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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신들의 꽃밭 계룡산
2. 산 이름의 유래 3. 풍수지리적 특징 계룡산의 풍수론 계룡산의 여의주 신도안 풍수지리적 지명을 딴 신도내 마을들 4. 신도 경영과 국도 시기 신도 공사는 왜 갑자기 중지되었는가 정감록에 비친 계룡산 국도 예언 계룡산은 언제 국도가 되는가 5. 명가람을 찾아서 비구니들의 전당 동학사 문화재의 보고 갑사 고색 창연한 신원사 개태사 6. 계룡산의 어제와 오늘 7. 드라이브 코스와 등산로 드라이브 코스 등산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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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는 왜 1년 씩이나 진척시킨 신도 공사를 갑자기 그만두게 하였을까? 그 이유는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계룡산의 위치가 남방에 치우쳐 동서북 삼면과 너무 떨어져 있어 도리의 균형을 얻지 못한 곳이고, 가까운 곳에 조운과 용수가 불편하고 해안으로부터의 거리가 멀어 그에 따른 불편이 많다는 점이다. 둘째, 풍수상으로 계룡산은 결함을 갖고 있어 곧 망할 땅인데 굳이 이런 곳에 도읍을 세울 필요가 없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신도공사를 중단케 한 것은 사실상 조운과 같은 실질적인 도읍 조건보다는 풍수상의 결함에 더 비중을 두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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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 새마을 운동은 계룡산 일대에도 엄청난 영향을 몰고 왔다. 미신타파라는 미명 아래 계룡산 곳곳에 설치한 제단과 각종 암자, 치성터 등이 허물어 지고 철거 당했다.....그 뒤 1983년 8월부터 1984 6월 30일까지 실시된 이른바 620사업에 의해 다시 철거되었다.....이로서 600년이란 오랜 시간 동안 풍수도참설과 정감록 신앙의 전설이 담겨지고, 수많은 종교의 집산지를 이루었던 신도안은 역사의 장으로 묻혀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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