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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의 감옥
신가 몰락 유령은 밤에 자란다 옮긴이의 말 |
Kotaro Tsunekawa,つねかわ こうたろう,恒川 光太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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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7일 수요일은 계속되었다. 처음 얼마 동안은 내가 지금 몇 번째 돌아온 것인지 헤아리고 있었지만 곧 헷갈리게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내 기억 말고는 모든 것이 아침 상태로 회복되어 있기 때문이다. 어떤 기록도 남길 수 없으니 내 기억을 의심하기 시작하면 대책이 없었다. 일곱 번째 11월 7일인지 여덟 번째 11월 7일인지 확인할 길이 없었다. 묘한 일이지만, 같은 하루를 반복하다 보니 아득한 옛날부터 세계가 늘 이랬던 것처럼 느껴지기까지 했다. 11월 7일 이전 역사나 나를 포함한 인간들의 기억은 세계를 속이려고 교묘하게 만들어진 가짜일 뿐, 세계는 애초부터 11월 7일밖에 없었던 것이 아닐까? --- pp.21~22
마침내 11시가 지났다. 우리는 모두 말없이 앉아 있었다. 그 익숙한 온기가 찾아오기 직전에 류이치가 내 손을 잡았다. 나도 모르게 숨을 멈추었다. 그가 이렇게 내 손을 잡은 것은 이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나도 류이치의 손을 쥐어주었다. 무슨 비밀스런 의미가 있는 몸짓인지 아닌지는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나 편할 대로 해석해서 소중한 추억 하나를 마음에 새기면 되는 것이다. 사람들은 저마다, 잘 가요, 하고 말했다. 가는 빗방울이 초목을 축축하게 적시는 소리에 눈을 떴다. 아마 세 동료들도 각자 자기 방에서, 각자의 기점에서, 천장을 바라보며 같은 빗소리를 듣고 있을 것이다. 네 명의 생존자는 저마다 길을 간다. 나는 오랫동안 천장을 바라보며 지나간 꿈을 반추하고 있었다. --- pp.84~85 “나는 당신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오.” 여기서 가면을 쓰고 살면서 내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고? 황당하군. 나는 모호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오키나 가면 남자가 가는 손으로 내 손목을 잡았다. 차가운 손이었다. 작심하고 일어서려고 했지만 더욱 가까이 들이대며 속삭이듯이 말했다. “나는 아주, 아주 오랫동안 여기에 있었어요. 당신을 기다리면서 말이오.” (……) 제발 부탁이니 떠나지 말았으면 좋겠소, 그런 애원이 느껴졌다. --- pp.100~101 이 세계는 환상으로 가득 차 있단다. 언제였던가, 할머니는 말했다. 누구나 환상을 믿고, 환상에 조종되고, 환상의 노예가 되고, 많은 시간을 환상에 바친단다. 짧은 생을 살면서 진짜를 꿰뚫어보는 놈은 한 명도 없단다. --- pp.180~18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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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네카와 고타로의 세 번째 단행본에 실린 세 편의 중편소설은 저마다 다른 색깔을 가진 환상소설이지만 적어도 ‘갇힘’이란 모티프를 본다면 연작집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가을의 감옥』은 시간에, 『신가몰락』은 공간에, 『환상은 밤에 자란다』는 환시에 사로잡힌 사람을 그렸다.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현실에 그림자처럼 밀착된 또 다른 세계로 시나브로 독자를 끌어들이는 점은 변함없이 매력적이다. 영화나 소설이나 초자연적인 장면이나 개연성 없는 이야기다 싶으면 얼른 내던져버리는 독자라도 이 작가의 세계를 외면하기는 힘들 것이다. 작가가 그리는 또 다른 세계는 날카롭게 벼려 놓은 요사스러운 칼과 같아서, 섬뜩하지만 한번 쥐어보고 싶게 만든다. ‘야시’가 그랬고 ‘고도’와 ‘온’이 그랬다. 이 책에 나오는 ‘리플레이’ ‘신가’ ‘환시’의 세계 역시 섬뜩하긴 하지만 기회만 주어진다면 꼭 한 번 겪어보고 싶은 매혹적인 세계가 아닌가.
--- 옮긴이의 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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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모르게 여기 갇혀버렸어. 우리에게 내일은 절대 오지 않아!”
