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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화가들은 우리 얼굴을 어떻게 그렸나
조선 후기 초상화와 카메라 옵스쿠라 양장
이태호
생각의나무 2008.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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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화보|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초상화가와 작품
책머리에 조선 후기 초상화의 아름다움- 전신, 배채 그리고 카메라 옵스쿠라

1장 조선 후기에 카메라 옵스쿠라로 초상화를 그렸다
: 정조 시절 정약용의 증언과 이명기의 초상화법을 중심으로
시작하며
카메라 옵스쿠라의 발생과 전래
정약용의 카메라 옵스쿠라에 대한 증언
이명기가 그린 초상화의 입체화법
마치며

2장 18세기 초상화풍의 변모와 카메라 옵스쿠라
: 새로 발견한 [이기양 초상] 초본과 이명기의 초상화 초본을 중심으로
시작하며
15세기~17세기의 공신 초상화
18세기 초상화풍의 변모
숙종~영조 초(1700년~1730년대)|영조~정조 초(1740년~1770년대)|정조~순조 초(1780년~1800년대)
카메라 옵스쿠라와 초본 제작
카메라 옵스쿠라 체험|[이기양 초상] 초본|[윤증 초상]과 초본|이명기 [채제공 초상]과 초본
마치며

3장 조선 후기 초상화의 제작공정과 비용
: 이명기 [강세황 71세 초상]에 대한 「계추기사」를 중심으로
시작하며
현존하는 강세황의 초상화
강관의 「계추기사」 전문
「계추기사」의 초상화 제작일정과 비용
「계추기사」와 초상화의 족자 표장법
마치며

4장 조선시대 초상화의 표현방식과 사실정신
시작하며
조선시대 초상화의 사실적 묘사기법: 배채법과 배선법
조선 초기와 중기의 초상화
15세기~16세기: 몸에 맞지 않는 관복 초상화
17세기 전반: 당당한 체형의 관복 초상화
17세기 후반~18세기 전반: 유복 초상화의 유행
조선 후기의 초상화
18세기: 새로운 변모와 입체화법의 구현
18세기 후반: 서양화법과 카메라 옵스쿠라의 도입
18세기 후반~19세기: 초상 형식의 다양화와 퇴락
마치며: 전통 초상화법의 근대적 변모

도판목록|찾아보기

저자 소개 1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와 동 대학교 대학원 미학·미술사학과를 졸업했다. 국립중앙박물관, 국립광주박물관 학예연구사, 전남대학교 교수, 전남대학교박물관 관장, 명지대학교 미술사학과 교수, 명지대학교박물관 관장, 문화예술대학원장, 문화재청 문화재위원. 전라남도, 광주광역시, 경기도, 충청남도 문화재위원, 국회입법조사처 자문위원, 한국은행 화폐 도안 자문위원 등을 역임했다. 현재 명지대학교 석좌교수이다. 주요 저서로는 『신의 눈빛을 훔친 남자, 빈센트 반 고흐』, 『이야기 한국미술사』, 『옛 화가들은 우리 땅을 어떻게 그렸나』, 『사람을 사랑한 시대의 예술, 조선후기 초상화』,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와 동 대학교 대학원 미학·미술사학과를 졸업했다. 국립중앙박물관, 국립광주박물관 학예연구사, 전남대학교 교수, 전남대학교박물관 관장, 명지대학교 미술사학과 교수, 명지대학교박물관 관장, 문화예술대학원장, 문화재청 문화재위원. 전라남도, 광주광역시, 경기도, 충청남도 문화재위원, 국회입법조사처 자문위원, 한국은행 화폐 도안 자문위원 등을 역임했다. 현재 명지대학교 석좌교수이다.

