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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ni Morrison,본명: Chloe Anthony Woffo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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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들은 제 마음대로 쾌락을 누려서는 안 된다나요. 노예들의 몸은 기쁨을 위해서 존재하는 게 아니라, 되도록 많은 자식을 낳아서 주인을 기쁘게 해주기 위해 있는 거래요. 그래서, 마음속 깊은 곳에서 쾌감을 느끼는 것도 금지되어 있었다고 해요. 할머니께서는 그런 소리는 절대 귀담아듣지 말라고 하셨어요. 언제나 제 몸이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이고, 몸을 사랑하라고 하셨어요.
--- p. 35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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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인들의 ‘국가적 기억상실증’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토니 모리슨의 퓰리처상 수상작 『빌러비드』의 출간으로, 과도한 사랑의 위험에 대한 토니 모리슨의 3부작이 완간되었다(『빌러비드』는 자식에 대한, 『재즈』는 동반자에 대한, 『파라다이스』는 신에 대한 과도한 사랑의 위험을 담고 있다). 특히 ?빌러비드?의 모성애가 ‘과도한 사랑’으로 전락하는 근저에는, 사랑할 권리가 없는 노예라는 참혹한 역사적 배경이 깔려 있다.
이 작품은 ‘6천만 명 그리고 이상’이라는 헌사로 시작된다. 이 어마어마한 숫자는 미국인들의 ‘국가적 기억상실증’인 노예제의 희생자 수를 의미한다. 노예제란 한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소유됨(상품으로 매매됨)을 인정함으로써, 육체와 노동력뿐만 아니라 한 인간의 근본적인 생명력을 모두 앗아가는 제도이다. 물론 노예제는 어느 시대에든 다양한 형태로 존재했다. 하지만 아메리카로 끌려온 아프리카인들은 인종.국적.문화적 차이로 인해 전대미문의 물리적?정신적 차별과 폭력을 경험했다. 더구나 이 굴종의 삶은 그대로 자식에게 대물림되었다, 아마도 영원히. 이러한 제도적 폭력에 맞선 한 여인의 파괴적인 모성애를 다루고 있는 『빌러비드』의 모티브가 된 것은 1856년 미국 신시내티에서 벌어진 충격적인 사건이다. 마가렛 가아너라는 흑인 여자 노예가 탈출한 지 하루 만에 노예 사냥꾼들에게 쫓겨 붙들릴 위기에 처하자, 가장 사랑하던 막내딸의 목을 단칼에 베 죽이고 나머지 아이들까지 살해하고 자살하려다 붙들린 참극으로, 노예제의 비인간성을 널리 알린 유명한 사건이다. 그러나 『빌러비드』는 단지 노예제에 대한 고발성 문학이 아니다. 만약 그랬다면, 이 작품은 독자들을 끔찍함과 혼돈 속으로 몰아넣고 고문하는 졸작에 그쳤을 것이다. 날것 그대로를 처절한 아름다움으로 형상화한 이 작품은 갈가리 찢긴 기억과 시간의 환상적인 재구성, 수려한 문체와 풍요로운 은유, 물오른 마술적 리얼리즘의 비전 등 모리슨 작품 세계를 관통하는 여타의 특징들이 절정의 기교를 자랑하며 물 흐르듯 매끄럽게 풀려나가고 있다. 또한 역사적 상상력과 문학적 상상력이 절묘한 하모니를 이루어, 냉철하고 비판적으로 현실을 인식하고 인간과 역사를 통찰력 있게 해부하되, 그 정서는 삶을 추동하는 힘이 뜨겁고 붉게 맥동하는 심장임을 잊지 말라는 듯, 끈적끈적하도록 진한 살 냄새로 지독하게 독자를 유혹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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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받지 못한 자들을 사랑받은 이들이라 부르리
그러나 언제나 그러했듯, 충격적인 이 소재를 다루는 토니 모리슨의 성숙한 시각은 센세이셔널리즘과는 거리가 멀다. 엄마(시이드)의 참혹한 행위를 미화하려는 시도도 전혀 하지 않고, 사건의 감상적 측면을 부풀리려는 시도도 전혀 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그 사건을 짊어지고 삶을 살아내야 하는 시이드의 인생을 끝끝내 지켜보고, 끔찍한 죄과를 치르게 만들고, 또 그런 일을 왜 저질렀는지 시이드로 하여금 변명할 기회를 주고, 그런 과거를 지니고도 미치거나 죽어버리지 않고 계속 살아가는 그녀의 강인함에 찬탄을 금치 못하게 만들고, 독자들이 결국 그녀를 경외하면서도 사랑하게 만든다. 이 작품 속의 여성들은 희생자(흑인에다, 여성에다, 가난한 노예이기까지 한)이기 전에 강하고, 절박하고, 다정하며, 연약하고, 분노에 차 있는, 복잡다단한 캐릭터들이다.
