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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3 4 프랑스 현대 소설의 한 양상 다시 만난 『레이스 뜨는 여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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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하는 일은 그 어떤 것이든 곧장 이런 조화, 이런 통일을 이루었다. 그때 그녀는 구성과 세부가 그 모델을 마치 몸짓 속에 박아 넣은 것처럼 비치는 그런 풍속화 가운데 한 폭이 됨직했다. 이를테면, 틀어 올린 머리를 매만질 때 머리핀을 입으로 무는 그 자세! 그녀는 '속옷가지를 맡은 하녀', '물 나르는 여인' 또는 '레이스 뜨는 여자'였다. --- p.12
뽐므와 그녀의 어머니는 또한 한결같은 기분을 유지하는 편이라는 점에서 비슷했다. 두 사람은 운명이 인색하게 나눠 주는 기쁨과 환멸을 그냥 단순하게 받아들였다. 두 사람, 그리고 길가에 있는 그들의 작은 집은 존재의 우각호(牛角湖를, 다른 존재들이 바삐 지나가는 수문(水門 바로 곁의 창문으로 비치는 고요한 빛을 만들어 냈다. --- p.13 뽐므는 그녀에게 하나의 수수께끼였다. 그녀 자신과 동일한 삶의 영역을 차지하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그 수수께끼를 이해할 줄 몰랐으므로 그걸 제 손에 쥐고 싶어 했다. 그녀가 보는 곳, 순수함이 있고 지하철의 군중 속에서 문득 샘물 소리 같은 것이 들려오는 곳, 바로 그곳에 마릴렌에게는 견딜 수 없을 만큼 낯선 어떤 힘이 숨겨져 있을 수도 있었다. --- p.34 바람 부는 대로 이리저리 흩날리는, 조금은 비극적인 꽃가루로 비유한 이 인물을 포착하면서 작가는 이 인물에게 흠집을 입힐 수밖에 없었다. 아마도 이토록 가냘픈 존재에 어울릴 만큼 섬세하고 정밀한 글쓰기는 없으리라. '레이스 뜨는 여자'는 그녀가 짠 세공품의 투명함 자체 속에서 나타나게 해야 할 것이다. 실 사이로 비치는 빛 속에서……. --- pp.70~71 에므리 드 벨리네는 적어도 한 가지는 뽐므와 공통점이 있었는데, 그 또한 그를 좀 이상하게 만드는 이방(異邦에서 산다는 점이었다. 그것이 그를 고문서학교에 들어가게 한 이유 가운데 하나였다. 뽐므의 이방, 그것은 다른 그 어떤 영혼으로도 결코 환원할 수 없는, 지성 또는 지력이라고 하는 그 비속하며 신중한 행동 영역 가운데 어느 것 하나도 알지 못하는 그 영혼의 순진성이 하나하나 새로 드러날 때마다 방울져 흘러내리는 무한이었다. --- p.72 그녀는 밤마다 그러기라도 하는 사람처럼 서두르지 않고 스스로 옷을 벗었다. 그녀는 바지의 주름을 잡아서 의자 등받이에 걸어 놓았다. 남자는 여자가 그런 식으로 침착하게 행동하는 걸 보고 퍽 놀랐다. 그래서 아침부터 계속된, 뽐므의 육체를 찾는 그의 몸짓은 그녀의 너무나 단순한 무언의 침착함과 비교할 때 참으로 우스꽝스러운 노력이자 분투였던 것처럼 그에게는 느껴졌다. --- p.96 그에게는 무엇인가 결핍되어 있었는데, 그게 바로 그녀였다. 하지만 뽐므가 일을 마치고 와서 방으로 들어오면 만족감도, 기쁨도 사라져 버렸다. 막상 그녀가 앞에 있으면 그는 그녀에 대한 욕구를 잃어버렸다. 