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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역사재단 번역총서

책소개

목차

『발해국 흥망사』한국어판 출간에 즈음하여
프롤로그 : 발해를 보는 눈

무(武)의 시대
발해의 탄생 | 대무예의 치적 | 발해와 당의 분쟁 | 발해국왕으로의 길

문(文)의 시대
발해국왕의 문치(文治) | 발해의 완성 | 발해왕의 외교 | 왕국의 사회경제

부(富)의 시대-해동성국
왕권의 동요 | 대언의와 대명충의 치세 | 신라의 발해관 | 대인수의 치세
| 대인수의 대일본외교 | 대이진의 치세 | 105명의 견일본사 | 부왕의 즉위

상(商)의 시대
대현석의 치세 | 교역의 진행

왕국의 해체
무력한 왕국 | 망국의 외교관 | 유민의 동향

참고문헌
후기

저자 소개

저자 : 하마다 고사쿠(濱田耕策)
조선사학(史學)전공으로 일본 규슈대학 인문과학연구원 역사학부문 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역자 : 신영희
일본현대사 전공하고 서울대학교 동양사학과 석사를 수료했다.

품목정보

발행일
2008년 03월 27일
쪽수, 무게, 크기
250쪽 | 486g | 크기확인중
ISBN13
9788961870368

책 속으로

대흠무는 천보 말 현주에서 상경용천부로 천도했다. 현주에서 그리 오래 머무르지 않았기 때문에, 부연하자면 현주는 상경의 완성을 기다리는 십수 년간의 짧은 왕도(중경현덕부)였다. 중경이 왕도였던 시절인 천보 연간에 대흠무는 특진(정2품인 문산관), 태자첨사부(太子詹事府)의 첨사(詹事, 정3품), 태자빈객(정3품) 등 문산관(文散官)과 문관으로 책봉받았다. 이를 통해 대흠무는 그때까지의 좌금오위대장군(정3품)이라는 무관에서, 문관의 대우와 성격을 지니게 된 것이다. 무관에서 문관이라는 책봉의 변화가 새로운 왕도의 건설을 부른 요인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한다. 762년 대흠무가 발해군왕에서 발해국왕으로 책봉된 것은 상경을 왕국의 수도로 하여 그에 걸맞은 규모와 구성을 가진 도시로서 건설을 진행한 일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절반 가량은 중국의 내지(內地)로서 군현제도에 편입된 변경의 군왕이었지만, 상경 건설은 한층 독립성을 높인 국왕의 도시라는 의미를 갖는다. ---文의 시대 중에서

대숭린은 성실히 견당사를 파견했다. 왕권의 안정을 얻으려는 목적에서였으며 이는 조왕(祖王) 대흠무와 동격의 책봉호를 얻은 것으로 상징된다. 『신당서』전에는 “흠무의 소자(少子, 막내아들) 숭린“이라 기록되어 있고, 『전당문(全唐文)』에 수록된 ”조(弔)발해군왕 대흠무 서(書)“에서는 대흠무의 ‘장적(長嫡, 적장자)’으로 여기고 있다. 이시이 마사토시[石井正敏]가 추정한 바로는, 대숭린은 대흠무의 손자였음에도 당조정에는 적자의 즉위로 고한 것 같다고 한다. 이는 당 황제의 외신(外臣)인 점을 방패삼아 왕권의 안정을 도모하기 위해 적자가 계승한 것이라고 함으로써 높은 책봉을 받고자 했기 때문이다. ---富의 시대 중에서

필자의 연구 관심 주제를 신라와 발해 두 나라의 역사로 확장하게끔 이끌어준 것은 이우성(李佑成) 교수의 「남북국시대와 최치원」(『창작과 비평』제10권 제4호, 1975년 겨울)이라는 논문에 담긴 역사론이다. 이우성 교수는 조선사연구회(朝鮮史硏究會) 회장이던 고 하타다 다카시[旗田巍] 교수가 번역을 추천한 분이기도 하다. 조선의 역사는, 자칫하면 중국 여러 왕조에 대한 사대성과 남북이 빈번히 침략당한 면을 강조하는 사관에 빠질 우려가 있다. 그러나 위 논문은 조선사를 보는 기존 관점이 고정화되어버린 현실을 지적하고 발해사와 이에 선행하는 고구려, 부여 등 동북아시아의 제 민족 역사를 시야에 넣은 시각에서 조선사를 재구성해야 한다는 점을 이야기한다. 이 논문을 통해 배운 것이기도 하다. 본서의 제목을 『발해국 흥망사』로 정한 것은 지금까지의 발해사 연구 시각이 일본, 조선, 중국, 러시아와 같이 이른바 발해의 바깥에서 발해를 자국의 역사로 끌어들이려고 하는 시도들에서 벗어남을 제1과제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도리야마 기이치[鳥山喜一]가 쓴 『잃어버린 왕국-발해국 소사(小史)』를 염두에 둔 것인데, ‘잃어버렸다’고 하는 역사관에서도 멀어지고자 했다. 도리야마의 책은 「만주국」에서 발해의 유적을 널리 조사한 결과물을 저술 배경에 두고 있고, 명저라는 평판이 자자했다. 그러나 그 후 50년이 지난 지금 주변국의 역사적 사정에 좌우되지 않는 발해사의 구상이 필요하게 되었다. 본서의 의도는 여기에 있다.

---후기 중에서

출판사 리뷰

동북아역사재단의 후원으로 『발해국 흥망사』가 한국에서 번역·출간되기에 이르렀다. 적지 않은 일본인들은 ‘발해의 역사’라고 하면 ‘잃어버린 왕국’이라든가 ‘환상의 왕국’이라는 수식어를 덧붙여 이야기하는 경향이 있다. ‘잃어버린’이라는 표현은 1932년 3월 발해의 옛터이기도 한 오늘날 중국의 동북3성에서 발족했던 ‘만주국’이 1945년 일본의 패전과 함께 소멸한 근대사 가운데 이 괴뢰국가에 깊이 관계한 일본인의 심정을 담고 있다. 이 ‘잃어버린’이라는 심정은 한국인 사이에서 일본인이 느끼는 그것과는 성질을 달리 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조선시대 유득공(柳得恭)이 쓴 『발해고(渤海考)』등에서 유래하는 이 감정은 발해가 북쪽의 강대한 고구려를 계승한 국가이며 이 때문에 한국의 고대사여야 마땅한 발해의 역사가 한국사 내에서 제 위치를 얻지 못한 데에 초점을 둔 이른바 ‘역사에 대한 회의’인 것이다. 한편, 중국 학계에서는 1941년 발행된 『동북통사(東北通史)』를 통해 발해 역사를 중국의 동북사(東北史)로 파악하는 역사인식이 완성되어 있으며, 그 근저에는 ‘만주국’이 중국 동북지역을 분할했다는 현대사 인식이 있다고 본다. 저자는 흥망사관(興亡史觀)의 구분법으로 본서를 5개의 영역으로 나누어 서술했다. 발해사를 당의 모방 혹은 위성국으로 보지 않으며 일본과의 외교에도 중점을 두지 않고 개성 있는 독자적 역사로 다루는 것에 역점을 둔 본서를 통해 발해사를 주인공으로 한 그들만의 역사를 읽어낼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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