이는 ‘영어권 문학에 등장하는 유령들 중 가장 강렬한 존재’인 ‘빌러비드(beloved)’도 마찬가지다. 빌러비드는 엄마의 왜곡된 사랑이 낳은 희생자, 바로 살해당한 두 살배기 딸아이의 이름(?)이다. 감옥에서 나온 엄마는 딸아이의 비석에 뭐라도 새겨주기 위해 석공에게 몸을 팔았고, 그래서 ‘감지덕지’로 새겼던 글자가 바로 ‘빌러비드(사랑했던 내 아기)’였던 것이다. 역설적으로 빌러비드(‘사랑받은 사람’)는 ‘사랑받지 못한 자’들을 통칭한다. 그리고 이 아기 귀신의 한은, 곧바로 미국 흑인들의 악몽 같은 종족의 한으로 이어진다. 아름다운 플라타너스 나무에 대롱대롱 매달린 젊은 청년들, 물 속에서 건져올린 머리카락과 살점이 아직 붙어 있는 흑인 소녀의 빨간 리본, 등짝에 벚나무처럼 가지를 뻗은 피 묻은 채찍의 흔적, 헛간에 갇혀 백인 부자에게 날마다 강간을 당하던 악몽, 쇠재갈을 입에 물고 있는 자신을 바라보던 수탉의 비웃는 듯한 시선, 불에 바삭바삭 타오르면서도 탈출한 아들의 이름을 부르고 미친 듯이 승리의 웃음을 웃어대던 친구의 새카맣다 못해 푸르른 얼굴, 아내가 강간당하는 현장을 목격하고는 끝내 미쳐 제 얼굴에 엉긴 버터를 처바르던 사내 등등 수많은 사람들이 각기 기억하는, 차마 말로 할 수 없는 집단 박해의 증거들을 하나하나 재기억(rememory)하게 됨으로써, 비로소 사랑받지 못한 자들의 한을 풀고 보듬는 치유의 작업이 이루어질 수 있게 된 것이다. 역시 충격적인 실화를 골조로 했던 『재즈』에서도 그러했듯, 짤막한 뉴스 클리핑의 풍요로운 행간을 읽어내 관련인물들의 지난했을 인생의 서러움과 고통, 그리고 담담한 인고와 화해로 채워넣는 모리슨의 다채로운 상상력은 언제나 섬뜩한 비극을 냉철하게 바라보면서도 결국은 상처를 보듬고 마음의 위안을 주는 휴머니즘으로 귀결된다. 『빌러비드』는 가해자인 백인이나 피해자인 흑인 모두 망각하고 싶어했던 ‘노예제’를 처절한 모성애를 통해 재조명함으로써, ‘사랑받지 못한 자’들의 역사를 새롭게 써내려간,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생각조차 하고 싶지 않은 고통’을 치유하는 자기 진정성, 개인과 공동체의 화해라는 보편적인 주제를 처절하고 아름답게 형상화하고 있다. 그리고 『빌러비드』는 근본적으로 러브스토리다. 그저 소박하게, 사람들이 한없이 사랑하고 사랑받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세상의 모든 장벽들을 뛰어넘어 사랑받지 못한 자들을 사랑받은 이들이라 부르는 것, 하지만 결코 말처럼 쉽지 않은 꿈, 그것이 바로 『빌러비드』의 비전인 것이다. |