번번이 마찬가지 실망감이, 유감이 고개를 들 뿐이었다. 그는 하루 내내 그녀와의 약속 시간을 기다렸지만, 그녀와는 다른 어떤 사람이 돌아오는 것이었다. 도대체 그는 뭘 기대했던 것일까? --- p.118 분명히 그녀는 아주 흔해 빠진 여자 가운데 하나였다. 에므리에게도, 이 책의 저자에게도, 대부분 남자에게도 그런 여자들은 그저 우연히 마주치게 되는 존재로서 우리가 그녀들에게서 발견하는 아름다움, 평온함이란 우리 스스로 자신을 위해 상상하던 아름다움과 평화가 아니므로, 우리가 발견하리라고 기대하지 않던 곳에 그런 아름다움과 평화가 있었으므로 우리는 한순간, 다만 한순간 그런 여자들에게 애착을 느낀다. 평생에 두세 번 이런 죄를 저지르지 않는 남자가 어디 있겠는가? --- pp.123~124 어머니와 딸은 처음으로 서로 얘기를 나누고 싶어 했다. 제대로 대화를 하고 싶어 했다. 두 사람은 서로 흐느끼며 천천히 눈물을 섞고 싶었지만, 눈물도 나오지 않았고 말도 나오지 않았다. 뽐므는 도움(엄마가 자신에게 꼭 줘야만 하는을 청하기보다는 어머니 앞에서 의젓한 태도를 보이며 수치심을 감추려고 애썼다. 그녀는 속내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 있는 단 한 사람, 증인이자 재판관인 어머니의 침묵을 해석하기가 두려웠다. --- p.129 "당신은 그리스라는 나라를 모르지요? 난 살로니카까지 가 봤어요. 알아요?" 그러자 어쩌면 내가 유일한 남자였으리라는 생각으로 말미암은 괴로움이 누그러졌다. '레이스 뜨는 여자'는 마치 어머니처럼 애정 어린 웃음을 머금은 채 잠시 나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내가 괴로워하는 걸 헤아리고 나를 가엾게 여기는 듯 보였다. --- p.15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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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드 고레타 감독
이자벨 위페르 주연의 영화 「La Dentelli?re」의 원작 소설 "한 여자와 남자의 만남과 헤어짐이라는 흔해 빠진 이야기로 가면 뒤에 숨겨진 이 세상의 맨 얼굴을 생생히 보여 준다." 얀 베르메르 레이스 뜨는 여자 문학이 씨줄로, 철학과 사회학 그리고 심리학이 날줄로 얽혀 있는 프랑스 소설의 진수 공쿠르 수상작이자 이자벨 위페르 주연의 영화 「레이스 짜는 여인」의 원작 소설 가벼운 소설에 지친 이들에게 사유의 맛깔스러움과 청량감을 안겨 줄, 아우라 넘치는 텍스트 『레이스 뜨는 여자』는 프랑스 현대 문학의 걸작으로 꼽힌다. 얀 베르메르의 그림에서 제목을 따온 이 소설은 나오자마자 평단과 독자들의 갈채를 받으며 1975년 공쿠르 상을 거머쥔다. 지금까지 프랑스에서만 150만 부가 넘게 나갔는데, 2000년대에 들어서도 2만 부 안팎씩 꾸준히 팔리고 있다. 세계 주요 언어로 두루 번역된 이 소설은 특히 러시아에서 60만 부가 넘게 팔릴 만큼 인기를 끈다. 『레이스 뜨는 여자』는 연애 소설인가 하면 아주 섬세한 철학 소설이자 사회 소설이고 심리 소설이다. 아울러 이 텍스트는 소통 부재 또는 선택과 배제에 관한 잔혹하고도 아름다운 보고서로 읽히기도 한다. 