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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글
민변의 짧은 역사 민주정부 10년의 경험으로부터 되돌아보게 되는 것 최장집 시민참여형 통일운동 제안 백낙청 우리는 도대체 어디로 어떻게 가야하는가 한홍구 문명은 충돌하는가 정수일 법의 세계, 상상력은 유효한가 김민웅 대중예술 속에 나타난 법 이영미 섹스로 풀어보는 부부 이야기 오한숙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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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이하 민변)이 고민하고 모색하는 과정의 결과물이다. 민변의 역사는 숨 가쁘고 정신없는 실천의 궤적이다. 그 실천이 진정으로 사회적 자산으로 남을 수 있기 위해서는 민변 회원들의 꾸준한 자기성찰과 단련이 필요했다. 그것은 법률 전문가로서의 능력만으로는 부족하고 법률 이외 영역에 대한 다양한 관심과 지식, 소양을 넓히는 노력이 함께 해야만 충족될 수 있는 것이었다. 민변 변호사들은 메마른 삶의 현장에서 날선 법정공방을 하면서 동시에 사회활동을 통해 인권신장과 민주화에 기여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법조 실무활동이나 사회활동 모든 면에서 기계적인 법률해석에 의존하는 법 기술자와 구별되기 위해서는 인간에 대한 무한한 애정, 사회의 진보적 발전에 대한 헌신성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것은 자칫 빠지기 쉬운 법조계의 엘리트주의, 법률 만능주의와 일정한 거리를 둘 때 가질 수 있는 덕목이다. 그 덕목을 갖기 위해 민변은 다양한 노력을 하였고, 그 가운데 민변 월례회가 있었다. 월례회는 법조계의 좁은 틀에서 벗어나고 진정한 인권변호사로 스스로를 교양할 수 있는 유효한 수단이다. 그래서 강사는 대부분 법률 영역 이외 분야의 전문가들이 초청되고, 다루는 주제도 법률문제는 제외되었다. 월례회에서 다루는 주제는 인문학, 대중문화, 문화관계, 부부생활 등 인문학적 내용도 있고, 정치, 통일 등 민감한 현안에 대한 내용도 포함되었다.“쏟아지는 사회적 현안 앞에서 민변에게 요구되는 사항은 날로 깊고 무거워지는 반면, 우리 변호사들은 너무나 소양이 부족함을 매번 느끼고 있습니다. 민변 회원들에게 가르침을 주십시오.”라는 요청에 강연자들은 흔쾌히 강연해주었다. 강연내용은 물론이고 강연 이후 토론은 다양한 분야의 경계를 넘나들었고, 강사들도 그 동안 생각하지 못했던 새로운 문제제기에 고민의 깊이를 더 할 수 있었다. 출판 여건으로 인해 그 모든 토론내용을 담지 못한 것은 못내 아쉬운 점이다.
월례회 강연을 책으로 내는 데에는 몇 가지 고려한 점이 있었다. 우선 강사들의 훌륭한 강연내용을 한번 듣는 것으로 끝내기에 아쉬움이 많았다. 미리 충분한 시간을 두고 꼼꼼하게 준비할 수 있도록 배려하지 못하였음에도 강연자는 해당분야의 생생한 해석과 시각을 제시해주었다. 또한 강연내용을 소수의 민변 회원들만 들을 수 있다는 것은 더욱 아쉬웠다. 민변 월례회는 회원 이외 모든 사람에게 열린 공간이지만 아무래도 비회원들이 참여하기에는 어려움이 많다. 그래서 책 출간을 통해 보다 많은 사람들이 강연 내용을 공유하고, 이를 통해 민변이 대중과 소통하기를 바랐다. 아무리 낮은 곳으로 찾아가는 민변이라지만 소통의 방법과 통로를 더 넓히지 못하면 공감의 폭도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월례회와 월례회 강연을 책으로 발간하는 일은 앞으로 더 활발하게 진행할 것이고 이를 통해 보다 더 많은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도록 할 것이다. 