빠져나오기 힘든 위험한 계절의 유혹 『야시』, 『천둥의 계절』을 잇는 쓰네카와 고타로의 최신 작품집 평범한 하루가 계속 반복된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수수께끼의 집에 갇혀 세상을 떠돌아야 할 운명이라면? 남들은 갖고 있지 못한 특별한 재능을 갖고 있다면 과연 행복할까? 누구나 한번쯤 꿈꾸었을 법한, 그러나 아무도 갈 수 없었던 매력적이지만 한편으로 두렵기도 한 세계에 우연히 갇혀버린 사람들의 기묘한 이야기를 그린 『야시』와 『천둥의 계절』의 작가 쓰네카와 고타로의 최신작. 『가을의 감옥』은 일상의 틈에 숨어 있는 기이한 환상의 세계를 경험한 이들의 서글픈 운명을 그린 『야시』로 독자를 사로잡았던 작가 쓰네카와 고타로가 2007년에 발표한 최신 작품집이다. 2005년, 데뷔작 『야시』로 제12회 일본 호러소설대상을 수상하며 혜성같이 등장한 쓰네카와 고타로는 같은 작품으로 단숨에 제134회 나오키 상 후보에 올랐으며, 첫 번째 장편 『천둥의 계절』로 제20회 야마모토 슈고로 상 후보, 두 번째 작품집『가을의 감옥』으로 2008년 제29회 요시카와 에이지 문학 신인상 후보에 오르는 등 발표하는 작품마다 일본 최고의 문학상 후보에 오르며 일본 문학의 차세대를 이끌어갈 선두 주자로 떠오른 작가다. 쓰네카와 고타로는 이번 작품집에서도 일본의 전통 민담과 서양 판타지의 고전에서 끌어온 소재를 바탕으로 시간(『가을의 감옥』), 공간(『신가 몰락』), 환시(『환상은 밤에 자란다』)에 사로잡힌 사람들의 기구한 운명을 ‘고독’과 ‘허무’라는 일관된 주제의식에 담아 시적인 문체로 이야기한다. 또한 섬뜩하고 매혹적인 환상 세계에 사로잡힌 인물들을 통해 현대인들의 미래에 대한 불안한 심리와 우울한 내면을 탁월하게 형상화하는데 성공하고 있다. 일본 문학의 차세대 선두 주자 쓰네카와 고타로의 최신작 환상의 세계로 열린 틈을 떠도는 사람들의 슬픈 운명을 그린 『야시』와 『천둥의 계절』로 많은 독자들에게 사랑을 받았던 쓰네카와 고타로가 새로운 작품집 『가을의 감옥』으로 돌아왔다. 제12회 일본 호러소설대상을 수상하며 데뷔한 쓰네카와 고타로는 발표하는 작품마다 나오키 상, 야마모토 슈고로 상, 요시카와 에이지 문학 신인상 등 일본의 쟁쟁한 문학상 후보에 오르며 문학성을 인정받고 있을 뿐만 아니라 주류 판타지가 보여주지 못했던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에 대한 새로운 질문을 던지며 많은 독자들로부터 열띤 호응을 얻고 있다. 최신작 『가을의 감옥』에서도 변함없이 현실과 가까운 곳에 존재할 법한 이상한 세계의 풍경과 거기에 사로잡힌 사람들의 모습을 그만의 스타일로 형상화하고 있으며, 특히 다양한 상황에 ‘갇힌’ 사람들의 고독과 허무를 세심하게 탐구하는 한층 성숙된 모습을 선보이고 있다. 11월 7일 수요일, 그 하루가 계속 반복된다면? 『가을의 감옥』 “희망이란 내일이 있다고 믿는 것이다.” _23p. 서늘한 빗소리와 함께 시작한 11월 7일 수요일. 평범할 것만 같았던 그 하루를 대학생 아이는 계속 반복하고 있다. 처음에는 혼자만 남겨졌다는 생각에 우울증에 빠지기도 하지만, 우연히 11월 7일에 갇힌 리플레이어들과 만나 교류하면서 아이는 서서히 안정을 되찾는다. 그러나 기타가제 백작이라는 괴인과 마주친 리플레이어들이 어디론가 없어진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영원히 반복될 것 같은 일상에 젖어있던 아이와 리플레이어들은 다른 곳으로 갈 수 있으리란 막연한 기대와 함께 이대로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의 상반된 감정에 사로잡힌다. 