한 여자와 남자의 만남과 헤어짐이라는 흔해 빠진 이야기로 가면 뒤에 숨겨진 현실 세계의 맨 얼굴을 이토록 생생히 보여 주는 소설은 달리 찾기 어렵다. 이 독특한 소설은 영화로도 성공을 거둔다. 1976년 원작자 파스칼 레네의 시나리오와 클로드 고레타 감독, 이자벨 위페르 주연으로 영화가 만들어지는데, 이 또한 평단의 찬사를 받으며 이듬해 칸 영화제 경쟁 부문에 진출한다. 이름이 거의 알려진 바 없던 이자벨 위페르는 「레이스 짜는 여인」의 주연을 맡으면서 이윽고 프랑스 대표 배우로 올라선다. 누보로망의 어떤 부분을 나누어 가진 이 소설은 서술 기법이나 형식 측면에서도 그 새로움이 여전히 돋보인다. 68혁명의 소용돌이를 건너온 작가 파스칼 레네의 날카로우면서도 폭넓은 현실 인식과 문제의식이 문학, 나아가 예술 작품으로 맺혔다고 해도 좋을 소설이 바로 이것이다. 가벼운 소설에 지친 사람들에게 권한다. 걸작의 탄생 『레이스 뜨는 여자』는 1974년 프랑스 현대 문학의 산실인 갈리마르에서 첫선을 보인다. 이 소설은 문학이 씨줄로, 철학과 사회학 그리고 심리학이 날줄로 얽힌 독특하고 작품성 높은 텍스트로 처음부터 평단의 눈길을 끈다. 휴가철 바닷가에서 만난 여자와 남자, 서로 끌린 두 사람의 동거, 짧은 밀월, 출신 배경과 성격이 다른 데에서 오는 소통의 어려움, 침묵, 가로놓인 벽, 막막함, 헤어짐, 허허벌판에 홀로 남겨진 여자, 슬픔 그리고 수치심, 그 여자의 거식증과 정신병원 행. 이렇게 스케치하고 나면 어디서 들어 본 듯한 연애 소설의 스토리 라인과 별반 다를 게 없다. 그러나 속을 들여다보고 디테일을 살펴보면 생각이 바뀐다. 이 텍스트에 담긴 인간과 사회에 대한 작가의 통찰과 밀도 높은 문장, 실험성 짙은 내러티브 구조, 그리고 낯선 서술 기법은 이른바 누보로망이 이룬 성과를 이어받는 한편 새롭게 뛰어넘는 것이기도 하다. 『레이스 뜨는 여자』는 현대 문학의 걸작이자 어느덧 고전 반열에 오른 소설이다. 사과와 거식증 여기, 섬세함과 육중함의 통일성 속에 그 나름으로 조화를 이루며 살던 한 여자 아이가 있다. 겉과 속이 둥글고 반들반들한, 그래서 '사과' 곧 '뽐므'로 불린 아이. 뒷날, 열여덟 나이 때 순수함과 침묵 속에서 사랑이 삶을 삼켜 버린 여자. 그 사랑 앞에 정신을 놓아 버린 여자. 어찌할 바 없는 해석의 폭력 앞에서 평온함과 감수성, 아름다움이 지워지며 비참한 자아로 떨어진 그 여자 뽐므. 초라한 운명을 타고난, 보잘것없는 집안에서 나고 자란 그 여자 뽐므는 저한테 너무 조금밖에 주지 않는 이 세상에 마침내 아무것도 더 바라지 않기로 마음먹는다. 금 간 벽이나 돌 틈에서 저에게 잘 맞는 흙을 찾아내는 작은 떨기나무와도 같던 그 여자가 문득 삶에서 고개를 돌려 버리는 것이다. 신경성 식욕 부진 곧 거식증은 그 단절 의지가, 이해할 길 없는 세상과 저를 따로 떼어 놓으려는 의지가 몸의 증상으로 나타난 결과다. 『레이스 뜨는 여자』는 아무 잘못 없이 버림받고 마는 한 여자가 걸어온 삶의 길을 통해 성과 출신 배경 그리고 계급의 차이에서 싹트는 현실 사회의 모순과 비극을 되돌아보게 하는 소설이다. 세계의 비참! 사람과 사람 사이 다른 사람에게 자아를 바치려는 '흔해 빠진 여자'는 잠자기 전에 불 끄는 것을 잊는 남자의 수만큼이나 드물다. 흔한 것은 그 여자를 '흔해 빠진 여자'라고 여기는 해석의 오류다. 우연히 만난 처녀를 남자가 '흔해 빠진 여자'로 묶을 때 그 여자는 끝내 남자의 이방, 바깥에 머물 수밖에 없을 터. 이런 상황을 불러오는 것 가운데 하나가 소통 부재 또는 불가다. 