그 동안 민변 월례회의 초청에 기꺼이 응해주신 여러 강연자들, 월례회 준비를 위해 바쁜 일정을 쪼개어 힘을 보태준 장영화, 윤지영 변호사, 월례회 진행과 사회를 맡은 송호창 변호사로 구성된 월례회팀의 노력이 오늘의 결실을 거둘 수 있는 원동력이었다. 꾸준히 월례회에 참여하고 질문과 토론을 아끼지 않은 민변 회원 모두에게 감사의 뜻을 전한다. 아울러 이 책을 만들어준 아웃사이더에게도 고마움을 전한다. --- 「머리글」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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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변의 짧은 역사
1988년 5월 28일 출범한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이하 민변)이 스무 돌을 맞게 되었다. 이는 비단 한 단체의 역사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진보적 법률운동의 발자취이기도 하며, 계속해서 성장해야 할 과제를 안고 있다는 점에서 여전히‘현재진행형’이라고 할 수도 있다. 민변이 만들어지기 전에도 인권 변호 또는 민권 변론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인권변호사 1세대라고 해야 할 이병린 변호사에서 시작하여 이돈명(전 조선대 총장), 한승헌(전 감사원장), 조준희(전 언론중재위원회 위원장), 홍성우, 황인철 변호사 등이 1970년대 유신 시기 시국사건 변론을 주로 담당해 왔고, 80년대에는 조영래, 이상수, 박성민, 박원순(참여연대 창립) 등‘2세대’변호사들이 시국사건 변론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이들은 망원동 수재사건과 구로동맹파업 사건 공동변론을 계기로 1986년 5월 19일「정의실현 법조인회(정법회)」를 결성하였는데, 이 모임에는 강신옥, 고영구(전 국정원장), 유현석, 이돈명, 이돈희(대법관 역임), 이해진, 조준희, 최영도, 하경철(헌법재판관), 한승헌, 홍성우, 황인철, 김동현, 김상철, 박성민, 박용일, 박원순, 서예교, 안영도, 유영혁, 이상수, 조영래, 하죽봉, 박연철, 박인제, 박찬주, 최병모, 김충진 변호사 등이 참여하여 대한변호사협회 인권위원회를 통해 인권변론 활동을 확대하면서 김근태 고문사건, 부천서 성고문사건 등 5공 몰락을 초래한 주요사건을 변론하고 사회 쟁점화 하였다. 회원 중 이돈명 변호사(이부영 은닉), 이상수 변호사(대우조선 이석규 사망사건 참가-장례식 방해, 1987년 8월), 노무현 변호사(부산 가두집회-집시법 위반, 1987년 9월)가 구속되기도 하였다. 1987년 대선에서 5·18 광주학살의 주범이던 노태우가 대통령으로 당선된 직후 1988년부터 젊은 변호사들을 중심으로“자주·민주·통일을 목표로 하는 민족민주운동의 한 부문”으로 스스로를 규정하고자 한「청년변호사회(청변)」가 결성되었다. 이 모임에는 이양원, 이석태, 조용환, 백승헌, 유남영, 김형태 변호사가 참여하였고, 기존 정법회의 멤버였던 박원순, 임재연, 이원영, 박인제 변호사와 박용석, 임희택, 손광운 변호사가 차례로 참가하였다. 이렇게 조금은 다른 길을 가고 있던‘정법회’와‘청변’은 몇 차례 논의와 고민을 거쳐 통합을 결정하고, 1988년 5월 28일 베어스 타운에서 51명의 회원으로 민변이 출범하게 되었고, 고 조영래 변호사의 제안으로 당시 단체 이름으로는 생소하였던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이라는 이름을 정하게 된다. 