주요 저서로는 『신의 눈빛을 훔친 남자, 빈센트 반 고흐』, 『이야기 한국미술사』, 『옛 화가들은 우리 땅을 어떻게 그렸나』, 『사람을 사랑한 시대의 예술, 조선후기 초상화』, 『우리시대 우리미술』, 『조선후기 회화의 사실정신』, 『한국 근대 서화의 재발견』, 『조선후기 산수화-옛 그림에 담긴 봄 여름 가을 겨울』, 『조선후기 화조화-꽃과 새, 풀벌레, 물고기가 사는 세상』, 『미술로 본 한국의 에로티시즘』, 『한국미술사의 새로운 지평을 찾아서』(윤용이·유홍준 공저), 『조선미술사기행: 금강산, 천년의 문화유산을 찾아서』, 『한국의 마애불: 하늘과 땅이 동시에 열리는 공간』(이경화·유남해 공저), 『서울산수: 옛그림과 함께 만나는 서울의 아름다움』, 『한국미술사의 라이벌: 감성과 오성 사이』, 『한국미술사의 절정』, 『고구려의 황홀, 디카에 담다: 평양지역 고구려 고분벽화의 디테일』, 『지리학자, 미술사학자와 함께 육백리 퇴계길을 걷다』(이기봉과 공저), 『금강산을 그리다』(이영수와 공저), 『한강, 그리고 임진강: 정조시절 문인화가 지우재 정수영의 천리 길 따라』 등이 있다. 《서울산수》, 《고구려를 그리다》 등 개인전을 개최했다. 우현(고유섭) 학술상을 수상했고, 황조근정훈장을 수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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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이태호
명지대학교 미술사학과 교수, 문화재청 문화재감정위원 및 문화재위원. 홍익대학교 회화과와 동대학교 대학원 미술사학과를 졸업했다.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광주박물관 학예연구사를 거쳐 전남대학교 교수 및 박물관장, 명지대학교 박물관장을 지냈다. 고구려 고분벽화에서 근현대회화까지 한국회화사 전반에 걸쳐 폭넓은 관심을 가져왔다. 최근에는 초상화, 풍속화, 진경산수화 등 조선 후기 회화 연구에 집중하고 있다. 주요 논문으로 「한국 고대 산수화의 발생 연구」 「고려불화의 제작기법에 대한 고찰」 「조선 후기의 진경산수화 연구」 「조선 후기 풍속화와 기록화에 나타난 연주 장면」 「조선 후기 풍속화에 그려진 여속과 여성의 미의식」 「Portrait Paintings in the Joseon Dynasty: With a Focus on Their Style of Expression and Pursuit of Realism」 「실경에서 그리기와 기억으로 그리기: 조선 후기 진경산수화의 시방식과 화각을 중심으로」 등이 있다. 지은 책으로 『우리시대 우리미술』 『풍속화』 『조선 후기 회화의 사실정신』 『미술로 본 한국의 에로티시즘』 『조선미술사기행』 『조선 후기 회화의 기와 세』 『운주사』(공저) 『고구려 고분벽화』(공저) 『한국의 마애불』(공저) 『한국의 초상화』(공저) 등이 있다.

관련 분류

품목정보

발행일
2008년 11월 14일
판형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227쪽 | 620g | 175*232*20mm
ISBN13
9788984989030

책 속으로

조선시대 초상화의 특징으로는 외면의 사실적 표현과 내면의 정신이 담긴 전신傳神의 사실성을 들 수 있다. 하지만 실제 눈에 보이는 대로의 사실적인 묘사와는 차이가 난다. 안면은 약간 측면이면서 눈은 정면을 응시하고 코는 어느 정도 측면이면서 입은 정면이다. 측면에서 본 형태의 왼쪽 귀는 대체로 올려 그렸다. 적절한 변형을 통하여 인물의 개성적 진실성에 다가가고, 우리 얼굴의 미모를 표현하는 전형이 된 것이다. 그런 가운데 약간 옆얼굴이면서도 두 눈은 정면상처럼 그리는 전통이 정착되었다. 19세기 초 신윤복의 〈미인도〉를 보면, 얼굴은 살짝 오른쪽으로 틀었으면서도 눈은 정면에서 본 형태로 그리다보니 오른쪽 눈이 얼굴선 밖으로 나가도록 표현될 정도이다.

