 카우프만이 곧 방문한다는 방문한다는 연락을 받고서 급박해진 라이트는 낙수장을 거의 즉석에서 설계했다고 한다. 라이트는 펜실베이니아 현장을 몇 달 전 두 번 방문하고 지형도를 요청해서 받았지만 아무것도 그려놓지 않았다. … 라이트는 제도 탁자에 앉아 그 집의 설계도를 그리며 큰 소리로 떠들었다고 한다. 집이 어떻게 위치해야 하며, 어떤 모습이어야 하고, 어떻게 사용될 것이고, 주인집 가족들이 어디에 앉고 물건들을 어디에 두어야 하며, 심지어 벽난로 위에서부터 아래로 매달린 붉은색 주전자로부터 찻물 끓이는 방식까지 정확하게 말해주었다는 것이다. 평면도, 입면도, 단면도 등이 신속하게 준비되었고 카우프만이 도착한 바로 그 시각에 그는 의기양양하게 일을 끝냈다.----10장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 새로운 전성시대, p. 247~248 그는 언제나 주류에서 벗어나 있었다. … 그를 다룰 수 있는 유일한 방식은 그를 경계인으로, 혹은 그가 스스로에 대하여 주장한대로 아웃사이더로 취급하는 것이다. … 전통을 무시하고, 일반적인 취향과 도덕규범을 부정하고, 20세기의 건축을 압도한 모든 운동이나 제도로부터 스스로를 격리시킴으로써 그는 자신이 바라는 대로 자유스럽게 자기 자신이 되고, 살고, 믿고, 일했다. 그는 자신의 완고한 개인주의를 자랑스럽게 강조하고 "남과 다름"이라는 감각을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 그는 스스로를 최초의 "스타" 건축가로 만들었다. … 그는 시대에 맞지 않는 매력적인 인물이었다. 재능 있는 몽상가에다 낡은 사상을 고수하는 낭만주의자인 그는 21세기가 아직도 흡수하고 있는 디자인, 도시계획, 구조상의 개념 등을 창출했다. ----11장 구겐하임 미술관의 탄생, p. 282~28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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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주요건축 연보
1889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주택, 일리노이 오크파크 1891 찬리 주택, 일리노이 시카고 1893 윈슬로 주택, 일리노이 리버포레스트 1902 데이너 주택, 일리노이 스프링필드 1903 라킨사 관리동, 뉴욕 버팔로 1904 마틴 주택, 뉴욕 버팔로 유니티 교회, 일리노이 오크파크 1906 로비 저택, 일리노이 시카고 1911 탤리에신, 위스콘신 스프링그린 1913 미드웨이 가든, 일리노이 시카고 1914 탤리에신 복구(탤리에신Ⅱ), 위스콘신 스프링그린 1916 제국호텔, 일본 도쿄 1917 홀리혹 주택,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 1923 앨리스 밀라드 주택(라 미니아투라),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 1925 탤리에신 두번째 복구(탤리에신Ⅲ), 위스콘신 스프링그린 1935 낙수장(카우프만 주택), 펜실베이니아 베어런 1936 존슨 왁스 빌딩 관리동, 위스콘신 라신 1937 탤리에신 웨스트, 애리조나 스콧데일 1939 포프 주택, 버지니아 폴스처치 1943 구겐하임 미술관, 뉴욕 1948 모리스 상점, 캘리포니아 샌프란시스코 1952 프라이스 타워, 오클라호마 바틀즈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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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건축의 3대 거장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작품은 일리노이, 위스콘신, 캘리포니아, 애리조나 등 미국 곳곳에 널리 퍼져 있어 미국 국토의 랜드마크를 이루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한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가 "미국 건축의 자존심"이었던 데에도 그 연유가 있다. 