이로써 우리 사회 민주화를 위한 법조부문운동단체가 처음 생기게 된 것이고, 정법회와 청변의 통합으로 신구세대가 뜻을 같이 함으로써‘명망성’과‘활동성’이 결합되었다고 할 수 있으며, 변호사업무의 개별 분산적 성격으로부터 오는 단점을 극복하고 조직적이고 지속적 대응이 가능하게 되었다. 1988년 민변이 출범한 시기는 6공화국이라는 이름으로 학살자들의 권위주의 통치가 국민들의 최소한의 자유와 기본권을 억압하고 있던 시기였고, 따라서 모임은 권위주의에 저항하는 민중들을 보호하고 인권 상황을 개선하는 것을 절대적인 목표로 삼아야 했다. 출범하자마자 박종철, 권인숙 사건 등 시국사건 변론 요청이 폭주하였고, 임수경·문익환 목사의 방북 사건 등 조력이 필요한 일들이 잇달아 일어났다. 사노맹, 서울사회과학연구소 사건 등 계속되는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을 변론하면서, 윤석양 보안사 민간인 사찰 양심선언, 1991년 시위·분신 정국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에서는 변론 활동 외에 진실 발견을 위한 노력에도 큰 힘을 기울였다. 동시에 양심수 석방, 개혁 입법 등 법을 도구로 악법의 유산을 청산하기 위한 노력도 계속해야 했고, 비슷한 시기에 생긴 민가협, 인의협 등 사회운동 단체와의 연대를 통해 현안에 대처하면서 제도 개혁 요구 등을 전개하였다. 김영삼씨가 대통령에 당선된 1992년 이후 사회 분위기가 변화되어 국민적 저항활동에 대한 변론 자체는 다소 줄었으나 형식적 민주주의 속에서도 여전히 악법과 공안기관에 의한 인권, 자유의 탄압이 계속되었다. 민변은 1993년 안기부의 간첩사건 조작 진상조사, 1994년『한국사회의 이해』저자들에 대한 국가보안법 적용 사건 등 형식적 민주주의 속에 숨겨진 진실을 찾기 위해 동분서주하면서도, 변화된 사회 속에서 새로운 과제를 인식하고 적극적으로 대응하려고 하였다. 창립 4년을 맞아 어느 정도 안정적 기반을 형성했다는 판단으로 전문가적 인권단체로서의 중심을 견지하면서, 회원들의 다양한 활동을 수용하고 그 역량을 강화해야 했고, 특히 합법 공간이 확대되면서 연구 활동이나 다른 단체와의 연대를 통한 여론 형성, 대안 개발의 중요성을 인식하여 각 분과를 통한 연구, 의견 발표 등에 주력하게 된 것이다. 김영삼 정부가 후반을 향해 가던 1995년에는 형식적으로나마 진행되었던 개혁이 주춤하였을 뿐 아니라 3당 합당으로 탄생한 정권의 태생적 한계로 인해 군부독재의 과거를 청산하는 움직임도 좌절되는 일이 생겼다. 민변은 이때야말로 진실을 밝히고 과거를 청산해야 할 유일한 기회라는 문제의식으로 불기소처분에 대한 헌법소원을 제기함과 동시에 5·18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활동을 활발하게 전개하였고, 1996년 12월 26일 여당이 안기부법과 노동법을 날치기 통과 시켰을 때에는 초유의 변호사 철야농성과 대국민 홍보책자『독재의 망령을 파헤치며』를 발간하기도 하였다. 1997년 12월, 김대중씨가 대통령으로 당선됨으로써 헌정사상 첫 여야 정권교체가 실현된 후 형식적인 민주화가 진전됨에 따라 시국사건 변론이 민변 활동에서 차지하는 위상은 더욱 축소되었고, 우리사회가 개혁적, 진보적인 법률가들에게 요구하는 역할의 지평을 넓히는 일이 점점 더 중요한 과제가 되었다. 내적으로도 매년 30~40명의 신입회원 가입으로 300여 명에 달한 회원들의 관심영역이 다양해지고 반대로 변호사 업무환경의 변화와 함께 민변 외에도 다양한 시민단체가 급속히 성장하였다. 1999년 변협 선거에서 김창국 회원이 회장으로 당선되면서, 민변이 가지는 기본적인 한계에 대한 지적도 나왔다. 결국 많은 사람들이 뜻을 같이 한 결론은 인권단체로서의 위상을 유지 강화하면서 그 역량을 최대한 결집할 수 있는 분야로서 공익소송활동을 확대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에 민변은 주요 상임위원회로 공익소송위원회를 설치하고, 초대 위원장을 이석태 회원으로 하여 김포공항 소음피해 소송, 흡연 피해자 집단소송, 수해 피해 주민들 집단소송 등 다양한 공익소송을 진행하였다. 