『가을의 감옥』은 타임리프 SF의 고전인 켄 그림우드의『리플레이』에 오마주를 바친 작품으로, 똑같은 하루를 계속 반복하는 사람들의 조금 특별한 이야기를 통해 시간관념이 바뀐 세상을 사는 인간들의 비뚤어진 욕망과 감정의 변화를 풍자적으로 그리고 있다. 세상을 표류하는 수수께끼의 집에 갇힌 남자 『신가神家 몰락』 “그때는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나중에 깨닫게 되는 경우도 있으니까요.”_147p. 일정한 주기로 세상을 이동하는 오키나 가면의 집에 우연히 갇힌 남자는 일본 전역을 떠돌면서 많은 사람들과 만나 인연을 맺는다. 수수께끼의 집을 둘러싼 비밀에 대해 조금씩 알게 된 남자는 다른 누군가가 집에 들어왔을 때 이 곳에서 빠져나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몇 번의 실패를 거듭한 끝에 이 집의 적임자로 여겨지는 니라자키라는 남자가 방문하자 그를 남겨둔 채 집에서 빠져나오는데 성공한다. 하지만 곧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고 그 집으로 되돌아가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힌다. 서양 판타지의 공간이동 모티프와 일본 전통의 민속적인 무당집이라는 소재가 성공적으로 어우러진 『신가 몰락』은 자신만의 세계를 찾아 거기에 몰두하고 싶어 하는 현대인의 우울한 초상을 판타지적인 세계에 투영한 작품이다. 환상을 현실로 보이게 하는 능력을 가진 자의 운명 『환상은 밤에 자란다』 “그저 자기 하나만을 위해 사람들을 속이며 사는 목숨이 필요할까?” - 265p. 환상을 타인에게 보여주는 특별한 능력을 가진 리오는 ‘신의 능력’을 이용해 돈을 벌려는 종교 집단 사람들에게 감금되어 있다. 그리고 자신의 남다른 능력 때문에 벌어졌던 과거의 일들을 하나둘 떠올린다. 리오에게 주어진 재능은 과연 축복일까? 아니면 재앙일까? 그녀의 운명을 바꾼 사건의 진상에 대해 알게 될 즈음 리오는 그동안 꼭 숨겨두었던 마음 속 괴물이 주체할 수 없이 커버린 것을 느낀다. 『환상은 밤에 자란다』는 특별한 재능을 타고난 한 아이가 자신의 운명을 인정하고 거기에서 벗어나려는 과정을 밀도 있게 그려낸 수작으로, 쓰네카와 고타로의 이야기꾼으로서의 발전된 면모를 엿볼 수 있는 실험적인 작품이기도 하다. 현실과 환상을 넘나드는 기발한 상상력의 세계 속으로 떠나보자! 쓰네카와 고타로는 『가을의 감옥』에서도 변함없이 일본의 전통 민담과 서양 판타지의 고전에서 끌어온 소재를 바탕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특히 이번 작품집에서는 시간(『가을의 감옥』), 공간(『신가 몰락』), 환시(『환상은 밤에 자란다』)에 사로잡힌 사람들의 기구한 운명을 ‘고독’과 ‘허무’라는 일관된 주제의식에 담아냈을 뿐만 아니라 현대인들의 미래에 대한 불안한 심리와 우울한 내면을 탁월하게 형상화하여 지난 작품들보다 한층 발전된 면모를 엿볼 수 있다. 『환상특급』 『기묘한 이야기』 같은 인기 판타지 SF 드라마를 떠올리게 하는 『가을의 감옥』의 작품들은 모두 백 페이지를 채 넘지 않는 짧은 분량이지만, 그 속에 담긴 압도적인 이야기와 독자를 사로잡는 이미지의 환기력은 수백 페이지에 달하는 작품에 못지않다. 깊어가는 가을, 답답한 현실에서 잠시 벗어나 기발한 상상력으로 창조된 『가을의 감옥』의 이야기 속으로 빠져보는 것은 어떨까. 절대 후회하지 않을 탁월한 선택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