당시 모더니즘은 유럽 중심으로 발생,전파되고 있었고 이전부터 미국은 유럽 건축의 절대적 영향권 아래 놓여 있었다. 이런 시기에 유럽 건축에 영향을 준 최초의 미국 건축가로 평가받는 평가받는 인물이 바로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이다. 발터 그로피우스, 미스 반 데어 로에 역시 미국으로 건너와 활동했지만 이들은 모두 독일 태생이었다. 20세기 최고의 미국 건축가 독설과 아웃사이더 기질로 기존의 건축계와 관계가 좋지 않았던 라이트는 사후가 되어서야 미국건축가협회로부터 인정 받는다. 1991년 미국건축가협회는 그를 "전 시대에 걸쳐 가장 뛰어난 미국의 건축가(the greatest American architect of all time)"라고 선언한 바 있다. 2000년, 미국건축가협회는 라이트의 낙수장(Falling Water)을 "20세기의 건축물(The Building of the 20th century)"로 선정했다. 또한 20세기의 우수한 건축물 10선에 낙수장을 포함해 라이트의 작품 구겐하임 미술관, 존슨 왁스 빌딩, 로비 저택 4점을 선정했다. 이는 각기 한 점씩 선정된 미스 반 데어 로에와 루이 칸을 압도하는 결과였다. 영화 같은 삶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는 1867년 생이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1869년 생이라고 주장해왔다. 그리하여 시카고에서 활동하는 건축가 중 비교적 젊은 나이에 성공한 인물이 되었으며 꺼림칙하게 생각하던 90대가 되기 직전에 생을 마감한 것으로 알려질 수 있었다(1959년 사망). 부모의 이혼으로 라이트는 어머니 슬하에서 자라게 되는데 어머니는 라이트를 임신했을 당시부터 그를 건축가로 키우겠다는 일념을 가진, 희생적인 인물이었다. 시카고에서 활동 중인 외삼촌을 연고로 시카고 건축계에 발을 들여놓은 젊은 라이트는 1889년 18세의 캐더린과 결혼한다. 둘 사이에는 여섯 명의 아이가 있었으나 1909년 라이트는 아내를 두고 고객의 부인인 마마 보스위크 체니와 유럽으로 떠난다. 이는 언론에 대서특필되고 라이트는 파렴치한 유명인의 전형이 된다. 고향의 대지 위에 탤리에신을 건축하고 그곳에서 새로운 생활을 꾸린 라이트는 1911년 하인의 방화와 도끼 참사로 마마를 잃는다. 그후에 나타난 새로운 여인 미리암 노엘은 후에 정신질환을 앓는 것으로 드러났고, 탤리에신에 무단침입하여 난동을 부리고 라이트를 고소하는 등 끊임없이 사건사고를 일으켰다. 마지막 부인이었던 올기반나는 사망 후 라이트와 합장되기를 희망했는데 이로써 라이트는 서거한 지 26년이 지난 후 무덤에서 꺼내져 화장되어 또 한번의 스캔들을 낳았다. 작가 아인 랜드(Ayn Rand)는 이러한 라이트의 삶을 소설 《수원Fountainhead》으로 그려냈으며 이는 게리 쿠퍼 주연의 영화 《마천루》로 재탄생했다. 이 책은… 우리 단행본 시장에는 라이트에 관한 책은 현재 2권이 유통되고 있다. 지금까지 건축 분야에서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는 매우 유명하기는 하나 그 진면목을 상세히 헤아리기에는 읽을거리가 매우 부족한 건축가 중 한 명이었다. 그의 저서 중 일부가 우리 건축가의 번역으로 출간된 적이 있기는 하지만 모두 절판된 상태다. 저서는 물론 그에 대한 연구물까지 총 20종 정도가 출간되어 있는 르 코르뷔지에와 비교해볼 때 라이트에 관한 단행본은 매우 부족하다고 할 수 있다. 미국에 라이트에 관한 논문과 저작이 2,000건이 넘는다는 사실을 떠올려보면 더욱 그렇다. 이 책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에 관한 가장 최신의 전기로, "객관적 사실을 증언하면서도 그 전기적 이야기가 역사보다도 예술을 지향하고 있다"(뉴욕타임스)는 평가를 받고 있는 펭귄 전기 시리즈(Penguin Lives) 중 한 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