시민사회의 성장은 2002년 총선에서‘총선 시민연대’의 결성과 혁혁한 활동 성과로 결실을 보게 되는데, 민변도 선거법 개정 연구나 헌법소원, 공천무효확인 소송 등 법률적 지원을 함으로써 이러한 흐름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스스로를‘시민사회’속의 전문가 단체로 자리매김하였고, 김대중 정부가 공언한 인권법 제정과 인권기구 설치가 올바르게 진행될 수 있도록 다른 시민단체들과 함께‘공동추진위원회’를 결성하고‘인권법 공청회’개최 등 노력을 아끼지 않았으며, 2001년부터는 인권주간 행사의 하나로 한국 인권보고대회를 개최하여 사회 각 분야의 인권상황을 아우름으로써‘인권’이 일시적인 싸움거리가 아니라 일상적 주류 담론이 되어야 함을 역설하였다. 2002년 대통령 선거에서 민변 회원이기도 하였던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되고 2004년 대통령 탄핵 사태로 개혁세력이 사상 처음으로 국회의석의 과반수를 점하는 결과가 나오자, 회원들 중 일부가 국회로 진출하고 공직에 임명되어 개혁 작업에 직접 참여하는 과정에서 민변은 이들의 활동을 견인하는 역할을 수행해야 했다. 그러나 그와 함께 정치 중립적 시민단체로서 민변의 위상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아졌고, 정치권에 진출한 일부 회원 때문에 불필요한 오해를 살 우려도 생기면서 오히려 활동을 제약받기도 하였다. 한편 개혁세력의 국회 과반수 달성으로 과거 독재정권시절의 적폐를 청산하고 민주적 법제도개혁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가 높아졌고, 국가보안법, 사립학교법, 과거사법, 언론관계법 등 이른바 4대 개혁입법과 과거청산작업에 대해 전사회적으로 치열한 공방이 진행되었으며, 사법개혁위원회와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를 통해 형사소송법 개정, 국민 참여 재판제도 도입, 법학전문대학원 설립 등 각종 사법제도 개혁이 추진되었다. 이와 같은 개혁입법, 과거청산, 사법개혁 등이 구체적으로 진행되면서 민변은 진보적 전문가단체로서 구체적 대안을 개발하고 분명한 목소리를 내는데 주력을 기울였다. 동시에 FTA 반대, 쇠고기 수입 졸속 협상과 비정규직법 제정에 반대하고 이랜드 비정규직에 대한 부당해고에 항의하는 등 민변의 목소리와 법률적 조력이 필요한 현안에 적극 대응하고, 김용철 변호사의 양심선언에서 비롯된 삼성그룹의 비자금 불법로비 사건에 실질적으로 결합하였다. 2008년은 민변의 창립 20년을 맞는 시기이다. 1988년 출범한 모임이 지난 20년을 마무리하면서 그 성과와 미진한 부분들을 되돌아보고 평가함과 동시에 변화하는 사회를 정확히 분석해 내고 그것이 민변에 요구하는 바에 따라 단체의 위상과 활동 방향을 재정립해 나가야 하였다. 그리고 여전히 사회에 산적하고 민변이 기꺼이 져야 할 시대의 요청들이 있다. 창립 20주년을 맞는 민변은 사회 전반을 아우르는 영역에서 상시적으로 입법·사법작용을 모니터링 할 수 있는 시스템 구축(판례, 관련 법제개정, 관련 정부기구 및 시민단체 모니터링)과 관련 시민단체, 정부기구 등과의 안정적인 연대 채널 가동 등을 활성화하기 위해 조직 내부적으로 각 위원회의 활동을 실무 간사와 함께 기획하고 회원들의 역량을 효과적으로 동원·배치하는 안정적 조율자가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에서 실질적인 상근 변호사 제도를 도입하기로 하였고, 보다 적극적인 공익소송 발굴과 지원을 통해 사회적 약자 보호와 법을 통한 제도 개선을 도모하기 위하여 관련 시스템을 정비하고 재원을 마련하는 등의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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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소통 위한 세상 읽기