--- p.183

출판사 리뷰

인물의 정신까지 그리는 전신론傳神論
조선시대 초상화는 ”터럭 하나라도 닮지 않으면 다른 사람이다“라는 관념 아래 사실 묘사의 ‘진실성’을 가장 큰 미덕으로 삼았다. ‘초상’은 외모를 닮게 하면서 대상인물의 정신까지 그린다는 뜻으로 ‘전신傳神’이라 일컬었다. 심지어 너무 사실적이어서 검은 반점, 마마자국, 피부가 하얗게 변하는 백반증 등 주인공 얼굴의 약점까지 있는 그대로 적나라하게 묘사해놓았다. 심지어 조선시대 초상화를 자료로 삼아 피부병 관련 질병을 연구한 의학계의 논문이 나올 정도이다. 이에 자극을 받아 중국과 일본의 의학자들이 자국의 전통 초상화를 조사했지만 우리나라처럼 사실적인 예가 거의 없었다고 한다. 이는 조선시대의 초상화가 같은 동아시아 문화권에서도 얼마나 ‘대상인물이 지닌 진실성’ 표현을 중요하게 여겼는지 짐작하게 한다.

카메라 옵스쿠라의 활용과 근대적 사실정신
카메라 옵스쿠라camera obscura는 말 그대로 ‘pin-hole black box’로 ‘어두운 방’ 혹은 ‘어둠상자’이다. 어둠 속에 바늘구멍으로 들어온 빛을 따라 일정한 거리에 벽면이나 흰 종이를 갖다놓으면, 그 스크린에 바깥 풍경과 물상들이 거꾸로 비치게 되는 원리를 응용한 것이다. 르네상스 이후 1830년대까지 카메라 발명에 앞서 사용되던 광학기구이다. 15, 16세기부터 19세기까지 유럽 화가들 가운데 원근법과 입체감 곧, 대상을 정확히 읽고 묘사하기 위해 카메라 옵스쿠라를 사용하고 개발했는데, 그런 광학기기가 중국을 거쳐 조선에 들어왔다. 카메라 옵스쿠라의 수입은 김홍도나 이명기처럼 묘사기량이 탁월한 화가들의 출현시기와 맞물려 조선 후기 초상화의 사실성을 한층 높이는 데 일조했다.
대상과 꼭 닮은 이미지를 카메라 옵스쿠라의 뷰파인더에서 눈으로 확인한 일은 당시 화가들에게 충격적이라고 할 만큼 새로운 자극이었을 것이다. 김홍도나 이명기처럼 특히 대상을 닮게 그리려는, 재현의지를 지닌 화가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었을 것이다. 이들은 사신 일행으로 북경을 여행하면서 그런 체험을 갖기도 했고 조선 후기 회화를 '과학적 사실주의' 경향으로 볼만한 수준으로 이끌었다.
카메라 옵스쿠라를 이용해 그림을 그렸다는 사실은 정약용, 이규경, 최한기, 박규수 등 조선 후기 학자들의 기록에서 발견된다. 가장 이른 기록은 정약용의 『여유당전서』에서 찾아볼 수 있다. 카메라 옵스쿠라에 대한 정약용의 증언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자신이 직접 실험한 ‘캄캄한 방에서 그림 보는 이야기’인 「칠실관화설漆室觀畵說」인데, 이 글은 카메라 옵스쿠라로 풍경을 감상한 내용이다. 또 하나는 「복암 이기양 묘지명」에 밝힌 대로 “이기양이 정약용의 형인 정약전의 집에서 칠실파려안 곧, 카메라 옵스쿠라로 초상화를 그렸다”라는 사실이다.
실제로 카메라 옵스쿠라를 본격적으로 사용해 인물화와 풍경화를 그렸을 16~19세기 서양회화사에서 카메라 옵스쿠라를 활용하였다는 증거나 기록을 남긴 사례는 거의 없다. 이런 점에 비추어볼 때, 정약용이 카메라 옵스쿠라를 실험하고 그것으로 초상화를 제작했던 증거를 구체적으로 남긴 일은 세계과학사나 회화사에서도 소중한 기록이다.