때로는 침묵이 소통을 가로막기도 한다. 더 심각한 것은 일방성이다. 고문서학교 학생인 에므리는 미용실 보조인 뽐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 남자는 줄곧 제 관념과 추상의 그물을 덧씌워 여자를 바라본다. 여자는 일과 사물의 세계에 속해 있건만, 남자는 거듭 그 여자를 거기서 데리고 나오려 한다. 에므리와 이 세상의 일방성은 심지어 뽐므를 식민화하려는 양상마저 띤다. 소통이란 쌍방향을 전제로 하는 법이거늘…. 이런 해석의 오류와 일방성은 어느덧 폭력을 거느리게 되고, 가냘프기 짝이 없는 존재 뽐므는 어디서 비롯되었는지도 모른 채 깊은 상처, 치명상을 입는 것이다. 혁명은 흘러가고 파스칼 레네는 프랑스 68혁명의 소용돌이를 건너온 작가다. 그의 현실 인식은 이와 깊이 관련되어 있다. "금지를 금지하라!"고 외치던 1968년 5월의 변혁 운동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68혁명을 하나의 이념과 기획으로 묶기는 어려울 터. 정치 측면에서는 실패 판정을 받기 일쑤이되, 성 자유와 마약 그리고 페미니즘의 확산은 그 운동의 커다란 유산이라고 할 수 있다. 레네가 눈여겨본 지점 가운데 하나가 사회 속 여성의 위상인 것은 이런 맥락에서 파악될 법하다. 작가일 뿐 아니라 교육자이자 사회학자로서 그가 주목한 또 한 가지는 소통의 문제다. 그의 초기 소설 주제는 이 두 가지가 빚어내는 자장에서 거의 벗어나지 않는다. 그리고 이 두 가지 주제가 하나로 어우러진 소설 텍스트가 바로 그의 대표작인 『레이스 뜨는 여자』다. 작가 레네가 관념의 고치에서 나와 현실 사회에 눈길을 돌린 68혁명 세대의 한 사람으로서 보여 주는 문제의식은 어떤 내용과 형식으로든 기성 질서와 지배 체제를 비판하는 출발점이자 베이스캠프가 되는 셈이다. 영화 「레이스 짜는 여인」 『레이스 뜨는 여자』를 원작으로 하는 이 영화는 우리나라 공중파에서 두 번에 걸쳐 방송된 바 있다. 2007년에 하이퍼텍 나다에서 시네 프랑스 기획으로 '이자벨 위페르 특별전'이 열리는데, 이때 스크린에 걸린 10편 가운데 가장 차분하면서도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킨 것이 이 영화다. 「레이스 짜는 여인」은 원작 소설만큼이나 대사가 드물고 음악도 거의 쓰지 않는다. 스타일이 간결하고 온갖 요소가 절제되어 있다. 조용하다. 관객의 감정을 이끌어 내려는 무리한 시도가 끼어들 틈이 없다. 영화의 주제는 인물들의 사소한 행동과 몇 마디 말, 스쳐 지나가는 에피소드에 틈틈이 묻어나다가 마지막 시퀀스에 이르러 모아진다. 이 영화는 레이스 뜨던 여자가 고개를 돌려 카메라 정면, 관객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끝난다. 아무것도 안 보는 것도 같고, 모든 걸 다 보는 것도 같은 그 눈길. "조용하고 느린 영화다. 마지막 장면, 레이스 뜨는 여자의 그 텅 빈 눈길을 잊을 수 없다.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마음이 아팠다." 어느 블로거가 올린 영화평 대목이다. '레이스 뜨는 여자'는 소설이든 영화든 보고 나면 그 아픔 또는 슬픔의 여운이 아주 오래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