출간 배경 경제를 살리겠다는 공약으로 출범한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지 겨우 100일이 지났지만 지지율이 20%대로 추락했다. 지지율만 놓고 보면 임기가 얼마 남지 않아 레임덕에 걸린 정부 같다. 대통령 선거 기간 내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고공행진 하던 지지율이 잠깐 동안에 이렇게 급전직하한 까닭은 무엇일까? 이유야 여럿 있겠지만 이명박 대통령의 말을 빌려 설명하면, 아마도 국민을 잘 섬기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선거 다음날 당선자 신분으로 동작동 국립현충원을 참배하는 자리에서 방명록에 서명했던 말, TV카메라가 클로즈업하여 온 나라에 생중계했던 그 글귀,“국민을 잘 섬기겠습니다.”가 국민들에게 뚜렷하게 각인되어 있다. 그래서 새정부에 거는 국민의 기대는 그 어느 정권보다도 컸다. 그러나‘고소영’‘강부자’라는 말로 요약되는 장관과 청와대 수석 등 고위직 인사 임명을 비롯 미국과의 쇠고기협상, 한반도대운하 등 여러 분야에서 보여준 이명박 정부의 모습은 결코 국민을 섬기는 자세가 아니라 오히려 오만과 독선으로 군림하려 했고, 순간만 모면하면 된다는 식의 안일한 자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오히려 국민이 뿔나지 않으면 이상하게 되었다. 지금 우리 사회가 앓고 있는 이 심한 몸살은 이명박 대통령 스스로도 인정하였듯이‘국민과의 소통부재’가 가장 큰 원인이다. 소통은 말 그대로 서로 통하는 것, 해서 정부와 국민이 서로 통하는 것이다. 소통(疏通)의 사전적 의미인“① 막히지 아니하고 잘 통함 ② 뜻이 서로 통하여 오해가 없음”을 보면 보다 그 뜻이 명확해진다. 그런 점에서‘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이하 민변) 월례회팀이 엮은『시대와 소통』(아웃사이더 펴냄)은 소통 부재로 인해 심한 몸살을 앓고 있는 우리 사회에 던지는 의미가 매우 크다. 출간 의도 이 책은“숨 가쁘고 정신없는 실천의 궤적”을 그려온 민변의 자기성찰과 단련의 성과물이다. 민변은 자신들이 추구하는 실천이 진정으로 사회적 자산으로 남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것은 법률 전문가로서의 능력만으로는 부족하고 법률 이외 영역에 대한 다양한 관심과 지식, 소양을 넓히는 노력이 함께 해야만 충족될 수 있는 것이었다. 민변 변호사들은 메마른 삶의 현장에서 날선 법정공방을 하면서 동시에 사회활동을 통해 인권신장과 민주화에 기여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법조 실무활동이나 사회활동 모든 면에서 기계적인 법률해석에 의존하는 법 기술자와 구별되기 위해서는 인간에 대한 무한한 애정, 사회의 진보적 발전에 대한 헌신성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것은 자칫 빠지기 쉬운 법조계의 엘리트주의, 법률 만능주의와 일정한 거리를 둘 때 가질 수 있는 덕목이다. 그 덕목을 갖기 위해 민변은 다양한 노력을 하였고, 그 가운데 민변 월례회가 있었다. 월례회는 법조계의 좁은 틀에서 벗어나고 진정한 인권변호사로 스스로를 교양할 수 있는 유효한 수단이다. 그래서 강사는 대부분 법률 영역 이외 분야의 전문가들이 초청되고, 다루는 주제도 법률문제는 제외되었다. 월례회에서 다루는 주제는 인문학, 대중문화, 문화관계, 부부생활 등 인문학적 내용도 있고, 정치, 통일 등 민감한 현안에 대한 내용도 포함되었다. 