우리 얼굴의 피부색을 표현한 배채법背彩法
배채법은 뒷면에 채색을 해 앞면에 그것이 반투명 상태로 비치게 하는 방식이다. 배채는 물감의 얼룩이나 변색, 박락剝落을 막아주는 데 효과적이고, 얼굴의 미묘한 살색을 내는 데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기법이다. 중국의 양면착색법은 발색을 선명하게 내기 위해 주로 쓰였지만 고려 불화나 조선시대 초상화의 배채법은 얼굴의 살색이나 흰옷 부분을 은은하게 드러내기 위해 부분적으로 쓰였다. 뒷면에서 그려 화면의 앞면으로 우러나온 색채를 활용하는 배채법은 유화나 수채화 같은 서양회화에서는 불가능한 기법이다. 캔버스나 면지가 두껍기 때문이다. 그래서 배채는 동양회화의 재료가 비단이나 종이여서 개발된 화법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배채는 동서양회화의 차이를 여실히 대변한다는 점에서도 주목된다. 서양그림이 눈에 든 대로 그리는 일을 중시한 반면, 배채는 대상의 내면을 중시하는 동양화론과 함께하는 기법이라 할 수 있다. 즉, 배채법은 겉으로 드러난 외양만이 아니라 대상인물의 속내인 정신을 담아내야 한다는 전신의 회화론과 잘 맞아떨어진다. 뒷면 곧, 보이지 않는 곳에 밑그림을 그린 배채는 동양인의 기질과도 잘 어울리며, 얇은 두께에 인간의 깊이를 내고 뒷면도 배려하는, 우리 선조들의 예술사상과 생활철학이 담긴 기법으로 꼽을 수 있다.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초상화가와 작품

* 윤두서, [윤두서 자화상]
조선시대 초상화의 대표작을 꼽자면 우리나라 초상화의 예술성과 형식적 특징을 가장 드러낸 문인화가 윤두서의 자화상을 들 수 있다. 준수한 얼굴의 강렬한 인상과 화면 가득한 정면상의 응시가 보는 이를 압도한다. 당대 정계에서 소외된 남인계열 재야지식인의 비감에 찬 표정이 극세필의 수염묘사와 기막히게 어울린다. 관직을 포기한 듯 관모를 올리는 모자 윗부분을 자른 구성방식이 대담한 걸작이다. 정면의 얼굴 전체에 고루 빛을 준 표현은 전형적인 우리의 인물화법이다(화보 4쪽, 본문 181쪽 참조).

* 이명기, 김홍도 [서직수 초상]
〈서직수 초상〉은 1796년에 얼굴은 이명기가 그리고 몸은 김홍도가 그린 합작품이다. 두 대가의 솜씨가 만난 만큼 빼어난 예술성을 뽐낸다. 조선시대 초상화의 최고 걸작으로 손꼽히는 동시에 서직수의 얼굴 생김새 또한 조선시대 초상화 인물 중에서 가장 으뜸이다. 돗자리 위에 버선발로 서 있는 자세가 새롭다. 왼발을 앞으로 오른발을 오른쪽으로 향하여 안정감 있게 선 자세는 마치 서직수가 그러한 포즈로 모델을 선 듯하다. 섬세한 잔선묘의 입체감이 선명한 얼굴과 함께 짙지 않으면서도 옷 주름과 음영의 실감나는 표현은 탁월하다(화보 22~23쪽, 본문 110~111쪽 참조).

* 신윤복, [미인도]
조선 후기에는 별격別格의 초상화로 미인도 계통의 여인상이 재등장하였다. 이는 초기의 공신 초상 제작 때 함께 그린 부인 초상화와 달리 풍속화가 유행하던 시류와 함께 출현한 새로운 경향이다. 순조 시절 그려진 신윤복의 〈미인도〉가 보여주듯 화사한 색감과 섬세한 묘사로 미모가 빼어난 여인의 매력적인 자태를 담은 여성 초상화가 등장했다. 조선 여인의 우아한 아름다움을 한껏 강조한 점이 돋보인다(화보 28~29쪽, 본문 207쪽 참조).

* 채용신, [곽동원 초상]
조선시대 초상화의 전통을 계승한 마지막 화가는 채용신이다. 무관출신이면서 초상화로 유명해 조선 말 어진 제작에 참여했으며 전통 초상화법을 계승하는 한편 서양화법을 자기화하여 근대적인 초상화법을 만들어냈다. 채용신의 대표작은 1918년에 그린 〈곽동원 초상〉인데 특히 수정체 세부까지 묘사한 눈동자 표현을 주목할 만하다. 눈동자를 단순히 까맣게 칠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수정체에 흰색 하이라이트를 찍어 눈빛의 생생함을 표현했는데, 이는 전통 초상화에서 근대적인 초상화로 새롭게 변화한 좋은 증거이다(화보 30~31쪽, 본문 211~212쪽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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