아무리 낮은 곳으로 찾아가는 민변이라지만 소통의 방법과 통로를 더 넓히지 못하면 공감의 폭도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월례회와 월례회 강연을 책으로 발간하는 일은 앞으로 더 활발하게 진행할 것이고 이를 통해 보다 더 많은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도록 할 것이다. 출간 내용 이런 문제의식으로 출발한 민변 월례회에서 이루어졌던 다양한 강연 중 이 책에는 최장집 교수를 비롯해 백낙청 교수, 한홍구 교수, 정수일 교수, 김민웅 교수, 이영미씨, 오한숙희씨 등 모두 7명의 강연을 묶었다. 우선‘민주정부 10년의 경험으로부터 되돌아보게 되는 것’이란 주제로 강연을 한 최장집 교수(고려대 정치외교학과)는 지난 대선을 후마니타스출판사 박상훈 대표의“유권자의 복수”라는 분석을 인용하면서 경제적 평가에 바탕한‘회고적 투표’로 설명했다. 특히 최 교수는“IMF 이후 지난 10년 동안 민주정부들이 분배와 성장을 동반하는 좋은 의미의 시장개혁을 했다면 눈물의 계곡으로 표현되는 일정 정도의 저성장과 실업 증가를 감수했어야 할지는 몰라도 장기적으로 안정적이고 건전한 성장의 구조를 만들 수 있는 계기가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최 교수는 또“민주적 정치과정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던“민주파의 그릇된 정치적 대응”이 오히려 위기의 보수파들이 재결집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주었다고 했다. 그러나 패배라도“패배에 대한 원인과 문제의식, 무엇보다 민주주의가 제공하는 제도 안에서 가능한 좋은 수단을 모색한다면 5, 10년 후 다시 기회는 온다”고 확신했다. ‘시민참여형 통일운동 제안’이란 주제로 강연한 백낙청 교수(서울대 명예교수)는 통일운동에서 시민의 참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특히 백 교수는 2차 남북정상회담의 성과가 기대보다 매우 컸음을 상기시키면서 통일로 가는 중간단계이자 완충장치로 납북연합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그러면서 백 교수는 북미수교가 되고 남북교류가 활발히 되면 체제유지에 대한 위기의식으로 북측이 동의하지 않을 수 있고, 아울러 남측의 기득권 세력의 반발이 걸림돌이긴 하지만 남측이나 북측이나 다른 대안이 없기 때문에 머지않아, 아마도 7~8년 이내(1차 남북정상회담이 있었던 2005년 한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10년 이내로 전망했던 것이 아직도 유효하다고 함)에 실현될 것으로 전망했다. 그러나 백 교수는 강연 이후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여러 가지 전망이 어두워졌다면서 우려를 나타내면서도 시계바늘을 뒤로 되돌려놓기에는 2006년 이후 남북관계가 너무 멀리 와서 대립상태가 무한정 지속될 수 없다고 내다봤다. 또 시민사회가 새롭게 각성하면서 공부와 준비를 하면 전화위복의 계기가 될 수 있다고 했다. ‘우리는 도대체 어디로 어떻게 가야하는가’라는 주제로 강연에 나선 한홍구 교수(성공회대)는 노무현 정부의 공과를 짚어보면서 향후 한국사회의 전망을 진단했다. 한 교수는 민변 출신의 대통령, 국정원장, 법무부장관, 여당 원내대표 등이 포진했음에도, 또 의회권력까지 교체했음에도 국가보안법을 폐지하지 못했고, 사학법을 제외하곤 거의 모든 법률안을 한나라당 결재를 받고 통과시켰다고 비판했다. 한 교수는 진보도 보수도 여전히 박정희 모델을 뛰어넘지 못했다며, 박정희 시대 경제가 발전한 것은 사실이지만 민주화냐 경제발전이냐에서 양자택일을 강요하는 질문은 지양하고 이 양자를 동시에 이룰 것인가를 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한 교수는 예전 방식으로는 요즘 젊은이들에게 다가갈 수 없다면서 그들에게 가장 절실한 문제로 이익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젊은이들에게 있어 이성, 취직, 군대문제가 가장 절실한데, 이 문제의 핵심 고리는 군대문제이며, 통일이 되면 군대문제가 자연스럽게 해결된다는 관점에서 접근하면 보다 쉽고 설득적으로 다가갈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 교수는 근본적인 성찰을 하면서 가면 한국사회는 당연히 희망이 있다고 낙관했다. ‘문명은 충돌하는가’라는 제목으로 강연을 한 정수일 교수는 20세기 후반 냉전시대가 마감되면서 급부상한 새뮤얼 헌팅턴의‘문명담론’을 비판했다. 정 교수는 결론적으로 문명은 충돌하지 않는다며 헌팅턴 문명론의 3가지 오류-첫째 복합적인 문명 개념을 단순한 가치체계로의 축소, 둘째 문명 간의 차이를 문명 본연의 충돌인양 착각하고 문명 간의 상생관계를 상극관계로 오도, 셋째 지구촌의 분란을 숙명화-를 지적했다. 그러면서 정 교수는 이 이론이 나온 이후 굵직굵직한 국제적인 사건이 터질 때마다 이 이론을 잣대로 해서 사태를 해서하려고 했는데, 정말로 제대로 된 해석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법의 세계, 상상력은 유효한가’라는 제목으로 강연한 김민웅 교수(성공회대)는 인문주의가 법의 세계에서는 어떻게 관철될 수 있는지를 살펴봤다. 김 교수는 법률가라면 진보적이든 보수적이든 실정법 틀 안에 갇혀서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며 그러나 법이 정말 아파하는 사람들 소원을 담아서 그들의 억울함을 풀어주고 정의가 반드시 흐르게 하는 일에 기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김 교수는 법률가들의 마음이 아파하며 뜨거운 힘을 뿜어내는 능력이 있을 때 그리고 그것을 새로운 희망으로 만들어내는 창조적 발상이 있을 때 세상은 새로운 희망의 상상력으로 달라진다고 했다. 대중예술평론가인 이영미씨는 대중예술, 특히 영화를 통해 영화 속에 나타난 법과 법률가들의 모습을 조명했다. 식민시대 신파극부터 시작하여 현재의 영화작품까지 아우르며 영화에 등장하는 법의 모습을 비교 분석했다. 한편 이영미씨는 대중예술을 통해 법의 세계를 들여다보는 작업이 처음이어서 자신도 이 강연이 과연 가능할지 의심했다면서 오랜 시간을 할애해서 강연했다. 여성학자 오한숙희씨는‘섹스로 풀어보는 부부 이야기’를 통해 부부관계를 짚어봤다. 오한숙희씨는 특히 섹스는 부부라는 관계를 만들어내는 연결고리 역할을 한다면서 부부간의 좋은 감정은 신체적인 접촉을 유발하고, 접촉을 통한 안정감과 즐거움은 좋은 감정을 강화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혼외의 애인을 두면 좋을 것 같지만 처음에서는 신선할지라고 조금만 지나면 다 거기서 거기가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성담론의 출발을 나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사회학을 공부하면서 느꼈던 답답함이 항상 관찰자의 입장에서만 있지 그 안에‘나’가 투영돼 있지 않다란 것. 그래서 그는‘개인적인 것은 곧 정치적인 것이고 사회적인 것’이라는 말을 실천하기 위해 이혼이나 장애를 가진 딸을 키우는 이야기를 했다고 했다. 그렇게 했을 때 내가 해방되고 내가 해방될 때 이런 비슷한 문제를 갖고 있는 다른 사람들도 해방되더라고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